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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9화 (29/1,018)

< 4장 호사다마(9) >

인생 리셋 오 소위! 028화

4장 호사다마(9)

8.

소대장의 갑작스런 면담 통보에 1소대 내무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침묵을 깬 사람은 최용수 병장이었다.

“상식아.”

“상병 강상식.”

강상식 상병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최용수 병장 앞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부르셨습니까?”

“너 아까 소대장이 하는 소리 들었지?”

“네, 면담 말입니까?”

“그래. 별다른 말 나오지 않게. 네가 알아서 애들 입단속 시켜라.”

“걱정 마십시오, 제가 확실하게 입단속 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소리쳤다.

“내 밑으로 모두 집합!”

집합 명령이 떨어지자 후임병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김대식 병장이 강상식 상병을 불렀다.

“강상식, 애들 집합을 왜 시켜?”

“아, 교육 좀 시킬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너, 이 새끼. 설마······.”

그때 최용수 병장이 나섰다.

“야, 대식아.”

“네?”

“넌 병장이면서 왜 끼어드냐? 애들 교육은 상식이가 맡는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지만 상식이가······.”

“야 인마. 그래서 네가 끼어들게? 아니면 내가 내 밑으로 집합시킬까?”

“아, 아닙니다.”

김대식 병장이 굳어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강상식 상병은 최용수 병장의 변호 아래에 기고만장한 표정을 지었다.

“뭐들 해, 새끼들아. 집합 안 해?”

“알겠습니다.”

후임병들이 후다닥 움직였다. 그런데 그중 김우진 상병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옆에 있던 이해진 일병이 말했다.

“김 상병님 저희 어디로 집합합니까? 이번에도 창고입니까?”

“새끼야, 그걸 왜 나에게 물어봐. 난 상병이니까 집합 안 해도 되잖아.”

“네? 방금 강 상병님 밑으로 다 집합하라고······.”

“그럼 왜 차우진 상병님과 김일도 상병님은 가만히 있는데?”

“그, 그거야······.”

“같은 상병인데 나도 빠져야지.”

지나가던 강상식 상병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상병을 단 지 고작 한 달밖에 안 된 김우진 상병의 행동이 강상식 상병의 심기를 건드렸다.

“야, 김우진.”

“상병 김우진.”

“너는 왜 앉아 있냐?”

“저도 집합합니까?”

“새끼야, 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어? 내 밑으로 다 집합하라고 했잖아. 넌 내 밑 아니냐? 새끼가, 상병 달았다고 다 끝난 줄 아나. 빨리 안 튀어가?”

“하, 하지만 차 상병님과 김 상병님은······.”

“저 두 녀석이 너랑 같은 짬밥이야? 이 새끼가 상병 달았다고, 이제 토를 다네. 오냐, 상병 달더니 눈에 뵈는 게 없지? 여기서 한 따까리 할까?”

“아, 아닙니다.”

김우진 상병이 어두워진 얼굴로 활동화를 신었다.

“새끼가 빠져 가지고······.”

솔직히 김우진 상병은 그동안 강상식 상병에게 잘 보여왔기 때문에, 자신도 저 두 상병처럼 집합에서 빠져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김우진 상병의 착각이었다.

강상식 상병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던지 김우진 상병을 불러 세웠다.

“야, 김우진.”

“상병 김우진.”

“너, 졸라 어이없다. 그래서? 네가 상병이면 어쩌라고? 어? 그렇다고 내 밑이 아니냐?”

강상식 상병이 김우진 상병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 내무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최용수 병장이 한마디 했다.

“야, 강상식.”

“상병 강상식.”

“내무실에서 그러지 마라니까. 소대장 아직 퇴근 안 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김우진 상병을 노려보며 말했다.

“잔말 말고 따라와, 새끼야!”

“······.”

“내가 오냐오냐해 주니까. 군기가 빠져 가지고. 어서 안 튀어가, 새끼들아!”

강상식의 호통에 김우진 상병을 선두로 후임병들이 후다닥 내무실을 뛰쳐나갔다.

9

1소대원들이 모인 곳은 부대 뒤편 구석진 곳에 위치한 창고 앞이었다. 이곳은 건물이 양옆으로 세워져 있어 간부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래서 1소대를 비롯해 다른 소대원들 역시 집합시키는 곳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빨리 빨리.”

1소대원들이 열중쉬어 자세로 일렬로 쭉 섰다. 그 앞에 강상식 상병이 짝다리를 짚고, 담배를 피우며 입을 열었다.

“경고하는데, 오늘 소대장과의 면담에서 함부로 주둥이 나불대지 마라. 내가 못 잡을 것 같지? 다 잡는다. 어디 쓰잘데기없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만 해봐. 너희 다 조져 버릴 테니까. 내가 누차 말했지. 나 밖에서 조직 생활했다고 말이야. 한 놈만 걸려봐. 잠잘 때 칼로 쑤셔 박아 버릴 테니까.”

강상식 상병이 허공에 칼을 찌르는 시늉까지 하며 협박을 했다.

“야, 손주영.”

“이, 이병 손주영.”

손주영 이병이 벌벌 떨며 관등성명을 댔다.

“네 입은 함부로 떠벌리라고 있는 주댕이가 아니야.”

“네, 그렇습니다.”

“함부로 떠들었다가 죽어, 너!”

“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말 안 나오게 잘하자.”

“네, 알겠습니다.”

강상식 상병이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입단속을 시키고 창고를 떠났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자세를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김 상병님 참으십시오.”

“야, 너희들은 화가 안 나냐? 억울하지도 않아?”

“그럼 어떻게 합니까. 계급이 깡패인데.”

“와, 진짜 내가 이러려고 군대 온 것이 아닌데. 그냥 확 들이박고, 딴 부대로 전출 가? 상병 달면 뭐해, 시발!”

그때 이해진 일병이 입을 열었다.

“이런 소리 하면 벌 받겠지만 전 희철이가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어디 좀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 짜증 나 죽겠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지 말입니다.”

한태수 일병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조영일 일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김 상병님.”

“왜?”

“저희 이러지 말고 그냥 확 일러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러다가 우리 다 뒤져!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야, 난 자신 없다.”

김우진 상병이 슬쩍 발을 뺐다. 하지만 조영일 일병은 뭔가 생각이 있는 듯 말을 했다.

“그게 아니라. 굳이 우리가 들이박을 필요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뭔 소리야?”

김우진 상병이 눈을 반짝였다. 다른 후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을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소대장?”

“네, 소대장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둘을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적당히 소스만 던져주면 알아서 잡히지 않겠습니까?”

김우진 상병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괜찮은 생각이었다.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한번 해봐?”

그런데 한태수 일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좀 반대입니다. 왠지 일을 더 키울 것 같습니다.”

“야, 한태수! 너 잘 생각해. 최용수 병장이야 제대가 얼마 안 남았다고 쳐. 최용수 병장 다음은 누구냐?”

“김대식 병장입니다.”

“김대식 병장 제대하면 누구 남냐?”

“강상식 상병입니다.”

“그래, 강 상병이 제대하려면 얼마나 남았는 줄 알아?”

“8개월 정도 남았지 말입니다.”

“그래, 맞아. 김대식 병장님이 제대하면 딱 병장을 달지. 그럼 너는 강 상병이 제대할 때까지 장장 8개월 동안 숨도 못 쉬어. 그러고 싶어?”

한태수 일병이 그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그건 싫지 말입니다. 정말 끔찍합니다.”

“그게 아니면 없는 병이라도 만들어서 의가사 제대하든가.”

한태수 일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그래, 진즉에 그리 나와야지. 자, 그럼 우리 모두 동의한 거다. 그럼 제대로 복수 한번 해보자.”

“네. 한번 해보지 말입니다.”

조영일 일병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10

개인 면담이 시작되고.

조영일 일병은 약속대로 오상진에게 먼저 털어놓았다.

“강상식 상병이 많이 괴롭힙니다.”

“소대장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괴롭힌다는 거야?”

“후우,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가 아는 거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해봐.”

“그러니까, 제가 기억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해진 일병입니다.”

“이해진 일병?”

“네. 이해진 일병이 이등병 때일 겁니다. 저도 막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이고 말입니다. 훈련을 마치고 행군복귀를 하는데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아니, 왜?”

“실은 말입니다. 행군 중에 강상식 상병이 이해진 일병의 물을 뺏어 먹어서 그렇습니다. 원래부터 강상식 상병은 자기 물을 두고 남의 것을 잘 뺏어 먹었습니다.”

“그랬어?”

“네. 그때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이해진 일병이 강상식 상병에게 찍힌 모양입니다. 그래서 강상식 상병이 행군 시작할 때 이해진 일병의 물을 다 마셔 버렸습니다. 날은 엄청 더웠지, 완전군장에 몸에서 열이 엄청 났습니다. 이해진 일병도 물을 마시지 못해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제 물을 나눠주려고 하는데 강상식 상병이 물 나눠주는 새끼는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는 바람에 아무도 물을 나눠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탈진으로 쓰러진 거네.”

“네. 그렇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이어리에 열심히 적었다.

“일단 알았어. 너의 면담은 여기까지 하고, 내무실 가서······ 구진모 일병 불러와.”

< 4장 호사다마(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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