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64화 (164/183)

164화

<80. 품종 (3) >

"우리도 제주도에 보내주세요. 우리도 제주도에 보내주세요."

"제주도 가고 싶어요. 제발요."

"우리 제주도 가면 안 돼요? 우리 먹을 것도 다 떨어졌어요. 이대로는 굶어 죽어요~"

"우리 죽게 내버려 둘 거예요?"

"우리 죽으면 귀신 돼서 복수할 거예요?"

장상사의 아이들은 앵벌이 출신이다.

당시의 가락이 아직 살아 있는지 밤새 교신기로 아이를 바꿔가며 간청을 해댔다.

아직 심야지만 연구원 쪽에 연락을 했다.

"최대한 빠르게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본대 쪽엔 연락이 있나요?"

3번을 연락한 끝에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내 끓어오르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주임은 하품 소리를 내며 태평하게 내 교신에 응답했다.

"아직요. 그런데 왜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연구원들은 얼마나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걸까.

연구소에 갈 때마다 그들이 마치 전쟁 전에 월급 도둑질을 하는 회사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다.

이 광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공용 주파수 안 들리세요? 약탈자 아이들이 지금도 제주도 타령을 하고 있잖아요?"

"아~ 네. 그렇네요."

"지나가는 약탈자나 군단파가 들을 수도 있어요."

"그건 큰일이네요."

"건성으로 말할 게 아닙니다. 당장 저 아이들을 닥치게 할 게 아니라면 빠르게 이 자리를 떠나야 해요."

"그럼 이렇게 하죠."

장주임이 의견 하나를 제시했다.

"아이들을 부르죠.”

나는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에게도 검사를 해봐요. 싹수가 보이면 데려가는 방향으로."

"짝수가 안 보이면요?"

내 물음에 장주임은 잠깐 침묵했다 대답했다.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요."

우민희의 연구소가 어떤 곳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알콜 냄새, 기이할 정도로 깔끔한 분위기, 조금은 어두운 실내조명, 저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채 바쁜 척을 하던 연구원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거죠."

장주임의 계획을 들었을 때 그때 처음으로 그를 진지하게 뜯어보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공부 잘하게 생긴 외모.

아마 전쟁 전이라면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 연구직에 들어가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겠지.

그게 그가 설계했던 인생이었을 것이다.

그런 설계가 뒤틀리고 원치 않은 일을 했을 때, 그 사람 또한 뒤틀리고 변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짜잔~ 간이 선별 장치입니다!"

장목현이 구상하고 조현수가 보완한 간이 선별 장치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준비물은 일자형의 긴 복도, 7.62mm 기관총으로 무장한 로봇, 그 로봇을 가릴 가림막이다.

선택받은 아이들을 상대할 때처럼 장목현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구상을 이야기했다.

"그 아이들이 오면 시트지를 나눠줄 거예요. 합격자는 이쪽에 오게 하고, 불합격자는 복도에 남겨두는 거죠. 선별이 끝나면 버튼을 누를 거예요."

그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살인 로봇의 센서가 섬뜩한 붉은 빛을 내뿜으며 철컥거리는 쇳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장주임이 쾌활하게 웃으며 날 보았다.

"어떻습니까? 박헌터님? 깔끔하지 않습니까? 혹시 있을지 모를 고준위 능력자를 찾음과 동시에 사회의 쓰레기를 제거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연구소에서 편하고 안락하게 좋은 걸 먹고 지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망가지지 않는 건 아니다.

이 연구원들은 충분히 망가졌다.

전쟁 전은 물론 전쟁 이후의 기준으로도.

"지금 부를까요?"

조현수가 무전기를 들며 날 보았다.

"······."

뭐라고 맞장구를 쳐줘야 하나.

"박헌터님 생각 아닌가요? 저 아이들 조용하게 만드는 거. 진짜 이대로 두면 군단파가 올 거 같은데요?"

조현수가 조곤조곤한 어조로 나를 종용한다.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로봇은 놔둡시다."

"네?!"

"네?"

장주임과 조주임이 동시에 날 보았다.

"우리를 직접 노린 것도 아닌데 혐의만으로 죽이는 건 너무한 거 아니겠습니까? 안에 있는 애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어유~ 애들 걱정하지 마세요."

장주임이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할 건데......"

항의를 담아 보자 조주임이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균열 내 보조 어웨이큰 생존률은 높지 않아요. 주력 어웨이큰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균열 파장을 중화시키는 역할만을 하거든요.”

예고도 없이 내가 가장 알고 싶은 정보가 흘러나왔다.

표정을 관리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죠?"

"탄광의 버팀목 있잖아요? 딱 그런 거죠.”

"버팀목요?"

"네. 탄광에서야 단단한 나무를 쓰지만, 현재 우리에겐 그리 단단한 나무가 많지 않아요. 조금 단단한 나무는 다른 곳에 써야 하거 든요. 결국 남은 게 수수깡 같은 것 뿐인데

조금만이라도 버티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쓰는 거죠. 하지만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해 요. 일단 제주 균열만 닫으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소멸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조현수가 아이들이 있는 방을 돌아보며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불쌍한 아이들이죠. 그래서 실전에 투입되기 전까진 최대한 잘해주려고 해요. 가급적이면 해달라는 거 다 해주죠. 그래서 무전기를 넘겼고요."

아마 1년 전만 해도 연구원들은 이 사실을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밀이라는 게 그렇다.

견고하고 미래가 있는 조직이라면 그 비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겠지만 붕괴하고 망조가 든 조직에겐 비밀이랄 게 없다.

찌그러진 통조림 균열 사이로 삐져나오는 가공육마냥 비밀이 줄줄 샐 뿐이다.

아무튼 제주도에서 뭘 하려는지는 확실히 알았다.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로봇은 가동하지 않는 것으로 하죠."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과거의 내가 이 모습을 본다면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 생각은 확고하다.

왜, 우리 게시판만 해도 줄어든 빈 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보이는데.

그 많던 내가 알던 닉네임은 대부분 사라졌고 내가 잘 모르는, 혹은 알고 싶지 않던 닉네임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들마저 사라진다면?

여전히 정부에서는 사람을 처리해야 할 숙제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귀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멀진 않았으리라.

"애들을 부르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비행장에 추레한 아이들이 나타났다.

여덟 명.

숫자가 줄었다.

예전에는 이보다 좀 더 많았던 거 같은데.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눈이 희미하게 빛나는 아이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무장을 보았다.

가장 덩치가 큰 남자아이 두 명이 총기를 들었다.

둘 다 국군 제식소총인데 그중 하나의 개머리판에 살인자(人者)라는 한자 문구가 요란한 필체와 색채로 프린팅되어 있었다. 장상사가 소싯적에 쓰던 총기일지도.

미군기지 입구에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선두에 선, 빛바랜 캐릭터 셔츠를 입은 여자아이가 날 발견하고 마주 손을 흔들었다.

"어?"

소녀가 날 알아보았다.

"그때 술 가지고 온 그 아저씨?"

아이들이 날 따라왔다.

일부는 비행기를 보고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진짜 비행기다!"

"이거 타고 제주도로 가는 거야?"

"빨리 가고 싶어."

수송기 화물칸 입구엔 파일럿들이 권총을 든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몇몇 아이가 손을 흔들었지만 선글라스를 낀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 속에서 방공호 앞에 도착했다.

시커먼 구멍이 우리 앞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 안에서 연구소분들이 너희들의 적성을 확인해 줄 것이다."

"적성요?"

여자아이가 물었다.

늘 무전기로 씨팔씨팔 거리던 그 여자애다.

"제주도엔 어웨이큰이라고 특별한 능력만을 가진 아이만 갈 수 있어. 너희들도 가드에 대한 소문은 알고 있겠지?"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런 게 어딨긴. 일단 검사나 받아."

담담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지만 내 시선은 뒤편에 총기를 든 소년들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든 총기를 난사할지 모르는 친구들이니.

뭐, 내가 자초한 위험이긴 하지만 저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다.

피차 두려운 건 마찬가지니까.

두려울 수록 총기에 의존하는 건 어른에게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복도 끝엔 두 연구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장주임의 손엔 살인 로봇의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저 로봇을 기동하겠지.

여간한 총격은 다 튕겨내고, 7.62mm 기관총의 반동을 거뜬히 제어하며 정교한 사격을 가하는 저 로봇은 적어도 이 좁고 긴 복도에서는 사신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수류탄을 가져 왔지만 글쎄다.

거리가 닿을는지. 어쩌면 투척하는 순간에 몸에 여러 개의 구멍이 날지도 모르겠지.

복도 쪽에 하얀 초크로 표시를 한 지점이 있다.

이곳이 나와 장주임이 합의한 테스트 구역이다.

장주임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부터는 총기 금지다."

사내아이들이 머뭇거린다.

먼저 총기 탄창을 빼고 총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품속에 숨긴 권총의 위치를 몸으로 느끼면서.

아이들은 그제야 나처럼 탄창을 뽑고 총기를 비로소 발목에 내려놓았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무장이 해제되자 창백한 조명을 등지고 서 있던 조주임이 시트지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 얘들아?"

평소 아이들을 다루던 사람답게 그녀는 친근한 미소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국위원 산하 이능 적격 심사원의 조현수 연구원이라고 해. 지금부터 간단한 테스트를 할 거야."

그녀가 검은 시트지를 내밀었다.

"한 명씩 와줄래?"

테스트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마지못한 눈치지만 결국 하나둘 테스트에 응했다.

결과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의 입에 물린 시트지마다 검은색에서 변할 기미가 없는 걸 보니 말이다.

조주임이 날 빤히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속삭였다.

"한 명도 없네요. 한 명도."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같이 믹스견 같네요. 품종 있는 애는 하나도 없고."

곧 결과가 정해졌다.

0명.

저 중에서 제주도로 갈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이제 바통은 다시 나에게 넘어왔다.

내가 저 아이들을 내보내야 한다.

앵벌이 - 살인 - 갖가지 끔찍한 현실에 노출된 버림 받은 아이들을 춥고 더럽고 아무것도 없는 그 은신처로 돌려보내야 한다.

"대단히 미안한데.”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전부 탈락이야."

"왜요?"

가장 키가 큰 여자아이가 물었다.

"왜? 우리는 안 돼요?"

과거의 나라면 총구부터 들이댔겠지.

이들이 성인이라면 한두 명 죽이고 이야기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너희들은 테스트에 실패했잖아."

"그게 무슨 테스트예요. 그냥 검은색 종이잖아요?"

뭐라고 해야 하나.

폭력이라도 써야 하나.

난감함을 느끼며 대화와 행동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을 때였다.

"그냥 검은색 종이 아니야."

차가운 대답이 울려 퍼졌다.

물론 대답을 한 건 내가 아니다.

그 소리는 저 너머 깊숙한 곳, 장주임과 살인 로봇 뒤쪽에 있는 선택받은 아이들의 방에서 나왔다. 그 문가엔 내가 잘 아는 국제 레지던스의 장녀가 어슴푸레 속에 똑바로 서 있었다.

"도희야?"

살인로봇 옆에 서 있던 장주임이 놀란 눈으로 장녀를 응시했다.

장녀는 그를 지나쳐 곧장 아이들에게 향했다.

장주임이 그녀를 막으려 하자 그녀가 앞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제가 말해 볼게요."

그녀가 장상사의 아이들 앞에 섰다.

예쁜 얼굴에 키가 크고 보기 좋게 호리호리한 몸에 좋은 옷까지 입은 그녀가 장상사의 아이 앞에 서자 극명한 대조가 이루어졌다.

같은 대한민국의 청소년이지만 어디 쓰레기장에서 주워서 깔맞춤한 듯한 추레하고 더럽고 앙상하게 마른 장상사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마치 조현수가 입에 담던 "품종"처럼 느껴졌다.

사내아이보다도 키가 큰 장녀가 우두머리로 보이는 앙상한 여자아이 앞에 섰다.

"시트지 이리 내봐."

"넌 뭐야?"

앙상한 여자아이의 얼굴에 강한 반발심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질투로 인한 것인지 분노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의 연장선상으로 일어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시트지 내보라고. 왜? 너랑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게 두려워?"

앙상한 아이의 흔들리는 시선이 장녀의 귀에 줄줄이 달린 피어싱과 옆목에 새겨진 화려한 문신을 눈에 담았다.

"험하게 노셨나 봐?"

"응."

"몇 살이야?"

"열아홉."

"뭐야. 나랑 동갑이네. 생긴 거 보고 아줌만 줄 알았는데."

장녀가 손을 내밀었다.

시트지를 달라는 것이다.

조현수가 새 시트지를 급히 꺼내 내밀자 장녀는 거절했다.

"아니요. 새것 줘봐야 믿지도 않을 거예요. 쟤가 쓰던 거 그대로 쓰려고요.”

앙상한 아이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어느 중학교 나왔어?"

"대교."

앙상한 아이가 코웃음을 쳤다.

"듣도 보도 못한 곳이네. 거지 같은 동네지?"

"응."

냉소와 격앙에 가득 찬 앙상한 아이와 다르게 장녀의 얼굴은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또 차가웠다.

앙상한 아이가 시트지를 장녀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지 듯이 날렸다.

장녀는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시트지를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작지만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영원히 검은 색에서 변치 않을 것 같던 시트지가 점점 옅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곧 그것은 하얀 색에 가까운 색채로 무한히 수렴됐다.

장녀가 시트지를 입에서 꺼내 앙상한 아이에게 흔들어 보였다.

"인정?"

"······꺼져."

앙상한 아이의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곧 그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죽여!"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당연하게도 나는 이미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 행동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미 총과 탄창을 집어 결합하고 총기를 막 들려는 소년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는 이야기다.

"가만 있어."

소년 하나가 계속해서 움직이려 한다.

탕!

탄환은 소년이 집으려던 총기 바로 앞을 맞고 튀어 나갔다.

"경고가 아니다."

소년이 씨익 웃고는 계속해서 총기에 손을 뻗으려 한다.

탕!

총기를 맞췄다.

탄환에 맞은 총기는 그 자리에서 거칠게 움직이며 소년의 복사뼈를 강타했다.

"아악!"

그대로 달려가 발로 걷어차고 개머리판으로 찍었다.

퍽!퍽!퍽!

"아아악! 아악!"

사람을 때리는 건 취향도 아니고 임무의 성격상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다.

하지만 교육은 받았다.

어떻게 사람을 공격하고 제압하고 고통을 주는지를.

빠각!

아울러 공포가 주는 효과도 중국군을 통해 확실히 경험한 바 있다.

경고를 무시한 소년은 초주검이 된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지는 않았다.

큰 부상을 입지도 않았고.

단지 좀 아프게, 사무치게 맞았을 뿐이다.

자업자득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머릿속에 총알이 박히고도 남을 짓을 저질렀으니.

아무튼 구타의 효과는 확실했다.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두려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총기 이쪽으로 밀어."

아이들은 이제 내 명에 복종한다.

그들을 앵벌이로 부렸던 약탈자에게 그러했듯이.

총기를 확보한 후 우두머리로 보이는 앙상한 여자아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테스트는 끝났다. 돌아가."

"싫어요."

손을 올렸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싫다고요······."

질끈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흐느낌 손에서 위협의 용도로 올린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 여자아이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조현수 쪽을 보았다.

"저 어릴 때 미국에 유학 갔다 왔어요!"

아직도 포기 안 한 건가.

"영어도 잘해요. 미국 시민권자예요! 수학도 잘해요! 주니어 올림피아드도 갔다 왔어요! 입선도 했고요!"

조현수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뒤편에 서 있는 장주임은 아예 헛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방식을 택했는지.

아마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봤겠지.

막무가내로 매달리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수백, 수천 번이나 경험했겠지.

그래서 간이 선별 장치라는 잔혹한 장치를 구상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조용히 온건하게 이들을 돌려보낼 생각이다.

설령 그것이 위선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선 내 이기심대로 하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입구에서 군인 두 명이 총기를 들고 다급하게 뛰어들어 왔다.

파일럿들이다.

그들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드론 다수 발견!"

중령 계급장을 단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적이야. 적이 가까이 있어!"

<80, 품종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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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댓글)

(원투**) -추천50-

생각했던 거 보다 많이 슬프고 많이 잔혹하네

연구언 관리 못한 우민희 -1점

(아스**) -추천39-

작품 내에서 나라 망했다는 묘사가 음식 속에 숨겨진 바늘처럼 나와서 너무 좋다.

(포텟토*) -추천34-

확실히 프로페서는 넓게 보네. 사람이 귀해질 시기를 생각하다니.

스켈톤이랑 달라

(star***) -추천27-

우민희가 미끼를 던진 거 같은데 저 입 싼 연구원들은 버리는 패고,,,

(SiNi****) -추천27-

군단파는 대체 원하는 게 뭘까? 생존? 지금도 생존하는덴 문제가 없어보임.

복수 지들도 권력있었으면 똑같은 짓을 했을텐데.

(**seed) -추천24-

연구원들 지난편에선 머리가 꽃밭인 줄 알았는데 반대로 시대에 맞게 뒤틀린 거라는 반전이 좋다.

오히려 스켈톤이 고립생활 하면서 프로페서 시절 잊었던 인간성을 찾아가고 있는듯.

(고기왕***) -추천21-

아포칼립스 사오항은 모두를 변하게 만드네요.

연구원들도 미쳐버렸고 냉철하고 남 신경 안쓰던 스켈톤도 변해가고 모두가 바뀌어간다는게 보이는 에피소드네요.

(is121***) -추천16-

강한 놈이 자신의 힘을 믿고

이민족을 자신의 거처로 들인 후 함부로 대한다

로마부터 이어지는 인류사의 필패 공식

주임 연구원들은 그 공식 그대로 밟네요...

다음부턴 더 똑똑한 수석 연구원들 데려와야 할 듯...

(동글**) -추천15-

장상사 아이들이 8명만 온 이유는 무력을 담당하는 나이 많은 청소년들만 모여서 정찰 온 거 같네요.

그런데 희망이라고 본 어웨이큰 아이들마저 버림패라는 사실이 비참하네요

소년병도 아니고 땔깜 취급이라니, 천영재의 추측이 맞았네요

(아몰랑***) -추천10-

군단파가 원하는거? 다 같이 좆되는거!

군대로서의 의무를 잊고

가장으로서의 가족을 잃고

같은 총밥 먹은 동지가 죽어나가도 결국 버림받았으니... 증오에 받칠 수 밖에

나같아도 야...X발 X같은 세상. 하면서 군단파처럼 행동할 듯

(루오**) -추천10-

사실 저 연구원과 간이 어웨이큰 잼민이를 미끼로 군단파를 끌어내기 위한 우민희의 작전이었다면?

스켈톤이야 알아서 생존하겠지 라는 믿음을 기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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