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동문회 (1)
언젠가 학교가 어웨이큰 체제로 재편된 이후 그 편성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화자는 내 동기인 공경민이다.
그는 강한민이나 나혜인, 우민희 정도의 고레벨 각성자는 아니다.
소위 잡웨이큰이라 불리는 파동을 내지 못하는 저레벨 어웨이큰이다.
하지만 각성 시점이 대단히 빨랐기에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학교의 교관 자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가 말하길 새로운 학교의 정원은 300명 즈음으로 우리 때보다 삼분의 일 토막이 났지만 전원 어웨이큰 적성 소유자란다.
당연히 이들의 등수는 머리 좋고 나쁘고, 싸움 잘하고 못 하고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어웨이큰 능력 - 레벨에 의해 결정되는데 대충 그 분포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2~3레벨 - 39%
4레벨 - 45%
5~10레벨 - 15%
11레벨~ - 1%
이건 평균치며 연도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 전쟁 이후의 데이터는 반영되지 않았다.
표를 보면 다른 레벨은 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묶여 있는데 유독 4레벨만 홀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의도된 구분이다.
공경민의 이야기에 의하면 4레벨이 제일 중요한 훈육 대상이라고 한다.
이 어린 친구들이 파동을 낼 수 있냐 없냐에 따라 학교가 배출하는 전력의 평균 수준 자체가 달라지게 되니까.
5~10레벨은 분포가 넓어 보이지만 어웨이큰적인 관점에서는 잠재력 차이가 거의 없고 세부적인 노력이나 훈육으로 숙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
11레벨부터는 또 다른 레벨이다.
그러니까 초월적인 강자라는 이야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상전의 운명이 예고됐다.
하지만 저 아래 2~3레벨은 들어올 때부터 “노비”다.
이 친구들은 그러니까, 훈육해서 뭔가 대단한 걸 이루려고 입한 시킨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밑바닥을 깔아주게 해서 새로운 학교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4레벨 친구들의 자신감과 우월감을 고취하기 위한 인간 충전재라고 한다.
지극히 잔혹한 발상이지만 그 충전재가 들어온 이후부터 이탈자가 줄어들고 5레벨 이상 졸업생의 비율에 유의미한 증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충전재의 운명은 그다지 밝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모님한테 늘 감사해. 빨리 낳아준걸.”
공경민의 말이 암시하듯 저레벨 어웨이큰은 국위원 관점에서는 우리 올드스쿨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공경민처럼 이른 시기에 개화를 하거나 재능 있고 똑똑한 사람만이 제주도로 갈 수 있는 영예를 받았다.
나머지는 중국에서 철저히 소모되었다.
그들의 능력이 대 몬스터 전선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인간 상대로는 대단히 까다롭고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정부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적대 노선으로 틀어진 이후부터 충전재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그들도 제주도에 갔다고들 하고 혹자는 그들이 옷을 벗고 사회에 흘러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혹자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처형당했다는 섬뜩한 가정을 은밀하게 뇌까렸다.
그런데 현실은 사람들의 상상을 늘 비껴가는 법이다.
어떤 가정에도 속하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의 후배다.
*
Foxgames : 슬슬 신작이 완성되어 간다.
폭스게임이 신작을 공개했다.
뭔가 싶어 보니 문자의 나열이다.
<몬스터파크 - 로비>
이곳은 몬스터 파크의 로비다.
대단히 드넓은 공간으로 중앙엔 수천 개의 보석을 박아넣은 듯한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다.
당신은...
(동) (서) (남) (북) (휴게실)
으로 갈 수 있다.
이게 전부다.
뭔가 싶어 댓글을 달아보았다.
SKELTON : (스켈톤 의문) 뭐냐. 이건?
그런데 거의 나와 동시에 댓글을 단 친구들이 있었다.
ㅇㅇ : 이거 머드 게임 아니냐? 진짜 오랜만이네.
tntn_Orthopedics : 와 이거 고등학생 때 한 거랑 비슷해 보이네?
익명848 : 온라인 게임 할아버지뻘 정도 되는 친구들이지
익명458 : 재미없어 보이는데
unicorn18 : 미소녀 나옴?
익명848을 비롯한 나이가 있는 유저들은 이 게임이 어떤 건지 아는 눈치였다.
전쟁 전에 흔히 하던 온라인 게임에서 화려한 그래픽을 제외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원시적인 형태의 온라인 게임이란다.
Foxgames : 나 혼자서 개발하는데 아트니 도트니 혼자 다 할 순 없잖아? 잘하지도 못하고. 차차 개선하면 되는 일이고, 일단은 모두가 모여서 예전처럼 넷상에서 플레이 할 수 있는 다중접속 게임을 만들어보았어.
Foxgames : 그래픽이야 차차 개선해야지. 우리 게시판이나 페일넷 쪽에 능력자가 있으면 좋고.
폭스게임이 직접 해명하자 이내 게시판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ㅇㅇ : 야, 시발 온라인 게임? 글자만 있는 틀딱게임이긴 한데 온라인 게임이 어디여
ㅇㅇ : 그러게 말이야. 좆망해가는 세상에서 온라인 게임? 못 참치!
tntn_Orthopedics : 재미는 보장해. 내가 재수할 정도로 푹 빠졌으니까.
익명1001 : 싱글 플레이보다는 멀티 플레이가 재밌지.
keystone : 게임은 됐고 우리 집 앞에 있는 피난민부터 어떻게 해 봐
...
...
하지만 내가 보기엔 좀 별로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저 문자의 나열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거기다 재미는 있을까?
저거보단 현재 디펜더가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고 있는 아이엠지저스의 고전 게임이 수백 배는 재밌을 것 같다.
“······.”
나는 인터넷에선 적극적인 행동가이자 직언하는 사람이다.
타닥타닥
SKELTON :흠... 그 정도인가?
할 말은 해야지.
그런데 역풍이 거세다.
ㅇㅇ : 이 노잼새끼 또 청개구리짓 하네
익명781 : 이 새끼는 한결같네
roka3218 : 님
mmmmmmmmm : 동탄맘하고 저 놈하고 같은 배를 탔었어야 했는데....
kimcic : 낳낫 낳낫 낳낫 낳낫
gijayangban : ?
...
...
이게 전부가 아니다.
Foxgames : 스켈톤 넌 안 시켜 줄겁니다...
“?”
이 박규, 게임 오픈 전부터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만 것이다.
황급히 변명을 하려고 키보드를 두들기려 할 때였다.
K-워키토키가 느닷없이 발신음을 토해냈다.
“거~. 이쯤인가. 계신가? 있으면 대답 좀.”
귀에 익은 목소리다.
남성의 목소리다.
누굴까.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니다.
한 번에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
무전기에 찍힌 주파수를 확인했다.
공용 주파수다.
그때 다시 무전기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어이! 박선배! 나라고. 영재! 기억 안 나?”
그 말을 들은 나는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세상 다 산 것마냥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뭔가 나사가 빠진 듯한 이상한 녀석.
18기 천영재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일전에 만났을 때 날 찾아오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건성으로 넘겼는데 진짜 온 건가.
게시판의 일이 대단히 신경이 쓰이지만 이 박규는 현실과 인터넷 세상을 엄격히 구분하는 사람이다.
총기를 들고 슬그머니 잠망경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비상 통로로 빠져 나와 2번 더미 방공호 안으로 들어가 그곳의 관측창을 통해 북쪽 능선 아래 펼쳐진 황무지를 돌아보았다.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아! 찾았다! 박 선배! 있으면 대답을 해!”
뭘 찾았다는 건지.
나도 모르게 무전기에 대고 한소리 하려다 곧 황무지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이쪽으로 오는 걸 보았다.
틀림없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소총을 든, 보폭이 유난히 넓은 저 일견 살벌해 보이는 사내는 내 후배 천영재다.
그런데 이 친구, 이쪽으로 똑바로 오고 있다.
심지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기까지 한다.
“뭐냐. 이건?”
주변을 보았다.
일행이나 패거리는 없다.
혼자다.
하지만 녀석에겐 총이 있다.
설마, 날 죽이고 내 방공호를 뺏으러 온 건가.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발걸음이 가볍고 썩소에 가깝지만 아무튼 미소도 짓고 있다.
“······.”
메인 방공호로 돌아가 잠망경으로 확인했다.
천영재의 모습은 사라졌다.
똑바로 오고 있다면 사각이다.
그를 관측하려면 언덕 위로 올라가야 아래 가파른 경사를 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왜 사람이 왔는데 대답이 없어? 내가 말했잖아? 찾아가겠다고.”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그러고보니 오겠다는 말을 했었지.
그런데 나는 내 위치를 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
갖가지 경우의 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의 섬뜩한 가능성이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 친구가 만약, 김다람 쪽 사람이라면?
김다람의 지시를 받고 날 죽이러 온 것이라면?
나도 그를 죽일 수 있지만 그도 날 죽일 수 있다.
일단은 지켜보는 게 나으리라.
내 방공호 옆엔 더미 방공호도 있으니.
거기서 엄한 짓을 하면 폭탄을 터뜨려버리면 그만이니까.
“아, 뭐가 이리 가팔라. 힘들어 죽겠네. 옷에 도깨비 발톱 달라붙은 것 좀 봐. 젠장.”
천영재가 떠드는 소리는 무시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의 말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 있고 그의 총기가 어디를 향하느냐다.
감지 센서가 점멸했다.
북쪽.
역시, 절벽에 가까운 언덕을 그대로 기어 올라온 모양이다.
제정신이 아닌 놈인 건 알고 있지만 편한 길 놔두고 일직선으로 오다니, 저돌적인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느낌.
곳곳에 부착한 감지 센서는 그가 북에서 내 방공호 쪽으로 그대로 오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그런데 현재 내 메인 방공호의 입구는 없다.
그가 볼 수 있는 입구는 페이크 방공호, 내가 판 죽음의 함정뿐이다.
그런데.
“선배. 여기 있지?”
그는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멈췄다.
페이크 방공호 같은 건 문제되지 않았다.
센서에 따른 경로를 보면 그는 내 페이크 방공호를 찾지도 못했을 테니까.
즉, 그는 똑바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일직선 경로로 온 것이다.
“······.”
순간 드는 생각 하나.
이 친구.
어웨이큰이었나.
그러고 보니 갑옷을 두른 원숭인인지 침팬지 하는 놈과 싸울 때 천영재는 시야에 없는 건물 너머의 뮤테이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름의 속도와 공간지각에 대한 센스의 결과로 보였는데 감지 능력이었던 모양이다.
상상도 못했다.
어웨이큰 적격을 가진 자가 올드스쿨로 남은 채 도태되는 길을 택할 수 있다는 게.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전해 듣긴 했는데 진짜 까탈스럽긴 하네. 자, 총 풀었어. 탄창도 뺐고.”
바로 위에서 탄창을 빼고 총기를 버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볼 수 없는 것이다.
폐쇄회로 화면은 메인 방공호 입구, 차고, 저유고, 발전기, 냉동고 등 내부만을 비추고 있을 뿐이니까.
“어떻게 해야 대답하려나. 아, 이거? 환풍구지? 나 여기에 오줌 싼다?”
“시발련이?”
즉시 총기를 들고 비상 방공호를 향해 밖으로 뛰쳐 나왔다.
내 메인 방공호 바로 위, 천영재는 지퍼를 내린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모든 무장을 해제한 상태였다.
그가 웃으며 날 불렀다.
“박 선배!”
“······너 뭐냐?”
나의 물음에 천영재는 씨익 웃으며 바지의 지퍼를 올렸다.
“어웨이큰이야. 나.”
어웨이큰이라는 말을 한 직후 그는 자조어린 미소를 머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잡웨이큰이긴 하지만.”
*
“이야. 이게 박선배 방공호야? 장난 아니네. 진짜. 씨발. 프로페서 답네. 이게 개인 방공호? 뭔 지하에 성을 지어놨구만.”
이 녀석을 방공호 안에 들여 보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가방이네. 아가방.”
“잘나가다 뭔 아가방이냐?”
“아, 아방궁. 그런데 변기는 왜 저런 곳에 있어?”
그가 소파에 앉았다.
그에게 비키라고 하고 앞에 있는 목욕탕 의자를 가리켰다.
천영재가 목욕탕 의자에 앉는 걸 보고 소파를 차지하며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찾았냐?”
가볍게 던졌지만 중요한 문제다.
어떤 의미로는 본질과 닿아 있다.
본질이 서로의 목숨이라면 말이다.
천영재가 내 총기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미군 총기를 들고 있더라고. 상태도 좋고. 이 사람, 저 무기 미군 기지에서 얻었구나 판단했지. 다음은 위치, 서울 기준으로 서남쪽에 있다며? 딱 그쯤에 미군기지가 있었지.”
급조한 변명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천천히 보리차를 마시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미군기지 주변으로 가정하고 전쟁 전 지도를 펼쳤지. 몇 군데가 보이더라고. 개인이 살 수 있는 땅, 물을 구하기 쉽고, 은폐가 용이한 곳으로 다시 추리니 세 곳으로 추려지더라고. 그런데 그중에 고지대를 가진 건 여기뿐이거든.”
천영재가 씨익 웃었다.
“여기밖에 더 있겠어? 역시 가까이 가니 반응이 느껴지더라고.”
“······머리 좋네?”
“나, 수석 입학자야. 공부 좀······”
“왜 왔냐?”
“온다고 했잖아.”
“뭐 하려고?”
“그게······.”
“미리 말해두는데 내 방공호에 빌붙으려고 왔다면, 택도 없다.”
“어. 안 되는 거야?”
천영재가 이쪽이 미안할 정도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되물었다.
“절대 안 돼.”
“아니, 왜 안 돼?”
“젊고 예쁜 여자도 안 받아주는데 너를 왜 받아줘?”
“······와. 이렇게 넓은데.”
“치사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천영재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데 내가 좀 예민해. 델리케이트하지. 내 이야기 많이 들었다면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겠지?”
“아. 그러고 보니.”
천영재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 한 거냐?”
“아니, 박 선배. 좀 그렇다는 이야기 떠올려서.”
“하나만 말해 봐.”
“마음에 안 드는 팀원, 일부러 위기에 몰아넣고 죽였다던가.”
“그건 음해다.”
“중국 민간인 미끼로 쓰고 도망 나왔다든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전술적 판단이었다. 애당초 그 지대는 적과 민간인의 구분이 모호한 곳이기도 했고.”
천영재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실실 웃던 녀석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는 걸 보며 이제 슬슬 본론이 다가왔다는 걸 느꼈다.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너, 어웨이큰이라며?”
“응.”
“왜 학교에 보고 안 했어? 18기면 새로운 학교 1기, 즉 19기 바로 윗 기수잖아. 대접이 좋았을 텐데.”
천영재가 웃었다.
“내가 감이 좀 좋은 편이거든. 그러니까 어웨이큰적인 능력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게 대충 보이더라고.”
“그래, 그 고고한 시점에선 뭐가 보였냐?”
나의 물음에 천영재는 오싹할 정도로 싸늘한 냉소를 머금었다.
“음식물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