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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848이라는 사내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유쾌한 사람이었다.
카일도스, 익명458과 더불어 게시판의 감초 같은 사람이었다.
인터넷상의 인격 너머에 살인자나 강간범, 혹은 약탈자의 민낯이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불편한 현실이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났다.
상담과 중재는 나의 전공이 아니다.
하지만 이 느닷없는 해프닝에 휘말린 이상 이 박규도 중재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야 했다.
“전쟁 직후였어. 서울에 핵 세례가 떨어지고 궤도 상에서 핵미사일이 요격되어 낮에도 번개가 치는 것처럼 번쩍번쩍 하던 시절의 일이지. 그때 저 여자를 발견했어.”
익명848에게도 재주는 있었다.
담배를 재배하고 맛있게 마는 재주다.
그가 나눠준 잎담배는 제법 맛이 괜찮았다.
익명848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아는 여자였어. 인근 대학,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 자취하는 여자였어. 신입생이었던 거 같아. 편의점이 이 주변에 하나밖에 없어서 자주 만났거든. 그런데, 전쟁 전에 이제 갓 신입생인 여자아이가 나 같은 아저씨 성에나 차겠어? 그냥 예쁘고 참하고 몸매 좋아 은근슬쩍 훔쳐나 봤지. 그런데 말이야. 서울에 핵이 떨어지던 날 그 여자가 내 방공호 앞 버스 정류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더라고. 기회다 싶었지.”
익명848이 기억하는 둘의 만남은 인연의 연장이었다.
전쟁이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둘의 운명을 실처럼 꼬았다.
“집이 박살이 났대. 아마 죽었겠지. 아예 도시 자체가 없어져 버렸으니. 갈 곳이 없어. 아니, 어디에 갈 곳이 있겠어? 친구들도 연락이 안 되고. 서울이 연고지도 아니라서 서울에 가 봐야 여자 홀몸으로 몸 밖에 더 팔겠어? 그래서 받아들였지. 그렇게 해서 같이 살게 된 거야.”
둘은 몇 년간 잘 지낸 모양이다.
약간의 불편과 어색함이 있었지만 서로의 양보와 이해로 둘은 유사 삼촌 조카 관계로까지 발전했던 모양이다.
농사도 같이 지었고 작업도 같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의 파국은 어쩌면 익명848이 예진이라는 여성을 편의점에서 우연히 보았을 때부터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그날 술을 먹고, 시발. 나도 모르게 건드렸어. 그러니까 같이 잔 거지. 별 저항을 안 하더라고. 착각한 거지. 그녀가 날 드디어 받아들였다고. 그런데 씨발, 그때부터 우리 관계가 완전히 망가진 거지.”
익명848은 또 다른 궐련을 말아 피웠다.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후 방공호 안으로 들어갔다.
여성의 이름은 김예진이었다.
익명848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밝혔다.
익명848의 방공호는 꽤나 괜찮았다.
공장식 양산형이 아닌, 나처럼 공사업체를 불러 콘크리트 철근으로 만들었고 내부도 꽤나 넓었다.
다만 그 공간이 좁아 보이는 건 꽤 넓은 방공호를 둘로 가르고 있는 가림막 때문이리라.
한 공간은 익명848의 것이고 다른 공간은 김예진의 것이다.
같은 방공호 안이지만 사람의 색채에 따라 한 방공호가 그렇게 확연하게 다를 수 있다는 건 홀로 살던 내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예진은 자신의 화사한 영역, 인형이 놓인 매트리스 위에 쪼그리고 앉은 채 피폐한 눈으로 날 보았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도 그 사람 편이죠?”
“아저씨는 무슨. 이제 서른 하난데.”
“아저씨 맞네.”
“······.”
방공호 안을 보고 확신했다.
그녀의 말과 달리, 김예진은 여기서 꽤나 대우받고 살았다는 걸.
방공호의 절반이나 양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박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내 방공호 안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지 않는다.
왕들이 권력을 나누지 않는 것처럼 나도 방공호 안을 나누지 않는다는 이야기.
“솔직히 털어나 봐. 내가 뭐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
“그거 총이죠?”
그녀가 내 소총을 보았다.
“왜? 그 친구 쏴 죽이기라도 하게.”
“그러고 싶네요.”
“혼자 살 수 있겠냐?”
“네. 그럭저럭요.”
“약탈자가 이 근방엔 안 온 모양이지?”
“오긴 했죠. 아.”
김예진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 나쁘지 않았어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선반 쪽을 보았다.
거기엔 뒤로 돌려 놓은 액자가 놓여 있었다.
그 액자에 담긴 사연을 궁금해하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였죠. 아저씨를 알게 된 건.”
익명848과 달리 김예진이 말하는 이야기의 시작점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였다.
편의점에 있던 당시의 그녀, 대학 신입생으로서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던 그 희망 찬 시선엔 익명848 같은 아저씨는 기억의 편린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무가치했던 것이다.
흐름은 대체로 비슷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갈 곳도 없어진 그녀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을 안고 이곳에 왔다.
익명848이 그녀에게 잘 대해 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를 하고 협조를 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면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1년 전에 찍은 거예요.”
그녀가 뒤로 돌려 놓은 액자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 액자 속엔 프린터로 뽑은 그녀와 익명848이 담배밭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둘은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같은 피를 가진 사람처럼 닮아 보였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은 이미 사라진 이후였다.
“반년 전이었어요. 술을 먹이고······ 네. 강간했죠. 그럴 거 같았어요. 조짐이 보였죠. 하지만 제가 여기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죠? 밖에 나가도 아무도 없고 총성만 들리고 신고할 경찰도 없는데. 그렇다고 여길 떠나봐야 뻔하잖아요?”
김예진이 웅크린 채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흐느꼈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죠.”
“······.”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고개를 쳐들고 일어섰다.
“저, 데려가면 안 돼요?”
“나도 남자야. 저 친구랑 똑같은 짓을 할 수도 있어.”
“저 사람만 아니면 돼요.”
김예진의 젖은 눈에 증오가 도사렸다.
“······저 사람만 아니면.”
그녀를 뒤로 한 채 방공호를 떠났다.
방공호 바로 앞엔 어느새 익명848이 슬그머니 접근해 등을 벽에 등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걱정이 된 모양이다.
김예진을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수치심까지 잊는 걸 보면 말이다.
이미 답은 정해졌다.
그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캡슐, 어디에 있지?”
“캐, 캡슐? 갑자기?”
“캡슐 치우러 나 부른 거 아니었냐?”
“그렇긴 한데. 갑자기 이러니까 나도 경황이 없어서.”
먼저 모터사이클에 가서 헌터 무기를 꺼낸 후 그와 함께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캡슐은 과거 공립 유치원의 부서진 그네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잠깐, 저쪽에 서 있어.”
헌터 무기를 발치에 놓은 채 두 자루의 도끼를 꺼냈다.
“뭐, 뭐 하는 거야?!”
“보고 있어.”
캡슐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반사 역장이 펼쳐지며 나의 도끼는 어김없이 나의 경동맥을 노려왔다.
챙캉!
나의 도끼를 나의 또 다른 도끼로 막았다.
“······.”
캡슐은 안전하다.
팽팽하게 당겨진 마음의 끈을 느슨하게 풀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뭐야······?”
반사역장에 반쯤 잠긴 도끼를 빼내며 돌아섰다.
“가벼운 테스트야.”
“진짜네. 카일도스 말이 진짜야! 스켈톤 장난 아닌 놈이라고.”
“게시판엔 말하지 마라. 귀찮아 질 수도 있으니까.”
“스, 스켈톤! 너. 와···. 진짜 장난 아니다. 짱이야. 짱!”
캡슐에 먼저 들린 건 그가 엄한 생각을 못하게 하려는 계산도 있었다.
이 친구에게도 총이 있으니까.
이런 병든 남자가 쏜 총에 맞아도 사람은 죽는다.
캡슐을 들며 그의 협조를 구했다.
“좀 도와줄래?”
“어, 응!”
캡슐을 모터사이클 짐칸에 올려 놓은 후 하늘을 응시했다.
맑고 푸르고 높다.
천고마비의 계절의 하늘 느낌이 물씬 난다.
아직 본격적인 낙엽은 지지 않았지만 나뭇잎들의 푸르름을 조금씩 잃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른 나무보다 한 발 빠르게 갈색으로 물든 나무에서 나뭇잎 한 장에 바람결에 날려 아래로 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기도 하고 다시 솟구치기도 하던 그것은 곧 지구의 부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이미 추락한 다른 낙엽과 뒤섞였다.
그 장면을 보며 긴 침묵을 깼다.
“둘 중 하나는 여기를 떠나야 해.”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익명848이 날 돌아보았다.
“무, 무슨 소리야?”
“너나. 김예진. 둘 중 하나는 여길 떠야한다고.”
“아니. 스켈톤!”
“그게 답이다. 둘 중 하나가 이 방공호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해.”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익명848의 얼굴이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붕괴하는 게 보였다.
분노, 충격, 아쉬움, 욕망 갖가지 감정으로 소용돌이 치는 그의 얼굴을 냉담하게 직시했다.
그가 원한 일이다.
중재를 요청한 건 이 사람이다.
캡슐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에 익명848은 최후의 선까진 넘진 않았다.
대신 씩씩거리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떠나? 내 방공호야! 부모한테 의절당하고 잘나가는 동생들에게 손가락질 받아가며 만든 곳이야. 여기를 왜 버려? 너라면 네 방공호 버리겠냐?”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인데.”
방공호 쪽을 보았다.
김예진이 어느새 나무 옆에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은 끝났어. 둘 중 하나가 나가야 해.”
“네가, 네가 데리고 가려고?!”
익명848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 왜?! 여기 나가면 죽는 거 알잖아? 스켈톤!”
김예진을 불렀다.
그녀가 다가왔고 그녀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둘 중 하나가 떠나야 한다는.
익명848과 달리 차분하게 내 말을 듣던 그녀가 날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저, 안 데려갈 거예요?”
“응.”
“왜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요?”
그녀가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익명848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감정은 내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먹을 식량도 없어. 혼자 사는 주의고.”
“······.”
그녀가 마지막으로 간절한 시선으로 날 보았지만 나는 외면했다.
내 외면을 보자 그녀의 눈동자 또한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 그래요?”
그녀가 몸을 돌려 방공호 안으로 들어갔다.
익명848이 반색하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예진아. 여기 있을 거지? 응? 여기 남을 거지?!”
김예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주먹을 들어 보였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에겐 긍정의 신호같았다.
익명848이 환희에 찬 얼굴로 웃었다.
“그, 그래! 처음부터. 아니, 예전처럼 돌아가면 돼. 예전처럼······.”
익명848이 내게 기다리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들고나온 건 그가 직접 재배한 담배와 옥수수였다.
담배 종자도 섞여 있었다.
“담배 인사공사에 연줄이 있어서.”
상당한 값어치다.
그가 인심이 후한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
이대로 돌아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나의 게시판 친구다.
뭐랄가, 제3자의 입장에서 그의 미래가 너무 뻔하게 보였다.
“······그 여자에게 모질게 할 수 있냐?”
그에게 마지막 충고를 했다.
“뭐?”
“할 수 있냐고?”
“하, 하면 그만이지! 어렵나! 그게!”
“저 여자랑 있으면 넌 죽는다.”
“예진이가 나를? 날 죽인다고?”
익명848이 코웃음을 쳤다.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애야.”
현실을 부정하는 그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날 불렀잖아?”
“뭐?”
“인터넷으로 사람을 부를 수 있다는 건 그녀가 알았잖아. 이게 무슨 뜻인지 너는 이해 못하냐?”
이 친구는 인터넷 경력이 나보다 길다.
게다가 그는 이미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 사람을 죽이는걸 두 눈으로 보았다.
깨달음은 그에겐 비극이겠지만 필연이다.
“씨, 씨발······!!”
익명848이 뒷걸음질 쳤다.
환희는 온데간데없었다.
애당초 환상을 보고 만들어낸 것이니 사라지는 것도 빠를 수밖에.
“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그도 자신의 미래를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 그늘 진 얼굴에 선명하게 떠오른 억울함은 자신이 치를 대가를 아는 자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니.
“3년 동안 내 식량 함께 먹고 내 연료 같이 쓰고 안전하게 살았잖아? 게임도 하고 배도 안 곯고 응? 같이 웹툰도 보고 나들이도 하고? 김밥도 싸서 소풍도 갔어! 응? 그런데 왜······?”
“······.”
“내가 뭘 잘못 한 거야?”
모터사이클에 올랐다.
“김예진이 남자라면 네 방공호에 데리고 왔겠냐?”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 그게.”
익명848이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은 처음 본 것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주름 진 얼굴에 울상을 지은 채 그가 흐느끼며 말했다.
“······그냥. 내가 저 여자를 좋아하는 만큼 날 좋아해주길 바랬어.”
“간다.”
시동을 켜는 동안에도 그의 넋두리는 이어졌다.
“3년을 살았잖아. 가족처럼... 잘해줬잖아···.”
액셀을 밟았을 때 마지막 그의 목소리가 엔진의 굉음과 바람에 섞여 희미하게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전처럼 돌아갈 거야. 예전처럼······.”
글쎄.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한 번 파괴된 관계는 복구되지 않는다.
단지 아물 뿐이다.
두 사람의 경우엔 뒤틀림이 유독 심했다.
둘이 두 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혜인의 말마따나 둘의 운명은 처음 그들이 편의점에서 마주쳤을 때, 그러니까 익명848이 김예진을 보고 김예진이 그를 보지 않았을 때 이미 정해진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익명848의 영역에서 경험한 일이다.
이 일을 게시판에 올린 건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까, 우리 게시판에 추천이란 걸 해 줄 사람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던 시기에 말이다.
*
그날 이후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추천은 꼬박꼬박 박혔다.
가령,
SKELTON : (스켈톤 기상) 일어났다
SKELTON : (스켈톤 뷰티) 손톱 깎았다!
SKELTON : (스켈톤 지듣노) 레게파티
SKELTON : (스켈톤 메모리얼) 국물이 뻑뻑했고 고기도 많았던 삼미국밥집을 기억하며
SKELTON : (스켈톤 하품) 하아아아아~암
위와 같은 아무 내용 없는 글을 게시판에 싸질러도 추천 수 1이 올라갔다.
뭐,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 누군가 내 글에 추천을 눌러준다는 게 그리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걸 고깝게 본 뒤틀린 심성의 게시판 유저가 나의 추천 수를 걸고 넘어졌다.
keystone : 하, 스켈톤 이 새끼. 요즘 들어 급속도로 맛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자추까지 하네.
“자추라니.”
아주 가끔 나도 내가 쓴 글에 추천을 누르긴 하지만 모든 글에 자추를 누를 정도로 정신병자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놈 눈엔 모든 게 이상해 보인다고 익명848의 봉사가 자추로 보였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억울한 누명을 당하고 사는 건 손해밖에 없기에 이 스켈톤도 금기를 깨고 자추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추천 2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은주가 0도를 가리키던 날, 나는 문득 내가 작성한 글에 추천이 1만을 찍히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익명848을 검색해보았다.
4일간 글을 쓴 게 하나도 없다.
전쟁 이후, 하루도 안 거르고 댓글이라도 달던 사람의 활동이 끊긴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등받이를 뒤로 젖힌 채 목을 젖히고 천장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추천을 달아줄 친구 한 명이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슬프거나 아쉽거나 하는 감정은 없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것처럼 예고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