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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44화 (44/1,018)

< 6장 이놈들이(6) >

인생 리셋 오 소위! 043화

6장 이놈들이(6)

“모두 손들고 무기 버려!”

“엥?”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바라봤다. 하지만 통과한 병력 전부 자신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3중대장님?”

최용수 병장의 물음에 3중대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멍청한 새끼들!”

“네?”

강상식 상병이 고개를 갸웃할 때 최용수 병장이 눈치를 채고 총을 들었다.

“시발, 속았다! 총 들어!”

하지만 먼저 적군의 총에서 불꽃이 튀었다.

탕! 타타타탕!

삐이이익!

삐이이익!

상태창에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떠 있었다. 강상식 상병은 사망했음에도 왜 그들이 자신들을 향해 총을 쐈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다만 최용수 병장만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서 있었다.

그 뒤로 순차적으로 다른 조들에게도 총성이 들려왔다. 그들 모두 뒤를 내어주며 무방비 상태로 당한 것이었다.

최용수 병장은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몰랐다. 최용수 병장이 사망자들이 모이는 곳에 갔다. 3중대장 옆으로 가서 앉으며 물었다.

“3중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최용수 병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옆으로 강상식 상병을 포함한 이해진 일병, 손주영 이병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3중대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아, 멍청한 새끼들! 한마디로 우린 X됐다는 거다!”

7.

한번 뚫려 버린 방어선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6중대와 7중대에서 다급히 지원 병력을 보냈지만 이미 지휘통제실은 무너진 뒤였다.

참담한 결과를 두고 한종태 대대장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다.

“이게 말이 돼? 그렇게 많은 병력이 지키고 있는데 한 번에 무너지는 게 말이 되냐고!”

한종태 대대장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쉽지 않은 훈련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휘통제실은 그야말로 시베리아 찬바람이 부는 듯 냉랭했다. 특히 김철환 1중대장과 3중대장은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했다.

한종태 대대장은 한참 동안 격정을 토해내다가 이내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그 한숨마저 차가운 냉기에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한종태 대대장은 제일 먼저 뚫린 5중대장에게 시선이 갔다.

“야, 5중대장!”

“네.”

“너희 부대는 도대체 뭘 한 거야? 뭘 했기에 그걸 못 막고 뚫려 버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내가 묻잖아! 뭘 어떻게 했냐고!”

“정말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너 어디서 뭘 배웠냐? 어떻게 배웠기에 간단한 전술 한 번 펼치지 못하고 그리 쉽게 뚫려?”

“적군 병력이 많아서 중과부적이었습니다.”

“병력이 많기는 뭐가 많아? 몇십 배는 끌고 왔어? 그런 거야?”

“······.”

“이 새끼가 대답 따박따박 못 하지? 너 육사 몇 기야?”

“······.”

순간 5중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한종태 대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어쭈 이 새끼가······. 몇 기냐고!”

“육사 나오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한종태 대대장의 눈매가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를 사과할 수는 없는 노릇. 한종태 대대장은 그냥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네가 문제인 거야. 도대체 다른 곳에서 뭘 배워왔기에······. 쯧쯧쯧.”

한종태 대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5중대장이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덩달아 다른 3사 출신 중대장들의 표정도 굳어졌다. 육사 출신 중대장들의 표정도 밝진 못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출신을 따져 봐야 분란만 키울 뿐이었다.

한종태 대대장의 호통의 화살은 5중대를 거쳐 3중대장에게 향했다.

“그리고 너 3중대장. 너 이 새끼야. 넌 뭐 하는 새끼야? 중대장씩이나 되어서 포로를 자처해? 너 미쳤어?”

“이제 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염치없는 줄 알지만 사실 그것은 작전이었습니다.”

“뭐?”

“저희가 사전에 암구호를 정하지 않았습니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제가 암구호를 다르게 말하면 병사들이 의심할 거라 여겼습니다.”

“지랄하고 있네. 고작 그거 하겠다고 지름길로 적들을 안내했냐?”

“물론 1중대의 실력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1중대장의 통솔력 역시 뛰어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 작전만 성공했더라도 적들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3중대장의 말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작전처럼 들렸다. 그러나 서로 짜 놓은 작전대로 움직이는 훈련에서 저런 식의 임기응변은 말도 안 되는 무리수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3중대장을 따라온 병력이 무려 2개 중대에 달했다. 설사 틀린 암구호의 의미를 알아채고 병사들이 기민하게 대처했다 하더라도 뚫리는 건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날 엿 먹이고 싶었다고 해.’

김철환 1중대장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모든 책임을 3중대장에게 뒤집어씌우고 싶진 않았지만 저런 식으로 책임 회피를 한다면 가만히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때 5중대장이 같은 3사 출신인 3중대장의 지원 사격에 나섰다.

“3중대장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세우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암구호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1중대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암구호만 제대로 숙지했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5중대장도 3중대장이 일부러 1중대 쪽으로 길 안내를 한 줄 알고 있었다. 3사 출신인 5중대가 무너지고 3중대까지 괴멸된 상황에서 육사 출신 중대장들이 전공을 올린다면 출신 따지는 한종태 대대장의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한종태 대대장 역시 3중대장과 5중대장의 속내가 훤히 보였다. 그래서 5중대장을 향해 소리쳤다.

“닥치지 못해! 어디 중대장이 되어서 병사 탓으로 돌려! 그러고도 네가 중대장이야!”

5중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대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으구, 못난 놈들. 내가 이런 놈들을 믿고 부대를 맡았으니······.”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수습하듯 입을 열었다.

“대대장님. 저희 1중대 잘못이 맞습니다. 암구호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저희 잘못이 가장 큽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숙이자 한종태 대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후, 김철환 이 새끼야. 후배라고 커버쳐 주려는데 왜 자꾸 나서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런 한종태 대대장의 눈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3중대장이 보였다.

‘그런데 이 새끼는 뭘 잘했다고 쳐 웃어? 포로로 잡혀서 길 안내나 한 주제에. 이래서 3사 출신들은 답이 없다니까.’

한종태 대대장은 환영식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 육사 출신 중대장들은 자신에게 아양을 떨며 잘 보이려고 한 반면, 3중대장을 비롯한 3사 출신 중대장들은 그냥 멀찍이 자리 만 지키고 있었다. 마치 3사 출신 대대장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듯 말이다.

‘아까 말실수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한종태 대대장은 애써 짜증을 삼켰다. 5중대장이 3사 출신이었다는 걸 깜빡하지만 않았더라도 오늘 제대로 교육을 시키는 건데 아무래도 날이 아닌 것 같았다.

한종태 대대장이 다시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말한다.

“야. 1중대장. 너 이 새끼야. 정말 똑바로 안 할 거야? 육사 출신이면, 육사 출신답게 열심히 해야지. 감히 내 얼굴에 똥칠을 해!”

“······.”

김철환 1중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3중대장도 표정이 굳어졌다. 한종태 대대장의 말 속에 뼈를 느낀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한종태 대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둘 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김철환 1중대장과 3중대장은 쭈뼛거리며 지휘통제실을 나갔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었는데······.”

밖으로 나온 3중대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이렇게 됐는데 어쩔 수 없죠.”

김철환 1중대장은 건성으로 사과를 받았다.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걸 좋게 받아줄 만큼 김철환 1중대장은 너그럽지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몸을 돌려 1중대로 향했다. 저만치 오상진이 쭈뼛쭈뼛 서 있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보면 모르냐? 대판 깨졌다.”

오상진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자신들을 대신해 홀로 고생했을 김철환 1중대장을 생각하니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김철환 1중대장도 딱히 오상진을 야단칠 수도 없었다. 사적으로 오상진에게 엄청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로또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오상진 역시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에서 그런 망설임이 보였다.

“중대장님 그냥 시원하게 조인트 까십시오.”

“조인트는 무슨.”

“그냥 한 대 시원하게 까 주십시오. 제가 다 불편합니다.”

“야, 인마. 그런다고 일이 해결되냐? 됐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곳이 뚫려? 암구호도 제대로 숙지도 못하고!”

“제대로 전달을 했다는데······. 하아, 다 제 불찰입니다.”

오상진이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사실 암구호에 대해서는 병사들끼리 워낙에 알아서 잘 챙겼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외 다른 부분을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암구호에서 사고가 터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느낌이 좋지 않아. 대대장 성격에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누구 하나는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할 듯하다.”

“책임이라면······.”

“몰라, 대대장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 어쩌면 보직 이동이 있을 수도 있고.”

“보직 이동 말입니까?”

“그래, 어쩌면 말이야. 아무튼 각오는 하고 있자.”

김철환 1중대장이 나직이 말했다. 그때 막사에서 이호준 하사가 나왔다.

“충성, 오셨습니까.”

“······.”

김철환 1중대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이호준 하사가 눈치를 보며 오상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자 이호준 하사가 바로 안면을 바꾸며 1소대 막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 새끼들······. 그거 하나 못 해 가지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셨습니까?”

“네. 이해진 일병이 암구호를 잘못 알려줬다고 합니다.”

“이해진 일병이 말입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진 일병이 사고를 쳤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오상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이호준 하사가 냉큼 최용수 병장을 걸고넘어졌다.

“최 병장 그 녀석도 그렇지. 암구호 숙지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제대로 한 번 확인을 했어야지. 암구호 하나 숙지 못해서 이런 사달을 내는지 참.”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부대에 돌아가서 차차 생각해 봐야죠. 이 하사도 일찍 쉬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충성.”

수긍하듯 이호준 하사를 보냈지만 오상진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아는 이해진 일병은 그런 실수를 할 성격이 아니었다.

‘뭔가 있어.’

오상진은 그 조의 막내인 손주영 이병을 따로 불렀다.

< 6장 이놈들이(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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