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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6화 (6/1,018)

< 1장 소대장님 뭐 하십니까?(5) >

인생 리셋 오 소위 005화

1장 소대장님 뭐 하십니까?(5)

오상진이 생각하기에 국군병원에 보내서 백혈병 진단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만약 백혈병으로 밝혀진다고 하면 병원은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사이에 김희철 이병이 급성으로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백혈병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했어. 급성으로 가버리면 돌이키기 힘들어져. 그 전에 빨리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좋은데. 아무튼 최대한 서둘러야 해.’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알았다. 내가 조만간 일반 병원으로 보내줄 테니까. 나만 믿고 기다려라.”

“정말입니까?”

“그래. 대신 희철이 넌 의무대에 입원해 있도록 해라.”

“의무대 말입니까?”

김희철 이병이 눈을 크게 했다. 솔직히 의무대에 입원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괜찮아. 내가 중대장님과 얘기할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소대장만 믿고 기다려.”

“알겠습니다.”

어차피 김희철 이병이 이대로 내무실에 있어 봤자, 계속해서 갈굼을 당할 것은 뻔했다. 그럴 바에는 미리 의무대로 보내서 입원을 시킨 후 일반 병원을 알아보는 것이 괜찮다고 판단했다.

김희철 이병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미소를 보니 오상진 역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 날 오상진은 출근하자마자 김희철 이병을 찾았다.

“준비됐냐?”

“네.”

“그럼 가자.”

오늘 오상진은 김희철 이병을 데리고 의무대로 갈 생각이었다. 물론 어제 상담했던 것과 오늘 의무대로 데리고 가는 건 이미 김철환 중대장님께 보고를 올린 상태였다.

“잠은 잘 잤어?”

“네. 그렇습니다.”

“고참들이 한마디씩 하지?”

“아, 아닙니다.”

의무대로 향하는 길에 오상진이 이것저것 물었다. 김희철 이병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보지 않아도 뻔했다.

“다 알아, 인마. 이등병이 허구한 날 아파서 의무대로 내려가는데 어떤 고참들이 좋아하겠냐?”

“······.”

김희철 이병은 말없이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짠했다.

“괜찮아. 아픈 게 어디 네 탓이냐? 기죽지 말고!”

“네······.”

그 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의무대에 도착했다. 오상진은 대신 접수를 하고 김희철 이병 곁으로 와서 앉았다.

“오늘은 한방 쪽으로 가야겠다.”

“한방······ 말입니까?”

김희철 이병이 약간 의아해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다. 어차피 잘된 일인지도 몰라. 한 대위님은 의외로 고지식하지 않거든.”

“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입원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야. 게다가 말만 잘 통하면 일반 병원을 허가해 줄지도 몰라.”

“저, 정말입니까?”

“그래.”

사단에 군의관이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종합병원 내과 레지던트이고, 다른 한 명은 한의사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은근히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내과 출신인 최 대위는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고, 어딘지 모르게 꽉 막힌 사람이었다. 진료도 대충대충 하고 넘어갔다. 그에 반해 한의사 한 대위는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다행이다.”

오상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희철 이병을 보며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

김희철 이병에게 당부를 한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 대위가 오상진을 발견하고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 오 소위! 어쩐 일입니까?”

김철환 중대장님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서 한 대위와는 친분을 쌓은 뒤였다.

“사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어떤 부탁을 하려고 그럽니까?”

한승현 대위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상태가 안 좋은 병사가 한 명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절대 꾀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데리고 왔습니까?”

“네. 지금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그럼 잠시 들어와 보라고 하십시오. 제가 진맥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보시겠습니까?”

곧바로 김희철 이병이 들어왔다. 한 대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맥을 할 거야. 긴장하지 말고.”

“네.”

한 대위가 진맥을 한 후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역시 김희철 이병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됐어. 그만 나가 봐.”

오상진이 김희철에게 말했다.

“나가서 대기하도록.”

“네.”

김희철 이병이 나가고 두 사람은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어떻습니까?”

“으음. 일단 진맥을 해본 결과 맥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자세한 건 좀 더 정밀히 검사를 해 봐야겠는데······ 소대장은 무슨 병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저는 백혈병 같습니다.”

“백혈병이라······. 진맥으로 확인은 되지 않지만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일단 백혈병으로 의심이 된다면 일반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아 검사해 봐야 압니다.”

“그렇습니까? 어쨌든 진맥 결과 꾀병은 아니라는 말씀이죠?”

“네. 아픈 건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저 친구가 도통 잠을 못 이룬다고 합니다. 게다가 고참들 눈치를 보는지 내무실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합니다.”

“그렇습니까?”

한승연 대위가 대답을 하면서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둘러 말했지만 그 핵심은 의무대 입원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오상진 역시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승연 대위를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사실 이런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최 대위님 있죠.”

최 대위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한승연 대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 대위가 뭐라고 합니까?”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말씀드린 그 친구를 진찰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그냥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 친구 이름이······.”

“김희철 이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승연 대위가 자신의 컴퓨터를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에 나타난 것을 확인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죄다 감기약, 아니면 빈혈약으로 처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한 대위님께서 당분간만 저 친구를 의무대에 입원시켜 주실 수 없습니까?”

오상진의 부탁에 한승연 대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드려야죠. 우리 오 소위 부탁인데.”

“감사합니다. 한 대위님.”

오상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다가 한승연 대위가 물었다.

“그런데 친인척이거나 그런 건 아니죠?”

“어이구,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친구 확실히 아픈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리고 제가 이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네. 이런 말씀은 좀 그렇지만 사실 저 친구가 저희 소대에서 고문관으로 찍혔습니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꾀병 부린다고 말이죠. 막말로 장병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아, 무슨 사정인지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군대가 워낙 엿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오 소위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제가 그 정도까지는 해드리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알죠?”

한승연 대위가 손가락으로 술 마시는 시늉을 하며 눈치를 줬다. 오상진이 곧바로 캐치를 한 후 말했다.

“당연히 소주에 삼겹살로 모시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음 날 오상진은 곧바로 중대장을 찾아가 보고했다. 김철환 중대장은 매우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희철이가 백혈병에 걸린 것 같다고?”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야, 진짜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아? 백혈병이어도 난리고, 아니어도 난리 나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하아, 미치겠다. 상진아. 왜 그러냐?”

김철환 중대장은 잔뜩 인상을 썼다.

“사실 말입니다. 제가 이러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오상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 이유나 들어보자.”

“김희철 이병의 병 증상이 제 사촌 동생의 병 증상과 똑같습니다. 사촌 동생도 백혈병이었습니다.”

“그래? 사촌 동생이 백혈병이었어? 그걸 왜 말 안 했어?”

김철환 중대장은 꽤 놀란 눈치였다.

‘미안하다, 예림아. 잠깐 아팠던 거로 하자.’

오상진은 속으로 대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 사촌 여동생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뻔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때 넌지시 말씀드렸었는데 기억 안 나십니까?”

“그랬던가? 어쨌거나 확실한 거야?”

“완전 똑같습니다. 저희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랬어? 그럼 사촌 동생은······?”

“아, 죽진 않았습니다. 다행히 제때 골수 이식을 받아서 살아났습니다.”

“다행이네.”

“사촌 동생은 그나마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가 빨랐습니다. 그런데 병원 의사 말로는 조금만 늦었어도 급성으로 갈 뻔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 1장 소대장님 뭐 하십니까?(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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