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킹 (1)
소년의 이름은 전시훈이었다.
여동생과 부모라는 전형적인 4인 가족의 구성원이다.
부친이 작은 기업체를 운영하지만 근근이 벌어먹을 정도로 두 자식의 교육비를 부담하기 위해 모친이 마트 캐셔로 일했다고 한다.
그다지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착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좋은 아이였다고 한다.
그 좋은 성품이 촉매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은 그 소년에게 10레벨 이상 어웨이큰이라는 축복을 주었다.
오버 10레벨 어웨이큰은 이미 전쟁 전부터 한 명 한 명이 국가의 전략자원으로 취급을 받은 귀하신 몸이다.
그 아이가 저 악명 높은 깡패 두목에게 넘어갔다.
“제주도에 있다가 정신 문제로 상담을 받고 다시 인천으로 왔어. 보통은 그런 일은 하지 않지만 걔는 레벨 10 어웨이큰이거든. 어떻게라도 다독여서 전장에 내보내야 되는 애야. 그런데 킹이 걔를 꼬드긴 거지. 결국 인천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탈주를 했어.”
전시훈은 우민희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를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아직 18살에 불과한 소년의 입장에서 우민희 같은 무시무시한 여자를 스승으로 둔다는 건 제3자인 나의 눈으로 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우민희가 소년에게 전달해달라는 메시지는 지극히 간단했다.
- 네 아버지는 죽었다.
“걔. 아빠를 싫어했어. 너무너무 싫어했지. 제주도를 떠난 것도 자기 아빠 보기 싫다고 떠난 거였어.”
“어떤 아빠길래?”
우민희는 피식 웃고는 무전기 너머로도 들리는 손갈고리 손가락이 철판을 긁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사업이 잘 안 돼서 그다지 돈은 잘 못 벌어다 주지만 다정다감하고 한 번도 손찌검도 안 하고 술도 안 먹고 일요일마다 가족나들이 가주는 아빠.”
“뭐가 문제야?”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정도면 괜찮은 아버지 아닌가.
“동탄맘보다 훨씬 낫잖아?”
“선배. 그렇게 인터넷 안 한다고 잡아떼더니 들키니까 신났다고 인터넷 인물 언급하네?”
“아, 나도 모르게 그만.”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지? 그런 인간이었어?”
“······.”
“시훈이 아빠도 마찬가지야. 거짓말을 했거든.”
“무슨 거짓말을 했길래?”
대체 무슨 거짓말을 했길래 부자지간의 연이 한 번에 끊어졌는지 궁금했다.
이어진 우민희의 설명을 듣고 단번에 납득했다.
전쟁 이후 전시훈의 가족도 피난소에 들어갔다.
착한 아들이 그렇듯 가족을 생각하는 전시훈은 정체불명의 영양바를 먹는 끔찍한 생활 속에서 어떻게 가족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 가드, 새로운 학교에 지원했다.
선발 과정에서 죽거나 실종되는 아이가 많고 실제로 자기 친구 하나의 소식이 끊겨버린 걸 알면서도 한 도전이었다.
신에게 선택받은 그 아이는 테스트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선글라스를 끼고 무표정을 유지하던 감독관이 선글라스를 자신의 손으로 벗길 정도로 강렬한 데뷔를 한 것이다.
“그 감독관, 공경민이야. 선배 동기.”
소년은 물론, 가족의 제주도행이 결정됐다.
그런데 제주도로 향하던 당일 소년은 자신을 닮은 자기보다 조금 어린 소년을 발견한다.
동생이 없는 그는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닮은 또 다른 소년에게 의아함을 느꼈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두 살림을 차렸나 봐. 5레벨 어웨이큰 정도 되면 가족 동반으로 제주도에 보내주는데 걔 아빠가 그날 생전 모르던 배다른 자식을 데리고 온 거지.”
“그건 충격적이긴 하네.”
“진짜 충격적인 건 그다음이지. 나도 여간한 일엔 안 놀라는데 시훈이 아빠. 지독한 사람이더라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건 사실상 마트 캐셔를 하는 그의 모친이었다.
부친이 매달 100~200 정도를 가져오긴 하는데 그걸로 학교에 다니는 자식이 둘이나 있는 네 식구를 지탱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전시훈의 부친은 작은 사업체를 하긴 하는데 영업이 잘 안 돼서 몇 번이고 모친과 처가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다고.
거짓말이었다.
10년 넘게 그는 사업이 안 된다고 칭얼거렸지만 그 10년 전부터 그는 연간 5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고소득자였다.
문제는 그 사실을 숨기는 건 물론 그 돈을 단 한 푼도 집안에 주지 않았다는 것.
생활비를 빼면 자식 용돈이나 장난감 정도 챙겨줄 뿐.
그마저도 제 때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사실상 생계를 꾸린 건 모친이었다고 한다.
“시훈이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나 봐. 걔 엄마 나도 봤는데 깐깐한 성격이더라고. 기도 엄청 세고. 반면 시훈이 아빠는 사람이 심약해 보였어. 마누라 기에 눌려 산 거지. 그런데 말이야. 선배.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10년 넘게 거짓말해가며 가짜 부부 생활 이어나가는 게 선배는 이해가 돼?”
전시훈의 부친에게 있어 진짜 가족은 내연녀의 가족이었던 것 같다.
가족관계증명서 상의 가족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만 두 번째 가족에겐 10억을 넘게 들인 방공호까지 지어준 걸 보면 말이다.
“대체 얼마나 아내에게 원한을 품었으면 그렇게까지 할까?”
그 우민희가 어처구니없어 할 정도로 못난 인간을 부친으로 둔 아이는 그 아버지 때문에 제주도를 떠났고 지금은 깡패들의 도시에 있다.
“아무튼 그 지지리도 증오하던 부친이 죽었으니 그 사실만 알리면 돌아올 거야. 전시훈 걔, 난 별로 안 좋아했지만 강 선배는 많이 따랐다고 하더라고.”
“걔가 그 말만 듣고 따라올지는 모르겠지만 킹이 순순히 보내줄까?”
“그건 관계없어. 그 말만 전하면 돼. 킹이 막으면 그때 가서 무력행사를 하면 그만이니. 중요한 건 시훈이의 마음이지.”
“역시 10레벨 어웨이큰쯤 되면 대접이 달라지는구나.”
“선배도 가능성 있지 않을까?”
우민희의 돌발발언은 여간해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내 마음을 가볍게 뒤흔들었다.
“뭐?”
무전기 너머로 틱틱거리는, 아마도 갈고리 손가락이 바닥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하는 거 보니 그나마 인간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지? 조건이라는 게 있는 거냐?”
“평범함?”
“평범함?”
“어디까지나 내 감이니 참고하지는 마. 아무튼 또 사이렌이 울리네. 잘 부탁해. 선배.”
언제나처럼 우민희는 느닷없이 교신을 끊었다.
“······.”
평범함이라.
그게 뭘까.
내게 부족한 속성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그보다 어려운 일을 맡았다.
킹이라······.
올 한 해도 다사다난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러시아나 중국 같은 땅이 넓고 권위주의적 정부가 있는 곳에서는 폐쇄도시 혹은 비밀도시라고 불리는 우리 한국인에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유형의 도시가 있다.
폐쇄도시는 말 그대로 출입이 제한되는 도시로 인증된 출입증과 신분만을 가지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한 폐쇄도시는 도시 전체가 어떤 거대한 군수시설이거나 연구소, 그에 준하는 국가시설인 경우가 많다.
중국에 있던 상양(商陽)이라 불리던 도시도 그러한 폐쇄도시 중 하나로 명목상으로는 항공우주산업을 위한 연구 도시지만 실제로는 공산당 상위 카스트를 위한 사치스러운 휴양도시였다.
내가 그 도시의 화려함이나 사치스러움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우리가 그 도시에 들어갔을 땐 폐쇄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출입로를 막던 게이트는 박살이 났고 입구를 지키던 군인과 공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도시의 기능은 마비됐다.
수도, 전기, 통신 모든 것이 두절됐다.
그 폐허 속엔 놀랍게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나라에게 버림받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에 그런 도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그 도시에 발을 들일 거라고는 방공호를 짓던 시점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Crunch_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뭐? 여기에 오겠다고?
Crunch_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간도 크네. 스켈톤 새끼. 내가 누군지 알고는 있지? ㅋ
이 깡패 두목이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깡패 두목이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SKELTON : (스켈톤 공포) ㄷㄷ....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자 다시 태도를 바꾼다.
Crunch_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래도 굳이 오겠다면 와라. 파란 깃발, 없으면 천 쪼가리라도 차에 달고 도시 앞에 얼쩡거리면 판사킬러 든 새끼들 쫓아올 테니 걔들한테 말해. 내 손님이라고.
Crunch_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오면 뭐, 아는 체라도 해주지 ㅋ
약탈자가 우글거리는 땅에 맨몸으로 가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깡패와 군대의 차이는 아랫놈들이 얼마만큼 윗사람 명령에 잘 따르냐 여부에서 결정 나니까.
킹은 파란 깃발을 달고 다니면 잘 될 것이라고 하는데 글쎄다.
킹의 손님이고 나발이고 막말로 총으로 쏴 죽이고 불로 태우면 끝장인데.
그나마 가장 안전한 방법은 가급적이면 걸리지 않고 킹의 도시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
아무리 말 안 통하는 약탈자라고 해도 우두머리가 떡하니 버티는 구역에서 일탈을 저지르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그마저도 반반이겠지만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이다.
당장 파주에서는 내 후배가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있기도 하고.
오래 사는 게 내 목적이지만 구차하고 비열하게 삶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후배가 그 고생을 하는데 나도 나름의 성의는 보여야겠지.
몇 가지 준비물을 챙겨 세종으로 출발했다.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약간의 식량과 연료, 총기와 탄약, 그리고 두 자루 도끼다.
교통수단은 모터사이클을 택했다.
합성유를 연료 탱크에 가득 채우고 이른 새벽에 내 영역을 떠났다.
아직 날씨 자체는 싸늘하다.
눈이 녹은 곳도 있고 여전히 하얗게 물든 곳이 공존한다.
한 가지 걱정인 건 내가 가려는 영역이 전쟁 이후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것이다.
전쟁 전 도로 정보를 제외하면 아무런 데이터가 없다.
대전에 사는 게시판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대전 북쪽은 워낙 많은 미사일과 핵공격을 맞아 아무도 얼씬하지 않는다고.
도로가 끊어진 정도가 아니라 도로 자체가 사라진 곳도 있을 정도란다.
공장이 멈추고 농경지가 버려지면서 덩달아 높아진 금강의 수량도 대전과 세종시를 가로 막는 장벽 중 하나다.
그것이 내가 현재 세종시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략적인 정보다.
그 이외 도시에 떠도는 낭설은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도시의 주민을 노비라고 부르며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하루가 멀다고 사람을 재미로 죽이고 젊은 여자를 잡아 와서 갖가지 만행을 일삼는 이야기는 이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기에.
경기도라고 하지만 내 영역은 천안 쪽에 치우친지라 직선거리만 놓고 보면 세종시와의 거리는 서울과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거의 2배 이상 짧은 여정이다.
하지만 그 여정은 서울로 갈 때보다 곱절이나 길게 느껴졌다.
잘 알지 못하고 익숙하지 못한 지형.
정보의 부재로 인한 불안.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
솔직하게 말해서 영하 30, 40도 시절이 여행하기엔 지금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게다가 뭔 놈의 좀비는 이렇게 많은지.
겨우내 얼어 죽지도 않았는지 도로 위에 검은 점들이 보이면 어김없이 좀비들이다.
좀비만큼이나 뮤테이션도 많았는데 도로 위에 트럭만큼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를 보았다.
그것은 비칠거리는 좀비를 때려눕히고 뼈째로 씹어먹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골드 생각이 났다.
골드 녀석.
선물 적게 줬다고 원망했는데 이런 괴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었구나.
죽이려면 못 죽일 것도 없는데 이 녀석을 죽여야 할 때 소모 값이라는 게 눈으로 보인다.
소총 탄창 하나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중화기를 가지고 와야겠지.
좀비와 뮤테이션, 눈 녹은 진흙탕과 징그럽게 새순을 피우는 이름 모를 풀을 짓밟으며 세종시 인근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 질 녘이었다.
전쟁 전이라면 1시간 만에 도착할 만 한 거리를 반나절 만에 도착한 것이다.
멀리 굽이치며 흐르는 금강 줄기와 버려진 농경지,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잿빛의 도시가 보인다.
킹의 도시, 세종이다.
공교롭게도 그 도시 옆엔 또 다른 도시가 있다.
대전이 아닌, 짓다 만 신도시다.
아마도 전쟁 이후 균열에 대처할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설 자리였겠지.
그 미완의 도시는 회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정부가 킹 같은 깡패가 옛 행정수도를 점령해도 손을 대지 않았는지.
바로 옆에 몬스터의 영역이 있다.
우려했던 것처럼 도시 주변에 약탈자나 깡패가 오토바이나 차량을 끌고 정신없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땅거미가 지는 와중에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붉은 노을이 남은 어슴푸레 위로 연기들이 피어오르는 건 오히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아름다움마저 품고 있었다.
일말의 불안감이 내게 긴장감을 안겨다 주었지만 언제나처럼 개의치 않고 내가 가야 할 곳에 시선을 둔 채 천천히 모터사이클을 앞으로 움직였다.
직접 만든 파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도시 앞엔 경비병도 보초도 없었다.
눈 하나를 잃은 듯한 중늙은이 하나가 벽을 등지고 서서 팔짱을 낀 채 다가오는 나를 음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노려볼 뿐이었다.
그가 날 힐끗 보았다.
“처음 보는 놈이네.”
사내가 인간의 음성이라기보다는 고장 난 아코디언 같은 바람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문지기로 보이는 그 사내는 나에게 이름과 소속은 물론이고 목적조차 묻지 않았다.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세종 맞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이 사내의 생각의 편린 하나라도 보고 싶어 한 질문이다.
사내는 날 빤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사내를 지나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시체들이 보인다.
반쯤 무너진 정부 청사 벽면에 목을 맨 시체들이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줄줄이 달려 있었다.
시체들을 보는 동안 한때 판사킬러라 불리던 석궁을 든 험상궂은 사내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중 한 녀석이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지?”
날카로운 화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초대한 사람이 있어서.”
“누구의 초대지?”
사내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킹.”
사내의 눈이 파란 깃발을 향했다.
그가 손짓했다.
“따라와.”
그 너머로 음울하면서도 기묘한 열락에 빠진 기묘한 거리가 펼쳐졌다.
한쪽은 귀를 찌르는 시끄러운 음악과 현란한 네온조명이 번쩍이는 반면 다른 한쪽은 어둠에 잠겨 끔찍한 우울과 가난 속에서 방치되고 있었다.
굶주리고 학대당한 사람들이 건너편 네온 조명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던 중 사내가 갑자기 뒤돌아섰다.
“혹시 파주에 있었나?”
그를 보았다.
모르는 얼굴이다.
그러나 그는 날 알고 있는 모양이다.
“당신, 헌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