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81화 (181/183)

85. 킹 (6)

몬스터의 분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크기에 따른 구분과 목적에 의한 구분.

몬스터라는 규명이 불가능한 인류의 적은 대체로 크기에 따라 비슷한 목적을 부여한다.

소형은 대부분 침투형이다.

단독으로 행동, 거점을 형성하고 지역을 침식시켜 균열에서 뻗어가는 침식의 흐름에 가속점을 제공한다.

중형은 대부분 전투형이다.

저등급 균열에서는 잘 형성되지 않고 고등급 균열이라고 하더라도 오로지 킬존을 형성하고 다수의 분출이 저지된 곳에서만 출몰한다.

대부분 킬존에서 소멸하지만 일부가 킬존을 뚫고 전장 지역을 배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극도로 위험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다.

우리 헌터도 예외는 아니다.

놈들은 가증스러운 살인자다.

대형은 중형종의 업그레이드판이다.

물론 중형종보다 위험하다.

대형종과 중형종이 전장 지역을 배회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중형종은 적절한 전력이 갖춰지면 사냥을 하지만 대형종은 반드시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 사유가 없는 한 자연소멸을 기다리는 것이 매뉴얼에 기재된 대처 방식이다.

초대형은 마지막에 등장한 유형으로 중형종과 대형종만으로 인간의 막강한 방어선을 뚫어내지 못하자 아예 방어선 전체를 짓밟을 목적으로 균열에서 내보낸 전선 돌파형이다.

이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당연히 초대형종이겠지만 놈들이 가장 위험한 종류라고 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팀 단위 전투 상황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위협은 대부분 중형종에 집중된다.

쿵!

그 중형종이 걸어온다.

우리를 향하여.

우리를 죽이고 인류의 희망을 빼앗기 위해 이쪽으로 접근한다.

“어이. 전시훈! 어떻게 할 수 없냐?”

킹이 전시훈과 창밖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저거요?”

전시훈이 창밖을 본다.

은은한 광휘를 머금은 눈동자에 떠오른 건 선명한 공포였다.

전시훈이 뒷걸음질쳤다.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해요?”

“넌 강하잖아. 10레벨 어웨이큰이라며?”

“그렇긴 한데 저는 싸우는 거, 잘못해요. 무서워요.”

전시훈은 창가로부터 가장 떨어진 구석까지 가서 머리를 감싸 쥐고 쪼그리고 앉은 채 몸을 떨었다.

광신도가 전시훈 옆에 나란히 앉더니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전시훈은 자기보다 머리 3개는 작은 여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가벼운 떨림을 이어나갔다.

“괜찮을 거예요. 시훈 형제. 우리는 신의 아이들이에요. 마종사의 영혼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한 그분은 우리를 지켜주실 거예요.”

그 모습은 마치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를 연상케했지만 나는 그 이름 모를 광신도의 눈에 야릇한, 희열에 찬 광기가 꿈틀거리는 걸 보았다.

역시 광신도였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모든 걸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존재에게 위임해버린.

킹이 한숨을 내쉬고 날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끝났군. 진짜 중형종이 있을 줄이야. 거기다 10레벨 어웨이큰은 저 모양이고.”

어웨이큰 레벨이 높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사자의 심장을 가진 건 아니다.

막강한 자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오버 10레벨 어웨이큰인 전시훈도 우리가 숱하게 보아왔던 힘을 가진 겁쟁이 중 하나였다.

“어이. 스켈톤 남길 유언 없나?”

킹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없다.”

총기를 들었다.

바닥에 내려놓은 하푸나이저를 어깨에 메 단단히 고정했다.

허벅지에 단단하게 조여 맨 도끼집 속의 두 자루 도끼의 무게감과 질감을 느끼면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를 응시했다.

“반사 역장을 펼칠 때 전개 시간이 얼마나 되지?”

“즉시? 사람 기준이니 0.1초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횟수는?”

“글쎄.”

“질문을 바꿔 말하지. 전투 지속 시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얼마나 되지?”

“1시간 이상은 안 돼. 머리가 타버릴 거 같아.”

“쉬엄쉬엄 말고 전력으로 싸운다고 했을 때 지속시간은 어떻게 되지?”

나의 물음에 킹이 눈동자에 미세한 이채를 번득이며 대답했다.

“5분 이상은 안 돼. 역장에 큰 충격이 가해지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고.”

“좋아.”

“진짜 싸울 거냐?”

킹이 날 똑바로 보며 묻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퇴로는 막혔다.”

붉은 스프레이를 표시한 지점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80m 거리에 중형종이 있다.

정지 상태의 중형종은 가까이 가거나 먼저 자극하지 않으면 활동을 하지 않지만 배회 중인 중형종은 반반이다.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 반반의 가능성에 목숨을 걸진 않겠다.

인간의 화력을 악의적으로 흉내낸 저 중형종이 화력을 투사하는 순간 우리는 스파이더 타입의 미로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미로와 함께 찢겨나갈 테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죽을 확률이 높더라도 싸워보는 쪽이 죽더라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최소한 발악이라도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이. 스켈톤. 진심이냐? 내가 제대로 교육 받은 헌터도 아니지만 올드스쿨 헌터 하나만으로 중형종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킹이 있잖아?”

“아무리 내가 있다고 해도 저 괴물한텐 내 권능은 통하지 않아.”

전의를 상실한 건 전시훈만은 아닌 모양이다.

점점 육박해오는 중형종을 보고 킹조차 겁을 집어 먹고 있다.

그를 빤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나한텐 얕잡아 보여도 되는 모양이지?”

순간 킹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살벌한 눈으로 날 노려보며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도 세종의 왕을 얕잡아 볼 수 없다.”

“바로 그거야. 내가 신호를 하면 역장을 펼쳐줘.”

“알겠다.”

킹이 가스마스크를 뒤집어썼다.

매섭게 등을 돌리며 계단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엔 어떠한 주저함도 공포도 없었다.

한 도시의 지배자다운 관록이랄까.

그를 따라 건물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광신도가 말했다.

“신의 사자를 이기겠다고요? 단 두 명이서?”

“이름이 뭐냐?”

광신도를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명주요. 손명주.”

“그래. 명주야. 우리가 이기면 시훈이 세뇌질 하는 거 그만두지 않겠냐?”

“세뇌라니요. 진정한 가르침을 알려주는 게 왜 세뇌가 됩니까?”

“포교를 하든 포경을 하든 어떻게 할 거냐? 우리는 목숨을 걸었다.”

내 손은 권총 손잡이를 만지고 있었다.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미간을 쏴서 죽일 생각이다.

상대방이 10대 후반의 여자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마음의 뿌리까지 병든 광신도는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논리 위에서 살아가는 해충이니까.

“해봐요. 그럼.”

“놔준다는 거냐?”

“우리는 시훈 형제를 잡은 적이 없어요. 그가 우리에게 의지한 거죠. 어차피 결정은 시훈 형제가 하는 거예요.”

권총의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전시훈.”

전시훈이 여전히 두려움이 남은 눈으로 날 보았다.

“강한민을 좋아한다고 했지?”

“어이! 스켈톤!”

계단 아래서 킹이 날 부른다.

“나는 강한민처럼 강한 권능도 축복도 없다. 하지만 똑똑히 봐라.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도 싸울 수 있다는 걸.”

전시훈의 시선을 느끼면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쿵!

중형종, 애니힐레이터는 이제 100m 거리에 있다.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완보동물의 형상을 한 그 놈은 대가리 쪽에 난 커다란 원형의 구멍을 통해 파멸적인 살인 파편을 쏘아 보낸다.

산탄총, 아니 몬스터 크레이모어라고 할까.

방사형으로 퍼지는 파편 하나하나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 그리고 준수한 경도와 질량을 가지고 있어 타격 범위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산 것들을 놈의 이름대로 절멸시킨다.

장기영은 대 애니힐레이터 타입 상대로 놈의 포신이라 할 수 있는 정면 쪽을 피해 측면을 노릴 것을 주문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애니힐레이터의 속도는 느릴지언정 놈은 주변의 모든 살아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고 측면 공격에 충분히 대응할 정도의 속도로 몸을 돌릴 수 있으니까.

심지어 놈은 근처에 적이 있을 경우 커다란 파편을 하늘을 향해 발사, 그 파편이 폭발하며 소이탄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 재의 비를 흩뿌리는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몬스터처럼 반사역장 거리 바깥에서 화력을 퍼붓는 것뿐이다.

오버 5레벨 어웨이큰이 여럿 있다면 어웨이큰 하나가 장막을 벗겨내고 또 다른 어웨이큰이 여럿이 애니힐레이터의 공격을 반사역장으로 받아내는 방식으로 중거리에서도 효과적인 전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싸움을 경험한 적이 없다.

현재 나에겐 어웨이큰이 한 명뿐이다.

그것도 제대로 훈련받았다기보다는 두둑한 배짱과 카리스마로 주변을 휘어잡는 “자연발생한” 어웨이큰 말이다.

“작전이 뭐지?”

“정면에서 접근해서 하푸나이저로 끝낸다.”

“반사역장에도 허용 한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허용 한계를 넘는 순간 역장은 박살 난다.”

“평균치로 봤을 때 소형종은 105mm 60구경장 대 몬스터용 표준 전차포 기준으로 두 발. 중형종은 다섯 발. 그 이상은 알려진 바 없음.”

“······어, 뭐 나보다 잘 아는 거 같네.”

“역장을 최대한 아낀다. 그리고 최대한 범위를 줄인다.”

“진짜 정면으로 그대로 돌격하는 거냐?”

킹의 질문은 두려움보다는 합리적인 의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진지하게 답했다.

“중형종은 대부분 감지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저 녀석도 그렇고. 우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 폐허의 엄폐물은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거릴 뿐이고. 그러므로 최단 거리로, 시계가 탁 트인 개활지를 통해 정면으로 접근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팀원을 설득하는 것도 팀장의 임무다.

물론 순간의 선택으로 목숨이 갈리는 상황에서 말을 길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대한 절제된 언어 속에 진심을 담는다.

내 설득이 킹에게 닿기를 바란다.

“······믿어도 되겠지?”

킹이 날 보며 물었다.

수십 번의 설득하면서 내가 느낀 건 설득의 성공 여부는 내 말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싸울 의지가 있는 놈은 뭐라고 말해도 내 말을 따르고 그렇지 않은 놈은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나를 불신한다.

나에게 신뢰를 준 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장선다. 손을 올리면 역장을 전개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최대한 아껴. 경상을 입을 수도 있겠지만 왕이 엄살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

“걱정 마라. 내 감각은 네 것보다 훨씬 무딜 테니까.”

브리핑은 끝났다.

남은 건 작전의 실행뿐.

우리를 향해 육박해오는 감당하기 어려운 괴물을 가만히 바라보다 뒷 건물의 창가 쪽을 보았다.

구석에서 벌벌 떨던 전시훈과 손명주가 이쪽을 보고 있다.

전시훈을 빤히 쳐다본 후 몬스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전진.”

발걸음을 옮겼다.

속도는 빠른 걸음.

뛰지 않는다.

뛴다고 해서 놈의 반사역장 앞에 한달음에 닿는 것도 아니고 그전에 무조건 한 차례 이상의 포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감내해야 한다.

쿵!

몬스터가 충격파를 내뿜었다.

중형종답게 소형종보다 한 차원 높은 파동.

90m 거리에서도 내장이 떨리는 느낌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했다.

모든 신경을 앞을 노려보는 두 눈에 배분한 채.

“······.”

자신을 향한 수천 개의 총구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던 전열보병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들의 용기와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

그들의 생사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철저히 운명에 달린 것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변수가 최악으로 꼬이지 않는 한 한정된 범위 안에서 위험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곰벌레를 닮은 놈이 우리를 발견하고 쭈글쭈글한 대가리가 있는 체절을 높이 들었다.

공격의 전조.

킹의 발걸음이 멈칫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이 침식지대에 올 때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몬스터의 시커먼 포신을 노려보았다.

쿵!

또 한 번의 충격파.

동시에 몬스터의 짧퉁한 시커먼 포신에서 마치 하늘의 별을 한 번에 흩뿌리는 것처럼 백색의 점들이 사방으로 폭사했다.

그 수많은 별들 속에서 내가 찾는 건 큰 놈이다.

그러니까 킹의 역장에 부하를 주고 부하 자체를 깨뜨릴 수 있는 놈.

적어도 경로 사이에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손을 들었다.

쿵!

바로 뒤에서 충격파가 울렸다.

무형의, 그러나 인간이 만든 어떤 벽보다 경이로운 벽이 나와 킹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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