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78. 사진 (2) >
서울 시민에게 지하철만큼 친숙한 교통수단이 있겠냐만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지하철은 이전보다 더 친숙한 곳이 되었다.
한창 전쟁 중엔 방공호로, 그 이후 기반이 무너진 이후엔 대피시설로 기능했다.
지하에 견고한 콘크리트 철근으로 세운 지하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요새이자 생존에 필요한 요소를 갖춘 든든한 삶의 터전이다.
서울을 포기하기 전까지 상당한 시민이 지하철 안에 구획을 짓고 살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텅-
디펜더가 조명을 켜자 지하철 안의 전등이 일제히 어둠을 몰아냈다.
여전히 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계단을 따라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생활의 악취와 흔적이 코와 눈을 어지럽혔다.
곳곳에 박스와 빈 매트릭스, 버려진 담요 같은 게 널려 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난잡하게 널려 있다.
칸막이로 쓴듯한 PVC 재질의 판자가 발자국들이 찍힌 채 버려진 것도 눈길을 끈다.
"나 고등학생 때 여기서 길 잃어버린 적 있어."
다정이가 감회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승을 해야 하는데 아니, 너무 멀잖아? 대체 왜 그렇게 설계한 거래.”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지하에서는 여간해서는 경계를 풀면 안되기 때문이다. 지하는 늘 좀비의 소굴이었다.
활동이 없을 때 그것들은 어두운 곳, 특히 지하에 모여 절전모드를 한 컴퓨터마냥 미동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사람이 감지되면 활동을 시작한다.
이 지하철역도 한때 사람이 살았지만 버려진 지 1년이 넘었다.
방황하는 좀비들이 여기에 새 살림을 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웨이큰과 함께 작전을 한 적은 없지만 확실히 벽을 투시하고 사람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함께 행동한다는 건 편리한 일이다.
"없어. 아무것도.”
허종철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주지 않았다.
내가 없었다면 무기를 줬겠지만 이전에 껄끄러운 일이 있었기에 디펜더가 그를 비무장 상태로 두었다.
"좀비도 없고 사람도 없어. 우리뿐이야."
어느덧 플랫폼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이르렀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접근금지 문구가 프린팅 된 테이프로 출입을 막고 있었는데 섬뜩하게도 그 테이프엔 생 물학적 재해를 표시하는 경고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뭐야, 이거 안 좋은 거?"
다정이가 팔짱을 낀 채 찡그린 눈으로 경고판을 노려보았다.
"생화학무기라도 쓴 건지도 모르지.”
디펜더가 나이프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테이프를 잘라내며 대답했다.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
그가 동생을 보며 묻자 디펜더 동생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이 있어야 그림이 돼."
"지하철이라. 있긴 할까? 여기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럼 확인해보면 되지.”
다정이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 안에서 소형 드론을 꺼냈다.
주먹만 한 소형 드론으로 간단한 조작기로 작동하자 부뭄하고 떠오르며 계단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편리하네."
그걸 보며 말하자 다정이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안경형 화면에 비친 드론의 시야를 보며 이리저리 컨트롤러를 움직이며 답했다.
“드론은 필수니까. 전쟁에도 필수품이고.”
"중국 애들이 특히 드론을 잘 만들었지.”
디펜더가 대화에 끼어들었고,
"걔들은 어웨이큰을 안 쓰니까."
허종철이 덧붙였다.
"왜 어웨이큰을 안 쓴 걸까?"
디펜더가 허종철을 응시하며 물었다.
"문제가 있겠지."
허종철이 안경을 고쳐 쓰며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구레나룻을 쓰다듬었다.
“중국 쪽 인맥에 의하면 생체실험을 했다고 하더라고.”
"어웨이큰 상대로? 그건 어디나 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하겠지만 뭔가 치명적인 걸 발견한 건 틀림없어. 왜냐하면 중국애들도 처음엔 진지하게 어웨이큰을 써보려 했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 계획을 폐기했어."
"뭘 발견한 거지?"
"내가 아는 중국 애 말로는 중국인의 존망이 걸린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하더라고. 그게 뭔지는 걔도 몰라. 그냥 그렇데.”
중국인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
그런데 이미 망하지 않았나.
해남도 쪽에 생존자가 있다고 하는데 내 알 바는 아니고.
신경 쓰이는 건 내 영역 서쪽 - 드래곤씨의 방공호 너머에 있던 중국인들이다.
"그 중국인 하고는 아직 연락하나?"
허종철을 보며 물었다.
내가 묻지 허종철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오. 안 합니다.”
"편하게 말해. 뭔."
딱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존댓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존댓말을 쓰는 것 자체가 내가 책임을 져야 할 게 많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아 서로 존대를 하던가 아니면 편하게 반말로 주고받는다.
디펜더 남매와도 반말을 주고받는데 저쪽만 존대를 쓰면 이상하기도 하니 반말 쪽이 편하겠지.
"걔들도 내가 싫겠지. 사기를 쳤으니.”
허종철이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어색하게 시선을 흐리던 그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언성을 높였다.
"아! 아이!"
"아이?"
"내가 아는 애가 그러던데, 어웨이큰이 아이를 놓으면 좀 문제가 있는 모양이야."
"기형아라도 낳냐?"
디펜더가 불쑥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심각한 데이터가 있는 모양이야."
허종철이 말하는 그 심각한 데이터가 뭔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중국인들이 어웨이큰에게서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한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어웨이큰을 쓰는 대신, 멸망을 택했으니.
5레벨 이상 어웨이큰은 일시적으로 반사역장을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다.
그 "장막을 중화하는" 능력 하나만으로 국지전에서 몬스터를 화력으로 찍어누르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10레벨 어웨이큰 하나만 있어도 저강도 균열을 어렵지 않게 틀어막을 수 있다고 한다.
15레벨 이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인간보다는 신에 가까우리라.
그런 강력한 존재를 포기할 정도로 치명적인 단점이란 대체 무엇일까.
여전히 중국어를 알지 못하고 아는 중국인도 없지만 사실을 아는 중국인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왜, 어웨이큰을 고집하지 않았냐고.
"아무 이상 없어! 지하철도 깨끗하고! 그냥 블러프였던 거 같은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정이의 드론이 돌아왔다.
어째서인지 드론에 귀여운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지하철은 유사시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준비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어. 만일의 상황에 높으신 분들이 타고 탈출할 수 있게끔.”
허종철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플랫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럽고 악취에 찌들고 불쾌한 생활감이 묻은 대합실 쪽과 달리 플랫폼 쪽은 전쟁 전 우리가 보던 지하철역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고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져 있지만 그럭저럭 깔끔한 복도와 스크린도어, 사람들이 줄을 서게끔 바닥에 표시한 기호들,
벽에 붙은 빛바랜 게시물, 그리고 스크린도어 너머에서 문을 연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지하철.
"야! 타자!"
다정이가 신이 나서 뛰어갔다.
그녀는 가장 먼저 지하철 안에 탑승해 노약자석에 드러누웠다.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진짜 해보고 싶었다고."
디펜더는 손잡이를 잡고 좌석 앞에 섰고 허종철은 어째서인지 통로에 드러눕더니 갑자기 기는 흉내를 냈다.
"뭐하냐. 종철아.”
디펜더가 묻자 허종철이 입으로 이상한 음악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인어공주."
역시 제정신은 아닌 놈이군.
그나저나 상상도 못했다.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어쩔 수 없이 타야 했던 대중교통이 테마파크보다 더 재미로 가득 찬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는.
"스켈톤은 뭐 안 해? 얼마 만에 타는 지하철인데 기분이라도 내봐.”
다정이가 내게 뭘 해보라고 권했다.
뭘 해야 하나.
출근이란 걸 한 적이 없는 나는 지하철에겐 특별한 추억 같은 게 없다.
가끔 볼 일이 있어 관공서로 가거나 가족묘에 들릴 때나 이용했지, 평소엔 다른 사람의 차량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출근이 필요 없는 시설에서 생활했으니까.
그래도 괜찮은 게 하나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핑크색 좌석에 편하게 앉았다.
모두가 날 일제히 쳐다봤다.
"뭐야, 스켈톤, 거긴 임산부석이잖아?"
그들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임산부석이 낳냐, 노약자석이 낳냐?"
회심의 개그였지만 모두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예 다정이는 주제를 돌려버렸다.
"자, 사진 찍자!"
저마다 지하철 석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허종철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했다.
"자, 치타-"
"?"
"치즈라는 뜻이야."
다시 자세를 잡고 신호를 기다렸다.
"자, 치타-"
찰칵-
사진이 찍혔다.
나와 디펜더, 그리고 디펜더 동생.
다정이를 제외한 나와 디펜더의 표정은 심심했지만 눈빛만큼은 만족스러웠다.
미소를 머금은 채텅 빈 지하철 안을 보았다.
한때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을, 이제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지하철은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흔들릴 뿐,
우리에게 주던 그 느슨한 흔들림과 덜컹거리는 소리는 두 번 다시 내지 못할 것이다.
저기 구석에서 쭈뼛거리는 구렛나루 사내가 보인다.
여전히 나와 다정이의 눈치를 보는 허종철이다.
"종철이도 찍지?"
그에게도 촬영을 권했다.
"그, 그래도 될까?"
"온 김에 찍어야지, 여기, 언제 다시 오겠냐.”
그렇게 과거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진을 찍었다.
우리 머리 위엔 버려진 놀이공원이 있었지만 글쎄다.
여기만큼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환상이 되는 경험은 오직 과거의 시간을 오롯이 간직한 이 지하철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니까.
미열과 같은 흥분이 지나간 후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사진은 많다.
단체사진도 있고 저마다의 컨셉으로 찍은 것도, 이 스켈톤이 임산부석에서 찍은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마저 느껴지는 한 장의 사진도 있다.
그런데 이 사진들에겐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흠······."
"왜 그래? 스켈톤, 갑자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 좋은데 말이야.”
"응."
"임팩트 없지 않냐?"
"그렇긴 하네. 그런데 상관있어?"
다정이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만 재밌으면 됐지."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미소가 전염되는 걸 느꼈다.
맞다.
우리만 재밌으면 됐지.
포토! 아포칼립스!엔 과거의 사진을 출품하도록 하자.
"만약에 말이야."
돌아오는 길에 다정이가 말했다.
“군단파 동네가 나한테 안 맞으면 스켈톤 너네 집으로 가도 돼?"
"뭐?"
"일단 우리 혈육께서 가신다고 하니 따라는 가겠는데 혹시 안 맞으면? 우리 허종철씨 같은 사람만 득실거리면 어쩌라고."
"ABC의 친구들인가?"
허종철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한다.
다정이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저 봐. 저런 사람만 있으면 나가야지. 그런데 우리 오라버님은 안 나가겠지? 거기에 좋아하는 동기분 계시니."
"......이성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야. 마음이 맞을 뿐이지지.”
"얼씨구. 그 여자 연락 오자마자 안절부절못하는 거 다 봤는데.”
평소답지 않게 당황하는 디펜더를 뒤로 하고 다정이가 날 보았다.
"스켈톤 생각은 어때?"
"흠······."
디펜더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했다.
"정하는 건 내 동생이야."
"뭐, 정 그렇다면 남는 집이 있으니.”
"그래?"
"오두막 하나가 있지. 사우나가 딸린."
"그거 좋아 보이네. 그냥 여기 남을까?"
그녀가 너스레를 떨자 디펜더가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리며 넌지시 말했다.
"너, 검진은 받아야지."
검진?
디펜더가 내 의문을 알아차리고 대신해서 설명했다.
"아, 거기에 좋은 병원이 있어서, 내 동생 검사 좀 몇 개 받으려고."
"안 좋은 병이라도 있는 거냐."
"그건 아닌데 그런 기회가 있으면 받아보는 게 좋지 않겠어? 너도 군단파로 오면 받을 수 있을 텐데.”
"마음만 받지."
백미러를 통해 다정이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눈웃음을 짓는 그녀를 향해 똑똑히 말해주었다.
"올 거 같으면 연락해라."
"응!"
그녀가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
기약은 없다.
영영 못 만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여문을 남긴 것만으로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이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내 길고 길었던 졸음이 조금은 깨는 듯한 기분 속에서 나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바라보았다.
아직 갈 길은 멀다.
*
MELON_MASK : 자, 그럼! 올해 마지막 이벤트! 포토! 아포칼립스를 시작하겠어! 모두 준비됐지? 그럼 시작! 모두가 생각하는 최고의 한 장면을 보내줘!
디펜더는 디펜더고 스켈톤은 스켈톤이다.
지금은 사진전에 집중할 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사진전엔 자신이 있다.
왜냐?
비장의 사진 한 장이 있으니까.
어두운 광야를 배경으로 산란하며 흩어지는 초대형종과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레베카 모녀.
이건 뭐, 볼 것도 없다.
우승이다.
프리패스다.
이미 승자가 된 기분으로 당당하게 사진을 제출했다.
VIVA_BOT014: 아니, 이건?!
역시. 비바봇도 알아보는군.
득의만면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에게 답했다.
SKELTON : (스켈톤) 무슨 일 있습니까? ㅎㅎ
VIVA_BOT014: 아니, 사진은 정말정말 좋은데요. 우승감이에요.
SKELTON :훗
VIVA_BOT014 : 그런데 똑같은 사진이 제출됐지 뭐예요.
SKELTON : 네? 어떤 놈입니까?
VIVA_BOT014 : mmmmmmmmm님요.
"엠구, 이 새끼가?!"
나 답지 않게 육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프로페서답게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채팅창을 채워나갔다.
SKELTON : 제가 찍은 겁니다. 2년 전에 제가 올린 게시글에 있어요. 확인해보세요.
VIVA_BOT014 : 그러게 왜 원한 살 일을 했어요?
SKELTON : (스켈톤 묵비권)······.
VIVA_BOT014 : 둘이 사귀세요?
SKELTON : 네?
VIVA_BOT014 : 완장 패악질에 조작질까지, 워낙 죄질이 흉악해서 스켈톤님 갱신 차단하려고 했거든요.
SKELTON : (스켈톤 눈치)
VIVA_BOT014: 그래도 저보다는 차단 당한 당사자 의견을 듣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어 봤어요.
동탄맘은 갱신 차단을 원했는데 mmmmmmmmm님은 차단 해제를 원하시더라고요.
"······."
m9.
대체 이 자식 뭐지?
대체 속셈이 뭐냐. m9.
내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멜론 마스크의 고성이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터져 나왔다.
MELON_MASK : 잠깐, 방금 엄청난 사진이 들어왔어. 이건 구질구질하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어!
"?"
이 사기꾼놈이 이렇게 진짜 텐션으로 흥분하는 건 그리 흔치 않은 일인데,
MELON_MASK : 사진의 제목은 ······가족!
멜론 마스크의 일성이 울려 퍼진 후 화면이 바뀌었다.
거기는 어두컴컴한 야외였다.
두 사내가 화면을 보고 쪼그려 앉아 있다.
하나는 걸레짝이 됐지만 여전히 고급적인 질감을 유지하고 있는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얼굴, 저 회백색의 말라비틀어진 면상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좀비.
제품호다.
감전된 듯한 충격 속에서 제품호 옆에 앉은 사내를 보았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기른 짱마른 사내.
그는 두 눈에서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틀림없다.
망자의 도시로 사라진 나의 인터넷 친구, 아이엠지저스다
둘의 뒤엔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셀 수 없는 좀비들이 똑같은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좀비의 구세주, 아니 좀비의 왕 아이엠지저스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화려하게 게시판에 컴백한 것이다.
그것도 전세계 유저들이 지켜보는 포토! 아포칼립스!라는 성대한 축제에서 말이다.
MELON_MASK :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어! 어떻게 한 거야? 아이엠지저스!
멜론 마스크의 물음에 화면이 아이엠지저스의 화상통화 영상으로 전환됐다.
수백 마리의 좀비들을 거느린 채 아이엠지저스가 빛나는 눈으로 화면을 보며 한마디 했다.
"멤멤!"
그것이 아이엠지저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발언이었다.
MELON_MASK : 아이엠지저스 우승!
"······."
인정.
<78 사진 (2)> 끝
ⓒ 로드워리어#dp8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