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호사다마(6) >
인생 리셋 오 소위! 025화
4장 호사다마(6)
“어디 보자.”
오상진이 구진모 일병의 발을 잡고 확인을 했다. 약간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 상태로 그냥 뒀다가 더 붓겠다. 안 그래도 오늘 의무대 갈 예정이었는데 소대장이랑 같이 가자.”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야, 인마. 이런 거 그냥 두면 나중에 큰 병이 될 수 있어. 평생 발목 병신으로 살래?”
“아닙니다.”
“아니긴······. 잔말 말고 지금 바로 준비해서 행정반으로 와.”
“괘, 괜찮습니다.”
구진모 일병은 또다시 주위 상병 병장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오상진은 이런 내무실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구진모.”
“일병 구진모.”
“너 지금 어디 보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이따가 행정반으로 와. 알겠나?”
“아······.”
구진모 일병이 쉽게 말하지 못했다. 오상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김대식 병장이 바로 나섰다.
“제가 준비시켜서 행정반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김 병장이 책임지고 얘 보내라.”
“네.”
그리고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대원들을 보았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잊어버리고 말 안 한 것이 있는데. 오늘부터 개인 면담이 있을 예정이다. 내가 부르면 즉각 달려올 수 있도록.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개인 면담을 한다고 하니 최용수 병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상진이 일그러진 최용수 병장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최용수.”
“병장 최용수.”
“너 표정이 왜 그래? 뭐 불만 있냐?”
“아닙니다.”
“그런데 왜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시, 시정하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부르면 애들 즉각 보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최용수 병장은 대답을 하면서도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강상식 상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다 이거지? 어휴. 진짜 이것들은 어떻게 해야 사람이 될까?’
오상진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두 녀석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그때 김대식 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최용수 병장이나 강상식 상병과 달리 부분대장인 김대식 병장은 여러모로 모범이 되는 병사였다.
“대식아.”
“병장 김대식.”
“지금처럼만 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오상진이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주며 내무실을 나갔다. 동시에 최용수 병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무반 분위기가 가라앉자 강상식 상병이 괜히 이해진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해진!”
“일병 이해진!”
“야, 새끼야, 뭐 하고 있어. 어서 열쇠 안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일병이 후다닥 내무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괜히 밑에 있는 애들을 닦달했다.
“빨리빨리 움직이란 말이야. 굼벵이도 아니고······. 어서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6.
행정반으로 돌아온 오상진은 다다음 주에 있을 시가전 모의 훈련에 대한 작전을 생각했다. 지도를 펼쳐서 어떤 것이 좋을지 생각에 잠겼다. 그때 행정반 문을 두드리며 구진모 일병이 들어왔다.
“충성, 일병 구진모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왔어?”
“네.”
“가자.”
오상진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를 덮고, 전투모를 챙겼다.
“저 의무대에 다녀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십시오.”
4소대장이 바로 답했다.
“훈련은 이 하사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네.”
오상진이 대답을 하고는 구진모 일병을 보았다.
“발목은 어때? 걸을 수 있어?”
“그게······ 조금 불편합니다.”
“알았어. 주차장에 올라가 있어.”
“네.”
구진모 일병을 위해 오상진은 중대장실로 가서 차 키를 빌려왔다.
의무대까지는 차로 약 5분 거리였다.
“가자. 부축 안 해줘도 되지?”
“네. 걸을 수 있습니다.”
의무대 앞에 차를 대고 오상진은 앞장서서 의무대 안으로 들어갔다.
“한 대위님 계시지?”
“네, 계십니다. 그런데 지금······.”
“왜? 누구 있어?”
“그게······.”
군의병이 말끝을 흐리자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진료실 안에서 여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그렇습니까? 어머나, 전 몰랐습니다.”
“이제 아시면 되는 겁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한 목소리인데······.”
잠시 고심하던 오상진이 노크를 하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상황을 봐서 여의치 않으면 내일 다시 올 생각이었다.
그런 오상진의 눈으로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김 중위님이잖아?’
놀랍게도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김소희 중위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어? 오 소위.”
뒤늦게 오상진을 발견한 한 대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소희 중위도 덩달아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오상진은 괜히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제가 좀 있다가 들어오겠습니다.”
그러자 김소희 중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나 진료 다 끝났어.”
그리고 한 대위를 향해 경례를 했다.
“충성, 진료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언제든지 불편하시면 찾아오십시오.”
“네.”
김소희 중위가 몸을 돌려 오상진을 스치며 지나갔다.
“속이 좀 불편해서 진료받으러 온 거야.”
“네, 알겠습니다. 지금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럼 먼저 가 볼게.”
“네.”
김소위 중위가 진료실을 나가자 오상진이 히죽 웃으며 한 대위에게 다가갔다.
한 대위는 몰래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왔습니까?”
오상진이 한 대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뭡니까, 두 사람? 밖에까지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대위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오상진은 괜히 장난을 치고 싶었다. 왜냐하면 현재 김소희 중위는 대외적으로 자신의 여자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오상진의 장난에 한 대위가 흠칫 놀랐다.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냥 속이 불편하다고 해서 침을 놔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당황하고 그러십니까?”
“제, 제가 언제 당황하고 그랬다고······.”
“이해합니다. 한 대위님은 군의관이신데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그렇죠. 제가 군의관이죠. 하하핫.”
오상진은 어쩔 줄을 몰라하는 한 대위의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오상진에게 현장(?)을 들킨 한 대위는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어디 몸이 불편합니까?”
“제가 아니라 저 녀석이 좀 안 좋습니다.”
오상진은 자신을 따라온 구진모 일병을 가리켰다.
“이 친구가 훈련 중 발목을 삐끗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너 이리 와봐. 좀 보자.”
“네.”
구진모 일병이 한 대위 앞으로 쩔뚝거리면서 갔다. 그리고 구진모 일병의 발목 상태를 확인했다.
“어이구, 제법 부었네. 피 좀 빼고, 붓기 가라앉는 침 좀 놔줄게. 저쪽 침상에 가서 누워.”
“네, 알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침상으로 가서 누웠다. 한 대위가 구진모 일병의 발목에 침을 놓아 주며 말했다.
“어떻게 하다가 다쳤어?”
“오전에 훈련하다가 다쳤습니다.”
“조심하지. 많이 아팠겠네.”
“괜찮습니다.”
구진모 일병은 한 대위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오상진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발목이 이 정도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하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살펴봤을 때보다 붓기가 더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한 대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려면 국군 병원에 가야 합니다. 우리 군에 있는 엑스레이 기기는 작동 안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고치지 않는 겁니까?”
“매번 올리죠. 그런데 예산 부족으로 잘 안 해줍니다. 맨날 다음에, 다음에만 되풀이되는 거죠.”
한 대위가 푸념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구진모 일병을 보며 말했다.
“쯧쯧, 너도 조심해야지. 군대에서 다치면 너만 억울해. 그 누구 하나 보살펴 주지도 않는데.”
“네.”
“몸 관리 잘하고, 언제든지 불편하면······.”
힐끔 오상진을 보고는 말했다.
“너희 소대장에게 말해서 내려와. 내가 안 아프게 침이나 뜸이라도 놔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 말에 구진모 일병은 더욱 울컥했다. 한 대위가 침을 다 놓은 후 말했다.
“자, 이렇게 10분만 있자.”
“네. 감사합니다.”
한 대위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침을 놨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다만, 반깁스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한 대위가 대기하고 있던 군의병에게 말했다.
“최 일병.”
“일병 최대치.”
“반깁스 좀 준비해 줘.”
“네, 알겠습니다.”
군의병이 움직이고, 한 대위가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준비되는 동안 차나 한잔하겠습니까?”
< 4장 호사다마(6) > 끝
ⓒ 세상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