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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39화 (39/1,018)

< 6장 이놈들이(1) >

인생 리셋 오 소위! 038화

6장 이놈들이(1)

1.

오상진은 신순애를 잡아끌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순애를 의자에 앉히고서야 잡았던 팔을 놓아주었다.

신순애는 괜스레 팔목을 어루만지며 오상진의 눈치를 살폈다. 세게 잡혔던 터라 살짝 욱신거리기도 했고 허리 통증도 아직 다 가시지 않았지만, 화가 난 아들의 모습에 애써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엄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데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엄마가 실수해서 그래.”

신순애는 무심한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솔직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면 오늘 같은 경우는 흔했다. 게다가 신순애에게 있어서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그래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 나 아까 전부터 와 있었어요. 사장이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것부터 다 들었다고요. 제가 군 생활만 하지 않았다면 진짜······ 다 엎어버렸을지 몰라요.”

“그랬니?”

신순애가 태연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탁자 아래에 있던 신순애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요새 가게 장사가 잘 안돼. 그래서 사장 신경이 좀 날카로워. 원래는 그러지 않아.”

“솔직히 말해봐요. 엄마 저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거 2호점 차리면 그곳 맡긴다고 해서 참고 있는 거예요?”

신순애가 흠칫 놀랐다.

“너 그 소리 누구한테 들었어.”

“어제 정진이가 다 말해줬어요.”

“정진이가?”

오상진은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오정진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형, 내일 엄마랑 병원 가는 거야?”

“가야지.”

“엄마 또 쉬어야 할 텐데······. 그럼 식당 사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야, 아프면 쉴 수도 있는 거지.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

“그런데 엄마도 별로 쉬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 사실 한 달에 한 번 쉬는 것도 괜히 눈치 보는 것 같던데.”

“뭔 소리야. 쉬는 날 당연히 쉬어야지. 뭘 그걸 눈치 보고 그래. 엄마도 참.”

“그게······ 엄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사정? 뭔 사정?”

“실은······.”

오정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식당 사장이 장사가 잘되자 2호점을 낼 계획을 세웠는데, 정말 2호점을 내게 되면 어머니에게 그곳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우리 엄마가 워낙에 근면 성실하시니까. 사장도 엄마의 그런 점을 높이 사신 모양이네.’

오상진도 오정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오늘 본 사장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 엄마를 부려먹을 생각인 것이었다.

“엄마, 그 식당 당장 그만둬요.”

“안 돼! 그럼 뭘 먹고 살라고.”

“제가 돈 벌잖아요. 아니면 엄마가 식당을 해요. 제가 하나 차려드릴게요.”

“네가? 됐어. 개업이 어디 한두 푼으로 되는 줄 아니.”

“엄마, 저 돈 많아요.”

“그래, 마음만 받을게. 그럴 돈 있으면 너 장가갈 때 보태.”

신순애는 오상진을 살살 달랬다. 일단 오상진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에 사장에게 달려가 대신 사과를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여겼다.

그러나 식당 주인의 갑질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오상진은 더 이상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자, 이거 봐요.”

오상진이 품에서 통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신순애는 별생각 없이 통장을 펼쳤다. 그래, 군인 월급에 모았으면 얼마나 모았으려고? 생각하며 통장을 펼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돈이야? 어디서 났니?”

“엄마 로또라고 알아요?”

“로또? 그게 뭔데?”

“이번에 새로 나온 복권이에요. 저 그거 1등 당첨되었어요.”

“정말이야?”

“네. 그럼요. 그럼 그 돈을 어디서 훔쳤을 것 같아요?”

“아, 아니······.”

신순애는 믿기지 않았다. 복권에 당첨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통장에 찍힌 돈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정말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복권을 한 거야?”

“아, 그게······. 우리 중대장님 전에 말씀드렸죠?”

“너한테 잘해준다는 그분?”

“실은 비밀인데, 우리 중대장님과 함께 당첨되었어요.”

“그래?”

“네.”

오상진은 이참에 김철환 1중대장님을 팔기로 했다.

“우리 중대장님이 새로 나온 복권이라며, 장난삼아 한번 해보자고 해서 같이 해봤어요. 번호도 중대장님과 똑같은 번호로 했는데 운 좋게 둘 다 당첨이 되었어요.”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절에도 안 다니면서 부처님 타령이에요.”

“그래도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리고 네 아빠 살아 계셨을 때는 종종 절에 다녔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그런데 이걸 왜 엄마에게 줘. 네가 가지고 있어야지.”

신순애가 말을 하고는 통장을 슬쩍 오상진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지만 아들이 번 돈이었다. 여태껏 어미로서 해준 것도 없는 데 욕심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상진은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쓰는 게 아깝지 않았다.

‘아직 나한테는 9개의 로또 번호가 남아 있으니까.’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엄마 내가 하는 말 못 들었어요? 내가 이걸로 엄마 식당 차려줄 거예요. 그리고 이참에 이사도 해요. 지금 살고 있는 집 너무 낡았잖아요.”

오상진이 강하게 말했다. 그러자 신순애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상진아······.”

신순애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이 죽은 이후 오상진은 장남의 무게감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 그걸 알면서도 신순애는 오상진보다 어린 오정진과 오상희를 더 신경 썼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자식들이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똑 부러진 오상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 여겼다. 대신 오상진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 만큼, 설사 그가 나중에 잘 되더라도 짐이 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오상진이 로또에 당첨되어 장남 노릇을 하겠다고 하니 미안하고 염치없음에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엄마가 해준 것도 없는데.”

“엄마가 해준 것이 왜 없어요. 이렇듯 낳아주시고, 지금까지 키워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엄마도 호강하실 때 되었어요. 솔직히 로또 당첨됐을 때 아버지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우리 가족 잘살라고 도와주신 것 같았거든요.”

“그랬니.”

“그러니까 우리 이 돈으로 보란 듯이 잘살아 봐요. 엄마 무시하는 식당은 그만두시고요.”

“그래도 어떻게 바로 그만둘 수 있나.”

“엄마 그 식당 바로 그만두지 않으면 이 돈 그냥 막 흥청망청 써 버릴 거예요.”

오상진의 귀여운 협박(?)에 신순애가 잠깐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만둘게.”

“그런 다음 오늘 저랑 병원 가고, 그다음에 집도 알아보고, 식당도 알아봐요.”

“그래, 알았다.”

신순애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렇게까지 애를 쓰는 오상진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혼자서도 씩씩하고 똑 부러지게 잘 자라준 아들이었는데, 복권에 당첨되고서도 가족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신순애는 오상진에게 기대어 보기로 했다.

‘우리 큰아들 이제 다 컸네.’

신순애가 속으로 생각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엄마.”

“응?”

“국밥 만들 수는 있는 거죠?”

오상진이 뒤늦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넌 그 집 국밥을 누가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니?”

“네?”

신순애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박정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키 큰 사내가 실례 좀 하겠습니다, 말하고는 신순애를 끌고 가는데 최말숙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경찰서에 신고할 뻔했다.

“그런데 최 씨. 신 씨에게 저런 아들내미가 있었어?”

“큰아들인데요. 육사 나와서 현재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육사를 나와?”

박정자가 화들짝 놀랐다. 헤어스타일을 보고 군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육군 사관학교 출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이야, 신 씨 큰아들 잘 키웠네.”

“그렇죠. 둘째 아들도 있는데 똑똑하대요. 반에서 1등만 해서 내년에 한국대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던데요.”

“한국대?”

최말숙의 말을 듣고 박정자는 잠시 생각을 했다.

‘가만 우리 진석이도 곧 있으면 군대 가야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신 씨한테 잘 보여야 하나?’

때마침 신순애가 식당에 나타났다. 박정자는 조금 전과 확 바뀐 얼굴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신 씨 왜 이제 왔어. 밖이 좀 쌀쌀하지 않아?”

그러면서 힐끔힐끔 뒤쪽을 훑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은? 같이 안 왔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고, 쌀쌀한데 왜 밖에서 기다리게 해. 들어와서 국밥 한 그릇 먹고 가라고 해.”

박정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신순애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전에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나에게? 아니지, 아까는 내가 미안했어.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했지? 신 씨 고작 그거 가지고 꿍하고 그런 성격 아니지?”

박정자가 냉큼 사과를 하자 신순애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신순애는 오상진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독한 마음을 먹고 바로 말했다.

“사장님 저 오늘부로 여기 그만둘게요.”

“뭐? 갑자기 왜?”

“제 허리도 좋지 않고, 아들이 일단 일을 그만뒀으면 한다고 하네요.”

“허리? 많이 안 좋아? 수술이라도 받아야 해?”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만약에 수술하면 천천히 하고 와도 돼. 그때까지 사람 안 구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아후, 신 씨! 신 씨 없으면 우리 식당 어떻게 돌아가. 우리 식당 손맛의 비결은 신 씨 아니야. 양념장이며 국밥 재료는 어떻게 만들어.”

박정자가 간곡하게 말했다.

원래 여기 국밥집은 프랜차이즈였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레시피로는 장사가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가맹비도 많이 떼어가서 프랜차이즈 회사랑 계약해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호를 교체하고 나서도 한동안 파리만 날렸다. 그래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신순애에게 찬모 겸 주방장을 맡겼는데 신순애가 자체개발한 양념장이 먹히면서 다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정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신순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2호점을 미끼로 더욱 악착같이 부려먹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손맛을 운운하다니.

신순애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최말숙을 보았다.

“말숙아, 주방 안 선반에 내 수첩 있지?”

“네, 언니.”

“그거 가지고 나와봐.”

“잠깐만요, 언니.”

최말숙이 재빨리 주방으로 가서 수첩을 가지고 나왔다.

“이거요.”

신순애가 수첩을 받아 들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보여줬다.

“여기요. 잘 보시면 제가 레시피 적어 뒀거든요. 이거 보시고 만드시면 돼요.”

“이건 아니지, 신 씨! 이런 식으로 가는 게 어디 있어.”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신순애는 여기서 딱 끊을 생각이었다. 그러자 박정자가 강하게 나갔다.

“신 씨, 자꾸 이러면 그동안 일한 월급 안 줄 거야. 아니, 못 줘!”

그 한마디에 신순애는 빈정이 확 상했다.

< 6장 이놈들이(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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