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두 자식 (1)
요즘 젊은이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낙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익명1523 : 어. 우리 아빠 양, 상짜 길짜 맞는데. 그래서 뭐? 응? 니들이 뭐 할 수 있는데?
익명1523 : 부모 잘 둔 게 능력이지 뭐가 능력이야? 공부 좆빠지게 해봐야 의새판새검새밖에 다 되겠냐고······ 의새 된다고 해봐야 전쟁 전 기준 애비 재산 1000억한테 이김?
익명1523 : 부러우면 니들도 부모 잘 만나든가 솔직히 부럽지? 부럽잖아?
우리 양상길씨의 아드님은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적이다.
기자 양반이 공개한 양상길씨 아들의 이름은 범효씨. 나이는 이제 갓 스물이란다.
익명1523 : 기자 양반 너 이 새끼 누구야? 내 신상 아는 거 보니 국위원에 있는 거 같은데, 사무실 뒤져 볼까? 사람 앞에서 뺨 맞아본 적 있어? 없으면 경험시켜 줄게 ㅋㅋ
이 친구가 진짜 양상길의 아들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전쟁 전 기준으로도 명백히 고급에 속하는 숙소, 음식, 갖은 명품의 향연, 일부러 여자의 팔이 나오게끔 찍은 사진 등 그는 끝없는 인증 퍼레이드를 펼쳤으니.
특히 기억에 남는 인증 사진은 빛으로 가득 찬 호화로운 거실에서 찍은 비참한 도시의 칠흑처럼 어두운 풍경이었다.
익명1523의 대한 우리 게시판 유저의 반응은 철저한 무시였다.
사실 우리 할 수 있는 게 무시밖에 없거니와, 아무리 둔한 우리 게시판 유저라고 해도 익명1523의 의도를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건 단순히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거다.
우리가 화를 내고 성내는 걸 보고 웃고 즐기려 한다.
전쟁 전만 해도 그런 인간이 몇 명 있긴 했다.
백승현으로 알맹이가 교체되기 전의 동탄맘도 그러했던 것 같고.
그런데 내가 느끼는 의문은 하나다.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것일까?
뒷감당이 가능하긴 한 걸까?
양상길은 대체 뭘 하는 거지?
칠칠치 못하고 비겁한 인간인 걸 알지만 자식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할 정도로 격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나.
하긴, 양상길이 자식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긴 하다.
그나저나 우리 게시판 수준도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다.
mmmmmmmmm : 우와······.
mmmmmmmmm : 마싯겠당.....
mmmmmmmmm : 우왓?! 저건 전설의 8기통?! 언빌리버블! 나 타봐도 되요~?
“······하.”
m9 이 새끼.
익명1523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다.
속된 말로 후빨이라고 하는 비열한 짓거리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뻔뻔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까딱였다.
m9 이 새끼 요즘 어려운가?
뭐, 이 친구 안 어려운 적이 있었나.
기울진 곳에서 살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기울어지는 것이겠지.
어제 멧돼지 한 마리를 우연히 사냥했다.
아성체 암컷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헤매다가 나와 마주친 모양인데 본의 아니게 녀석을 사냥하고 말았다.
식량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신선한 단백질은 언제나 환영이고 곧 기나긴 겨울이 오기에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이 녀석을 먹기 좋게 도축할 생각이다.
예전에 골드 녀석이 사냥감 몇 마리를 가져왔을 때 도축을 직접 한 적이 있는지라 전과 달리 자신도 있었다.
당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도축 작업은 역시 야외에서 하는 게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냄새, 털, 오물, 청결 유지 등등 방공호 안에서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손이 많이 가고 뒤처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레베카네 만들 때 아랫마을에서 가져온 평상 위에 멧돼지를 깔고 해체를 시작했다.
냉동한 게 아니라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녀석이라 가죽이 쭉쭉 잘 벗겨지는 게, 끔찍한 이야기긴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사실 가죽을 벗기고 나면 그다음은 우리가 정육점에서 보던 매달아 놓은 고기와 비쥬얼적인 측면에서 딱히 차이가 없다.
쿵!
그놈의 대가리만 떼어내면 말이다.
“어. 그래. 언제 올 거냐?”
레베카네 이사 준비는 거의 다 끝났다.
주변도 정리했고 배선도 확실하게 정리했다.
보일러 테스터도 완벽.
이사만 하면 된다.
“다음에. 아직.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런데 막상 이사를 하려니 레베카 녀석, 또 괜한 노파심이 든 모양인지 차일피일 기일을 미룬다.
이유는 알 것 같다.
스우 때문이겠지.
아무리 나와 오랜 인연이 있다고 하지만 명백히 타인인 남자와 같은 생활 영역을 공유하는 건 어머니 입장에선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니.
어차피 나야 늦게 올수록 좋으니 그러려니 했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그쪽에서 버틸 수 있다면 그냥 안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겨울만 나거나 말이다.
“그래? 알았어. 마음 바뀌면 연락해. 그리고 돼지 한 마리 잡았는데 고기 필요하냐? 어. 알겠어.”
교신을 끊고 멧돼지 대가리를 잡고 어디에 버릴 지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툭-
대가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즉시 총기를 들어 총구를 관목 숲에 향했다.
“나와라.”
철컥
“어서!”
나의 날선 고함에 의문의 침입자가 슬그머니 길게 자란 풀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사람이 아니다.
개, 그것도 아직 덜 자란 강아지 티를 벗지 못한 새끼다.
문제는 그 녀석의 덩치가 나보다 크다는 것.
“······.”
뮤테이션이다.
놈은 몸이 뜨거운지 혀를 내민 채 헉헉거리는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털이 지저분하고 다리 하나를 저는 것처럼 보였고 무엇보다 지쳐 보였다.
그 뮤테이션을 가만히 바라보다 무심코 녀석에게 물었다.
“골드?”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게 긍정의 의미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좋아서 꼬리를 흔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최근에 본 새끼 뮤테이션은 골드의 자식들이 전부다.
“······너 골드 새끼 맞냐?”
골드의 자식은 여러 마리였다.
녀석을 닮은 색을 가진 놈도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시베리안 허스키 계열의 흰색과 흰색이 섞인 털색을 갖고 있었다.
어미 개의 색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왜 여기 온 걸까?
녀석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작업 중인 멧돼지를 보고 입에서 침을 흘려댄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눈치.
녀석의 아가리 안의 이빨을 보았다.
역시 늑대다운, 작지만 훌륭한 이빨이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빨간 다라이라 불리는 커다란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담아 놓은 내장을 대야째로 녀석에게 내밀었다.
그 녀석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게걸스럽게 내장을 먹어치웠다.
“······.”
놈이 내장을 먹는 동안 총기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다른 뮤테이션 개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다.
녀석 혼자서 이쪽으로 사각을 통해 기어올라 내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네 아빠는 어디에 있냐?”
녀석은 골드와 달리 멍청했다.
이야기를 해도 쳐다만 볼 뿐 또 고개를 처박고 내장을 먹어댄다.
아비와 달리 사람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
아니, 사람 말을 들을 기회 자체가 없었겠지.
골드는 날 때부터 사람 손에서 자란 반면, 이 녀석은 다른 뮤테이션 개 무리에서 개들과 소통하며 자라왔을 테니.
지능 자체는 꽤 높을 것이다.
내 영역을 기억하고 내가 우호적이라는 인간이라는 걸 부친에게 전수 받고 여기에 찾아온 걸 보면 말이다.
내장을 먹어치운 녀석은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했는지 네 다리로 곧게 선 채 날 빤히 쳐다봤다.
“뭐?”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냥 쳐다만 본다.
가만 보니 골드와 달리 생긴 것도 좀 멍청해 보인다.
그런데 뒤늦게 녀석이 갑자기 뒤를 향하더니 작은 소리로 짖으며 앞서간다.
“뭐냐? 따라오라는 거냐?”
녀석이 몸을 뒤돌렸다.
“뭐?”
녀석이 날 빤히 쳐다봤다.
본의 아니게 거대 강아지와 눈싸움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녀석이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꾸벅꾸벅 졸아댄다.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자라.”
다시 작업대로 향하자 녀석은 그대로 옆으로 드러누워 눈을 붙였다.
역시 상당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여기 왔다는 건,
“후우.”
골드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겠지.
중국인 헌터에게 아내를 잃고 쫓겨가는 걸 본 게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니.
아마 쫓겨간 곳에서도 비슷한 불행을 당한 모양이다.
아니면 이미 중국인 헌터의 공격에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입었거나.
아무튼, 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면 알아는 봐야겠지.
골드 녀석의 상태를 말이다.
*
SKELTON:(스켈톤 디너) 오늘 저녁입니다 ㅎㅎ
-간밤에 갑자기 멧돼지가 덮치길래 저도 모르게 뒤돌려차기를 시전했는데 녀석이 뻗더군요...
그걸로 약간의 요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좋은 소재가 있으면 그때그때 이 소재를 모두와 공유하는 것이 우리 게시판 유저의 덕목.
앞다리로 수육을 만들어보았다.
반응은 쏠쏠했다.
ㅇㅇ : 뭐냐? 멧돼지? 직접 잡은 거?
익명458 : 멧돼지 맛있지. 우리 동네엔 고라니밖에 없던데.
Foxgames : 도축 직접 한 거야?
Defender : 응?
익명1001 : 잘 삶았네. 된장 품?
제법 댓글이 달렸다.
정성이 담긴 준수한 밥상 사진은 댓글이 후한 편이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내가 멧돼지 수육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상길의 아들이 글을 올렸다.
익명1523 :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feat. 빈티지 와인)
“······.”
딸깍
마우스를 움직여 녀석의 글을 클릭해보았다.
진짜 스테이크다.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잘 구워진 티본 스테이크가 먹음직스러운 색깔을 가진 가니쉬와 우아한 와인잔을 거느린 채 시청각적으로 나의 미각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것만 올렸으면 뭐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익명1523 : 멧돼지 그거 아빠 똘마니가 바친 게 있어서 냄새 맡아봤는데 역해서 못 먹겠더라
익명1523 : 사실, 돼지가 소고기보다 아랫급이지.
익명1523 : 살면서 돼지고기 먹어본 적 손에 꼽음 솔직히 역해 돼지도 역한데 멧돼지는 얼마나 더 역하겠어? 차라리 라면을 먹지
이 친구, 날 걸고 넘어진다.
아마 내 글을 보고 또 못된 심보가 발동했던 모양이다.
이 게시판 악당에겐 당연하게도 댓글이 하나도 아니, 하나 달리긴 했네.
mmmmmmmmm : 우와.... (침 주르륵)
요즘 m9는 사람으로 안 치는 분위기니까 사실상 댓글 제로다.
한 개도 못 받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불쾌한 창을 닫았다.
그런데 창을 닫고 보니 괘씸한 기분이 든다.
대체, 저 녀석이 뭐가 그리 잘났기에 저런 망나니짓을 끝도 하는 걸까.
남의 가족은 밑도 끝도 없이 사지로 보내던 양상길이 정작 망나니 자식은 터치를 못한다는 상황이 조금은 코믹하면서도 씁쓸해 보였다.
아무튼 슬슬 해가 지려 한다.
낮 기온은 28도까지 올라가지만 밤 기온은 심하면 8도까지 떨어진다.
조금 더운 걸 감수하고 두터운 웃옷을 걸친 후 방공호를 나섰다.
은빛 거대 강아지가 입구 옆에서 얌전하게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버.”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버지가 골드고 이놈은 또 은빛이니 실버가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겠지.
녀석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작게 소리 내서 짖어댔다.
“컹!”
“가자. 어디로 가면 되냐?”
“끼이이잉······.”
“?”
조금 앞서가던 실버가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날 쳐다본다.
“뭐냐? 까먹은 거냐? 냄새 못 맡아? 개잖아?”
호부견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놈은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이 녀석이 상상 이상으로 칠칠치 못하기에 정석적인 방법으로 골드를 찾기로 했다.
역추적이다.
일전에 중국인 헌터가 뮤테이션 개들을 학살한 현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큰 비가 오지 않아 현장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개들의 썩어가는 시체가 보인다.
일부는 백골을 드러냈다.
실버가 불안하게 몸을 떨며 낑낑거렸다.
“쉿.”
녀석을 조용히 시킨 후 주변을 살폈다.
“······.”
1류의 실력이다.
다른 동료의 지원 없이 홀로 네 마리를 모조리 사살했다.
사용한 무기는 추코누라는 내가 알지 못하는 최신 헌터 병기.
위력은 상당하다.
한 마리는 아예 척추 부근에서 허리가 끊어진 상태로 토막이 나버렸다.
중국 헌터 병기가 뛰어난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서방 국가와 달리 어웨이큰을 끝까지 배척하고 인간의 순수 기술력에 국운을 투자했으니.
왜 중국이 그토록 어웨이큰을 끝까지 배척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우리가 모르는 문제점을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고레벨 어웨이큰의 성격이 각성 전보다 불안정해진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은 있지만 딱히 그런 인간들을 만날 일이 없는 지라 체감할 순 없다.
우리 우 소장님이야 각성 전에도 이상한 인간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양반이 된 케이스라 해당 사항이 없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그 중국인 헌터라는 녀석.
한 마리를 더 죽였다.
높이 솟은 장대 위에 새끼 한 마리가 거꾸로 꽂힌 채 썩어가고 있었다.
몸이 굳은 형태를 보니 죽은 상태에서 꽂힌 것 같진 않다.
아마 살아 있는 동안 구슬프게 부모를 찾으며 죽지 않았을까?
“······.”
아마 그 중국인이 노린 건 골드였던 모양이다.
노련하고 잔혹한 사냥꾼이다.
마치 디펜더처럼.
시체를 뒤로 하고 골드 무리가 떠난 흔적을 찾았다.
한 덩치 하는 녀석들이 놈들의 궤적을 찾는 건 어둠 속에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중간부터 실버가 나를 앞서가며 앞길을 안내해주려고 하는 행동을 했다.
“뭐냐? 이제 기억이 난 거냐?”
가만히 내버려 두니 진짜 나를 안내하려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앞서다가 물끄러미 날 돌아보는 걸 보면 말이다.
그 모습이 예전의 스우와 닮았기에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
아직 골드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 위치는 그리 멀진 않을 것이다.
아직 새끼인 실버가 찾아올 정도의 거리니까.
한 가지 걱정인 건 내가 들어선 이 영역이 내게 생소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방공호 생활을 3년 남짓 하면서 내 행선지는 늘 북을 향했지, 남쪽을 향한 건 손에 꼽는다.
게다가 지금처럼 정남향으로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거기는 처음부터 내가 염두에 두지 않은 땅이다.
남쪽 작은 공단에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쟁 직전에 들었고 인근에 기갑부대 주둔지가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아무것도 없는 개활지다.
농업용수로가 있지만 지자체가 펌프로 물을 끌어서 물을 대는 곳이라 전쟁 이후에 물이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내 앞에 펼쳐진 건 내 영역 배는 이상으로 황량한 메마른 초원이었다.
파괴된 전차 몇 대가 달빛을 받아 우울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버는 그 침묵의 대지를 새끼 다운 발랄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실버가 향한 곳이 숲도, 산도, 동굴도 아닌 버려진 폐가라는 건 내가 잘 아는 한 마리의 개의 운명을 실감하게 했다.
이미 가까이 가기 전부터 죽음의 냄새가 났다.
윙- 윙-
파리들이 거슬릴 정도로 청각과 시각을 어지럽혔다.
손을 저어 파리 떼를 쫓아내며 버려진 폐가의 담을 넘었다.
반쯤 무너진 벽 너머로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골드.”
불빛을 비춰 상처를 확인했다.
지능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좋은 것일까.
가끔 드는 의문이다.
골드의 상처는 인간의 무기에 의한 게 아니다.
같은 개들이 골드를 물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