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22화 (122/183)

65. 차단

집단생존주의.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곧 나도 채택하게 될 생존의 한 방식이다.

ㅇㅇ : 같이 뭉칠 놈 있냐? 도시 밖으로 나가보려고 하는데? 참고로 군인 출신이다

혁이아빠 : 이쪽은 가족이고요. 비슷한 가족끼리 뭉치길 원해요. 총기나 식량, 연료는 있고요. 차도 있어요.

ㅇㅇ : 대진그룹 과장 출신입니다. 같은 대진맨 계실까요?

서바이벌남 : 같이 살 여성분 있나요? 나이 삼십 대 중반이고요, 식량, 연료, 무기, 안락한 집까지 모든 걸 갖췄습니다. 용모 단정한 건 기본이고요. 생각 있는 여성분 연락 주세요

ㅇㅇ : 엔지니어, 의사, 간호사 등 기술 있는 사람 모집. 이쪽은 일곱 명. 전부 인서울 대졸자임.

ㅇㅇ : 자동차 정비할 줄 아는 사람 찾는다. 우리 집단 평균 연령은 전부 20대에서 30대 사이. 비슷한 또래 환영.

ㅇㅇ : 미추홀 쪽에서 홈쉐어링 하실 분 있나요? 주변 공기가 점점 험난해지네요. 여성분 환영해요.

팀 썬더링 : 의사 있냐? 의사 찾는다. 농부도 환영.

...

...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페일넷에서는 현재 집단을 만들려는 붐이 불고 있다.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도 없고 식량도 뮤테이션 고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가운데 알아서 생존의 방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페일넷의 “함께해요” 게시판이다.

초반엔 게시판 순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는데 우리의 냠냠맨이 피난선단의 실체를 어렴풋이 공개한 후 급격히 순위가 올라가 지금은 거의 매일 10위권 안에서 노는 인기 게시판이다.

그런데 이 게시판을 조금만 봐도 보이는 특징이 있다.

방금 올라온 따끈한 게시물만 해도 그렇다.

ㅇㅇ : (급구) 의사 모집!

의사나 엔지니어 등 기술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한결같다.

능력 있는 사람만 팀원으로 받겠다는 의지가 게시판 자체에 배경음악처럼 깔린 느낌이다.

평범한 사람을 찾는 글은 손에 꼽을 지경으로 그마저도 지연이니 학연 같은 특별한 자격을 요구한다.

아마 집단을 이룬 사람들이 신규 인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기술자들을 찾는 게 아닐까?

씁쓸한 이야기지만 기술 없는 사람은 집단도 이루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게시판에도 집단생존주의자가 하나 있다.

그것도 평범한 집단생존주의자가 아닌, 전쟁 전부터 집단생존주의를 설파한 사상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이.

바로 디에스이라에다.

최근 이 친구가 페일넷과 우리 게시판 두 군데에 동시에 글을 올렸다.

Dies_Irea69 : 팀원 모집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늘보다 못한 내일이 올 거라는 거 다 알지 않냐?

거두절미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남을 용기 있는 친구 구한다.

단, 아래에 해당하는 사람은 거부한다.

1. 마약 중독자

2. 알콜 및 의존성 약물 중독자

3. 장애인

4. 동성 연애자

5. 중병에 걸린 환자

6. 독신 여자(남편과 함께 라면 가능)

7. 부정적인 사람

여기에 해당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할 각오가 있는 친구는 전쟁 전과 후의 약력을 간단하게나마 진솔하게 적어줘. 보고 판단해서 회신할게.

다른 건 몰라도, 우리와 함께 하면 살 수 있다.

디에스이라에의 모집 글엔 험난한 산세를 배경으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총기로 무장한 사내들의 단체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후루룩-

커피를 마시면서 디에스이라에의 글을 찬찬히 음미했다.

페일넷과는 다르다.

그는 의사나 기술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이 망해가는데도 여자를 찾는 망나니들과 달리 아예 독신 여자를 당당하게 거부 리스트에 올렸다.

그는 페일넷에서 외면당한 평범한 사람, 특히 남성들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 페일넷의 몇몇 삐뚤어진 친구들은 어김없이 악플을 달아놓았다.

ㅇㅇ : 뭔 대단한 일 한다고. 딱 봐도 좆밥 같은 애들만 잔뜩 모아놓은 거 같은데.

ㅇㅇ : 얘들은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의사는 안 찾네?

ㅇㅇ : 여자는 왜 안 되는 거지? 게이들인가? 그런데 게이도 금지고. 뭐야? 이 새끼들.

...

...

디에스이라에라는 남자에 대한 감정은 좋은 편이 아니다.

디펜더 사건 당시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평범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일 인간은 아니다.

차갑고 잔인한 인간.

그것이 내가 그에 대해 가진 추상적인 이미지다.

무엇보다 디에스이라에는 전쟁 초반부터 집단생존주의를 주장하고 몸소 실천한 사상가다.

그의 말이 반드시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페일넷에서 ㅇㅇ라는 가면을 쓰고 떠들어대는 인간보다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후루룩-

다시 커피를 홀짝이며 디에스이라에가 어떤 생각으로 모집 요강을 썼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도 한때 팀원을 했던 입장이라 디에스이라에가 뭘 중시하고 어떤 집단을 꾸리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보인다.

디에스이라에가 가장 높은 가치를 두는 항목은 집단의 안정성 아닐까?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나 품성을 중시하고 조금이라도 집단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는 걸 보면 말이다.

모나지 않고 집단에 잘 섞일 수 있는 다수를 확보, 그 숫자를 무기로 더 큰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은 글에서 디에스이라에는 내 추측이 정확했다는 걸 공개했다.

Dies_Irae69 : 내가 성소수자차별자니 여성 혐오자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그런 감정은 조금도 없어. 하지만 걔들은 분란을 일으키잖아?

Dies_Irae69 : 몬스터니 뮤테이션이니 탈영병이니 총알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꾸역꾸역 사는데 되지도 않은 치정 싸움으로 뒤지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나는 예쁜 여자는 안 받아. 싫다는 게 아니야. 나도 주변에 미인이 있으면 좋지. 그런데 왜 받지 않느냐? 싸움의 원인이 되니까. 안 그럴 거 같다고? 생활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문제가 생겨. 세월 앞 장사란 건 없다고. 그러니 부부 동반이라고 했는데 마누라가 예쁘거나, 내가 예쁘다? 이런 사람은 지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Dies_Irae69 : 그런 걸 씹어먹을 정도로 능력이 있으면 받아준다. 그러니 능력자들은 망설이지 말고 연락해. 페일넷 친구들은 아래 링크한 게시판에 비밀 댓글로, 우리 게시판 친구들은 메시지로.

다 떠나서 그가 리더로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거의 3년간 집단을 유지했고 점점 그 집단을 내실있게 불려가는 걸 보면 말이다.

사진에 찍힌 인원수만 해도 스무 명이 훌쩍 넘어간다.

일전에 군단파를 처리하고 찍었던 기념사진보다 두 배나 인원을 늘린 것이다.

식량 부족으로 구걸하는 사람이 늘고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우리 게시판 친구들이 디에스이라에가 탈영병마저 처리하는 걸 보고 집단으로 자원한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진 속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디에스이라에의 팀원 모집은 지원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이 스켈톤. 살아 있냐?

디에스이라에가 팀원 모집 공고를 올린 지 얼마되지 않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놀라워하며 회신했다.

SKELTON : 살아는 있지. 무슨 일이냐?

그에겐 약간의 반감이 있기에 스켈톤의 명물과 같은 머릿글을 달지 않았다.

거리감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암시라고 할까.

그런데 디에스이라에는 투박하고 직설적인 사람이다.

왜 스켈톤이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머릿글을 나에겐 달아주지 않는 걸까? 고민하는 대신, 저돌적으로 자기 할 말을 냅다 해버린다.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모집 공고 봤지?

SKELTON : 어.

두 번이나 머릿글을 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알아줬으면 하는데.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는 프리패스다.

“······.”

역시 이 친구와 나는 안 맞는 모양이다.

애당초 우리 둘은 개인생존주의와 집단생존주의라는 사상의 극단에 서 있는 관계였으니.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군인 아니냐? 최소한 훈련을 받은 사람 같던데. 어쩌면 헌터일 수도 있고.

그가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건 맞지만 그와 함께 할 수 없다.

SKELTON : 미안한데 나는 합류할 생각 없어.

그와 나는 상극이다.

뭐랄까, 디펜더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이라고 할까.

디펜더조차 이질감을 느끼는 마당에 이 인간과 함께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래? 나중에 생각이 변하면 연락해 줘. 뭐, 그때 되면 자리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디에스이라에는 흔쾌히 거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디에스이라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기계 같은 인간이었다.

“디에스이라에. 그 자식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왔어. 자기 팀에 들어오지 않냐고 제의를 하더라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디에스이라에는 디펜더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죽이려고 했고 거의 실행까지 할뻔한 디펜더에게 합류 제안을 한 것이다.

과거의 앙금을 털고 미래의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메시지를 보낸 거 같은데, 나는 단지 자신을 돋보이려고 죽이려고 한 사람에게 그런 식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튼, 내 생각과 무관하게 디에스이라에가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이튿날 디에스이라에는 게시판에 담담하게 어제의 모집 결과를 발표했다.

Dies_irae69 : 천 명이 넘게 지원했어. 대부분은 페일넷이지만 우리 게시판 유저도 적지 않아. 드디어 세상이 우리의 가치를 알아준 거지.

*

사람은 언제 변할까.

위대한 사람은 애벌레가 우화를 하듯 스스로 변화를 꾀한다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저 냉철한 리더 디에스이라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Dies_irae69 : 대단히 미안한데 천 명 전부를 받아줄 순 없어. 올해 우리가 생산한 식량은 1일 3식 기준으로 300인분이거든. 300명을 받으면 되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은 게, 보존이 예전처럼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곰팡이, 병충해, 기타 천재지변에 의한 상실도 고려해야 해.

Dies_irea69 : 이번에는 백 명만 받을게. 너무 적은 건 같지만, 그 이상은 내가 컨트롤 할 수가 없거든. 하지만 내년까지 버텨준다면, 내가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진짜 일 한 번 벌여보자. 누구에도 구속되지 않는 우리들의 조직을 만들어보자고!

그가 과거의 냉철함을 살짝 잃어버린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답지 않다.

이미 몇 번 불안한 행보를 보이긴 했지만, 슬슬 선을 넘고 있다는 게 눈으로 보인다.

Dies_irae69 : 용문산쪽이야. 우리 팀이 자리 잡은 곳은.

장소까지 공개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열렬한 추종자와 호응하는 세력이 생기자 그도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모양이다.

존내논, m9, 가까이는 디펜더처럼.

천 명이라는 지원자 숫자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는지도?

디에스이라에와 딱히 친하다고 할 순 없는 사이고 약간의 반감도 있지만 우리는 한 번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혼자 있는 게 아니다.

그 옆엔 합류한 게시판 친구들과 함께 있다.

답답한 마음에 이번에는 이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SKELTON : 여기 군단파도 있는데 너무 과한 자신감의 표출 아니냐? 용문산이면 군단파 장악지댄데 어쩌려고 그러냐?

디에스이라에는 답장이 그리 빠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1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답장을 보냈다.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오, 스켈톤. 우리 팀에 들어오려고?

SKELTON : 글 좀 읽어. 너희들 걱정하는 거잖아?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 그거? 걱정하지 마. 의도한 일이니까.

SKELTON : 의도한 일이라고?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 우리가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지 :)

디에스이라에의 글 내용만 따지고 보면 무모한 자신감을 얻은 사람이 파멸로 향해 스스로 걸어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느끼기도 했고.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을 실제로 본적이 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고 얼마나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지 직접 보기도 했다.

아무리 들떴다고 해서, 이 사내가 갑자기 지능이 낮아진 것처럼 자폭을 할 것까진 않다.

“······.”

냄새가 난다.

중국에서 맡았던 수많은 악취와 비슷한 것이.

그 수많은 비극들을 떠올리며 입을 다문 채 키보드를 두드렸다.

SKELTON : 디에스이라에. 무슨 의도냐?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무슨 의도냐니? 말 그대로잖아.

순간 욱하는 감정이 내면에서 터져 나왔다.

타닥타닥

SKELTON : 이번에 모집한 애들, 총알받이냐?

나답지 않은 사실의 적시.

바로바로 대답하던 디에스이라에는 한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다.

상당한 시간이 피부로 느껴진 이후에야 디에스이라에가 회신했다.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갑자기 왜 이래? 나 뭐, 잘못한 거 있냐?

그 시간의 간극은, 그러나 내 마음을 식히기는커녕 혐오하는 마음만 숙성시켰을 뿐이다.

SKELTON : 시험해보고 싶다며?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지? 이번에 모집한 애들로 테스트 하려는 거 아니냐? 군단파 정도나 되는 애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다.

심장이 강철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아까보다는 짧은 지연이 지나간 후, 디에스이라에가 회신했다.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개인식별번호 있냐?

디에스이라에의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비단 모니터 너머에서 살기를 느낀 것만은 아니다.

이 인간과는 엮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내 안에서 단단히 굳었다.

*

armeegruppe_B : achtung!

군단파 요직으로 추정되는 유저가 글을 올렸다.

문장 하나 없이 사진 한 장만 달랑 있는 그 글의 사진 속엔 청량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산은 붉게 물든 단풍과, 그 단풍을 태우는 불길이라는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을 품고 있었다.

산에 대해 잘 모르지만 게시판 유저들은 그 산이 용문산이라고 말해주었다.

ㅇㅇ : 그 디에스 69? 그 새끼 잘난 척 하더니 결국 군단파 형님들한테 참교육 당했네

ㅇㅇ : 사람을 보낸 것도 아니야. 포격으로 개 패듯 때려잡은 거지

ㅇㅇ : 그 디에스새끼 팀? 지원한 새끼들 전부 다 뒤졌겠지?

우리 게시판 유저들은 그 사진에 대해 특별한 의견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속내는 페일넷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무 나댔다.

자기보다 수천 배는 강력한 세력 앞에서.

하지만 늘 그렇듯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추악한 법이다.

익명152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안녕! 스켈톤!

내가 모르는 유저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이 유저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익명152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 마음에 드네. 내 진심을 한 번에 파악할 줄이야. 헌터냐? 헌터지? 딱 봐도 보여. 몬스터 잡고 온 애들은 특유의 싸한 느낌이 있거든.

디에스이라에69다.

자신의 전투력을 실험해보겠다고 무고한 지원자를 모집하고 대포밥으로 던져준 자가 뻔뻔하게 닉네임을 바꾸고 내게 더러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익명152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보다시피 군단파가 노려도 우리는 죽지 않아. 왜 안 죽냐고? 내가 군단파 모체가 된 부대 소속인걸. 그 새끼들 머리 굴리는 건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지.

디에스이라에가 현역 시절 쓰던 군모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다.

검은 해골의 정수리를 단검으로 꽂은 마크가 섬뜩하게 새겨져 있다.

나는 이 마크를 알고 있다.

이른바, 잔멸부대.

북한 붕괴 당시 평양에서 활동한, 다수의 학살 혐의가 있는 부대다.

익명152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때? 우리랑 함께 하고 싶지 않냐?

“······.”

[ Dies_irae69, 익명1524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

한때 차단 기능을 애용했었다.

그 대부분은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풀기도 했고 풀기도 전에 그 사람이 죽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디에스이라에의 차단을 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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