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회귀의 맛(2) >
인생 리셋 오 소위! 017화
3장 회귀의 맛(2)
한편, 오상진은 행정반을 나와 저녁도 먹지 않고 곧장 자신의 관사로 향했다.
관사로 들어온 오상진은 곧바로 책상에 앉았다.
“좋았어.”
책상 위에는 김철환 1중대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중고 노트북이 있었다. 혼자 관사에 있으면 적적할 것이라면 준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연식이 오래된 노트북이었다.
위이이잉-
전원 스위치를 누르자 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부팅이 시작되었다. 오상진은 뭔가 초조한지 손가락을 탁탁 쳤다.
“아, 왜 이렇게 느려. 노트북을 바꿔야 하나?”
오상진은 느린 부팅 속도에 살짝 짜증이 났다.
“속도가 기가로 나오는 시대에 살다가 거꾸로 오니까, 영 불편하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노트북 화면에 윈도우 창이 떴다.
“됐다!”
오상진의 기쁨과도 잠시 화면에는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이상한 팝업창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어어, 이게 뭐야?”
오상진은 당황하며 팝업창들을 빠르게 끄기 시작했다.
“아, 짜증 나! 도대체 중대장님은 이 노트북으로 뭘 한 거야!”
오상진이 잔뜩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마우스로 빠르게 창을 닫던 중 어느 순간 노트북 자체가 멈춰 버렸다.
“어? 왜 이래? 왜 멈춰 버려!”
오상진이 이리저리 타자를 쳐보고, 마우스를 움직여 봐도 이미 멈춰 버린 노트북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씨발! 진짜 노트북을 새로 사든가 해야지······.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달 월급 나오면 꼭 새 노트북 사고 만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전원 버튼 눌렀다가 재부팅을 시켰다.
“자, 이번에는 안 멈추게 천천히······.”
오상진은 인내심을 가지며 팝업 창을 천천히 없앴다. 다행히 이번에는 노트북이 먹통이 되지 않았다.
“제기랄, 또 멈추는 줄 알았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상진은 익스플로러를 실행시켰다.
그리고 검색창에 ‘로또’를 쳐 보았다.
딸깍.
순간 로또에 관한 뉴스가 한가득 올라왔다.
“으음······.”
오상진이 낮은 신음과 함께 로또에 관한 뉴스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온라인 복권 ‘로또’ 출시 눈앞에]
-한국은행이 내달 2일부터 온라인 복권인 ‘로또(Lotto)’를 발행한다.
로또는 주택복권, 또또복권 등을 발행하던 7개 정부부처가 발행하는 통합 온라인 복권으로 추첨식과 달리 일반 소비자가 원하는 번호를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다.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해당 당첨금은 다음 회차로 이월돼 당첨금이 누적되며······.
“진짜였네. 진짜 로또가 있었어.”
오상진이 길게 입가를 찢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시대에 온 건가?”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상진은 과거로 회귀하기 전 로또가 첫 출시 되던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야, 그때는 진짜 모든 군인이 한 방의 꿈을 안고 로또를 매주 샀는데. 또 하나의 목표가 생긴 거지.”
군인들 대부분의 목표는 진급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군인 연금이었다.
군인 연금은 20년 이상 복부를 하고 퇴역을 하면 매달 퇴역 연금이라는 것이 나온다. 그것으로 군인들은 편안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인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몇십 년을 고생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로또가 처음 나왔을 당시, 대부분의 군인들이 복권으로 눈을 돌렸다. 누군가 몇십억에 당첨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욱 기를 썼다.
“그때는 정말 환장했지.”
물론 그렇지 않은 군인들도 있었지만, IMF가 터진 이후 20대 젊은 청년들이 직업 군인으로 몰리면서 성실하게 군 복무를 하는 게 미덕이던 풍습이 바뀌었다.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마지못해 군대에 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로또나 복권 같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군 생활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진짜 로또만 당첨되면 옷 벗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었는데······.”
오상진 역시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월요일 날 로또를 사서 품에 넣고 다니면 그 일주일 동안은 행복한 꿈을 꿨다.
“로또에 당첨되면 뭘 하지? 멋진 스포츠카를 살까? 그리고 집도 사고······. 해외여행도 좋고······.”
로또에 당첨된 듯 황홀한 단꿈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당첨이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월요일 날 또 로또를 사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물론 로또 당첨을 남의 일처럼 느꼈다면 오상진도 이토록 집착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친하지 않던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1회차 때 운 좋게 2등에 당첨이 되면서 오상진의 허영심에 불을 지폈다.
“그 자식. 연락 없다가 로또에 당첨되고 자랑질을 엄청 했지.”
집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로또 당첨금으로 유명한 치킨 프랜차이즈 지점을 냈다는 동창은 꼭 한 번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상진도 부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동창을 찾아갔었다.
“야, 어떻게 된 거냐? 몇 등에 당첨됐어?”
“2등! 그래도 몇천만 원이더라.”
“그걸로 가게를 바로 연 거야?”
“집에서 좀 보태줬지. 은행 대출도 끼고. 그래도 한 푼도 없이 시작하는 사람들보단 번듯하지 않냐?”
“그래. 아무튼 축하한다.”
“너도 인마 군복 벗고 장사나 해. 솔직히 군인 월급 얼마 안 하잖아. 안 그래?”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런 소리 마라.”
“만족은 개뿔. 그런 놈이 오자마자 몇 등 당첨됐는지부터 물어보냐?”
“그건 그냥······.”
“야, 야. 사람은 다 똑같아.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이라고. 그러니까 아닌 척 좀 하지 마. 너 그러는 거 예전부터 얼마나 재수 없었는 줄 알아?”
“······.”
그땐 동창 녀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엄청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죄 없는 치킨을 물어뜯고 있는데 동창이 미안했던지 한마디를 건넸다.
“야, 상진아.”
“왜?”
“로또가 어떻게 당첨되는 줄 알아?”
“······?”
“나도 어렵게 전해 들은 정보인데 로또 번호는 말이야.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짜고 치는 고스톱?”
“그래. 이게 알게 모르게 조작을 해서 번호를 찍거든. 그러다 보면 언제고 당첨된 번호가 또 당첨되게 되어 있어.”
“그게 정말이야?”
“나 로또 당첨된 사람이야. 내 말 못 믿어?”
오상진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오상진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그리고 친구가 한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부터 나오는 로또 번호를 다 기억해 놔.”
“전부 다?”
“전부는 아니고······ 그래, 10회차까지. 어차피 로또 한 번에 2천 원이고 10번이면 2만 원 아냐. 일주일에 2만 원이면 큰돈도 아니고.”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 번호로 매주 사는 거지. 그럼 1년 안에 무조건 당첨이 될 거야.”
“1년?”
“그래. 대신 당첨되면 달란 소리는 안 할 테니까 나한테 크게 한턱내라. 쌩까지 말고.”
“그야 물론이지.”
그때 오상진은 동창의 말에 속아 1회 차부터 10회 차까지의 로또 번호를 달달 외웠다. 그리고 장장 1년 똑같은 번호만 주구장창 샀다.
하지만 동창이 말했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4등.
고작 4등짜리 한 번 당첨된 게 전부였다.
로또에 빠져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대에서도 근무 태만으로 이어졌다. 결국 얼마 전 전출 간 대대장은 1중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출 명령을 내렸고, 오상진은 팔자에도 없는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됐다.
“하아, 진짜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다지만 그 당시 강원도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깊은 산골이다 보니 주변에 가게는커녕 주택 하나 보이지 않았다. 로또를 사려고 해도 2시간이나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부대에서도 소문이 났던지 외출하려 들면 다들 로또를 사러 가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해서 끊었던 로또인데······. 허허.”
오상진이 실실 웃었다.
“그 자식 말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오상진은 냉큼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했던 로또 1회차 당첨번호부터 적기 시작했다.
“자, 가만 생각해 보자. 1회차 때 당첨번호가 뭐였더라?”
오상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쥐어 짜냈다.
“그러니까, 10, 29, 33, 37, 40은 맞는데 하나가 15였던가 아니면 16번이었던가? 보너스 번호는 7번이 확실한데······.”
오상진은 노트에 여러 개의 숫자를 적어 내려가며 거듭 생각했다. 그러다가 뭔가 번뜩였다.
“이런 멍청이. 뭘 고민하고 그래. 두 개 다 사면 될 것을······. 크크, 맞아. 이게 로또의 장점이지.”
오상진은 히죽 웃으며 그 뒤로 10회차까지의 숫자를 쭉 써서 내려갔다. 다 적고 난 후 오상진은 뿌듯한 얼굴로 번호를 바라봤다.
“와, 내가 얼마나 달달 외웠으면 십몇 년이 지났는데 바로바로 생각이 나냐.”
오상진은 씨익 웃으며 로또 번호를 다시금 확인을 했다.
그리고 수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오상진은 두 손을 아주 공손히 모았다. 그러곤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 3장 회귀의 맛(2)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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