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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화 (9/1,018)

< 1장 소대장님 뭐 하십니까?(8) >

인생 리셋 오 소위! 008화

1장 소대장님 뭐 하십니까?(8)

“왜 인마?”

“오늘 형 좀 이상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넌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엄마나 도와드려.”

오상진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오정진은 그런 오상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상해졌나?”

화장실 거울을 보며 오상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긴 내가 과거에는 좀 쌀쌀맞긴 했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예전엔 좀 이기적으로 살았다.

가족들과 딱히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고 애정 표현을 쉽게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오랜만에 본 아들인데.”

오상진이 살짝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사실 오상진의 집안은 어머니, 오상진,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넷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오상진이 10살 때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때 이후로 어머니는 홀로 세 자녀를 키우셔야 했다.

사모님 소리를 듣고 지내셨던 어머니가 홀로 돈을 벌기 위해 하신 일은 식당 일이었다.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음식 서빙까지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키웠는데······. 그나저나 화장실이 왜 이렇게 습해?”

오상진이 잔뜩 인상을 쓰며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구석구석 지워지지 않은 곰팡이 자국들이 수두룩했다. 하물며 세면대 수도꼭지를 돌렸는데 삐걱삐걱 소리까지 났다.

“아, 화장실이 정말 낡았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들 살았지?”

오상진은 잠시 고장 난 수도꼭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나도 참 무심했네.”

오상진이 고개를 들어 앞의 거울을 보았다.

“야, 오상진! 너 도대체 뭐 하고 살았냐.”

오상진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허름한 빌라로 이사 온 이후로 오상진에게 집은 그냥 잠을 자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가족들이 어찌 지내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너무 이기적이었어······.”

물론 오상진도 장남으로서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국대학교에 들어갈 만한 성적은 유지했지만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한 것도 등록금 때문이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살았지.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간암이라니······.”

오상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 오상진. 이왕 과거로 돌아온 거 나도 주변을 좀 더 돌아보면서 살자. 너 혼자 잘 먹고 잘 생각만 하지 말고.”

다짐하듯 찬물로 세수를 한 뒤 오상진이 화장실을 나왔다. 때마침 어머니와 오정진이 음식을 옮기고 있었다.

거실에 펼쳐진 상 위에는 이미 한가득 요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그냥 냉장고에 있던 것들로 준비했어.”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다 했어. 넌 그냥 자리에 앉아 있어.”

“아니에요. 밥이라도 옮길게요.”

오상진은 팔을 걷어붙이고 어머니가 퍼 놓은 밥공기를 옮겼다. 그러자 오정진이 의아한 눈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왜?”

“오늘 이상해.”

“뭐가 인마.”

“형 원래 이런 거 안 하잖아.”

“안 하긴 뭘 안 해? 가서 국이나 가져와.”

“됐으니까 앉아서 밥 먹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정진을 말리며 어머니가 국그릇이 담긴 쟁반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잡채에, 갈비찜, 게다가 삼겹살까지······.”

“그냥 대충 차렸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

어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상에 올려진 음식들 전부 오상진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모처럼 먹는 어머니표 집밥이라서일까. 오상진은 허겁지겁 밥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밥 한 공기를 더 내주었다.

적당히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오상진은 수저 가득 밥을 떠 입안에 쑤셔 넣었다.

“형. 부대에서 밥 안 줘?”

“아무리 부대에서 밥을 잘 먹어도 집밥만큼 하겠냐. 하긴 이 형이 백날 떠들어 봤자 네가 뭘 알겠냐. 너도 인마, 군대 와 보면 알게 되어 있어. 집밥에 대한 소중함을 말이야.”

“나 아직 군대 가려면 멀었거든?”

“멀긴 뭐가 멀어? 너도 곧 와야지.”

“난 대학 간 다음에 천천히 생각할 거야.”

입이 짧은 오정진이 먼저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일으키려는 걸 오상진이 말로 붙들었다.

“그건 그렇고 너 공부는 잘되냐?”

“뭐, 그럭저럭.”

“그래서 넌 대학 어딜 갈 건데?”

“이제 고2인데 벌써부터 대학이야.”

“그러니까 미리미리 생각을 해야지. 혹시 너 가고 싶은 대학 없어?”

“장학금 받는 곳으로 가야지.”

오정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집안 형편을 고려한 오정진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정진이 녀석은 어릴 적부터 속이 깊었지.’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린 후 동생을 바라봤다.

“야,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너 가고 싶은 대학 가! 형이 모아둔 돈이 좀 있거든. 너 대학 등록금은 충분히 댈 수 있으니까. 가고 싶은 곳 가. 알았지.”

“정말? 형이 모아 둔 돈이 있어?”

“그럼 인마, 형이 흥청망청 살았겠냐? 너 대학 보내려고 적금도 들었다.”

“진짜지?”

“그래, 인마!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가고 싶은 공부 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지 말고.”

과거 오정진은 장학금을 위해 사범대에 진학했었고, 몇 년 후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을 하게 됐다며 오상진에게 술을 먹고 하소연을 해댔다.

‘원래 법대에 가고 싶다고 했었지······.’

오상진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법대를 지망했다. 특별히 판관의 꿈을 가졌다기보다는 사법 고시에 붙어 팔자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그 이후로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알았지?”

오상진이 오정진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고마워, 형.”

그 말에 감동한 듯 오정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막냇동생 오상희가 들어왔다.

“엄마, 나 왔어! 배고파 밥······. 어라? 삼겹살이다. 와, 무슨 일이래 갑자기.”

그러면서 오상희가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와 앉았다. 오상진이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야, 나는 눈에 안 들어오냐?”

그러자 오상희가 힐끔 오상진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누구세요, 아저씨는?”

“이게 죽으려고. 너 까분다. 그리고 이런 식이면 용돈 없는 줄 알아!”

그 순간 오상희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마냥 온순해지며 입을 열었다.

“어머! 우리 자랑스러운 큰 오빠 왔어?”

그러면서 오상진 팔에 안겼다.

“이거 놔. 아저씨라며?”

“아잉, 오빠 왜 그랭! 장난이징.”

오상희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그런 오상희를 보며 오상진이 인상을 썼다.

“근데 너······ 화장했냐?”

“화장은 무슨. 그냥 살짝 비비만 발랐어.”

“비비만 바른 게 아닌데? 완전 풀 메이크업인데. 게다가 머리는 또 이게 뭐야? 어쭈 깻잎 머리? 네가 일진이라도 되냐? 깻잎 머리를 하게!”

“아, 왜 이래. 진짜 아저씨같이. 요즘 이게 얼마나 유행인데.”

“유행? 이게 유행이라고? 발랑 까져 가지고 이리와.”

“아이 씨, 만지지 마! 머리 흐트러진단 말이야. 그리고 요새 이 정도는 다 하고 다니거든.”

오상희는 짜증을 내며 오상진의 손을 툭 쳤다.

“그것보다, 너 시간이 몇 시인데 지금 들어와?”

“엄마한테 못 들었어? 나 오디션 보고 왔잖아.”

“오디션? 너 아직도 오디션 보러 다녀? 넌 안 된다니까!”

“우씨! 오빠가 뭘 안다고 그래. 아, 짜증 나!”

그러면서 오상희가 휙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저 철없는 녀석을 어찌하면 좋냐.”

오상희는 오정진과 달리 막내티를 팍팍 내고 다녔다. 게다가 연예인이 되겠다고 허구한 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언제 철이 들지.”

그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오상희가 옷 하나를 들고 나왔다.

“엄마! 이 옷 세탁기에 넣지 말라고 했잖아. 이거 드라이 맡겨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냥 세탁하면 되지. 무슨 드라이까지 해야 해.”

어머니가 한소리 하자, 오상희가 짜증을 냈다.

“아, 짜증 나! 이 옷이 얼마나 비싼 건데. 이건 무조건 드라이 맡겨야 한단 말이야. 엄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만히 듣던 오상진이 눈을 부릅떴다.

“오상희. 어머니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엄마가 내 옷 망쳤다고.”

“이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머니에게 무슨 소리야!

“아, 몰라! 큰 오빠까지 왜 그래?”

“어서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하지 못해!”

오상진이 으름장을 놓자 오상희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 씨, 나 나갈 거야!”

오상희가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상진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야, 어디 가!”

“남이사!”

오정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마디 했다.

“정진아. 가서 상희 잡아 와.”

“아 씨. 진짜 오상희.”

오정진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오상희를 쫓아 나갔다.

“하아······.”

철없는 오상희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났다. 하지만 예전처럼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껏 과거로 왔는데 또다시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희도 철 들겠지. 밥 식겠다. 어서 먹어.”

어머니가 새로 구운 삼겹살을 내오며 말했다.

“알았어요.”

오상진이 삼겹살과 밥을 한 움큼 퍼서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제가 더 잘할게요.’

< 1장 소대장님 뭐 하십니까?(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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