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35화 (135/183)

135화

69. 우주에서 온 메세지 (4)

또 다른 생존자가 있다.

멜론이 그 사실을 안 건 첫 좀비를 죽이고 급수 모듈을 확보한 직후였다.

"작업 모듈에 사람이 있다고?"

멜론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 없어. 전부 다 죽었어.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죽었다고!"

밀항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질문에 멜론은 강하게 부정했다.

"불가능한 일이야. 밀항자가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 밀폐된 공간에서 반년 동안 6명이나 되는 사람의 눈을 피할 순 없어."

ohio : 일단 모든 셔터를 닫아두는 게 어때?

한 유저의 의견에 따라 멜론 마스크는 주거 모듈과 급수 모듈의 셔터를 폐쇄했다.

셔터가 천천히 내려가며 좀비가 흘린 검붉은 액체를 구형으로 사방에 퍼뜨릴 동안 우리들은 문제의 작업 모듈의 원형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이후에 창문에 누군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창문에 사람이 나타난 건 현실이다.

다만 멜론 마스크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좀비를 처치했을 때의 전율과 정체불명의 생존자가 나타났을 때의 두려움의 간극은 그동안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자극을 주었다.

멜론 마스크는 한동안 벽면에 붙은 채 새롭게 확보한 우주식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누가 봐도 초주검이 된 꼴인데도 관종 기질은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인지 우주식을 먹으면서도 그 우주식이 어떻게, 무슨 공법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맛이 나는지 너스레를 떨어댔다.

그가 체력을 회복하는 동안 우리 비바리언들은 채팅창에서 의문의 생존자의 정체를 두고 갖은 추측의 장을 펼쳤다.

대세적인 의견은 역시 밀항자다.

멜론 마스크의 말마따나 모든 승무원이 죽었다면 살아 있는 사람이 나타날 여지는 없다.

누가 무슨 재주로 수십만 킬로미터 바깥, 영하 270도의 우주 공간을 달려와 플러스 울트라에 침범할 수 있을까?

Vension: 어쩌면 승무원 중 한 명이 은밀하게 데리고 온 가족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승무원들이 짜고 멜론 모르게 한 명을 더 데리고 왔다면 이치에 맞아.

그 의견에 멜론 마스크는 사고가 터지기 전 6개월 동안 모든 식량과 식수, 생필품은 엄격하게 관리된 건 물론이고, 우리가 보는 CCTV 화면 자체에 안면인 식기술을 적용,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경우 즉시 멜론에게 통보를 가하는 경보장치를 도입했다고 반박했다.

"안면인식기술은 중국에서 직접 받은 거야. 알잖아? 걔들이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건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드는 거?"

Jekyll 좀비 아니야? 좀비가 우연의 일치로 사람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거지. 조명도 어두우니 착각할 여지도 있고.

창문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 좀비라는 의견에 멜론 마스크는 잠시 지켜보자는 회신을 해왔다.

일단은 체력을 회복하고 영양분을 보급하는 게 우선이었으니.

그렇게 해서 당분간 우주적 규모의 먹방 방송이 이어졌다.

멜론의 먹성은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한참 동안이나 부지런히 턱을 움직이며 우주식을 먹어치운 멜론 마스크가 배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범인을 확인해볼까?"

멜론 마스크가 컴퓨터 단자를 조작, 카메라에 기록된 문제의 인물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건?"

멜론 마스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화면에서 뒷걸음질쳤다.

"도날드 ?!"

뒤로 주춤했던 멜론이 화면에 얼굴을 들이받듯 눈을 가까이 대며 재차 생존자를 확인했다.

"틀림없어. 도날드야. 나랑 일 못 하겠다고 우주로 떠나버린 도날드라고

그 도날드가 왜 거기에 있는지, 우리는 답해줄 수 없다.

우리는 거기에 있지 않고 그쪽의 환경을 모르며 어떤 식으로 외부가 이어져 있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그 추리는 온전히 멜론의 몫이다.

한참 동안 갈팡질팡하던 멜론이 이윽고 어렴풋한 단서를 찾아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생명줄을 끊고 곧장 작업 모듈로 뛴 거야. 내가 보는 시점에선 우주로 날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플러스 울트라의 구조는 도넛형. 도날드는 태양이 아닌, 그 앞에 있던 다른 모듈로 향해 그곳의 해치를 열고 작업 모듈에 들어간 거지."

범인의 정체는 의외로 싱겁게 드러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도날드. 그 친구가 왜 그런 짓을......아."

멜론 마스크가 몸을 떨었다.

"로켓을 타고 혼자 지구로 돌아갈 생각이야!"

이에 게시판 유저들이 질문을 던졌다.

지구 귀환용 로켓은 엄격한 절차에 의해 가동되는 게 아니냐고.

멜론 마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지. 그런데 그가 우주로 나가기 전에 그에게 마스터키를 넘겨줬어. 왜냐고? 통신 장비를 고치려고, 실제로 그가 고치기도 했고, 덕분에 너희들 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지."

아직 멜론은 도날드가 다른 동료를 죽였다는 가정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 도날드라는 남자, 멜론을 못 죽인 게 아니라, 안 죽인 것처럼 보이니까.

교신기를 통해 디펜더에게 한마디 했다.

"좀비 꼬락서니 보니까 뮤테이션 짓이 아니야. 사람이 뒤에서 칼로 찔러 죽인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좀비도 확인해봐야겠지만 내가 볼 땐 한 구를 제외하 고는 전부 사람의 짓으로 보여. 그러니까 도날드라는 놈이 다 죽여버린 거지."

내 말을 듣던 디펜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

"채팅으로 쳐! 엄청 좋은 의견이잖아! 스켈톤 너,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 강한 편 아니었냐?"

"아, 아니! 그게 채팅을 칠 수 없는 상황이야."

"그래? 그럼 내가 친다?"

내 의견은 디펜더의 계정을 통해 멜론에게 전해졌다.

Denfender: 멜론! 아까 그 네가 처치한 좀비 말인데, 뮤테이션이 아니라 사람이 죽인 거 같아. 그러니까 도날드. 그 사람이 죽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지.

"뭐? 좀비의 상태가 뮤테이션 짓이 아닌 사람의 짓 같다고?!"

멜론 마스크는 놀라긴 했지만 처음 도날드 맥갈리의 생존을 알았을 때만큼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곧 그는 모든 걸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처음부터 도날드의 짓이었어. 통신이 끊긴 것도 범피가 날뛴 것도......엔지니어들이 죽은 것도......!

멜론이 머리를 감싸 쥐고 아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빌어먹을! 도날드! 그 자식이 이 모든 일을 꾸몄다고!"

멜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놈이 곧 나를 죽이러 올 거야!"

사람들이 왜냐고 물었다.

"당연히, 놈은 로켓을 타고 떠나지 못할 테니까."

멜론 마스크는 대단히 치밀한 사람이다.

플러스 울트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귀환 로켓엔 몇 중의 보안처리를 했다.

마스터키도 그중 하나.

그 마스터키를 도날드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마스터키만으로는 로켓을 가동할 수 없다.

"아마, 도날드가 마스터키를 꽂고 로켓을 발사하려 할 때 그 친구가 볼 수 있는 화면은 '궤도 계산을 시작합니다'라는 메시지일 거야. 그럴듯하지. 아무리 여기가 우주라고 해도 지구의 원하는 곳으로 로켓으로 도달하려면 적절한 궤도와 시점을 필요로 하니.

아마 그가 처음 마스터키를 꽂고 로켓의 시동을 걸려 했을 때 그가 본 카운트다운은 7일 하고도 12시간일거야. 내가 그렇게 설정했거든?"

멜론 마스크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로켓은 발사되지 않겠지. 왜냐고? 그 로켓은 오직 나라는 인간의 생존이 확인되어야만 움직일 수 있으니까."

멜론 마스크가 중얼거렸다.

"누군가 배신해서 나를 죽일 가능성은 염두에 뒀어. 그걸 위한 보안장치지. 날 죽여도 영원히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끔, 영원히 이 우주에서 떠돌다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게끔."

그런데 문제는 그 카운트다운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3시간 정도가 남았을 거야."

3시간 후, 도날드 맥갈리는 멜론이 판 함정을 눈치챌 것이다.

"그가 날 죽이러 올 거야. 어쩌면 나를 고문할지도 몰라."

멜론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 친구, 특수부대 시절에 탈레반 상대로 카누잉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거든. 총질로 사람 정수리에 움푹 들어간 구멍 내는 짓거리 말이야......."

그때 모두의 시선이 화면 왼쪽 하단을 향했다.

여섯 개의 CCTV 화면, 그중 작업 모듈의 입구를 비추는 화면에 재차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곧 그 그림자가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도날드 맥갈리다.

아마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엔지니어를 살해했을 그 사내는 창문에 거의 얼굴을 붙이다시피 얼굴을 갖다댄 채 무자비한 푸른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마치 뭔가를 찾는다는 것처럼.

누가 봐도 그 얼굴엔 불만과 혼란, 짜증이 느껴졌다.

멜론의 말대로 그도 드디어 이상을 감지한 것이다.

그를 지구로 데려다줄 로켓에 멜론이 장난을 친 게 아닌가 하는.

그 도날드가 비바! 아포칼립스!를 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에게나, 멜론에게나 천문이었다.

그러나 멜론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그 놈을 처리할 수 있지? 좀비처럼 어떻게 그 자식에게 엿을 먹일 방법은 없을까?"

멜론이 좀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적극성을 보이며 도움을 청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은 암울하다.

좀비를 죽인 방법은, 그것이 좀비니까 가능한 것이다.

반면 도날드 맥갈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멜론보다 강하고 군인 출신이다.

총이 없다는 것은 도날드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간단하게 멜론을 제압해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멜론을 고문할 수도 있고 혹은 재미로 죽일 수도 있다.

도날드가 마지막에 잘못을 깨닫고 다시 멜론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결과도 있겠지만 글쎄, 그건 가장 희박한 확률마저 유의미해진다는 무한한 우주 공간에 서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아닐까?

남은 시간 3시간

몇 남지 않은 최후의 시간 속에서 우리 비바리언들은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멜론을 살릴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나 좋은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 같이 무리수를 두거나 연약한 멜론 마스크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은 작업 모듈을 분리, 플러스 울트라에서 떨어뜨리는 것인데 그 방법을 쓰면 멜론 마스크는 영원히 우주의 미아로 남는다.

뭐, 나중에 멜론 마스크의 회사가 다시 로켓을 쏴서 그를 구하러 올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멜론이 도날드를 격투로 제압할 확률보다 낮다. 초조함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유저들의 의견은 채팅창을 채우고 있지만,

ohio : 산소탱크로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도날드가 들어오는 시점에 적절하게 그의 몸에 불을 지르는 거지.

Daniel Flix 그물망 전법, 도날드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잘만 던지면 될 거 같은데?

dongtanmom: 냠

HashireV4: 우주의 진공을 이용하는 방법은? 이쪽을 단단히 줄로 고정한 채 도날드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외부해치를 열어 한 번에 그를 바깥에 내보내는 거야.

X'Ds_Grrrrr : 뮤테이션에 있는 방으로 유인해서 그를 죽이는 건 어때? 뭐, 운 없으면 이쪽이 죽겠지만 반반 아니겠어?

mmmmmmmmm: 경사를 이용한다면......!

하나 같이 영양가가 없는 의견이다.

멜론 마스크는 반박할 기력마저 잃어버린 듯 영혼없는 표정으로 올라오는 채팅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무기력한 멜론이 저 도날드라는 살인자를 제압할 방법이?

굳은 얼굴로 각 모듈을 비추는 화면을 보았다.

전장의 환경이야 이미 충분히 숙지를 했지만 그래도 또 새로운 게 발견될 지도 모르니

그런데, 뭔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척추 같은 골조물에 달라붙은 갈색의 거대한 털 뭉치였다.

범비.

한때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된 뮤테이션이다.

나무늘보답게 미동도 없는 그 거대한 괴물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하나의 가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범피가 나쁜 놈이 아니라면?

범피가 사실 착한 놈이고 멜론의 친구라면?

마치 나와 골드, 이름 모를 캣맘과 명품의 이름을 딴 고양이들의 관계라면?

어쩌면 구원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타닥타닥

<채팅 금지 권한 회복 신청을 하시겠습니까?>

타닥타닥

SKELTON : YES

타닥타닥

SKELTON : YES

화상채팅창이 떠올랐다.

그 화상 창엔 어두운 사무실을 배경으로 정장을 입은 여성이 역광을 받은 채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틀림없다.

이 여자가 날 차단한 비바! 아포칼립스! 알바다.

그녀가 곧 몸을 기울여 채팅을 쳤다.

VIVA_BOTO14: 사유를 말해보세요. 스켈톤, 왜 내가 3번이나 어그로를 끈 당신의 차단을 풀어야 하는지.

SKELTON : 멜론을 살릴 방법을 발견해냈다.

화면 속의 여성이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VIVA_BOT014: 방법보다는 자격이 중요해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죠?

비바 014가 얼굴을 들이대며 역광에 가려진 얼굴을 드러냈다.

잘 쳐줘야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동양과 서양인의 혼혈로 보이는 풍모. 얼굴은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그러나 그 예쁘장한 얼굴에 깔린 지배적인 감정은 경멸.

나를 낮잡아보고 있다.

비트박스 시연 때 거꾸로 뒤집어 썼던 69,000원짜리 블랙 캡을 벗으며 오벨리스크와 동기화한 휴대폰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타닥타닥

SKELTON : 어떻게 증명하면 되지?

이에 비바 봇 014가 날 노려보며 조금은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헌터세요?"

<69. 우주에서 온 메시지 (4)> 끝

ⓒ 로드워리어#dp8g

<주요댓글>

(qort**) -추천7-

아니!! 그 정도가 무슨 어그로꾼이라고.... 냠도 봐주면서...

(반물질**) -추천2-

전설의 프로페서를 알아보지 못하다니...굴욕이다 스켈톤!

(원투**) -추천1-

연참할 때를 아는 작가 로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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