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67.영웅 (3)
교관 시절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해보았다.
“오늘은 좀비, 인간시체의 뮤테이션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알다시피 좀비는 갓 죽은,
개별 세포가 본격적으로 폐사하기 직전에 뮤테이션 인자가 변이를 일으켜 의학적으로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시체로 만든 뮤테이션의 일종으로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고······.”
교탁과 그 앞에 펼쳐진 교재, 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
정적이 흐르는 교실에 그저 준비된 교재를 읽어나갈 뿐인 힘없는 목소리가 맥없이 퍼지는 감각이 떠오른다.
수시로 보던 벽에 걸린 시계 - 분침은 어찌나 가지 않던지.
적어도 내 마음이 그 교실에 없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럼에도 수업이 끝나면 으레 날 따라붙는 무리가 있었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얼굴들을 제대로 보려 한 적조차 없었다.
당시의 나를 가리켜 김다람이 이렇게 평했다.
“새우등에, 어깨는 축 늘어지고 머리는 수세미처럼 헝클어졌고, 다크서클이 너무 진해 팬더와 구분하기 어려웠던 눈에,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 지으며 한숨 뻑뻑 내쉬던 기간제 교사.”
지금 와서 생각해보는데 김다람은 내가 예전에 접속했다 학을 뗐던 “회사명”이 닉네임 옆에 떠오르는 사이트를 제법 즐겼을 것 같다.
“그런 주제에 나보다는 제법 인기가 있더라고.”
끊임없이 급을 나누고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니 말이다.
그 시절의 제자 송유진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예전마냥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좋은 의도로 온 것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저 여기서 지내도 돼요?”
초장부터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소장님이 여기서 잠시 지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저랑 함께 온 군인분들 전부 남성분이잖아요?”
“나도 남잔데?”
“에이. 샘은 괜찮아요······. 어, 샘······? 갑자기 지퍼는 왜 내리세요?”
“?”
“아, 쫌!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진짜 우소장님 말마따나 사람이 이상해지셨네.”
“내가?”
지퍼를 다시 올리며 훌쩍 키가 큰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키가 컸다지만 여전히 작은 키다.
160을 간당간당하게 넘을까?
170 후반대에 달하던 김다람은 고사하고 160 후반에의 우민희 보다도 눈에 띄게 작다.
그 제자가 날 진지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항의하듯 말했다.
“샘! 제가 전에 샘편 들어준 거 아세요?”
“뭐?”
“저기 있잖아요!”
송유진이 천정 한쪽을 가리켰다.
“인터넷 장비!”
정확한 지점이다.
“모른 척했다고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 같은 후배, 우민희를 배신했구나.”
“······샘?”
“일러바쳐야겠지?”
무전기를 들자 그녀가 황급히 내 앞에 다가와 굽신거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무전기를 내려놓고 안쓰럽게 사죄하는 보름 제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때깔은 좋다.
영양 상태도 좋고 스트레스의 그늘도 안 보인다는 이야기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거리의 여성과는 전혀 다른 인종처럼 보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어웨이큰 - 헌터 제복을 보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있을 거냐?”
황송하게 굽신거리던 송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샘?”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일주일?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들었어요. 어쩌면 삼일 뒤에 갈 수도 있고요.”
“우민희가 그러던?”
“네. 우소장님이요.”
“그래?”
일주일에서 3일.
기한이 왜 있는 걸까?
표정을 관리하며 방공호 밖을 나섰다.
“따라와.”
“어? 어디 가시는 거예요?”
“별채가 있다.”
“별채요?”
“나는 내 집에 다른 사람이 사는 거 용납 못 하는 성격이거든.”
“깔끔하시네요. 그런데 왜 팬티는 항상 같은 걸······.”
“내가 존경하는, 선배 같은 후배 우민희에게 뭐라고 말해줄까?”
“죄송합니다!”
수시로 기어오르는 제자에게 상하관계라는 걸 확실히 주입하며 레베카 모녀용으로 만든 오두막을 보여줬다.
내 방공호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던 송유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와! 대박! 유튜브에서 보던 거 같아요. 이건 보일러? 나무 때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지내려면 여기서 지내라. 저기에 화장실도 있고. 샤워는 내 쪽에서 해야 하는데, 날이 추우니 샤워할 필요는 없겠지?”
“저 땀이 많아서 하루에 두 번은 씻어야 하는데.”
“제주도에 있을 때 그렇게 자주 씻었냐?”
“네.”
“인천은?”
“3일에 한 번?”
“여긴 보름에 한 번인데.”
“그, 그래서 팬······.”
내 보름 제자 깐죽거리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얻어맞았는지 눈치는 있다.
눈알을 부리는 것만으로 절로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말이다.
“씻는 거 좋아하면 저 아래 계곡에서 멱을 감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송유진의 위아래를 살폈다.
“샘? 혹시 저를 스캔하시는 건가요?”
“무기는 그거뿐이냐.”
“네.”
송유진의 무장은 권총 한 정뿐이다.
흔한 대검 하나 없다.
“다른 건? 냉병기는?”
“아니오. 우리는 그런 거 안 들고 다녀요. 게다가 전 전투 병과도 아니라서요. 솔직히 총 잘 못 쏘거든요.”
“전투 병과라······.”
“왜요?”
“아니, 생소해서.”
내가 학교 다닐 땐 전투 병과라는 말은 없었다.
모두가 전사였다.
한 명이 죽으면 다른 누군가가 언제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구시대의 헌터였다.
“아무튼 여기를 써라. 보일러는 때지 말고. 전기장판을 준비해주마.”
적당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송유진이 뒤에서 날 불렀다.
“샘.”
“뭐냐?”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문 앞에서 엉거주춤 선 채 답했다.
“샘 인기 엄청 많았던 거 알아요?”
“그래?”
“네! 모두 흥분했어요. 그 프로페서가, 그 전쟁 영웅이 우리 교관님이 된다는 말에!”
“······.”
“그런데 보름 만에 그만둬서 섭섭했어요.”
오두막 구석에 레베카 요청으로 달아놓은 금속판에 제자의 모습이 비쳤다.
우민희만 없으면 깐죽거리던 제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어디를 보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눈으로 무엇을 그리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그리고 있겠지.
“밥은 먹었냐?”
“아니오.”
“저녁에 먹을 거 나눠 줄 테니 위장 비우고 있어라.”
오두막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유진이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귀에 낀 교신기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샘. 여기 계세요.”
“왜?”
“잠깐 문제가 생긴 거 같네요.”
그 문제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언덕 너머 골프장에 두 대의 트럭이 능선을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트럭에 타고 있는 건 모두 군인이었다.
총성이 들리지 않은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군단파는 아니었다.
“제223 특별대응여단의 하민기 중령입니다.”
아군이다.
그러나 100% 아군은 아닌 모양이다.
“양상길씨를 찾으러 왔습니다.”
하민기 중령이 서류를 내보이며 양상길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하민기 앞에 서 있는 건 김민호라는 이름표를 단 젊은 대위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수십 명의 병사와 상관 앞에서도 별 주눅이 들지 않은 얼굴로 서류를 살폈다.
그가 서류를 다시 하민기에게 내밀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국위원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 상급부대도 아닌 사령부의 명령서를 가지고 오셨다고 해서 우리가 거기에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김민호 대위는 대한민국 군인 아닙니까?”
하민기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지만 김민호의 표정엔 약간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합참본에서 직접 하달한 명령을 어떤 군인이 거부할 수 있습니까?”
“저도 명령을 받는 입장이라. 제 개인의 판단으로 해결할 사안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제 직속 상관께 이야기는 해보셨습니까?”
“이걸로 부족합니까?”
“직속 상관의 명령이 있기 전까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민기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지만 그는 외부로 분노를 표출하진 않았다.
대신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꾹 눌러 담은 분노를 은은히 드러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좋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민기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트럭을 향해 걸어가며 무전기에 대고 큰소리로 떠드는 동안 김민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장갑차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에게 피식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짧고 극명한 대조는 내가 그다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던 “국회파에 잔류한 국군”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송유진과 함께 다가가자 김민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별일 없을 겁니다. 어차피 저쪽에서는 우리를 터치하지 못해요.”
이미 두 개로 갈린 군대가 그 안에서 다시 두 개로 갈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조각으로 나누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군대의 분열은 느닷없이 봉합됐다.
하늘 위에 드론이 나타났다.
작은 비행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육중한 드론이 머리 위를 시체를 찾는 독수리처럼 배회했다.
*
“LCN-2044. 중국제 민수 드론입니다. 느리고 굼뜨지만 크고 힘이 좋아 장거리 폭격이나 정찰 자원으로 쓰이곤 합니다.”
김민호는 전형적인 엘리트 군인처럼 보였다.
똑 부러지고 냉철하고 지식이 풍부한 건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비해 하민기 중령은 계급에 비해 나이가 더 들어 보였고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의 흔적이 흙빛이 나는 낯빛이나 구부정한 체형에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딱히 아는 것도 별로 없어 보였는데,
“군단파 겁니까?”
목소리 하나는 컸다.
“요즘 세상에 국방 조달에서 물건을 입찰하진 않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가능성은 모두 열려 있다 봐야 합니다.”
“군단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수도권 밖 외곽 지역엔 정예화된 약탈자들이 많습니다. 군단파가 방송에서 상당한 보상을 약속했는데, 그 보상을 노린 약탈자일수도 있고,
아니면 군단파가 자신의 의도를 속이기 위해 약탈자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요.”
마치 기계처럼 별 감정 없이 술술 말을 쏟아내는 김민호를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들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턱을 살짝 들었다.
“양상길 때문에 일어난 문제입니까?”
김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겠죠.”
“그럼 잠시, 양상길의 신병을 후방에 옮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중형 드론까지 뜬 마당에, 공격이 예상되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왜요?”
“왜라니요. 양상길 같은 거물을 잡아다 프로파간다를 펼친다면 인천 쪽의 민심을 흔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김민호가 피식 웃었다.
“의견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제가 위에서 받은 명령은 여기에서 양상길씨를 연금한 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이 날씨에 텐트 하나 달랑 주고요?”
김민호가 매섭게 날 노려보았다.
아마 그게 처음으로 내비친 감정적인 표현이 아닐까?
거기에 만족하며 더 이상 입을 열진 않았다.
대신 자리를 떠나 처음부터 원점에서 이번 일을 생각해보았다.
대체 왜 양상길이 여기에 있는 걸까?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치욕과 고통을 주고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무전기는 대체 왜 쥐어준 걸까?
소지품 검사를 소홀히 해서?
그건 아닌 것 같다.
저 깐깐한 김민호가 아무 문제 삼지 않는 걸 보면.
어쨌든 우민희가 중심에 있는 건 확실하지만 상황은 하나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마치 쪼개진 군대처럼 진실 또한 산산이 조각나 그 원형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흩어졌다.
뒷짐을 진 채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위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을 보고 있자니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양상길이다.
평소라면 그가 내 곁에 서는 걸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이 내게 인내심을 줬다.
“······갈수록 추워지네요.”
양상길이 파카를 추스르며 입김을 내뿜었다.
“트러블이 있었나 봐요?”
그가 여전히 갑론을박 중인 군인 쪽을 바라보았다.
“······드론 하나가 나타났죠.”
양상길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이 많네요. 저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양손을 모아 입김을 내뿜으며 그가 하늘을 주름 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기이하게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양상길의 얼굴은 수천 만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도살자라기보다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나라고 해서 그런 짓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
“그때 그만뒀어야 했나 봐요. 저 같은 행정 관료 출신이 모두 옷을 벗을 때, 저도 옷을 벗어야 했나 봐요.”
“벗지 그랬어요?”
“그게,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왜요?”
“실례지만 가족 분은 없으시죠?”
고개를 끄덕였다.
양상길이 재차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옷을 벗으면 아내가 백화점에서 더 이상 발리 주차 서비스를 못 받게 되고 라운지도 들어갈 수 없게 돼요. 백화점에서 연간 최소 2천을 써야 자격이 유지되는데, 그게 안 되거든요.”
“그게 중요한 문젭니까?”
“네. 중요하죠. 중요하고 말고요. 당신은 모를 거예요. 매일 보이던, 있는 사람들의 놀이터에 어떤 사람이 없다는 게 없어진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사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백화점에서 싸게 사려면 바깥보다 훨씬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어요. 게다가 그런 작은 호사가 평생 저와 자식을 향해 고생한 아내의 유일한 위안입니다.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상위 등급은 5천에, 그 위로는 1억 이상도 있는 걸요. 2천이 그리 큰돈도 아니잖아요?”
“······.”
“아내만이 아닙니다. 호된 꼴을 당할 뻔한 딸애도 미국 유학을 갔어요. 아버지 재산을 좀 물려 받은 편이었는데도 등골이 휘더군요. 제가 옷을 벗으면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귀국해야죠. 졸업장조차 받지 못한 채 같이 학교 다니며 웃고 떠들던 친구들 뒤로 하고 이코노미석 좁은 자리에 모르는 외국인 사이에 끼어 앉아 한국으로 돌아와야죠.”
“······.”
“아들 놈은.. 하아.. 말하지 않겠습니다.”
“뭐 하는 놈이었습니까?”
“뭐하긴요. 인터넷에서 악플이나 달다 경찰서에 불려나 갔죠.”
“아하.”
양상길이 휴대폰을 꺼냈다.
이미 통신기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적어도 휴대폰은 앨범의 역할을 기능했다.
그의 휴대폰 대기화면은 양상길 일가가 어떤 공원에서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주름진 눈가에 이슬 한 방울이 맺혔다.
“그때 옷을 벗었다면.”
양상길이 휴대폰과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 가족이 유지될 일도 없었겠지요.”
갑자기 늙어버린 얼굴로 양상길이 날 돌아보았다.
“우민희 소장이죠?”
나이 든 사람이 무시 받는 세상이라지만 연륜이라는 건 무시할 만 한 게 아니다.
느닷없이 정곡을 찔러오는 걸 보면.
하지만 그의 기습은 내게 어떤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 흔한 놀람마저도.
나름 비장의 무기였던 모양이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표정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걸 보면 말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던 사내가 떼를 쓰는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김다람과 친구 사이라서 저를 그 여자에게 던져주려는 거 아닙니까?”
“그래요? 그런데 김다람,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였나요?”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본인이 말하지 않았어요?”
양상길이 씨익 웃었다.
“왜 모르겠어요?”
순간 그의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순박한 옆집 아저씨에서, 수십 만 명의 생명을 아무렇게나 않게 던져버리던 악마로.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하루가 멀다고 모욕을 준 사람인데······.”
이튿날, 하늘 위에 여러 개의 드론이 나타났다.
드론 하나에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양상길과 그 가족, 동쪽으로 보내세요.”
< 67.영웅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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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댓글>
(g8990***) -추천74-
그러네'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에서 '집'의 의미가 묘하게 바뀐 거 같음
작품 초반의 박규는 단순히 먹고 자는 장소인 방공호의 안전을 위해 빚을 지고 상환하지 않거나 방고호가 노출시킬 수 있는 요인은 무자비하게 제거했음.
그러나 뒤로 갈수록 방공호의 은페에 목을 매지 않는 모습임.
오히려 주변 지인들에게 방공호를 드러내고 오히려 위험을 무릎쓰고 신념을 고수하는 모습이 더 잘 드러남.
'집'의 의미가 물질적인 삶의 터전에서 고향 내지는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변해간다는 인상을 받음.
어쩌면 박규가 유일하게 인간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던 비바 아포칼립스가 박규에게는 집일지도 모름.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박규라는 인간이 자신의 이상향을 종말에게 벗어나게 하기 위한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 같음
(원투***) -추천70-
양상길땜에 우중충한데 30cm 포장지 들여다보는 옛 제자땜에 그나마 분위기 사네 ㅋㅋ
(마술니뮤***) -추천59-
박규 작업당하는 느낌인데 이카루스가 아들이 아니라 양상길이었던 거 아닐까 의심된다
(kjh0***) -추천41-
근데 이러면 스켈톤 방공호도 너무 노출되는 거 아닌가
(이진진**) -추천31-
지퍼내리는 거 개웃기던데 분뒤기가 분위기인지라 아무도 언급이 없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