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호사다마(12) >
인생 리셋 오 소위! 031화
4장 호사다마(12)
오상진은 창문을 다 열고 방 안을 쓸었다. 걸레로 바닥을 깨끗이 닦은 뒤에 이불을 털어서 따뜻한 햇볕에 널었다. 그리고 밀린 빨래까지 논스톱으로 다 끝을 냈다.
“다 했나? 어디 안 한 곳은 없나?”
그리고 시계를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뭐야, 이것밖에 안 지났어?”
그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배꼽시계는 정확하다니까.”
오상진은 자신의 배를 툭툭 치며 피식 웃었다. 군대에 있으면 가장 확실한 것이 이 배꼽시계였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정확하게 밥때를 알려 주었다.
“아, 간부식당까지 가기 귀찮은데······.”
오상진은 부엌 서랍을 뒤졌다.
“어디 보자, 여기 어디에 라면이 남아 있을 텐데······. 찾았다. 짜장 라면. 그래, 주말에는 짜장 라면이지.”
오상진은 서랍에 남아 있던 짜장 라면 한 개를 끓여서 맛나게 먹었다.
그렇게 배를 채웠지만 추첨 시간까지는 여전히 몇 시간이 더 남은 상태였다.
“이제 또 뭐하지?”
잠시 고심하던 오상진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어디 보자.”
오상진은 인터넷을 통해 로또 기사를 검색했다. 그중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로또 판매량?”
기사를 클릭하자, 그곳에는 현재까지 총 판매된 로또 판매 금액이 기사화되어 있었다.
-새로운 복권형식인 로또가 현재까지 총 62억 원어치가 판매가 되었다. 당첨금 중 4등과 5등 당첨 금액을 제외한 75%가 1등 당첨금으로 주어지는데, 예상 수령액은 대략 15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 2등 당첨자도 최대 2억4천 정도를 가져가게 되니 기존의 주택복권보다 몇 배는 많은 당첨금이 주어지는 셈이다.
“와, 15억에다가 2억4천을 더하면······. 이게 얼마야? 아니구나, 당첨자가 나 혼자가 아닐 수도 있지.”
회귀 전 1회차 때 1등 당첨자는 없었다. 하지만 2등 당첨자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2등 한 명 당첨자가 있었으니까 만약에 중대장님이 2등에 당첨된다면 2등 당첨금도 3명이 나눠 가져야 하는구나.”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옛날에 내가 알던 금액보다는 조금 더 많이 팔린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 그것을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오상진은 다이어리를 꺼내 볼펜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만약에 옛날처럼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15억은 내가 타게 되겠지. 거기에 2등도 하나 있고. 문제는 우리 중대장님이 1등이 되느냐, 2등이 되느냐인데······. 만약 중대장님도 1등이 된다면 나랑 7억5천씩 나눠 가지는 거고······.”
과거 2등 당첨자 이외에 추가 당첨자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오상진이 수령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5억 8천만 원이었다.
최소 금액은 8억3천만 원.
어느 쪽이든 최소 8억 이상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세금까지 떼면 7억 조금 안 되려나?”
오상진이 다이어리에 7억이라는 글씨와 함께 동그라미를 수십 개를 그렸다.
“7억이라······.”
그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금액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지?”
오상진은 또다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땅이라도 살까? 아니면 집? 뭐부터 하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동생인 오정진이었다.
“정진이네. 이 녀석이 전화를 다 하고······. 집에 무슨 일 있나?”
오상진은 생전 전화도 하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전화를 하자 살짝 불안해졌다.
“여보세요?”
-형, 나 정진이.
“그래, 정진아. 무슨 일이야?”
-형, 바빠?
수화기 너머 오정진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상진은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별로 안 바빠.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라······.
“뜸 들이지 말고. 용건만 간단히.”
-아무래도 엄마 허리 수술해야 할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수술이라니?”
-엄마가 형에게 말하지 말래서 안 했는데······. 지난번에 일하시다가 엄마 허리를 삐끗하셨거든. 그런데 이번에 또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
“병원? 언제 갔는데?”
-어제.
“인마, 그걸 왜 이제 말해?”
-엄마가 형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그랬어.
“아무리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해도. 형에게 말했어야지.”
-미안해.
“됐고.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셔?”
-그게 엄마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만 따로 불러서 말씀해 주셨어.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하셨어. 엄마는 수술 안 하겠다고 완강하게 버티고 계시고. 그래서 가족들이랑 상의를 한번 해보라고 하네.
“엄마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면 당연히 수술을 해야지. 그런데 뭐가 문제야?”
-문제는 돈이지. 그래서 말인데 형. 나 주려고 모아놨다는 등록금 말이야. 그거 엄마 수술비에 보태면 안 돼?
오정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오상진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가 수술? 예전에는 말 없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오상진의 기억으로는 어머니의 허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는 건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여야 했다.
회귀 전 어머니는 지금이 아닌 몇 년 뒤에나 비싼 돈을 들여 허리 수술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 수술비는 당연히 오상진이 전부 부담했는데, 원래 차를 바꿀 생각으로 모아둔 돈이었기에 어머니의 수술비로 쓰게 되면서 살짝 아쉬워했던 기억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몇 년 뒤가 아니었어. 지금부터 아팠던 거야. 와, 오상진 너란 녀석! 도대체 엄마한테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지.’
회귀 전 가족들에게 무심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또 한 번 오상진을 덮쳤다.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이맘때쯤에 동생 오정진의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없었다. 아마 지난 휴가 때 좀 가까워졌고, 내가 돈을 모아뒀다고 하니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하아, 오상진. 도대체 넌 어떻게 살았던 거냐.’
오상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철이 없었다지만 너무 이기적이었던 본인의 행동에 후회를 했다.
오상진이 말이 없자 오정진이 다시 물었다.
-왜? 형 혹시 돈 없어?
“아니야, 인마. 형이 왜 돈이 없어. 수술비 얼마 정도 드는데?”
-잘 모르겠는데 내가 알아보니까 천만 원 정도 들 것 같던데.
“천만 원?”
-미안. 너무 많지?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걱정하지 마. 형 그 정도 돈 있어. 너는 엄마나 잘 모셔. 조만간 형이 휴가 내서 찾아갈 테니까.”
-형, 정말이지?
“그럼, 정말이지. 그리고 엄마 수술시켜드려도 너 등록금 내줄 돈 있으니까,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네 형 생각보다 돈 많아.”
-알았어, 형.
오정진은 처음 전화를 걸 때의 목소리보다 다소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로또를 손에 꽉 움켜쥐었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는 2등만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어머니 수술비부터 시작해 힘들게 살아온 가족들의 새 보금자리까지 마련하려면 8억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중대장님. 미안하지만 1등은 제가 먹어야겠어요.”
시간은 흘러 18시가 가까워졌다.
오상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TV를 켰다. 광고가 나오고 곧이어 제1회 로또 추첨식이 시작되었다.
오상진의 손에는 로또 용지가 들려 있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추첨 공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비상할 때마다 오상진 역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번호를 확인했다.
“제1회 로또 번호, 그 첫 번째 당첨 번호는 과연 몇 번일까요?”
아나운서의 멘트에 따라 오상진의 두근거림 역시 높아만 졌다.
“네, 첫 번째 번호는 29번입니다.”
오상진은 번호를 확인하고, 곧바로 손에 쥔 로또 용지에 시선이 갔다.
“좋아. 29.”
로또 번호에 정확하게 29번이 찍혀 있었다.
오상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뒤로도 번호는 계속해서 발표되었다.
오상진의 눈이 점점 커졌다. 발표되는 번호 모두 오상진의 로또 용지에 있는 번호였다.
그리고 마지막 번호가 발표된 후 오상진은 그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됐어! 됐다고!”
맘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방방 뛰며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자신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른 간부들 역시 이곳에 머무는 공간이고, 방음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솟구치는 감정은 억누른다고 해서 억눌러지지 않았다.
“하아······. 이런 기분이구나.”
그야말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미치겠다. 진짜 로또에 당첨되다니. 이거 꿈 아니지?”
오상진이 가볍게 볼을 꼬집었다.
너무 세게 꼬집어서 아픈데도 웃음이 났다.
그렇게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바닥에 놓아둔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발신자는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
뭔가를 예상한 오상진이 씩 웃으며 휴대폰을 받았다.
“네, 형님.”
그리고 수화기 너머 잔뜩 흥분된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진아아아아아!
“형님! 축하드립니다.”
오상진이 반갑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김철환 1중대장은 소리치기 바빴다.
-상진아, 내 동생. 으아아아아, 어디냐? 관사냐? 형이 갈게. 기다려라, 형이 곧 달려간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얼른 와, 얼른! 내가 지금 당장 너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이 상태라면 사고 날 것 같다.
“네네. 지금 갑니다.”
-상진아,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그렇게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로또 1회차 1등과 2등에 당첨이 되었다.
< 4장 호사다마(12)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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