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67. 영웅 (5)
우리 헌터의 전투 결과는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수많은 기록이 있지만 유의미한 기록은 이른바, 킬 스코어라 불리는 처치 수일 것이다.
하나의 처치 수가 다른 처치 수보다 몇 배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곳이기에 처치 기록은 단순히 숫자를 기록하는 것만이 아닌 자신이 죽인 몬스터나 뮤테이션의 타입 등을 세분화하여 기록한다.
그렇지 않다면 좀비 장악 지역에서 기관총 한 번긁고 지나간 헌터가 전쟁 지역에서 동료들을 잃어가며 중형종 하나를 쓰러뜨린 헌터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될 테니까.
그 처치 수의 세부 항목은 62개쯤 됐던 것 같다.
종에 따른 뮤테이션과 그 배리에이션, 이계 생물종, 그리고 몬스터.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걸 처치 도감이라고 불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거기 있는 거의 모든 항목에 킬 수를 기록했다.
소형종부터 대형종까지.
내가 죽여보지 못한 놈은 없다는 소리다.
물론 그 이후에도 신종이 속속 발견됐기에 현 시점으로 박규의 도감은 100%를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내가 발견한 장군종만 해도 처치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쯤은 그것도 세부 항목에 포함되어 있겠지.
그런데 그 처치항목에 인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뿐더러 우리는 인간이 아닌 몬스터와 그 파생물을 상대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어웨이큰은 또 다른 취급이다.
그들은 “미분류”라는 다소 모호한 항목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기록에 의하면 우리 팀은 36기의 미분류 몬스터종을 처치했다.
그 36명은 전부 어웨이큰이다.
“저도 육군 병장 출신입니다. 전방에 있었고, 군 생활만 33개월 했어요.”
양상길은 거듭해서 자신이 싸울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
그에게 총을 쥐여 줄 생각은 없다.
김민호에게 물자를 요구했다.
“양상길은 모르겠지만 송유진은 우민희 소장께서 직접 보내준 사람입니다. 잃어서는 곤란합니다.”
“그쪽 직속 상관이란 게······.”
“군사보안입니다.”
“잠깐만 빌릴게요. 부탁한 물건이나 주세요. 어차피 어웨이큰 처리할 수 없으면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닙니까?”
김민호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송유진이 직접 나섰다.
“박 헌터님은 지금은 은퇴했지만 올드스쿨 헌터 중에 최고라고 불리신 분이에요.”
김민호가 송유진 너머로 날 반쯤 감긴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웨이큰을 죽이신 적이 있습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러세요?”
김민호도 더 이상은 발목을 잡지 않았다.
빠르게 병사들을 재편해 수비 태세를 구축하고 내게 필요한 물자를 지원했다.
내가 그에게 요청한 건 3개의 수류탄이다.
그걸 양상길에게 내밀었다.
“사용법은 아시죠?”
“당연하죠.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죠.”
골프장은 평탄하지 않다.
짧게 깎은, 신선한 색상의 잔디를 심어 평탄해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실제로는 요철과 굴곡이 심하고 그런 것들이 하나의 코스를 완성한다.
골프장 시절엔 두드러지지 않았던 요철은 잔디가 죽고 그 위에 잡초와 잡목이 자라면서 두드러졌다.
곳곳에 몸을 숨길 장소가 있고 사각이 있다.
어웨이큰은 그중 가장 완만한, 시야가 잘 확보되는 곳을 향해 느긋하게 전진하고 있다.
그쪽에서도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국제 중형 드론이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서서히 상공을 배회하며 전장을 감시하는 가운데 포위에 성공했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일망타진하면 그만이니.
“여기에 숨으세요. 숨었다가 신호를 하면 수류탄을 던지세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맞추려 하지도 마시고요. 위협만 하는 느낌으로.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양상길에게 임무를 설명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가장 불안정한 건 적이나 아군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 양상길이라는 사내의 속내다.
그에게 총을 주지 않은 건 배신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류탄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지만 총보다는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다.
“어웨이큰 주변에 있는 건 저 세 명이 전부지?”
양상길이 수류탄을 만지작거리며 사용법을 떠올리는 동안 송유진에게 정찰을 지시했다.
“아, 네! 3명이 전부예요.”
송유진이 은은한 광휘를 머금은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답했다.
그녀는 투시와 미약한 감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감지 범위는 최대한 집중했을 때 30m 가량.
그다지 넓은 범위는 아니다.
그래서 2레벨 취급이겠지만.
“달리 숨어 있는 매복은?”
“없어요!”
“좋아. 돌아가라.”
“벌써요?”
송유진이 살짝 불만이 있는 얼굴로 날 응시했다.
“전투 병과도 아니라며.”
“하지만.”
“네가 할 일은 다 했다. 가서 병사들 옆에서 도움을 줘라. 뒤쪽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알겠어요! 샘!”
송유진이 떠난 후 다시 양상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아까부터 할 말이 있는지 손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용법을 잊기라도 하셨나요?”
“아니오.”
양상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슬그머니 날 올려다보았다.
“제가 맡은 일이라는 것이 말이죠. 미끼 맞죠?”
그 싸늘한 시선은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에겐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죽을 것 같습니까?”
“확률이 높을 겁니다.”
“지금 그만두면······.”
“하기 싫으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당신 하나 없다고 해서 못 죽일 것도 아니니.”
내 말을 들은 양상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어웨이큰을 죽인다고요? 어웨이큰도 아닌 당신이?”
그를 노려보며 차분히 말했다.
“제가 몬스터를 몇 마리나 죽인 줄 압니까?”
“그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 아!”
양상길이 놀란 얼굴로 날 보았다.
“······프로페서!”
“······.”
“할게요!”
양상길이 수류탄을 주머니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가끔 악몽을 꿨어요. 온 세상이 날 죽이러 오는 꿈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경사면 위를 올라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탕!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지며 그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양상길은 혼비백산하여 경사면을 굴러떨어지다시피 내려와 지면에 처박혔지만 이내 몸을 일으키며 찡그린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이것이 꿈이든, 꿈이 아니든 간에.”
양상길이 갑자기 수류탄 핀을 뽑았다.
권총을 꺼내 그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을 때, 양상길이 이를 악물며 경사면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콰쾅!
둔중한 폭음과 적들의 놀란 고함이 사각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폭발이 일으킨 흙먼지가 비처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양상길이 냉담하게 말했다.
“······이 싸움, 내가 죽어야 끝나겠죠?”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양상길이 경사면에 납작 엎드렸다.
그 각오한 눈빛은 뒤편에 서 있는 군인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그를 믿기로 하고 소리 없이 최대한 빠르게 질주하여 엄폐물에 몸을 숙이고 기척을 살폈다.
양상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수류탄을 쥔 채 바짝 낮게 엎드려 보이지 않는 흙 너머의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거기 숨은 거 다 알아.”
능선 너머에서 적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 안 보여?”
보이기에 여기에 섰다.
왜냐하면 내가 터 잡은 곳이 모든 적의 시각과 사선으로부터 차단된 곳이니까.
총기를 들어 하늘을 조준했다.
탕! 탕! 탕! 탕!
단발 사격으로 허공을 떠다니는 드론을 노렸다.
드론에 대한 대공 사격은 명중률이 대단히 낮다.
지상표적보다 평균적으로 원거리이고 목표물의 궤도가 평면적인 다른 표적과 달리 3차원적이며 예광탄을 쓰지 않는 한 탄환이 보이지 않고 탄흔을 통한 탄착점을 알 수 없는 등 적중을 막는 과제가 산적했기 때문이다.
해서 대공 장비가 없는 이상, 여간해서는 잘 실시하지 않는다.
탄환과 상황이 널널하다면 모를까, 전투 상황에서 그런 거 신경 쓰는 것 자체가 탄환과 전력의 분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련한 드론 조종사는 아예 그 점을 노려 지상 병사들에게 “꼬리를 치는”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우리 중에 가장 사격이 뛰어나던 김다람은 당연한 일이지만 드론도 잘 잡았다.
저격총, 소총, 산탄총, 무기도 가리지 않았다.
언젠가 김다람이 자신의 요령을 알려준 적이 있다.
“걔들도 조종하는 애들이 있을 거잖아? 맞을 거 같으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무빙을 치더라고? 그게 제대로 쏘고 있다는 증거야. 위협적인 탄착군이 형성됐다는 거지.”
15발째 단발 사격을 이어나가던 중이었다.
유유히 날던 드론이 갑자기 기수를 틀었다.
조정간을 점사로 돌리고 내 감이 시키는 곳을 향해 총격을 날렸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빠각!
드론의 날개가 부러지며 녀석이 강하게 휘청거렸다.
병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드론이 비틀거리며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놈들의 눈을 짓이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복수가 이어졌다.
능선 너머에서 까만 점들이 보인다.
상황이 좋지 않다.
주변에 엄폐물이 없다.
대공 사격을 하기 위해 엄폐물이 없는 장소를 택했는데 그것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타타탕!
내겐 우군이 있다.
특히, 김민호의 공이 컸다.
병사들을 빠르게 배치해 날 엄호해준 것이다.
어웨이큰이 없는 약탈자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능선을 넘어온 약탈자 네댓 명이 몸에 구멍이 뚫려 능선 아래로 미끄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멀리 있는 김민호에게 가볍게 목례해 예를 표하고 매복 지점으로 뛰어갔다.
여전히 양상길은 도마뱀처럼 능선에 엎드린 채 다가오는 어웨이큰의 동향만을 살피고 있었다.
자세는 추할지언정 그 집중력은 그가 왜 동년배 사이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설득력을 부여했다.
“역시 프로페서네요.”
양상길이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왜 그 잘나가는 구원자들이 당신을 경계하는지.”
“······.”
“장기영 교장이 그랬죠. 당신 같은 사람을 학교에서 양성할 수만 있다면 어웨이큰 같은 위험한 걸 쓸 이유가 없다고.”
“조용히 하세요.”
“죄송합니다. 말이 많아졌네요. 곧 죽는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만······.”
기척이 들린다.
적이다.
어웨이큰이 가까이 온다.
평탄하고 시계가 확보된 지역을 따라 이동하는 놈의 습성을 파악해 매복로를 설정했다.
원래의 계획이 있었지만 양상길의 성실한 자세를 보니 계획을 변경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초 뒤에 수류탄 하나를 저쪽으로 투척해줄 수 있습니까?”
“30초 뒤요? 지금요? 지금부터? 아니면?”
“신호하면요.”
“네.”
“저기, 제 가족은 어디 있습니까?”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거짓말이다.
그의 가족은 저 뒤에서 웅크린 채 고개조차 못 들고 있다.
그럼에도 양상길은 전의를 드러냈다.
“좋습니다.”
“시작하죠.”
전력으로 능선을 올랐다.
위아래로 격렬히 흔들리는 혼란스러운 시야 속에 적들의 모습이 보인다.
총기를 든 병사 넷, 무기를 들지 않은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를 한 왜소한 체구의 남성.
그 스포츠머리가 어웨이큰이다.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총격을 가했다.
탕!
총성이 울려 퍼지기도 전에 충격파가 일어나며 스포츠 머리 앞에 몬스터의 것과 동일한 흑요석 같은 빛깔을 머금은 반사역장이 나타났다.
탄환은 그 역장을 지나 내 앞에 공간을 찢고 나타난 균열을 통해 날 향해 똑바로 날아왔다.
그 탄환은 그러나, 내 옆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인티미데이팅.
몬스터에 대한 위협사격을 실시했을 뿐이니까.
여기서 알 수 있듯 몬스터화된 인간을 쓰러뜨리는 방법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의와 장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몬스터라고 하는데, 그걸 구분한다는 게 인간에게도 쉬운 일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종간나새끼가?!”
속으로 센 숫자가 15초에 이르렀다.
타타타탕!
어웨이큰 옆과 뒤에 서 있던 호위병들이 내 쪽을 향해 가열찬 총격을 가해보지만 이미 나는 그들의 능선 아래로 몸을 숨겼고 나아가 앞으로 질주하고 있다.
20초.
또 다른 능선 아래 몸을 숨기고 기척을 지우면서 양상길 쪽을 보았다.
양상길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도마뱀처럼 표면에 딱 달라붙은 채 입으로 숫자를 세고 있다.
그와 함께 숫자를 셌다.
그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이 찰나의 흐름 속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리라.
······28, ···29, 30!
때가 왔다.
양상길이 벌떡 일어나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다음 순간.
위이이잉--
하늘에 시커먼 무언가가 급강하하고 있다.
자살 드론이다.
타타타탕!
다이렉트로 총격을 가했다.
총탄에 맞은 드론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우리를 지나 양상길 가족이 쳐 놓은 텐트로 떨어지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프로페서!”
양상길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탕!
총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터져 나왔다.
“어라?”
양상길의 고개가 목각인형처럼 천천히 기울었다.
송유진이 확인했던 곳에서 또 한 명의 병사가 튀어나왔고 그가 양상길에게 총격을 가했다.
탄환은 몸통에 정확히 적중했다.
양상길은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대로 쓰러졌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콰쾅!
이미 핀을 뽑아 놓은 수류탄이 손안에서 폭발을 일으켰으니.
찢겨버린 손이 파편과 함께 날아오르는 걸 보며 재차 능선을 뛰쳐 올랐다.
타타타탕!
양상길을 죽인 병사가 총격을 가해왔다.
거리와 엄폐물, 그리고 운이 나를 총탄으로부터 보호했다.
능선을 넘자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네 명의 병사가 보인다.
그대로 경사를 향해 뛰어내려 그들에게 돌진했다.
뒤늦게 날 발견한 그 병사들이 어웨이큰 쪽을 쳐다보지만 그러나 어웨이큰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타타타탕!
반사역장을 치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니까.
일거에 소탕하고 어웨이큰 옆으로 다가갔다.
짧게 머리를 깎은 어웨이큰이 경악한 눈으로 날 노려본다.
“이, 종간나새끼가······.”
놈의 눈이 번득거린다.
아마 또 다른 권능을 준비하는 모양.
내 도끼는 권능보다 가까이 있다.
쩍!
도끼가 놈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체크메이트.
왕을 잡았다.
다음은 병사들의 차례다.
“어웨이큰이 죽었다!”
“공격!”
김민호를 필두로 숨죽이고 있던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맹렬한 반격을 가했다.
우두머리를 잃은 약탈자들은 왕겨처럼 흩어졌다.
병사들은 꽤 먼 거리를 추적하여 모든 차량을 불태우고 약탈자를 학살했다.
학살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
“무례하게 굴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를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김민호가 내게 사적으로 사과를 해왔다.
괜찮다고 했다.
그런 사소한 무례를 신경 쓸 전장이 아니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고 수많은 군인이 죽었다.
병사들은 죽은 동료와 상관, 부하의 시체를 트럭에 실었다.
“교관님.”
송유진이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러 왔다.
“죄송해요. 저녁 함께 먹고 싶었는데.”
“죄송한 거 알면, 다음부턴 오지 마라.”
“아니, 그건 아니죠.”
그녀를 향해 쓸쓸히 웃으며 눈치를 줬다.
“뒤를 봐. 모두 기다리고 있잖아.”
“다음에 올게요.”
그녀가 웃는 얼굴로 꾸벅 인사했다.
아마 처음이 아닐까.
내 보름 제자에게 가장 정중한 인사를 받은 건.
송유진이 트럭에 올랐다.
무려, 조수석이다.
짐칸엔 시커먼 병사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채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고 있었다.
두 대의 트럭 중 한 대엔 시체가 실렸다.
거기엔 병사들이 타지 않았지만, 대신 양상길의 가족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인천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우리의 영웅이신, 박규 헌터님에게 경례!”
김민호가 떠나기 전에 모든 병사들과 함께 나에게 경례를 해왔다.
경례는 헌터의 예절이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군대식으로 경례를 받았다.
수많은 감회가 서린 짧은 눈빛들이 오간 후 트럭들이 떠났다.
익숙한 정적이 옛 골프장 부지에 찾아왔다.
양상길의 시체는 트럭에 실리지 않았다.
그의 시체는 약탈자의 시체와 함께 벙커 안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일전에 내가 죽였던 약탈자처럼 제대로 묻히지도 못한 채 약간의 흙만을 덮고 있었다.
흔한 애도도, 꽃 한 송이조차 없었다.
한때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다는 사내의 비참하고 비루한 결말이다.
적어도 양상길은 자신의 가족에게는 영웅이었다.
영웅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악마가 돼서까지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려 했던 점에서.
그러나 그 가족 어느 누구도 가장의 시체를 챙기지도 수습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양상길은 또 다시 일어났다.
가족이 알아볼 수 없는 망가져 버린 얼굴로 그 좀비는 광야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기분 탓이지만 그 좀비는 트럭이 떠나간 궤적을 좇았던 것 같다.
탕!
“······.”
서투른 가족의 서투른 결말이다.
어슴푸레 속에서 잔잔하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이 보인다.
눈이다.
< 67.영웅 (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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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댓글>
(전예***) -추천57-
양상길 가족들 인천으로 돌아가면 아들래미도 다시 인터넷 접속할라나? 철 좀 들었으려나
(반물질**) -추천51-
세탄된 거 맞냐...? 그냥 씹새끼 뒤져서 잘됐단 생각밖에 안드는데
(노밸*) -추천48-
일부러 위기를 만들어서 판을 깬 느낌. 그대로 있으면 말라죽는 수 밖에 없으니.
(에벱***) -추천47-
주인공이 느끼는 졸림과 권태...단순히 지나가기엔 중요한 떡밥같은데 뭘까......
(김김치맨***) -추천37-
가정의 달 특집연참에 어울리는 내용이네요
(연참을**) -추천35-
진짜 말도 안되는 세탁기 성능에 그와 반비례하는 허무한 최후...
아포칼립스물로 진짜 최고인듯
(owl**) -추천30-
투시 능력자인 송유진이 병사 한명을 놓친게 우연인지 모르겠네요
우민희가 양상길은 중어야된다고 생각해서 죽게 만들도록 명령을 내린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