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몬스터파크 (2)
익명1523 : 게임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익명1523 : 우리 집에 놀러 올 놈 없냐?
익명1523 : 방금 사람 쏴 죽였다. ㅇㅇ
익명1523 : 게임 서버 어디에 있냐? 지금 부수러 가게 ㅇㅇ
익명1523 : 아빠가 서버 닫게 한다더라 ㅇ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익명1523 : 제주도에 있었을 때 찍은 사진들.memory
익명1523은 여전하다.
여전히 소리를 치고 악다구니를 부리며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매에는 장사 없는 법.
아무리 소리치고 자극하고 도발을 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한결같은 반응 속에서 슬슬 기가 꺾이는 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가 마지막으로 올린 제주도 사진이라는 글 안엔 상상도 못한 자료가 담겨 있었다.
제주도.
우리가 낙원이라고 부르던 섬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수천 개의 똥글 사이에 예고도 없이 나타나고 만 것이다.
“······.”
아마 그 사진을 본 건 나밖에 없으리라.
내가 그 글을 클릭했을 때 그 글의 조회수는 0이었고 내가 새로고침을 눌렀을 때 그 글은 삭제됐으니까.
그러니까 익명1523이 충동적으로 제주도 시절의 사진을 올렸고 올린 직후, 자신이 뜨끔해서 사진을 자진해서 삭제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이 박규만이 그 사진을 봤다는 이야기다.
그가 사진을 황급히 지운 건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었다.
사진 속에 나타난 제주도의 풍경은 우리가 아는 것과 또, 정부가 선전한 것과 전혀 달랐다.
푸른 자연, 화산지대 특유의 이국적인 풍광,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 우뚝 솟은 한라산, 흔히 낙원이라는 단어로 축약되는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울러 정부에서 선전했던 바다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대단위 주택단지 같은 것도 없었다.
섬은 잿빛의 폐허로 변했다.
숲은 불에 타 재가 되었고 화산암 지형엔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요새로 뒤덮였고 수백 미터 높이에 달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섬 전체를 파이처럼 나누고 있었다.
그 벽 너머로 우뚝 솟은 산 하나가 그곳이 제주도라는 걸 어렴풋이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마 그 사진이, 진짜 제주도의 풍경이 아닐까?
낙원과는 일만 광년 정도 떨어진 살풍경한 전장이 제주도의 진정한 모습이겠지.
그럼에도 익명1523이 그 섬을 그리워하는 건 아마도 또래 집단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그가 올린 사진 대부분엔 고교생 또래로 보이는 날렵하고 가벼운, 사소한 손짓마저 꿈을 그리는 듯한 소년소녀의 모습들이 여름날의 햇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풍경 사진 한 장을 제외하고, 살풍경한 제주도의 진정한 모습은 그들 너머에서만 볼 수 있었다.
“······.”
우민희 접대용으로 벽에 건 단체 사진을 보았다.
한때는 손대는 것조차 꺼렸던 인물들의 모습을 이제는 똑바로 두 눈을 뜨고 마주 볼 수 있다.
강한민과 나혜인.
둘은 무슨 제주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섬 전체를 거대한 군사기지로 만들면서까지 어떤 전쟁을 펼치고 있는지는, 구시대의 헌터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민희가 부서지기 직전의 국민 집단을 위태롭게 유지하며 어웨이큰을 수급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쪽에서도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아니 인류의 존망을 건.
방금 알람이 떴다.
즐겨찾기 유저가 또 새로운 글을 올린 모양이다.
현재 내가 즐겨찾기를 한 유저는 한 명이다.
익명1523 : 몬스터파크는 개뿔. 병신새끼들. 제주도 안 가봤지? 하긴 니깐 놈들이 제주도 올 수가 있겠냐? ㅇ?
익명1523이다.
여전히 이 친구에겐 저항감이 있다.
하지만 그가 올린 사진을 본 이상 더 이상 저항감 같은 건 어린아이의 치기 밖엔 안 되겠지.
타닥타닥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제주도가 지금 어떻길래?
무시당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심 나는 이 친구가 내게 내민 손을 잡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 뭐야? 누구야?
예상한 그대로다.
심심했겠지.
외로웠겠지.
그러니 진짜 제주도 사진을 올리는 자폭을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것이겠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익숙하지 않은, 게시판에 어울리지 못하는 유저들이 흔히 밟는 과정이다.
뭐, 이 스켈톤이 게시판에서 욕을 먹고 언더독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스켈톤이 올드비 - 고참유저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신참내기 머리 꼭대기에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가 좋아할 만한 말을 골라 키보드에 옮겼다.
SKELTON : 몬스터파크, 노잼이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이 뭍거지 새끼, 뭘 좀 아네.
기대한 반응 그대로다.
타다타닥
SKELTON : 나도 그 게임 정말로 재미가 없더라고. 진짜. 게임 만든 놈한텐 미안하지만, 전쟁 전에 하던 것과는 너무 수준 차이가 나잖아?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ㅇㅇ 그런데 너 이 새끼. 어째 눈에 익다?
“······.”
타닥타닥
SKELTON : (스켈톤 눈 올망똘망)
익명1523님으루부터 온 메시지 : 아! 씨발 그때 욕한 새끼지? ㅇㅇ 시발련이 뭐? 느금마?
SKELTON : 욕 좀 할 수 있는 거지. 제주도 썰이나 풀어 봐. 어차피 여기서 니 말 들어주는 거 나밖에 없잖아?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하아. 새끼. 타이밍은 좋네. 섹파가 한 시간 뒤에 오는데 딱 시간이 비네. ㅇㅇ
SKELTON : (스켈톤 부러움) 섹파? 우와······
익명1523님으로부터온 메시지 : 새끼, 좀 귀엽네. 그래, 뭐부터 듣고 싶어? ㅇ?
뭐부터 들을까.
뭐, 답은 정해져 있겠지.
SKELTON : 강한민과 나혜인. 거기서 뭐하냐?
그들이 뭘 하는지 알고 싶다.
한때는 내 마음의 그늘이 막아섰던, 보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진정한 행적을 알고 싶다.
그러나, 원하는 건 늘 그렇듯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법이다.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구원자들? 나도 잘 몰라. 전쟁 구역 너머는 비전투원은 아빠조차 출입이 금지됐으니까.
SKELTON : 전쟁 구역? 그건 뭐지?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ㅇㅇ 섬 절반이 전쟁 구역이야.
SKELTON : 뭐 하는 곳인데?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웨이큰 애들이 뭐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빠 말로는 피지 짜내듯 균열 안의 몬스터 끌어모아 빼내는 작업이라고 하더라고. ㅇㅇ 난리도 아니야. 한 번 할 때마다 섬 전체가 흔들려. 그런 게 한 번 발생하면 섬 전체의 짐승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건 덤이고. ㅇㅇ
SKELTON : 뮤테이션?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ㅇㅇ 제주도는 애완동물 금지야. 진짜 더럽게 많이 발생하거든. 그래서 제주도엔 지금 새가 없어. 보이는 족족 다 쏴 죽이니. ㅇㅇ
잠깐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이 익명1523이라는 친구, 이응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수시로 ㅇㅇ를 해대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ㅇㅇ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섹파 왔다. ㅇㅇ
아무래도 오늘 이 친구와의 대화는 여기까지겠지.
지랄 맞은 놈이지만, 이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비바! 아포칼립스!를 하면서 얻은 어떤 정보보다 가치 있는 정보다.
설마하니, 저런 양아치 같은 놈에게 “낙원”의 실상을 듣게 되나니.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균열을 닫는다는 게 그리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것이라고.
균열 너머에는 셀 수 없는 몬스터가 있다.
멀리서 산처럼 보이던 것이, 초대형종 몬스터가 뭉쳐 만든 군집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전의를 상실한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곳에서 균열을 닫는다?
당연히 몬스터의 주의를 끌겠지.
그것들이 집단행동은 안 하는 편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영역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걸 좌시할 정도로 멍청한 놈들을 아닐 것이다.
레베카가 전달하는 정보를 보면, 그리고 나를 은퇴로 몰아넣은 대형 몬스터 장군 타입을 보면 놈들에게도 브레인이 있을 수 있으니.
어디까지나 이건 내 추측이지만 말이다.
후루룩.
커피를 마시며 저장한 익명1523의 사진을 찬찬히 살폈다.
풍경 사진이 하나, 나머지는 전부 또래 친구과 자신의 사진이다.
처음엔 풍경만을 살폈다.
인물사진조차 조잡한 뽀샵 실력으로 인물을 삭제하고 풍경만을 추려 따로 보관했다.
그런데 사진을 자꾸 보고 있자니 인물에게도 관심이 간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섯 명이다.
남자 셋, 여자 셋.
전부 교복 같은 걸 입고 있다.
새로운 학교의 제복과 비슷한 디자인이다.
여기서 누가 익명1523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남자 중 하나가 아닐까?
남자 중 한 명이 눈에 띄게 잘 생겼다.
곱슬 머리에 키가 크고, 내가 여자라고 해도 반할 정도로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눈을 가진 상냥한 색채를 가진 미남자다.
소녀들의 눈은 대체로 그 소년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 이 녀석은 익명1523이 아닐 것이다.
그가 익명1523이라면 좀 더 따뜻한 글을 적지 않았을까?
소년 한 명은 그보다는 키가 작았고 머리를 짧게 깎았지만 힘이 넘치고 눈동자 안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사진 너머로 느껴지는 활달한 타입이었다.
나는 이 친구도 익명1523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 관상이라고 할까, 내가 본 익명1523하고는 이미지가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으니.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익명1523이 누구인지 추려진다.
늘 사진 구석에서 자신감 없이 서 있던 깡 마르고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평범한 소년.
그가 익명1523이 아닐까?
그 소년의 시점은 대응하는 3명의 소녀 중에 한 명을 향하고 있었다.
연예인처럼 예쁜, 한눈에 눈길을 사로잡는 소녀가 아닌 그 옆에 나름 귀엽게 잘 꾸미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 평범한 소녀다.
그러나 그 소녀의 눈길이 세 번째 소년에 머무르는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단 한 번도.
“······.”
삐- 삐- 삐-
K-워키토키가 어둠에 잠긴 방공호의 정적을 깨뜨렸다.
우민희다.
“선배. 거의 다 된 거 같아. 조금만 기다려. 겨울이 되기 전에 양상길씨 보낼 수도 있겠어.”
짧은 교신이 끝나고 사진 구석에 있는 소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구석에서 수줍게, 가장 예쁜 소녀가 아닌 평범한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은 뭐랄까, 어색해 보였다.
*
하이먼 민스키의 모델이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주로 주식이나 비슷한 것들의 가치가 폭락할 때 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한 번 들어봤을 정도로 친숙한 것이다.
대충 열정 - 탐욕 - 새로운 논리 탄생 -현실부정 - 공포 - 좌절 - 타협으로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다.
우리 게시판에 나타나는 빌런들은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처음 등장했을 땐 끝 간 데 모르고 패악질을 해대다가 게시판 유저들의 무관심 속에 현실을 부정하며 패악질을 서서히 줄이고 결국 평범한 유저로 돌아오는 패턴이라고 할까.
지금이야 평범하게 활동하는 m9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지금은 저 세상에 간 오리지널 동탄맘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다가 약탈자에게 살해당했다.
애당초 양상길의 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강점도 없는 익명1523이 표준적인 모델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건, 그가 찍찍 내뱉는 평범한 욕설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익명1523 : 같이 게임 할 놈 없냐? ㅇ?
익명1523 : 이제 레벨 15까지 키웠는데 뭘 해야 하냐? ㅇㅇ
익명1523 : 길천사 새기 드디어 죽였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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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슬슬 외로움을 느끼고 소통을 하려 한다.
어차피 게시판의 목적 자체가 외로움의 해소니,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
실제로 댓글은커녕 조회 수 하나도 없던 글에 댓글이 뜨문뜨문 달리긴 했다.
ㅇㅇ : 헤비로 키워라. 지금 버전은 헤비가 어에이큰보다 더 좋아.
ㅇㅇ : 축하한다. 그런데 길천사는 수문장이고 다음에 만나는 킹둘기가 100배는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야. 비행 특성이 있거든.
아마 익명1523을 잘 모르는 페일넷 유저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늘려나가면 저 조금은 안타까운 친구도 사라지기 전까진 게시판에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 호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운명을 알기에 나도 한 번 손을 내밀어보았다.
SKELTON : 어이. 게임 같이 할까?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왜 내가 니깐 놈이랑 해야 해? ㅇ?
SKELTON : (스켈톤 프라우드) 그야, 내가 슈퍼 스페셜 럭셔리 계정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지.
그에게 내가 받은 특전을 보여줬다.
익명1523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야. 접속 해. ㅇㅇ
답장은 빠르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