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킹 (3)
내 은사 장기영.
그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가 가장 총애한 제자가 나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장기영은 좋아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입으로는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몬스터에 잘안다고 떠들었지만 실전을 거듭할수록 그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의 경력은 절반의 거짓과 절반의 망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짓 위에서 자리를 만든 장기영은 그의 망상을 우리에게 현실로 펼칠 것을 주문했다.
자신의 망상을 잘 구현하면 좋은 제자, 그렇지 않으면 나쁜 제자로 나눠 눈에 보일 정도로 지독한 차별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를 마냥 나쁘게 보지만은 않는 것이 적어도 장기영이 몬스터를 증오하는 마음은 진짜였다.
그가 총애하는 제자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었다.
장기영에게도 딸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딸의 생일은 김다람의 생일과 같았다.
장기영은 딸의 생일을 무시하고 김다람의 생일을 챙겼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고아들을 불러놓고 조촐하게나마 케이크를 자르며 부모의 빈 자리를 채웠다.
“몬스터를 죽이듯이!”
조촐한 케이크 앞에 선 어린 학생들 앞에서 케이크를 빵칼로 일도양단하며 소리치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가 내게 수첩과 함께 하얀 시트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하얀 시트지 자체는 놀랍지만 그가 내게 떠든 수많은 엉터리 가설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조금은 맥빠진 형태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장기영의 가설을 오싹하리만치 닮은 존재가 내 앞에 있다.
그는 깡패 두목이다.
어째서인지 자신의 전임자를 원통 안에 가둬 둔.
“안녕?”
그 킹이 여자를 보냈다.
토끼탈을 쓴 여자다.
술과 음식이 담긴 수레를 함께 끌고 왔다.
수레 위에 담긴 음식을 힐끗 본 후 토끼탈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딱히 여자 생각은 없어서. 밥만 두고 나가주시면 안 될까요?”
“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토끼탈을 지그시 노려봤을 뿐이다.
토끼탈이 탈을 벗었다.
과연 상당한 미인이다.
그럼에도 내 시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곧 토끼탈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아마 욕설로 짐작되는 말을 중얼거린 후 돌아섰다.
“그래도 오늘 밤엔 여기 있어야 하는데. 안 그러면 킹이 화를 내.”
그녀가 날 다시 돌아보았다.
“내가 죽는 거 보고 싶으면 쫓아내도 돼.”
“······바닥에서 자세요. 그러면. 예민하니까 소리내지 마시고. 코는 고세요?”
“몰라!”
토끼탈이 질렸다는 얼굴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 모습은 명백히 처량해 보였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위험 지대다.
위험 지대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건 사람이다.
장기영이 내게 알려줬다.
그 가르침은 유효했다.
아니, 그 가르침만이 아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장기영의 가르침 중엔 맞는 게 제법 있었다.
대인전술이라든가, 민간인 대책이라든가.
몬스터를 제외한 영역에 대한 부분은 얼추 다 맞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장기영은 몬스터 빼고 다 잘 가르쳤다.
특히 인생과 관련된 가르침은 지금 곱씹어보아도 제법 독특한 맛이 났다.
“여자를 조심해라. 아무리 사랑을 미화해봐야 결국 남는 건 한때의 추억과 아이뿐이다. 결국 우리는 매 순간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다. 너희들이 원하는 현실이 무엇인지는 너희들 가슴속에 새겨진 사명감과 증오가 잘 알고 있을 테지.”
불편한 동거 속에서 하룻밤이 지났다.
토끼탈은 새벽 4시경에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방을 떠났다.
그녀는 내가 잔다고 생각했는지 방을 나설 때 날 노려보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새끼.”
아침이 되자 또 다른 인형탈이 식사를 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있다.
쌀밥이다.
얼마만의 쌀밥인가.
한 숟갈 떠서 먹어 보았다.
예전에 먹던 오래된 쌀이 아니다.
아마 작년에 수확했을 신선한 쌀이다.
반찬도 몇 가지 있었지만 반찬보다는 쌀밥을 정신없이 위 안으로 흘려보냈다.
술도 한 잔 있었지만 술은 먹지 않았다.
“뜨거운 밤 잘 보내셨냐?”
킹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좀비가 아닌 인간이다.
날카롭지만 정숙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인다.
좌우에 한 인상하는 수많은 깡패를 거느린 채 그는 내 앞에서 직접 가스마스크를 꺼내 뒤집어썼다.
대체 무슨 퍼포먼스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스켈톤. 내 직접 데려다주지.”
“뭐?”
“게시판 친구잖아?”
*
장갑차가 도시를 지났다.
방탄 유리창 너머로 퀭한 인상의 사람들이 삐쩍 마른 몸을 이끌고 저마다 열과 오를 지어 어디론가 향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뭐 하는 거지?”
장갑차에 탄 건 나와 킹, 그리고 운전수 뿐이었다.
우리들 뒤로 호위로 보이는 지프와 SUV 두 대가 따라오고 있었지만 장갑차 안에 탄 건 셋뿐이다.
심지어 운전수는 귀가 먼 것으로 보였다.
킹이 태블릿에 직접 타이핑을 쳐서 명령을 지시하고 그 사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태를 보면 말이다.
“노동의 시간이니까.”
킹은 가스마스크를 다시 벗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여전히 사람의 얼굴.
그런데 1시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킹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늙어 있었다.
아울러 그의 몸에서 나는 좀비 특유의 말라붙은 건어물 같은 악취는 장갑차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의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킹은 주름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남들이 볼 때 우리 도시가 깡패, 약탈자, 갱단의 도시라고 하는데 그렇게 막장 동네는 아니야. 저마다의 계급이 있고 그 계급에 맞게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
킹이 늙은 사내와 여성 쪽을 가리켰다.
“노비들이야.”
“노비. 노예 같은 건가?”
“그렇다고 봐야겠지.”
“다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어린놈들은 자기객관화가 잘 안 되는지 딴 일을 찾더라고.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봐. 도시가 좀 더 커지고 체계가 잡히면 달라지겠지.”
킹이 빙그레 웃었다.
차창 너머로 모터사이클과 오픈 탑차를 탄 약탈자 무리가 지나갔다.
그들은 이 차량에 킹이 타는 걸 아는지 깡패답지 않은 정중한 자세로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들은 전사들이야. 말 그대로 싸우는 친구들이지. 위험으로 가득 찬 한반도 곳곳을 돌며 자원과 식량을 구하지. 가끔은 다른 놈도 털고.”
“마치 중세 계급 사회 같군.”
킹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던 건 아니야.”
차량이 살짝 덜컹거렸다.
도시 입구에 설치한 과속방지턱을 넘었다.
곧 장갑차는 무너진 건물이 방벽처럼 에워싼 도시를 빠져나왔다.
“이 도시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건 나지만 토대를 세운 건 내 전임자야.”
킹이 먼 곳을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 전임자는 이상주의자였지. 처음엔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어.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져도 우리는 민주사회의 일원이고 여건만 갖춰지면 폐허 속에서도 제2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지.”
내가 킹의 전임자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가 어웨이큰이고 지금은 킹의 집무실의 관 같은 원통에 갇혀 있다는 것 정도다.
아무리 봐도 학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전임자를 이야기하는 킹의 눈동자엔 경멸과 증오가 아닌 선망과 그리움의 빛이 희미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좆같은 새끼가 너무 많다는 걸 내 전임자는 몰랐어. 결국 좆같은 놈들한테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됐을 때야 전임자는 깨달았지. 이 개 같은 세상엔 개 같은 룰만이 통한다는 걸 말이야. 결국 내 전임자는 투표와 토론이 아닌 몽둥이와 총으로 폐허에서 도시를 일궈냈지.”
킹이 운전석을 두 차례 두들기자 운전수가 돌아보며 차를 멈췄다.
킹이 입모양과 수신호로 뭐라고 말하자 운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량을 살짝 움직여 90도로 돌렸다.
킹이 창밖을 보았다.
크지 않은 방탄유리는 마치 하나의 화폭처럼 세종이라는 도시 전체를 담고 있었다.
“그 도시를 내가 이어받았지. 그리고 도시는 더욱 커질 거야.”
도시를 바라보는 킹의 얼굴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속성이 담겨 있었다.
자부심이다.
“한 10년, 아니 5년만 지나도 알게 되겠지.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도시가 어디인지.”
감회 어린 눈으로 도시를 응시하는 킹을 보며 나는 내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이 친구는 평범한 깡패 두목이나 갱단 보스가 아니다.
어떤 의미로 그는 가장 현실적인 개척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가기 위해서는.”
장갑차가 멈췄다.
우리 앞엔 어느새 또 다른 폐허가 음울한 회백색을 머금은 채 유령처럼 서 있었다.
끝없이 직각을 만들며 안으로 굽어 가는 기묘한 나뭇가지들을 보며 우리는 장갑차에서 하차했다.
뒤 따라온 차량에서도 총기를 든 병사들이 내렸다.
킹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잿빛의 영역을 올려다보았다.
쿵!
그의 몸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5레벨 이상 어웨이큰.
주력 어웨이큰이다.
파동이 준 기이한 울림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킹이 날 돌아보았다.
“도시에는 왕이 필요해.”
그 킹 너머로 함께 온 총기를 든 병사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이 킹을 바라보는 감정은 공포와 경외다.
*
철컥
장갑차의 무기고가 열렸다.
무기고 안엔 갖가지 무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골라잡아.”
방독면 너머로 흥미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여러 선택지 중에 내가 선택한 건 현역 시절 내가 애용한 헌터 무기다.
Mk 7. 하푸나이저.
북미에서 개발한 혼합 분리장약식 로켓 병기.
원리는 RPG와 전혀 다를 바 없지만 기폭 능력이 있는 몬스터에 대비해 오직 혼합해서만 폭발성을 가지는 연료를 채택한 단순한 병기다.
“호오.”
킹이 내게 다가왔다.
“그건 다루기 어려운 무기라고 하던데. 전자식 유도 장치도 없고 거기다 단발이니. 한 번 빗나가면 끝이잖아?”
킹의 지적은 전통적으로 내 무기가 지적받던 단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루기 어려운 무기는 맞다.
한 번 빗나가면 대책이 없는 것도 맞고.
하지만 나는 나의 작살 - 하푸나이저를 빗맞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푸나이저를 챙기며 회백색의 영역을 보았다.
여전히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흐르고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음울함이 서려 있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정보를 물었다.
안에 자리 잡은 몬스터의 타입, 침식 시기, 그리고 지형에 관한 정보다.
“거미처럼 생긴 게 돌아다녀. 안을 미로처럼 만들어놨지.”
“스파이더 타입이군.”
“전쟁 초기부터 침식이 됐으니 3년은 넘었겠군.”
“휴대폰 에어드랍 켜 봐. 다이렉트로 파일 꽂아 줄 테니.”
킹은 적절하게 내 요구에 답했다.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킹의 도시보다 위험한 곳이다.
3년 동안 스파이더 타입이 꾸민 정원이라는 건 적어도 내 현역 시절 데이터엔 없었던 것이니.
사방이 적이라는 걸 각오해야 한다.
소형종 - 침투형은 오랫동안 본거지를 유지할 수록 그 근거지를 난공불락의 성채로 끝없이 개조하는 족속들이니까.
1년만 터를 잡아도 공략 불가능 판정을 받는데 3년이라.
문제는 그것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몬스터가 하나가 아닐 가능성도 있어.”
“뭐?”
“큰 거미 말고 다른 놈을 봤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확실하냐?”
소형종 - 침투형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균열을 빠르게 퍼뜨리기 위해 곳곳에 자리를 잡고 그 주변을 침식지대로 만드는 것이다.
놈들에게 인간의 절멸이니 국가의 멸망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놈들은 오로지 자신이 회백색으로 만든 영역만을 수호하며 그것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 소형종의 영역에 또 다른 몬스터라니.
듣지 못한 이야기다.
내가 아는 상식을 넘어선 이야기다.
“작년에 군단파랑 친하게 지낼 때 걔들이 헌터를 보내왔지. 마약한 놈들보다 더 맛이 간 놈들도 보내 왔고.”
“만류귀종교?”
“역시 전직 헌터라서 이야기가 빠르군.”
“왜 온 거지?”
“내가 요청을 했거든. 내 도시 옆에 저런 게 있으면 미관상 좋지 않잖아?”
미관 뿐만 아니라 도시의 운명과도 직결되겠지.
도시에 애착이 있는 킹이라면 군단파와 손을 잡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닐지도.
“마침 군단파에 과거 헌터 집단이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 번 도움을 요청해봤지. 그랬더니 바로 헬기에 최고의 헌터와 광신도 새끼들을 보내더라고.”
“어떤 헌터들이지? 여자도 있나?”
“아니, 여자는 없었어. 왜? 거기에 애인이라도 있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는 녀석이 있진 않나 싶어서.”
“나름 최고의 헌터와 광신도라고 하는데. 글쎄 하루도 못 버티고 도망을 나오더라고. 광신도 애들은 버려두고 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그런데 도망쳐 나온 헌터 놈들이 헬기 타기 전에 한 마리가 더 있다고 하더라고.”
“어떤 타입이지?”
“타입은 모르겠고 중형종이라고 하던데.”
“중형종?”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긴데.”
몬스터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 아닌 지구 그 자체다.
왜냐하면 모든 몬스터는 지구에 오는 순간 모종의 이유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오직 침투형만이 지구 환경에 장기적으로 저항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빠르게 침식지대를 만들지 못한다면 소멸하긴 매한가지다.
한편 소형종을 제외하면 다른 유형에서 침투형은 발견된 적이 없다.
중형종 - 침투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저 도시에 중형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중형종 - 침투형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다.
중형종은 예외 없이 모두 전투형.
인간의 군대를 분쇄하고 파괴하는데 모든 능력을 배분한 놈들이다.
살아 있는 중전차라고 할까.
그런 놈들이 소형종처럼 돌아다닌다면 인류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군단파 애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어.”
킹이 가스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킹은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회백색의 영역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냐?”
거긴 킹이 갈 곳이 아니다.
저 전장은 내가 갈 곳이다.
오늘 내가 전시훈을 만나 그에게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조금은 안일하게 판단한 모양이다.
“······우민희가 사람을 하나 이쪽으로 보냈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올드스쿨 헌터를.”
킹이 나를 돌아보았다.
“전시훈한테 볼 일이 있는 거겠지?”
“······.”
“사실대로 말해도 돼. 어차피 네가 뭐라고 하든 전시훈은 우민희에게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순간적으로 킹과 그 부하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어웨이큰이라 하나 반사역장 안에 있는 킹은 도끼로 죽이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버겁겠지만 기습과 지형을 이용해 어떻게든 도모해봐야겠지.
문제는 장갑차.
하푸나이저를 믿을 수밖에.
부하의 위치를 머릿속에 새기며 계획을 실행하려 할 때였다.
킹이 다시 회백색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뜻하지 않은 말이 가스마스크의 정화통을 향해 묵직하게 흘러 나왔다.
“같이 가자고. 스켈톤.”
잠자코 그의 뒤를 지켜보았다.
그는 태평하게 회백색 영역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단 한 명의 부하조차 거느리지 않은 채.
“나도 할 말이 있거든.”
이미 멀찌감치 앞서간 킹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내기나 할까? 전시훈. 그 밥맛 떨어지는 애새끼가 누구 말을 들을지. 아, 이 썰은 인터넷에 풀면 안 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자칭 네임드인 너는 알고 있겠지? 전직 완장 양반?”
“······.”
아무래도 킹이라는 남자의 판단은 한동안 보류해야겠다.
도끼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킹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