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82화 (182/183)

85. 킹 (7)

슈슈슈슉! 슝!

산탄총의 탄환을 연상케하는 파편들이 우리 앞에서 마치 투명한 연못에 빠진 것처럼 빛으로 이루어진 파문을 남기며 소멸했다.

역시 어웨이큰이다.

이 힘이 없다면 나와 킹은 파편 속에서 온 몸이 찢겨나간 채 바닥에 너부러졌겠지.

한편 역장에 흡수된 파편들은 역장과 연결된 또 다른 차원의 틈새를 통해 곧장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반사역장의 반사 효과다.

반사역장의 출구라 할 수 있는 소형 균열의 생성 지점은 반사역장 최대 사거리 안.

그러므로 반사역장을 통해 반사한 걸 무한히 반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수히 쏟아지는 파편이 몬스터의 포신이 있는 두부를 두들겼다.

회백색의 살점이 뜯기고 찢겨나갔지만 그게 전부.

애당초 인간 같은 소프트 타겟에 효과적인 작은 파편들이라 몬스터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진 못했다.

생채기만 낸 채 반사역장의 반대쪽 균열은 빠르게 소멸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저벅-

거리는 여전히 70m.

전력 질주를 한다면 한 번에 거리를 좁힐 수 있겠지만 애니힐레이터 타입은 불규칙적으로 연사가 가능하다.

“스켈톤. 안 뛰어도 되나?”

“아직은.”

한 번, 어쩌면 두 번이 더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사각사각-

잠시 사라졌던 스파이더링이 우리를 발견하고 모여들기 시작한다.

거리가 있지만 곧 우리를 향해 달려들겠지.

“당신들은 곧 죽을 거야!”

뒤에서 손명주의 성마른 외침이 들려왔다.

“신의 사자에게 감히 정면으로 도전하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네!”

나도 킹도 무시했다.

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 옆에 전시훈이 있는 걸 보았다.

녀석이 우리를 보고 있다.

나는 말없이 앞을 주시했고 킹도 나를 믿는 것처럼 내 뒤를 지켰다.

소리 없는 전진 속에서 스파이더링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직 거리가 있다.

속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링에 반응하지도 않았다.

굳이 일일히 그런 놈들에게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또 한 번 큰 놈이 올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애니힐레이터의 포신 쪽에 기이한 일렁거림이 일었다.

제2파다.

“온다!”

50m 거리에서 총탄을 피할 수 없는 건 총탄의 빠르기도 빠르기지만 그것이 인간의 눈으로는 잘 식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몬스터의 파편탄은 다르다.

화약무기에 비하면 확연히 느릴뿐더러 내가 주목하는 건 비교적 눈에 잘 띄는 중대형 파편뿐이다.

잔잔한 파편은 신경 쓰지 않는다.

쿵!

충격파와 더불어 애니힐레이터가 비산하는 회백색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놈이 파편을 뿌리는 순간 나는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음울한 색채의 크고 각진 덩어리를 보았다.

“회피!”

그대로 측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킹 또한 나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역장!”

쿵!

킹이 역장을 펼쳤다.

슈욱-

이미 역장을 펼치는 순간 최소 사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작은 파편이 옷깃과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젠장.”

킹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한 대 맞았어.”

“움직일 수 있나?”

“무디다고 했잖아? 사실 난 문언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편이지.”

“가자.”

파편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스파이더링 몇 마리가 있었지만 비산하는 파편탄이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반사역장 최소 사거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형종의 반사역장 최소 사거리는 15미터 내외.

그 안으로 파고든다.

그런데 질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놈이 대가리를 위로 쳐들었다.

“젠장.”

최악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죽음의 비다.

근거리의 적대적 대상을 인지하고 사방을 초토화하려는 소이탄과 비슷한 죽음의 비를 쏘려하는 것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조금은 더. 하지만 버겁군.”

킹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확실히 오버 5레벨 어웨이큰이라고 하나 연속적으로 반사역장을 펼치는 건 꽤나 부담이 되는 모양.

실제로 그가 막아낸 건 한두 발의 탄환이 아닌 수백 발 단위의 파편이니 그만큼 정신력을 갉아먹었겠지.

그렇다면 좋다.

도박을 해보겠다.

놈이 비산탄을 쏘기 전에 끝장낸다.

어차피 킹은 한계.

장장 30초간 이어지는 죽음의 비 속에서 그는 반사역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 있어라.”

총기를 내던지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내 발은 아주 빠른 건 아니지만 느리지도 않다.

그리고.

쩍!

중간에 스파이더링 몇 마리가 갑자기 덤비더라도 도끼로 쫓아버릴 수도 있다.

거리 약 25. 20. 18.

눈대중으로 정확한 반사역장의 최소 사거리를 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만 계산이 틀리더라도 내가 쏜 총탄이 내 눈앞에서 돌아오는 걸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급박하다면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몬스터에게 총탄을 날려야겠지.

거리 약 15m.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하푸나이저를 뽑고 놈을 겨냥했다.

철컥!

푸른 버튼과 초록색 버튼을 동시에 누른다.

가벼운 진동과 더불어 분리된 화학 약품이 하나로 뭉치며 폭발성을 빠르게 띄어간다.

애니힐레이터는 이미 하늘을 올려다본 채 몸을 부풀리고 있다.

놈이 죽음의 비를 뿌리려 한다.

반 박자 빠르게 나의 작살을 놈을 향해 발사했다.

치이이이이익--

불꽃의 꼬리를 길게 끌며 하푸나이저의 탄두가 몬스터의 육중한 몸을 향해 날아갔다.

적중이다.

그러나.

쿵!

놈 또한 하늘을 향해 죽음의 비산탄을 토해냈다.

곧 비산탄이 폭발했다.

자욱한 먼지 너머에서 죽음의 비가 떨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래 전에 잊은 수많은 광경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모포에 덮이거나 들것에 실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팔과 다리를 축 늘어뜨린 시체들.

동기와 선후배, 전우의 시체다.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의 졸음 속에서 나는 몽롱한 눈으로 날 향해 쏟아지는 죽음의 비를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

학교와 숙소에서 상상했던 것과 달리 최후의 순간은 영웅적이지도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올 게 왔다는 값싼 숙명론만이 지쳐버린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완전한 졸음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스켈톤!”

느닷없는 외침이 뒤에서 울려 퍼졌다.

킹의 목소리다.

쿵!

바로 뒤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고 날 향해 쏟아지던 죽음의 비가 빛의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별들만큼 많은 파문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나는 뒤를 보았다.

“스켈톤. 나이스 샷이었다.”

킹이 앞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죽음의 비 아래 몬스터가 소멸하고 있었다.

나의 작살이 정확하게 놈에게 꽂힌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종료된 건 아니다.

여전히 죽음의 비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파문을 남기며 우리 주변에 떨어지고 있고 거기다 어두운 빌딩 아래 거대한 거미 형상의 괴물이 자신을 닮은 수백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침식지대의 주인, 스파이더 타입이다.

“빌어먹을.”

킹이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괜찮냐?”

“나는 왕이다. 이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어.”

당차게 말했지만 위태롭게 떨리는 몸은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킹은 기어코 죽음의 비를 버텨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모든 힘을 쓴 킹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날 올려다보았다.

“······.”

이제 무기는 없다.

권총 한 정과 두 자루의 도끼뿐.

앞을 보았다.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스파이더 타입 한 마리라면 어떻게든 접근해 도끼로 베어 넘길 수 있겠지만 수하가 너무나도 많다.

눈대중으로만 수백 마리 이상.

저 정도 숫자의 스파이더링은 수학이 아닌 통계의 문제다.

숫자 그 자체로 모든 변수 자체를 찍어누르고도 남는다는 이야기다.

“······.”

그래도 할 수밖에.

조용히 도끼를 뽑고 셀 수 없는 스파이더링과 스파이더 탑을 향해 걸어갔다.

셀 수 없는 스파이더링과 스파이더 타입이 위협 자세를 취했다.

도끼를 들고 놈들을 향해 질주했다.

수십 마리의 거미가 날 향해 도약했다.

탕! 탕! 탕! 탕!

재빨리 권총의 탄환을 소모하고 집어 던진 후,

쩍! 스걱!

두 자루의 도끼로 달려드는 놈들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회백색의 덩어리가 찢기고 갈리고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놈들은 끝없이 달려든다.

지성도 감정도 없기에 공포도 없는 놈들에게 동료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니까.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없는 나는 묵묵히 학살을 계속한다.

스걱! 쩍!

얼마나 많은 놈들을 죽였는지는 세지 않았다.

내가 계산하는 건 오직 단 하나.

나와 스파이더 타입 사이의 거리다.

근거리에서 결말을 낸다.

그러나 3년 묵은 스파이더 타입은 내가 알던 놈들과 달리 약간의 지성이 생기는 모양이다.

죽음의 춤사위를 펼치는 날 보자 달려들기는커녕 수백 마리 스파이더링의 호위를 받으며 뒤로 물러나는 걸 보면.

“······.”

약속된 패배가 확정되는 걸 느끼는 그 순간.

쿵!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킹의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영혼 밑바닥부터 울리는 듯한 둔중한 울림이다.

순간 세상이 미약하게나마 밝아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틀림없다.

이 울림.

“시훈 형제! 뭐하는 거예요!”

뒤를 돌아보았다.

전시훈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불타는 듯한 광채를 눈에 머금고 전신에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듯한 잔잔한 여진을 머금은 채.

“미안해요.”

전시훈이 날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탈진한 상태로 앉아 있던 킹이 웃음소리를 냈다.

“이 새끼. 이제야 처 움직이네.”

전시훈이 스파이더 타입을 노려보았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쿵!

형언하기 어려운 강렬한 충격파가 재차 전장을 울리는 순간 거미들의 왕은 깡통처럼 우그러졌다.

*

감미로운 냄새가 복도 끝에서부터 코끝을 진동했다.

여우탈과 토끼탈을 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뇌쇄적인 여인들이 우리에게 밀크티를 내왔다.

목례로 감사를 표하고 밀크티를 마셨다.

몸 안에 스며드는 밀크티의 달콤하면서도 깊은 맛을 음미하며 고개를 돌렸다.

내 옆자리엔 고개를 숙인 전시훈과 고개를 빳빳이 쳐든 손명주가 거리를 둔 채 앉아 있다.

전투가 끝난 후 우리는 침식지대를 빠져 나왔다.

손명주가 완강히 거부했지만 전시훈의 의지가 더 강했다.

복도 너머에서 화려한 가운을 입고 사자탈을 쓴 사내가 우리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스켈톤! 그리고 전시훈!”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물론 선택하는 건 내가 아닌, 전시훈이다.

함께 킹의 궁전까지 오긴 했지만 여전히 전시훈은 자신의 거취를 정하지 않았다.

킹이 날 보았다.

“스켈톤. 더 할 말 있냐?”

내 이야기는 끝났다.

고로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

고개를 가로젓자 킹이 우리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집무실에 들어가는 게 허용된 건 나와 전시훈뿐이다.

손명주는 토끼탈을 쓴 여인의 제지를 받았다.

손명주의 경계 어린 눈빛을 받으며 우리는 킹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코를 찌를 정도로 강한 방향제의 냄새와 시체의 냄새가 혼재한 사치스러운 방.

여전히 철제 원통이 방 한 칸을 무심하게 차지하고 있다.

“전시훈. 아까 내가 약속했지?”

킹이 원통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원통을 열었다.

거기엔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존재가 있었다.

“으어어어······.”

좀비다.

사슬에 묶이고 입엔 재갈이 채워지고 목엔 전류가 통하는 장치가 있어 살상 능력은 없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좀비가 지성의 편린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우리를 보며 팔을 힘없이 휘젓는다.

킹이 그 좀비를 보며 말했다.

“이것이 나의 전임자다.”

전시훈의 얼굴에 딱딱하게 굳었다.

“전임자요?”

“내가 어떻게 어웨이큰이 된 지 아나?”

“······?”

“세종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려던 내 전임자는 약탈자에게 잡혀 고문을 당했지. 3일 밤낮으로 전임자를 고문하고 학대한 약탈자들은 좀비를 데려와 죽어가던 전임자의 몸을 물어뜯게 했다. 약탈자의 기대대로 그는 좀비가 되어가며 죽어가기 시작했지. 그런데 내 전임자의 생명력은 약탈자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끈질겼다. 죽음의 문턱에서 좀비로 변해가면서도 그는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자신에게 깃든 새로운 힘을 자각했지.”

“······설마 그게?”

“그래. 어웨이큰의 힘을 자각했다. 그리고 약탈자들을 모두 죽였지. 그리고 그는 도시에 기틀을 마련했어.”

전시훈은 분위기에 압도당했지만 킹의 말을 납득하진 못한 모양이다.

그가 쭈뼛거리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방법으로 어웨이큰이 될 수 있다고요? 저는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그러자 킹이 탈을 벗었다.

그 너머엔 눈 주위를 검은 화장으로 가렸지만 원통 안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앙상하고 이미 반쯤 죽은 사람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틀림없다.

좀비다.

아니, 인간도 아직 좀비도 아닌 무언가라고 할까.

전시훈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내게 알려준 방법이지.”

“아, 아버지요······?”

킹이 좀비를 가리켰다.

“그래. 이 좀비가 내 아버지다.”

“······.”

전시훈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보았으니까.

“나는 아버지의 방법을 써서 그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이, 이런 식으로 어웨이큰이 가능하다니..”

“이 방법에도 약점은 있다.”

킹이 다시 가면을 썼다.

그 대목에서는 나도 강한 긴장감을 느꼈다.

킹의 방식은 장기영이 내게 언질을 줬지만 그 최후에 대해서는 내 스승도 말해준 바가 없으니까.

침묵 속에서 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결국 우리는 좀비가 된다. 아버지는 연로해서 빠르게 이지를 상실했지만 나도 가끔 정신을 잃는다.”

“왜 그런 방법을?!”

전시훈이 물었다.

“나도 좀비는 되기 싫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아버지의 뜻이 너무나 완강했고 너무나도 간절하게 내게 부탁했지. 고민 끝에 나 또한 아버지의 방식을 답습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못다 한 꿈을 떠안은 채 사는 것이지. ”

“······.”

전시훈이 입을 다문 건 충격적인 진실만은 아니리라.

자신과는 또 다른 부자관계를 봤다는 충격이 어쩌면 이 나이가 들어가는 어린 친구의 마음에 파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가 다른 존재가 됐으면 해. 몸에 털이 나도 좋고, 짐승의 얼굴과 발톱을 가져도 좋아. 뭐든 간에 좀비보다는 낫지 않겠어?”

킹이 전시훈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는 우리와 달라. 타고 났지.”

“······.”

“언젠가는 이 도시의 지배자가 투표로 선출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힘을 가진 자. 어웨이큰만이 도시를 지탱할 수 있어.”

“저는.”

“여기 3만 명이 있다. 네 눈엔 억압받는 사람과 깡패들이 있는 도시겠지. 하지만 점점 나아질 거야. 내가 미치기 전까지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언젠가 내가 아버지처럼 됐을 때 이 도시는 너를 필요로 한다.”

“킹.”

전시훈이 킹을 올려다보았다.

적개심과 경멸이 아닌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품은 채.

“뭐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지만.”

킹이 히죽 웃었다.

“어때? 마음이 정해졌냐?”

킹의 물음에 전시훈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전시훈은 내가 처음 봤을 때보다 좀 더 어른이 되어 있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시훈은 나와 함께 우민희에게 돌아간다.

킹의 제안을 거절한 건 아니다.

“돌아갈게요. 일단은. 엄창이, 아니 스켈톤님을 보고 저도 느낀 바가 있어요. 아무런 권능도 없는 사람이 저렇게 치열하게 싸울 수 있구나 하고.”

전시훈이 날 보며 엄지를 세웠다.

“진짜 전사라는, 아니 헌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로요! 엄창이도 멋지지만 그 엄창이보다 수천 배는 더 멋졌어요!”

“······그래?”

“강한민 대장이 생각나더라고요!”

우리의 대화를 듣던 킹이 쓸쓸히 웃으며 돌아섰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다.”

전시훈이 킹을 보고 두 주먹을 쥐며 힘차게 말했다.

“균열을 곧 닫을 수 있어요. 닫기 일보 직전이라고 강한민 대장님이 말했어요!”

“그래?”

“네! 균열을 닫고 돌아올게요. 대신 명주 잘 돌봐주세요.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저런 미친 년은 한 트럭 갖다 줘도 사양이다.”

이것이 전시훈이 나와 같은 장갑차를 타게 된 전말.

장갑차가 출발하기 전에 킹이 날 따로 불러냈다.

“스켈톤.”

가면을 벗은 그의 얼굴은 다시금 인간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사람의 얼굴로 킹이 호쾌하게 웃었다.

“너를 왕의 동맹으로 인정하마.”

“······.”

“지원이나 여자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

“그리고 인형탈도······.”

“그건 사양하겠다.”

나의 거절에 킹은 재차 호쾌하게 웃었다.

“스켈톤 이 새끼! 썰 풀면 알지?”

장갑차가 출발했다.

나란히 탄 전시훈과 함께 창밖을 보았다.

창 안의 전시훈과 창밖의 킹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세상엔 수많은 아버지가 있다.

자식을 버린 아비.

자식에게 무리한 짐을 떠안게 한 아비.

분하지만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색채가 모호하다.

뭐, 사실 그게 좋은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폐허의 도시를 본다.

장이 서고 흥정을 하고 작업장과 농장에서 사람들은 노동을 한다.

깡패들이 웃으며 행패를 부리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쥐고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강하다.

그 의지는 더 강하다.

식상한 불변의 진리를 느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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