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새 대대장 받아라!(7) >
인생 리셋 오 소위! 015화
2장 새 대대장 받아라!(7)
“너희들, 우리 최 병장님 심기가 별로 좋지 않으니까. 알아서들 조심하자.”
“네, 알겠습니다.”
같은 시각 오상진도 저녁을 먹고 부대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아직 부대에서 마무리 지을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같은 부대의 부사관들을 만났다.
“식사했습니까?”
오상진이 먼저 살갑게 물었다. 그러자 부사관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갈매기 하나인 하사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미소를 띠며 물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에이, 소문 다 들었습니다. 김 중위님하고 사귄다는 소문 말입니다.”
“네?”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시치미 떼신다. 우리한테까지 숨기고 그러십니까? 너무합니다.”
오상진은 너무 황당한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그때 저 멀리서 김소희 중위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오상진은 살짝 날카로운 얼굴이 되었다. 부사관들은 김소희 중위를 발견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그러면서 후다닥 사라졌다. 오상진 앞으로 김소희 중위가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매서웠다.
“한 가지만 물을게.”
“네, 말씀하십시오.”
“오 소위가 소문을 냈어?”
김소희 중위의 말투에서 약간 화가 난 느낌이 들었다. 오상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확실해?”
“저 그런 남자 아닙니다. 물론 김 중위님 예쁘시고 호감 가는 얼굴이지만 저 그렇게 치졸한 인간 아닙니다.”
김 중위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럼 어제 날 왜 도와줬지?”
오상진이 갑자기 검지를 뻗어 김소희 중위의 입을 막았다.
“쉿! 어제 일은 무조건 제가 잘못한 겁니다. 말 잘못 나가면 저 옷 벗어야 합니다.”
그러자 김소희 중위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몰래 숨어서 훔쳐보고 있던 조금 전 그 부사관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 저 봐! 진짜인 것 같은데?”
“와, 시발. 대박이네.”
반대편에서 지나가던 병사들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와, 대박이지 않습니까?”
다른 중대의 김 일병이 놀란 눈으로 대답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조금 있으면 서로 포옹까지 하겠네! 아니면 키스하려고 저러나?”
“야, 새끼야. 저기서 뭔 키스야. 우리 김 중위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야.”
“에이, 이 상병님 지금 딱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저 두 사람 모습을 보십시오.”
“저 모습이 어때서. 아직 확실치도 않는데.”
“이미 끝났습니다. 딱 봐도 이미 갈 데까지 간 겁니다.”
“뭐? 갈 데까지 가?”
“네.”
“닥쳐!”
그들의 중얼거림을 들었을까? 김소희 중위가 주위를 살피더니 입을 뗐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잠시 자리를 옮기자.”
“네.”
두 사람은 조용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이 사라지자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뭐지? 둘이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긴 어디겠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뻔하긴 뭐가 뻔해?”
“에이, 다 큰 성인 남녀가 갈 만한 곳이 어디겠습니까?”
“야, 시발! 조용히 안 해? 우리 김 중위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야. 너 죽을래?”
이 상병이 김 일병의 머리에 헤드락을 걸며 소리쳤다. 김 일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켁켁, 아, 알겠습니다. 절대 그럴 분 아닙니다. 이거 좀 놔 주십시오.”
“시끄러워, 새꺄! 감히 우리 김 중위님을······.”
이런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오상진과 김소희 중위는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마주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오상진이었다.
“어쨌든 이런 소문이 나서 죄송합니다.”
“······.”
김소희는 말이 없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소문을 수습해야 하지 않습니까. 김 중위님께서 나서기 좀 그러시면 제가 아니라고 해명하겠습니다.”
김소희 중위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오상진과 사귄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김소희 중위 입장에서는 딱히 나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대대장까지 집적거리는 상황에서 오상진이 남자 친구 행세를 해준다면 군 생활 하기가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걱정은, 오상진도 자신이 좋다고 치근거릴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오 소위,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나 사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순간 오상진이 생각을 했다.
‘이 타이밍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살짝 치미는 배신감 너머로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오상진은 김소희 중위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김소희 중위는 오상진의 눈길에 순간 움찔했다.
“이, 이봐. 오 소위, 왜 그렇게 쳐다보나.”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오상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2년 후쯤이었지? 김 중위가 갑자기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었는데. 나중에 들린 소문에는 군의관이었던 박 대위와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파혼을 당했다는 얘기였는데······. 설마 지금 김 중위가 군의관이랑 만나나?’
그러면서 군의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맞아. 그 군의관. 얼굴만 번지르르해서는 바람기가 다분해 보이던데······. 그리고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한다고 했나? 그것 때문에 잘난 척도 엄청났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 녀석과······. 아이고, 어쩌다가 그런 자식이랑······. 우리 김 중위도 불쌍한 인생이었네.’
오상진이 안쓰럽게 김소희 중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김소희 중위는 자신을 또 바라보는 오상진의 눈빛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해, 우리 오 소위 많이 실망했나 보네. 그래도 우린 안 되는 거야.’
김소희 중위는 오상진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오 소위의 그런 마음 이해해.”
“네? 무슨······.”
“아무튼, 내 사정도 좀 이해해 줘.”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아니라고 부인하면 되는 겁니까?”
오상진이 다시 물어보자 김소희 중위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지 말고 너만 괜찮다면 그냥 이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대로 넘어가자는 말씀은 그냥 이대로 소문이 잠잠해지길 기다리자는 말씀입니까?”
“그래, 맞아. 솔직히 나에게 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골치 아프던 차였어. 아니, 그러지 말고 날 좀 도와주면 어때?”
“뭘 말입니까?”
“그냥 소문도 났고, 당분간 내 남자 친구 역할 좀 해줘.”
“김 중위님 남자 친구 역할 말입니까? 그러다가 진짜로 김 중위님께서 제가 좋아져 버리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오상진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김소희 중위가 피식 웃었다.
“훗, 절대 그런 일은 없어. 아까도 말했잖아.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아, 그 군의관 말입니까?’
오상진이 짓궂게 웃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자살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오 소위. 미안한데 난······.”
“에이, 농담입니다.”
“그래?”
김소희 중위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해줄 거야. 말 거야?”
“뭐, 해드리겠습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말입니다.”
말 그대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기 때문에 못 들어줄 건 없었다. 다만 오상진는 김소희 중위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박 대위라는 게 맘에 걸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군의관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도 동네 작은 개인 병원이었다.
오상진은 그들의 미래를 알기 때문에 김소희 중위가 안타깝긴 했지만 남녀 관계에 자신이 관련할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김소희 중위가 왜 의사에게 집착을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김 중위님께서는 저에게 뭘 해주실 겁니까?”
“뭘 해주다니?”
“가짜 남자 친구 노릇도 하는데 밥값이라도 주십시오.”
“밥값? 잠깐만.”
김소희 중위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불쑥 내밀었다.
“자, 이거 받아.”
“이게 뭡니까?”
“아, 이거 로또라는 건데······.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복권이야. 요즘 이거 엄청 핫하잖아. 어제 네가 날 도와준 것도 있고 해서······. 그런데 너 이거 무시하지 마. 나 이거 하나 사려고 1시간 동안 줄 서서 어렵게 구입한 거야. 물론 번호는 내 맘대로 한 거지만.”
‘로또!’
오상진의 눈이 확 커졌다.
‘로또라니. 지금 이 시대가 로또였던가?’
오상진이 김소희 중위를 보며 황급히 물었다.
“김 중위님 혹시 이 로또 몇 회차입니까?”
“방금 말했잖아.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거라고.”
‘가만히 있어 봐. 지금 처음 로또가 시작되는 거야?’
오상진은 눈이 번쩍 뜨이며 갑자기 흥분이 되었다.
‘그래. 괜히 이 때로 넘어왔을 리가 없지.’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김소희 중위가 말했다.
“왜 웃지?”
“제 취향을 딱 맞춰서 그렇습니다. 제가 복권을 엄청 좋아하지 말입니다.”
그러자 김소희 중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다행이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만약에 당첨되면 당첨금은 다 제 것입니다.”
오상진은 아예 못을 박았다. 김소희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당첨될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 어차피 내 손을 떠난 복권이니까. 뭐, 당첨되면 좋은 거고.”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십시오.”
김소희 중위도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어쨌거나 잘 부탁해.”
김소희 중위가 악수를 청했다. 오상진이 그 손을 바라보며 마주 잡았다.
“네.”
그리고 오상진은 김소희 중위가 큰 것을 알려준 것에 대해 고마웠다.
‘그럼 나도 살짝 팁을 알려 줄까?’
오상진이 생각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저기 김 중위님.”
“응?”
“요즘은 한의사가 일반 의사들보다 돈을 훨씬 잘 번다고 합니다.”
“그, 그래? 그런데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하지?”
“아니, 그냥 그렇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김소희 중위는 멀어지는 오상진의 등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뭐야. 저 녀석······.”
< 2장 새 대대장 받아라!(7)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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