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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7화 (27/1,018)

< 4장 호사다마(7) >

인생 리셋 오 소위! 026화

4장 호사다마(7)

“좋죠.”

한 대위가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넸다.

“감사합니다.”

한 대위가 자리에 앉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에 그 백혈병 걸린 장병 있었지 않습니까. 이름이······.”

“김희철입니다.”

“아, 김희철. 참 대단했습니다. 그때 오 소위가 김희철 얘기했을 때 정말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백혈병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는 정말 한 대위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에이, 덕은 제가 봤죠. 건너편 최 대위 있죠?”

“네.”

“그때 그일 이후로 위에서 된통 깨졌습니다.”

“아, 위에서 깨졌습니까?”

“네. 제대로 병세도 파악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약만 처방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까닥하다가 의무대 전체가 욕먹을 뻔한 일이지 않습니까. 다행히 오 소위 덕분에 김희철 부모님께서 좋게 넘어가 주셔서 망정이지, 이거 파고들어 갔으면 난리 났습니다. 군대에서 애 잡았다고.”

그러다가 힐끔 건너편 진료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저렇게 살고 있으니. 참 한심합니다.”

한 대위가 혀를 찼다. 오상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한 대위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오상진의 칭찬에 한 대위 머쓱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참, 한 대위님 전역 얼마 안 남으셨죠?”

“그러게 말입니다. 한 반년 남았나?”

한 대위가 책상 위의 달력을 확인했다.

“반년 남았습니다. 하아, 그러고 보니 세월 참 빠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어떻게 4년을 버티나 갑갑했는데 말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야, 반년이면 금방이겠습니다. 그럼 끝나시면 뭘 하실 예정입니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아버지가 병원을 물려받으라고 성화셔서, 아버지 밑에서 일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가업을 물려받으시는 겁니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개인 의원 차려보려 했더니 부모님께서 쓸데없이 고생하지 말라고 난리 치시는 통에······. 저도 뭐 남의 밑에서 일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그래도 아버님께서 하시는 병원이 꽤나 큰 거로 알고 있는데 대단하십니다.”

오상진이 자기도 모르게 장단을 맞춰줬다.

실제로 한 대위 집안에서 제법 큰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잘 않는 한 대위였기에 순간 미심쩍은 눈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제가 그 이야기도 했습니까?”

“그게······ 지난번에 술자리에서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아, 내 정신 좀 봐.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겨서 깜빡했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저는 최 대위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한 대위의 시선이 다시 최 대위의 진료실로 향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슬그머니 화제를 바꿨다.

“참, 제가 알기로는 요즘 한의원도 다이어트나 미용 쪽으로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쪽으로 파고들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한 대위가 깜짝 놀랐다.

“어? 오 소위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안 그래도 저도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솔직히 한의원 같은 경우는 큰 병을 고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1중대장을 통해 알게 된 한 대위는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의사랍시고 자존심만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명한 스타일이었지.’

그래서 오상진은 김희철의 일을 도와준 사례조로 미래의 트렌드에 대한 팁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한 대위가 받고 싶은 포상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오 소위······.”

“네?”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네, 물어보십시오.”

“김 중위님하고 사귄다는 거······ 사실입니까?”

한 대위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표정을 보니 김 중위에게 단단히 빠진 듯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아니, 그보다 얼마나 됐습니까? 오래 사귀었습니까?”

“솔직히 이런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지금 고민입니다.”

“어떤 것이 말입니까?”

“이게 사귀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습니다.”

오상진이 마치 연애사가 잘 풀리지 않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한 대위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말입니까?”

“지난번에 그 사건 있지 않습니까. 노래방에서 말입니다.”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제가 호감이 있어서 그런 건데······.”

오상진이 살짝 뜸을 들이자 한 대위가 재촉하듯이 재차 말했다.

“괜찮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그 일이 있은 후에 곧바로 소문이 났지 말입니다. 그래서 거의 등 떠밀며 사귄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 방금 제가 한 말은 한 대위님만 알고 계십시오.”

“아, 그렇게 된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한 대위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오래전부터 사귀던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낀 모양이었다.

오상진은 그런 한 대위의 희망을 더욱 키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나니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어떤 게 말입니까?”

“한 대위님도 아시다시피 김 중위는 상사고 연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 가끔 얼굴 보는 것도 눈치 보이고, 이래저래 어려움이 좀 많습니다. 김 중위님도 아직은 저를 그냥 동생쯤으로 여기는 것 같고. 그래서 저도 지금 사귀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더 좋은 남자가 김 중위님을 좋다고 하면 그냥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이런 말 하면 욕먹겠지만, 제가 그 정도로 김 중위님을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죠.”

한 대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오상진과 눈이 마주치자 괜히 딴소리를 해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오 소위 요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저 말입니까? 저야 건강합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손 한번 줘보십시오. 제가 맥 한번 잡아 드리겠습니다.”

“괜찮은데······.”

오상진은 마지못한 척 손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한 대위가 냉큼 오상진의 맥을 짚었다.

“으음······. 우리 오 소위 엄청 건강합니다. 맥 뛰는 것이, 어이구야, 야생마가 따로 없습니다.”

한 대위가 말하며 씨익 웃었다.

오상진도 따라서 웃어 주었다.

7

의무대 진료를 마치고 오상진은 구진모 일병과 함께 부대에 복귀했다.

“조심히 움직여. 군의관님도 말씀하셨지만 당분간은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훈련에서도 빠지는 게 좋겠다. 그래야 빨리 낫지.”

“그렇긴 합니다만······.”

구진모 일병이 말끝을 흐렸다. 오상진의 걱정은 고마웠지만 솔직히 아프다는 핑계로 열외를 자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반깁스를 한 상태로 나타나면 당장 최용수 병장부터 눈치를 줄 것이 분명했다.

“일단 가자. 내가 내무실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아닙니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인마, 나도 내무실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거야. 가자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구진모 일병을 데리고 내무실로 갔다. 그때 1소대원들이 하나둘 오후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고 있었다. 선두에 김대진 병장이 보였다.

“김대진.”

“병장 김대진.”

“훈련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별다른 사고는 없었고?”

“네, 없었습니다.”

“고생했다. 아, 그리고 구 일병 말이야. 반깁스를 했다. 아무래도 활동하기 불편할 테니까. 네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최용수 병장이 아닌 부분대장 김대식 병장에게 구창모 일병을 맡겼다. 뒤늦게 복귀한 최용수 병장은 그 모습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구기며 내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최용수 병장의 뒤통수를 향해 오상진이 선전포고하듯 말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오늘부터 소대장의 개인 면담이 있을 예정이다. 저녁 먹은 다음부터 시작할 예정이니까 호명하는 인원은 바로 올 수 있도록. 알겠나.”

“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내무실을 나왔다. 그 길로 행정반에 들어서자 4소대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 다녀오셨습니까?”

“네. 그런데 2소대장하고, 3소대장은 아직 안 왔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습니다.”

4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오상진도 살짝 인상을 구기며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1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4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4장 호사다마(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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