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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7화 (17/1,018)

< 3장 회귀의 맛(1) >

인생 리셋 오 소위! 016화

3장 회귀의 맛(1)

1.

오상진은 김소희 중위와 헤어지고 행정반으로 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업무를 빠르게 정리했다.

그런 와중에 힐끔힐끔 벽에 걸린 시계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 모습을 2소대장이 지켜봤다.

“1소대장.”

“네?”

“무슨 급한 일 있어?”

“아뇨, 없습니다.”

“그런데 자네 행정반에 온 후로 계속해서 시계만 쳐다보고 있잖아.”

순간 오상진이 살짝 인상을 썼다.

‘저 사람은 일도 안 하고 나만 쳐다보고 있나.’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 제가 그랬습니까?”

“뭔데? 뭔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습니다.”

오상진은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여 업무를 봤다. 2소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니, 급한 일이 있으면 말해. 우리 다 같은 소대장들 아니야. 서로 돕고 그러는 거지. 여긴 남은 소대장들끼리 마무리 지을 테니까. 먼저 퇴근해.”

하지만 오상진은 그렇지 않았다.

“아닙니다, 급한 일 없습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히 책 잡힐 일 있어?”

오상진은 솔직히 2소대장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또 이걸로 얼마 동안 생색을 낼지 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신을 뭘 믿고······.’

그렇지만 2소대장은 오상진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에이, 급한 일이 없기는. 계속해서 시계만 쳐다봤으면서 그래. 그러지 말고 퇴근해. 자꾸 힐끔거리니까 내가 다 신경 쓰이잖아.”

“아, 그랬습니까? 조심하겠습니다.”

“크흠······. 고집은.”

2소대장은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자신의 일을 봤다. 오상진 역시 최대한 시계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억지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행정반에 있던 모든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며 최용수 병장이 나타나자 각자 할 일을 다시 시작했다.

“충성, 병장 최용수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최용수 병장이 곧장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어? 무슨 일이야?”

“지시 내리신 것 가져왔습니다.”

최용수 병장은 손에 들린 수첩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되는 겁니까?”

“어디 한번 보자.”

오상진은 최용수 병장이 가져온 수첩을 들어 확인했다. 그곳에는 뭔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본래 이 시기에는 별도의 일지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용수 병장이 분대장으로서 소대원들을 너무 방관하는 것 같아 일부러 일지를 쓰라고 지시했었다.

‘그런데······ 이건 뭐 완전 하루 일과표네.’

오상진은 수첩 속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부터 시작해 오전 몇 시에는 무엇을 했고, 또 몇 시에는 뭘 했으며, 화장실 간 시간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적으라고는 안 했는데······.”

“네?”

최용수 병장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리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다음 페이지도 똑같았다.

그렇게 4번째 페이지까지 확인을 하던 오상진이 인상을 썼다.

‘어? 가만······.’

오상진은 방금 보고 있던 수첩의 뒷장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뭔가를 비교하듯 앞장과 뒷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 모습을 보는 최용수 병장의 손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서, 설마 들켰나?’

사실 일지는 최용수 병장이 직접 쓴 게 아니었다. 일일이 쓰고 있기 귀찮아 밑의 애들에게 적으라고 시켰던 것이다.

오상진은 잔뜩 인상을 쓰며 수첩의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뒷장을 확인하는 것을 반복했다.

‘어라, 이 자식 봐라.’

오상진이 힐끔 최용수 병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최용수 병장이 제 발 저리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잘못 적었습니까?”

“아니다. 나중에 확인할 테니까. 넌 가 봐.”

“네, 알겠습니다.”

최용수 병장이 경례를 한 후 행정반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고 살짝 당혹스런 얼굴이 되었다.

“와, 들켰나? 들킨 것 같은데······.”

최용수 병장이 행정반 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 씨, 몰라. 들켰으면 아까 뭐라고 했겠지.”

그러곤 1소대 내무실로 갔다. 문을 벌컥 열며 자신의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치 빠른 강상식 상병이 다가왔다.

“최 병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몰라, 눈치 깐 것 같아.”

“눈치를 까다니 뭘 말입니까?”

“내가 안 적고 너희들한테 시킨 거 말이야.”

“에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필체 비슷하게 쓰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말입니다. 너희들도 그랬지?”

“네, 그렇습니다.”

“거 보십시오.”

“그런데 날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어.”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뭔가 액션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정말 모르고 넘어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상식 상병의 말에 최용수 병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까? 그렇겠지?”

“네, 게다가 꼼꼼하게 일일이 확인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네.”

최용수 병장은 스스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한편, 오상진은 최용수 병장이 가져온 수첩을 일일이 넘겨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놔, 최 병장. 잔머리 쓴 것 좀 봐.”

오상진은 수첩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잔꾀를 굴린 최용수 병장의 행동이 웃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웃긴 건 수첩의 내용이었다.

“이 녀석들 꼼꼼히도 적었네. 이렇게까지 자세히 적으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무슨 똥 싼 시간까지 적고 난리야.”

오상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최용수 병장에 한숨이 나왔다.

“최 병장이 애들 관리를 너무 하지 않으니까. 확인 차원에서 적으라고 한 것인데. 게다가 상병들의 후임병 갈굼도 도를 넘어섰고 말이야. 그 과정에서 최 병장이 뭔가를 느끼고 컨트롤해 주길 기대했는데······. 내 욕심이 과했나 보네.”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금 시계를 확인했다. 잠깐이지만 10여 분이 흘러 있었다.

‘아직도 퇴근하려면 5분 남았네. 좀 일찍 퇴근해도 되려나?’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쭉 훑다가 2소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미치겠네, 2소대장은 왜 자꾸 날 쳐다보고 있지? 설마 날 감시하나? 내가 더러워서 5분 채우고 만다.’

그러면서 남은 5분 동안은 대충 책상을 정리하는 척했다.

그렇게 18시 정각이 되었을 때 2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1소대장, 그렇게 기다리던 18시인데 퇴근 안 해?”

그 말에 오상진은 떼었던 엉덩이를 도로 의자에 붙이며 괜히 일하는 척을 했다.

“이것만 마무리 짓고 가겠습니다.”

“그러시든지.”

그리고 다시 5분 후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인사를 한 후 곧바로 행정반을 나섰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3소대장과 마주쳤다.

“어? 벌써 퇴근합니까?”

“네. 그럼 전 이만······.”

“네, 들어가십시오.”

“네.”

오상진과 3소대장이 인사를 나눈 후 서로 지나쳤다. 3소대장이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오며 2소대장에게 물었다.

“1소대장 어딜 저렇게 바삐 갑니까?”

“몰라.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나 보지.”

“아, 김 중위님과 사귄다더니······. 그 소문이 진짜였나 봅니다.”

“김 중위님도 그래! 내가 밥 한 끼 하자고 할 때는 그 정색을 하더니 저런 애를 뭔 생각으로 만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2소대장님 아무리 그래도 저런 애라는 단어는 좀 그렇습니다.”

그 순간 2소대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가 왜? 오상진이보다 내가 한 살 많은데······. 아니면 너도 내가 3사 출신이라 무시하는 거냐?”

“아니, 무슨 소리십니까. 제가 언제 2소대장님을 무시했습니까. 따지고 보면 저도 3사 출신 아닙니까.”

“그런데 왜 넌 저놈 편을 들어?”

“제가 또 언제 오 소위님 편을 들었습니까. 그냥 같은 소대장이고, 또 지킬 건 지키자는 의도에서······.”

“야, 닥쳐!”

2소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3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너 방금 내 앞에서 오 소위 ‘님’이라고 했냐?”

“아, 또 왜 그러십니까.”

“너 은근히 기분 나쁘다. 지금 어서, 오 소위라고 해. 아니, 상진이 그놈이라고 해.”

3소대장이 난처해하며 말했다.

“진짜······.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야, 새끼야. 해보라고. 괜찮으니까. 그 녀석도 없잖아.”

2소대장의 닦달에 3소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2소대장 말대로 하지 않으면 이걸로 며칠 동안 꽁해 있을 게 뻔했다. 3소대장은 결국 마지못해 말했다.

“상진이 그놈 말입니까?”

“그래, 그렇게 얘기하니까 얼마 좋아.”

2소대장은 매우 흡족했는지 낄낄 웃었다. 3소대장은 못 말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3장 회귀의 맛(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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