< 7장 인생은 실전이다(2) >
인생 리셋 오 소위! 046화
7장 인생은 실전이다(2)
3.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이 마지막으로 내무실에 들어갔다. 강상식 상병이 잠을 청하는 녀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싹 다 입 다물었지? 헛소리한 놈 없지?”
“네. 없습니다.”
뭔가 무미건조한 대답이었다. 강상식 상병의 시선이 손주영 이병에게 향했다.
“손!”
“이병 손주영.”
“혹시 이상한 사람 있어, 없어? 솔직히 말해봐. 솔직히!”
“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손주영 이병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강상식 상병 앞에서는 늘 주눅 든 모습이었기 때문에 강상식 상병도 그런 손주영 이병을 의심하지 않았다.
“너 이 새끼. 이해진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앞으로 잘해라. 이해진 꼴 나고 싶지 않으면.”
“자, 잘하겠습니다.”
“알았으니까 누워.”
손주영 이병이 부스럭거리며 누웠다.
“야, 누워서 듣는다. 이 소란은 내일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어서 자!”
소대원들은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오상진은 일찍 의무대를 찾았다.
“왔습니까?”
때마침 한 대위가 오상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병은 깨어났습니까?”
“네. 새벽에 일어난 것 같은데 그 이후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습니다.”
“밥은 먹었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한 대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습니까?”
“아마 충격이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겠죠. 지금 들어가 봐도 되죠?”
“그러시죠.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한 대위가 가볍게 고갯짓을 하고는 사라졌다. 오상진은 이해진 일병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갔다. 등을 돌린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테이블에는 식어버린 아침 식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일어났냐?”
오상진의 물음에 이해진 일병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돌려 일어나려 했다.
“됐다. 누워 있어라.”
“아닙니다.”
이해진 일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상진이 의자를 당겨와 앉았다.
“밥은 먹지.”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 뭐 먹고 싶은 것은 없고?”
“괜찮습니다.”
이해진 일병의 얼굴은 피멍으로 가득했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미안하다, 소대장이 제대로 챙겼어야 했는데······.”
“······.”
이해진 일병은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이 부르르 떨렸다.
“몸은 좀 어때?”
“괜찮습니다.”
“얼굴 상태가 영 아니다.”
오상진의 말에도 이해진 일병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매만져볼 뿐이었다. 그마저도 순간순간 아픈지 인상을 찌푸리며 움찔거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상진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이해진 일병 역시 할 말이 없는 듯했다.
“해진아.”
“일병 이해진.”
“내가 어떻게 해줄까? 아니,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오상진의 물음에 이해진 일병의 얼굴이 천천히 들려졌다. 오상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뗐다.
“전 다른 건 바라지 않습니다. 이 억울한 심정을 확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녀석들을 처벌해야겠구나.”
“네. 꼭 처벌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나도 그 두 녀석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다.”
오상진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해진 일병은 그런 오상진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왜? 내 얼굴이 뭐라도 묻었냐?”
“소대장님. 정말 그 두 사람 처벌할 겁니까?”
“그래.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영창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입니까?”
이해진 일병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뭔가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왜 그러지? 소대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네.”
이해진 일병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거짓말이 아니야.”
“······사실 이전에 구타 사건이 있었을 때 전 소대장님에게 몰래 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소대장께서도 분명 차후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랬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과 친분을 과시하며 절 나쁜 사람을 몰아갔습니다.”
“그랬냐? 그 소대장 이름이 뭔데?”
“우진철 소대장이었습니다.”
이해진 일병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이미 한 번 당했기 때문에 또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오상진은 우선 그것에 대한 믿음부터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철 이 새끼야. 너 왜 그랬니? 그러고도 네가 장교야? 쪽팔리지도 않아?’
오상진은 속으로 우진철을 욕했다. 따지고 보면 우진철이 오상진에게 있어서 선배지만 지금 그런 것은 소용이 없었다.
“해진아. 소대장을 믿어. 소대장이 꼭 그 녀석들을 처벌받게 해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오늘 하루는 여기서 지내고 내일쯤 부대에 복귀를 하는 게 좋겠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그만 쉬어라.”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해진 일병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그리고 밥 먹어. 먹어야 빨리 낫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의무대에서 올라와 곧바로 중대장실을 찾았다. 그리고 김철환 1중대장에게 어제 일을 보고 했다.
“뭐? 가혹 행위? 와, 진짜. 요즘 왜 이러냐? 나한테 마가 꼈나?”
오상진은 작심하고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실은 말입니다.”
오상진에게 모든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은 김철환 1중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 두 녀석이 사고를 쳐놓고 후임에게 뒤집어씌웠다가, 그거 들통나니까 후임병을 작살 내놨다. 이거야? 뭐 이런 미친 새끼들이 다 있어. 그 녀석들 뭐야? 뭐, 집안에 장군 단 사람이라도 있어?”
“집안 중에 군인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지들이 뭔데 깝치는 거야. 최용수 그 새끼 경례도 제대로 안 하는 새끼 맞지? 강상식이는 그 옆에 따라다니는 놈이고.”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의 뺀질뺀질함은 군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김철환 1중대장이 고민을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이번 일에 대한 처벌을 고민해야 했다.
“상진아,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전 이 녀석들 확실하게 처벌했으면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영창에 집어넣고 싶습니다.”
“야, 강 상병은 그렇다 쳐도 최 병장은 제대 한 달 반 남았다. 그냥 자체적으로 처벌하고 넘어가자.”
김철환 1중대장은 솔직히 화는 나지만 그렇다고 제대가 코앞인 녀석을 처벌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오상진은 이번 기회에 최용수 병장과 김상식 상병을 확실하게 처벌하고 싶었다.
“사실 중대장님,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뭐?”
오상진이 예전에 면담에서 나왔던 얘기와 조사했던 것까지 모두 드러냈다.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럼 지난번에 조사하려고 했던 것이 이거였어?”
“네. 이미 지난 일이라 처벌하긴 어렵더라도 제가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는데 그전에 일이 터져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그나저나 뭐, 이런 개 쌍놈에 새끼가 다 있지?”
김철환 1중대장이 화가 나는 듯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 일이 미칠 파장을 떠올리고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뭔데? 이 녀석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원칙대로 처리했으면 합니다.”
“원칙?”
“네.”
“그럼 영창에라도 보내잔 말이야?”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행한 일들만 해도 영창도 모자라 군사재판에 넘겨야 할 판입니다.”
오상진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수록 김철환 1중대장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네 맘은 알겠다. 당연히 원칙대로 해야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중대장님은 다른 생각이십니까?”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최용수 병장은 이제 제대 한 달여밖에 안 남았어. 그 녀석을 영창 보낸다고 하면 아마 대대장님이 쉽게 허락하지 않을 거야. 대대장님도 이곳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런데 이런 사건이 터진 걸 과연 이해하실까?”
“그럼 이 녀석들을 그냥 두고 보자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라 우리 부대 내에서 처벌을 논의해 보자는 거지.”
김철환 1중대장이 달래듯 말했다. 가뜩이나 시가전 전술 훈련 때 대대장의 눈 밖에 났는데 이번 일까지 들고 간다면 문제 중대로 찍힐 게 뻔했다.
오상진도 부대 분위기를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또 넘어가 버린다면 내리 물림처럼 내려오는 가혹 행위를 근절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중대장님께서 정 힘드시면······ 제가 직접 대대장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야, 미쳤냐! 내가 가도 될까 말까인데. 네가 가면 오히려 대대장님 화만 돋우잖아. 안 그래도 찍힌 놈이······.”
“저는 괜찮습니다. 중대장님께 피해 가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그리고 고작 소위 따위가 요구한다고 대대장님이 받아주실 거 같아?”
“그래도 한번 부딪쳐 보겠습니다.”
오상진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내켜하지 않는 김철환 1중대장을 억지로 등 떠밀고 싶진 않았다.
그런 오상진의 고집에 결국 김철환 1중대장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하아. 알았다. 알았어, 내가 대대장님 만나볼 테니까 진정해라. 어휴.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수명이 준다. 줄어.”
“고집부려서 죄송합니다.”
“아무튼 대대장님을 만나는 것은 중대장인 내가 직접 할 거니까 직접 찾아가는 일 없도록. 알겠어?”
“네, 중대장님.”
“그만 나가봐.”
“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김철환 1중대장이 나가는 오상진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진짜 상진아. 쉽게 좀 살자. 너 그러다 진급도 못 해 인마.”
오상진을 보면 과거 혈기왕성하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기특하면서도 불안불안했다. 자신이야 좋은 아내를 만나서 자제하는 법을 배웠지만 오상진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일을 또 어떻게 보고를 한다.”
김철환 1중대장은 한종태 대대장에게 보고할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상진이 두고 간 보고 서류를 다시 읽고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하아. 이 개놈의 새끼들. 그래. 내가 옷 벗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들 인간 만든다.”
4.
간부회의를 마치고 내려오던 4중대장의 눈에 이호준 하사가 보였다.
“이 하사! 잠깐만!”
“네. 무슨 일이십니까?”
“간밤에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 1중대장이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을 영창 보내야 한다면서 대대장님께 보고서를 올렸던데.”
“네? 그게 정말입니까?”
이호준 하사가 눈을 치뜨고는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봐, 이 하사! 얘기는 해주고 가야지.”
4중대장이 그를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호준 하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 7장 인생은 실전이다(2)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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