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호사다마(10) >
인생 리셋 오 소위! 029화
4장 호사다마(10)
“네. 알겠습니다.”
조영일 일병이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구진모 일병이 들어왔다.
“충성, 일병 구진모 중대장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서 와라. 여기에 앉아.”
“네.”
오상진은 조영일 일병에게 물었던 것처럼 구진모 일병에게도 처음에는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했다.
“진호 너는 전문대 다니는구나.”
“네.”
“기계학과네?”
“그렇습니다.”
“할 만하냐?”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이렇듯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오상진은 면담을 끝내려는 듯 다이어리를 닫았다.
“마지막으로 소대장에게 할 말 있어?”
구진모 일병도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 비밀 엄수해 주시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 소대장이 비밀 지켜주겠다. 넌 무슨 일인데?”
“강상식 상병이 너무 괴롭혀서 죽겠습니다.”
“그래?”
또 강상식 상병이었다. 오상진은 다이어리를 다시 펼쳤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널 괴롭혔지?”
“말보다는 직접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바지를 확 벗었다. 순간 오상진의 눈이 커지며 당황했다.
“야, 야 인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바지 안 입어!”
“죄송합니다,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뭘 말이야?”
구진모 일병이 팬티 안쪽을 살짝 까뒤집었다.
“여길 보십시오.”
그곳에 메인 펜으로 적은 ‘SS’ 표시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SS라면 네 이니셜이 아니잖아. 그럼 네 팬티가 아니네. 누구 거야?”
“저희 내무실에서 ‘SS’ 이니셜을 쓰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SS······. SS······. 설마 강상식의 상식?”
“네, 그렇습니다.”
“하아, 진짜 강상식······.”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한두 명이 아니야?”
“네, 강상식 상병 밑에 애들은 전부 A급 하나씩은 다 뺏겼을 겁니다.”
“하아. 진짜······. 또 다른 건?”
“또 다른 건······. 사실 소대장님께서 부임하기 한 달 전일 겁니다. 연초가 나왔는데 그다음 날 일병과 이등병 담배가 모두 사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네. 당시에는 범인을 못 잡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강상식 상병이 한 거다?”
“네. 그렇습니다.”
“증거는 있어?”
“그게 좀 웃긴 게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다른 소대가 몰래 와서 훔쳐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담배를 다 잃어버리고 이틀이 지난 후였습니다. 갑자기 강상식 상병이 자신이 꿍쳐 놓은 담배가 있으니까, 사 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반강제적으로, 시중의 두 배 가격에 말입니다.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담배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영일 일병이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데 말하는 겁니다. 이거 자기 담배라고 말입니다.”
“엥? 아니, 어떻게?”
“알고 보니 조영일 일병은 담배를 받자마자 위 비닐을 벗겨서 자신의 이니셜을 몰래 새겨놓는다고 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강상식 상병이 판 담배에서 자신의 이니셜을 발견한 겁니다.”
오상진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나왔다.
‘헛, 강상식 이 새끼 진짜······.’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일단 구진모 일병을 보냈다.
“그래, 알았다. 이 부분도 소대장이 한번 알아보지.”
“네. 충성.”
다음은 이해진 일병을 불렀다. 오상진은 이해진 일병을 앉혀놓고 물었다.
“일병 중에서 네가 선임이지?”
“네, 그렇습니다.”
“많이 힘들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해진 일병은 애써 괜찮은 척했다. 그리고 오상진은 조영일 일병에게 들은 행군 중 쓰러진 얘기를 대놓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얘기를 꺼내려면 누가 말을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때문이었다.
‘일단 모든 면담이 끝난 다음에 제대로 조사를 하자.’
오상진이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마지막으로 소대장에게 할 말 없어?”
“할 말 있습니다. 강상식 상병이 너무 괴롭힙니다.”
“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오상진이 펜을 들었다. 이해진 일병은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말했다.
“강상식 상병에게 있어서 밑의 애들은 그냥 샌드백이었습니다.”
“샌드백?”
“네. 자신이 밖에 있을 때 한 주먹 했다면서 맨날 세워놓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특히, 한태수 일병은 갈비뼈를 잘못 맞아 실금이 갔을 정도였습니다.”
“실금? 엄청 아팠겠네.”
“네. 밤에 잘 때도 끙끙 앓았습니다. 그런데 강상식 상병은 시끄러워서 잠 못 잔다고 구박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그래놓고선 말입니다.”
“확실해?”
“네! 한태수 일병이 그다음 날 너무나 아파서 의무대에 갔습니다. 거기선 진통제 주고 참으라고 했는데 휴가 때 밖에 나가서 X-ray 찍어보니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그걸 한태수 일병이 그랬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강삭식 상병은 미안하다고 사과 한마디 안 했습니다. 그냥 한태수 일병만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오상진은 그저 어이가 없었다.
‘강상식 이 새끼. 양파야? 까도 까도 악행이 계속 나오네.’
이해진 일병을 돌려보낸 후 이번에는 김일도 상병을 불렀다. 하지만 김일도 상병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소대장에게 할 말은 없고?”
“네, 없습니다.”
오상진이 판단한 김일도 상병은 그냥 침묵의 방관자였다.
“알았다. 가서 차우식 상병보고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충성.”
잠시 후 차우식 상병이 왔다.
할 말이 없냐고 묻자 차우식 상병은 오히려 오상진 때문에 내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졌다고 말을 했다.
“나 때문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소대장님께서 최용수 병장이나, 강상식 상병에게 하는 행동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네.”
“걔들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저희 때도 다 겪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해야 후임들의 통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겠다. 그 점에 대해서 소대장도 생각해 보겠다. 다른 할 말은 없고?”
“네, 없습니다.”
“알았다. 그만 가 봐.”
“네, 충성.”
그다음 면담자는 노형래 이병이었다. 노형래 이병은 약간 어리바리한 성격이었다. 면담을 하러 오자마자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긴장하지 마. 소대장이 너 안 잡아먹어.”
“네,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 낮추고.”
“네.”
“좋아, 군 생활은 할 만하고?”
이렇게 처음에는 부드럽게 나갔다. 그리고 질문을 다하고 다이어리를 덮은 후 물었다.
“마지막으로 너는 소대장에게 할 말 없어?”
“사실 말입니다. 손주영 이병이 좀 불쌍합니다.”
“왜?”
“자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강상식 상병이 손 이병을 많이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노형래 이병은 그래도 바로 밑 후임이라고 챙겨주는 듯했다.
“그래? 네가 직접 본 거야?”
“네. 사실 손 이병이 오기 전까지는 제가 많이 시달렸는데, 이제는 저 대신 손 이병이 시달리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합니다. 솔직히 도와주고는 싶지만 또 예전처럼 강상식 상병의 표적이 될까 봐, 무서워서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노형래 이병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모습이 오상진은 짠했다.
“이해한다. 그리고 소대장은 형래 네가 그런 맘을 가졌다는 사실이 고맙다.”
다음 면담자는 한태수 일병.
오상진은 과연 한태수 일병이 강상식 상병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할지 오히려 궁금해졌다.
“넌 소대장에게 마지막을 할 말 없어?”
“있습니다. 강상식 상병이 많이 괴롭힙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
오상진은 다이어리에 다시 적을 준비를 했다.
“사실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구진모 일병이 강상식 상병에게 외박증을 탈취당했습니다.”
“외박증을 탈취당해?”
“네.”
한태수 일병의 말은 구진모 일병이 3중대장의 일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구진모 일병에게 포상으로 외박증을 하나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인사과에 외박증을 받으러 간 그 날 구진모 일병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어? 너 아까 받아갔잖아.”
“네? 제가 말입니까? 방금 왔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받아간 겁니까?”
“강상식 상병이 너 대신 받아가는 거라고 하던데.”
“네?”
구진모 일병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일단 인사과에서 나온 후 강상식 상병에게 따졌지만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새끼가 이거 하날 못 빌려주냐?”
그렇게 강제로 빼앗아가더니 입을 싹 씻어버렸다.
‘하아, 이번에는 구진모 일병이야? 도대체 이 자식의 끝은 어디인지······.’
오상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구진모 일병을 비롯해 강상식 상병에게 괴롭힘당한 병사들을 전부 부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은 체크만 해두자.’
다음으로 본래 면담의 목적이었던 손주영 이병이 들어왔다.
< 4장 호사다마(10)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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