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13화 (113/183)

60. 변절자 (3)

전쟁이 시작 된 후, 중국쪽 군부대는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서울로 진격해 오성홍기를 내걸기엔 전력이 너무 부족했고 역으로 이쪽이 가서 처리할 정도로 대단찮은 전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라에서 마음을 먹으면 공군력이나 포병 화력만으로도 이들을 괴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보였다.

여기엔 사정이 있었다.

“핵을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조용히 본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테니, 우리가 갈 때까지 못 본 척을 해달라. 그렇게 해서 우리 상륙 부대는 불안하게나마 반도 끄트머리에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본국이 멸망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눈앞이 아찔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본국과의 연결이 끊긴 이후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게 자유였다.

한국 정부에서 허락한 그들의 구역을 벗어나는 것 외에는.

사실 벗어나 봐야 사방이 몬스터고 좀비고 뮤테이션이다.

전력도 그리 많지 않았다.

오백 명 남짓.

그마저도 곧 삼백 명으로 줄었다.

일부가 중국으로 가겠답시고 기어코 잠수함을 타고 바다로 건넜고 일부는 타향살이에 적응하지 못해 탈영을 하거나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대체로 온건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대한 증오가 있는 사람도 느릿하게 흘러가는 세월과 평화롭게 파도치는 파도를 보는 삶을 살면서 화가 누그러졌다.

그렇게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샹그릴라라고 이름 붙인 땅에서 영원히 살다 죽을 것처럼 보였다.

느릿하고 고즈넉하게.

하나의 무전이 평화로웠던 진중을 헤집어 놓았다.

-인천에 남은 전략 무기를 투사하라.

무전의 내용보다 의심스러운 건 그 출처였다.

의문의 무전은 본토에서 으레 보내던 암호화된 통신으로 날아왔다.

본토 군 수뇌부에서 쓰던 것과 같은 파장이었다.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여론이 둘로 갈렸다.

상부의 명이니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파와 무선의 출처가 의심스러우니 지켜보자는 입장과.

결국 승리한 건 공격을 하자는 쪽이었다.

그들의 숫자가 더 많은 건 아니었다.

좀 더 목소리가 크고 싸울 의사가 있고 같은 부대원에게 가혹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득세했다.

결국 그들은 하이난 쪽에 이 사실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부대 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으나 패배한 건 온건파였다.

십수 명이 죽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탈출했다.

마씨는 여전히 미심쩍은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그 무전은 누가 보낸 걸까요?”

마씨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 무선은 결코 중국에서 보낸 게 아닐 거라는.

“그거, 종철이가 보낸 걸 거야.”

운전석에 있던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식, 전부터 이상한 소리를 해대길래 그냥 무시했었는데······.”

“접선책이 보냈다고요? 그 사람이 어떻게?”

마씨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다에서 뭔가 주웠대. 중국 군함 통신장치인지 뭔지. 그걸로 사고를 일으켜보겠다고 신이 나서 떠들더라고.”

“······그 친구랑 연락 주고받는 모양이지?”

디펜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무선도 하니까. K-워키토키 같은 싸구려 말고, 진짜 장거리 무선 말이야. 세계로 통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허종철의 본거지는 도시 외곽에 있었다.

고철 더미와 쓰레기로 가득 찬 폐차장 앞에서 나는 디펜더를 돌아보았다.

“일단 이야기부터 할 수 있을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팀원이 죽는 걸 바라지 않는 모양이다.

“사람은 이상해도 괜찮은 의사야. 너도 봤잖아?”

여기까지 와서 허종철을 비호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야기가 가능하다면.”

천천히 차를 몰아 일전에 들린 바 있던 컨테이너 박스 성채로 향했다.

입구 쪽에 뮤테이션 개 한 마리가 사슬에 묶인 게 보인다.

놈은 우리를 보자 이빨을 드러냈다.

마씨는 그걸 보고 질겁을 했지만 내가 생각한 건 골드였다.

과연 무사할까.

그건 돌아가서 확인할 문제다.

차량이 멈췄다.

우리는 총기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동안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디펜더와 함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안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정호야.”

목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 안이 아닌 바깥쪽에서.

“여기는 왜 왔냐? 연락도 없이. 그것도 총까지 들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허종철였다.

디펜더와 시선을 교환했다.

“종철아.”

디펜더가 허종철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나는 녀석의 위치를 가늠했다.

바깥이다.

아마 그 투시 능력으로 우리를 컨테이너 벽 너머로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총 내려놔.”

허종철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총 내려놓고, 다리 벌린 채 뒤돌아 서. 이야기는 그때 가서 하자. 그 옆에 있는, 아, 전에 오신 분이네. 그쪽도 똑같이 하시고.”

그럴 순 없다.

허종철은 디펜더를 살려주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목숨이 달린 일에 타인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총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다분히 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총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벽 건너편에서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권총도 내려 놔.”

시킨 대로 하며 질문을 던졌다.

“삼백만 명을 죽이겠다고? 그것도 같은 나라 국민을?”

이에 차가운 코웃음이 저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내 귀가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위치를 바꾸고 있다.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전에 말하지 않았냐? 여기를 제주처럼 만들겠다고. 인구수를 줄여서 균열의 압력을 줄이자고.”

“이미 나타난 몬스터는? 당장 북쪽에서 몬스터가 몰려오는데.”

“안 오잖아? 안 오고 있잖아?”

“그건 알 수 없어. 중국만 하더라도······.”

“난 이 나라가 싫어.”

허종철이 매섭게 내 말을 가로 막았다.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왜?”

“싫어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어서, 돌아서. 다 보여.”

나는 투시 능력을 가지지 못해 그가 저 벽 너머로 보는 풍경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내 비장의 무기엔 트집 잡지 않았다.

“허종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라기보다는 반발에 가까운 숨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휘릭-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끼를 그의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에 대고 투척했다.

푹!

도끼날이 벽면을 뚫고 튀어나오는 걸 보며 즉시 아래로 굴러 총기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타탕!

방향은 허종철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방향.

연사된 탄환이 컨테이너 철판을 뚫고 길게 가로로 이어진 구멍을 냈다.

구멍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 속에 시커먼 그림자가 후다닥 달아나는 게 보였다.

“어억!”

다리에 맞은 것일까.

절뚝거리며 달아나는 게 보인다.

찰나의 승부였지만 위험한 승부였다.

허종철이 투시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는 컨테이너 벽을 활용한 건 마이너 어웨이큰이 쓸 수 있는 최상의 전략상이었다.

아울러 그는 헌터답게 기척을 지우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가 이기려고 했다면 우리가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일방적으로 총격을 가했어야 했다.

대화를 시도한 시점에서 그는 패배의 단초를 제공했다.

끝장을 내기 위해 재장전을 하고 다시 총구를 겨누려고 할 때였다.

디펜더가 내게 손짓했다.

“내가 잡아볼게.”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안 죽어.”

“같이 가자.”

함께 컨테이너를 나섰다.

그러나 컨테이너를 나서는 순간, 시커먼 무언가가 우리를 덮쳤다.

사슬에 묶여 있던 뮤테이션 개다.

허종철이 어느새 그 사슬을 끊고 그 개를 푼 것이다.

개의 아가리가 디펜더의 목을 그대로 씹어먹을 기세로 육박하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펼쳐졌다.

디펜더의 경악하는 얼굴 또한.

“······.”

자랑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은 수백 번도 겪었다.

여러 명의 동료를 눈앞에서 잃기도 했다.

소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탕! 탕!

안구에 다섯 발 정도 꽂히면 제 아무리 큰 녀석이라고 해도 나자빠진다.

뮤테이션 개는 터져버린 안구에서 피와 점액을 흩뿌리며 거꾸로 뒤집힌 채 경련했다.

조종간을 연사로 바꾼 후, 녀석의 연약한 복부를 향해 갈아버리듯 난사했다.

타타타타타탕!

버둥거리던 뮤테이션 개의 경련이 멈췄다.

디펜더와 마씨가 동시에 벙찐 얼굴로 날 보았다.

“스, 스켈톤!”

재장전을 하고 허종철을 찾았다.

그는 이미 저 멀리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중장거리는 내 보직이 아니지만 녀석의 등을 향해 잠시 총을 겨누었다 디펜더의 시선을 멈추고 총을 내려놓았다.

놈은 끝났다.

아마 두 번 다시 여기에 나타날 일은 없겠지.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씨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여기를 안다는 건 당신 동료들도 여기를 안다는 소리겠지?”

마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량에 탄 건? 그 헌터와 다른 군인들인가? 숫자는 몇 명쯤이지?”

“최소 15명은 타고 있을 겁니다.”

“헌터를 포함해서?”

“네.”

인천 시내도 아닌 외곽, 내 방공호도 아닌 남의 집에서 중국 정예 열다섯 명과 싸운다라······.

허종철이 없다지만 핵폭탄을 실은 트럭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심각한 문제다.

아예 못 오게 하거나, 돌려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우민희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녀는 다른 곳에 있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다른 군인에겐 이야기해봐야 내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그 트럭이 언제 올 지 알지 못한다.

“내가 가서 이야기 해볼까?”

디펜더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아.”

전투가 벌어진다면 한 명이라도 전력이 더 필요하다.

디펜더 자리를 비운 상황에 트럭이 온다면, 나로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죽음의 덫을 놓고 기다린다고 해도 화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바닥에 너부러진 뮤테이션 시체도 그들의 경계성을 곤두세우는데 한몫할 것이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상황을 타개한 건 이 모든 일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인이었다.

“저거!”

마씨가 뭔가를 발견했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중국어로 뭐라고 떠들 정도였다.

“암호 통신 장비입니다!”

“암호 통신 장비?”

“이걸로 그 사람이 우리에게 가짜 신호를 내보낸 모양입니다. 틀림없어요! 이 장비는 야전군 본부급에나 할당되는 장비니까요!”

“······.”

암호 통신 장비를 노려 보며 마씨에게 물었다.

“이거, 기동 가능한가?”

“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가 있는데?”

“음성 통신도 당연히 가능하죠. 그 사람은 어색한 중국어 발음이 두려워서 전보 형식으로 보냈을 겁니다.”

“잠깐, 연결 좀 해줄 수 있나.”

디펜더가 날 보았다.

“스켈톤. 중국어도 할 줄 알아?”

그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답했다.

“아니.”

“그럼 뭐 하려고?”

그때 마씨가 교신을 연결했다.

치지지직-

마씨가 내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연결 됐습니다.”

그의 퉁퉁 부은 얼굴엔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천천히 돼지 꼬리처럼 돌돌 말린 검은색 전선으로 연결된 마이크를 들었다.

곧 맞은 편에서 중국어가 들려왔다.

어조로 보아 관등성명? 소속 등을 확인하는 절차로 보였다.

잠자코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한마디 했다.

“띵호아~.”

맞은 편에서 굳은 침묵이 느껴졌다.

그들만이 아니다.

마씨와 디펜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게 보인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껄였다.

“탕수육 난자완스 니시팔로마~”

중국인들이 그제야 이상을 알아차리고 몇 마디씩을 내뱉는다.

의도한 반응이다.

자신감을 얻어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전매특허인 비트박스를 시전했다.

“북치기박치기 치기치기박치기 애미리스 차이나 피플 컴온.”

중국인들이 그제야 뭔가 알아차리고 뭐라고 외마디 고함을 내지른다.

“워싱빠찌찌. 워싱? 브라질리언왁싱~.”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았다.

“이러면 안 오겠지?”

“무, 무슨?!”

마씨를 돌아보았다.

“핵. 하나밖에 없다며?”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 돌아갈 거야. 이런 미친놈 상대로 교신했다는 게 까발려진 이상 안 돌아가고 배기겠어?”

디펜더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를 탁 쳤다.

“스켈톤. 너 천재야?”

“······.”

천재까진 아닌 것 같다.

사실 누구보다 중국인 트럭이 오는 걸 두려워하는 건 이 박규니까.

이 헛소리로 그들이 돌아가 주길 간절히 바라며 우민희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민희와 연락이 닿는 일은 없었다.

*

불안 속에서 밤을 새웠다.

허종철은 나타나지 않았고 트럭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인에게 다시 교신을 시도해보았다.

그들이 뭐라고 떠들며 일방적으로 단선했다.

마씨에게 물으니 그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욕을 하네요.”

그가 웃었고 나 또한 웃었다.

아무래도 이 스켈톤의 작전은 성공이었던 모양이다.

쿵-

암호 통신 장비는 충분히 할 일을 했다.

바깥에 내다 버린 후 망치로 부셔 뒤늦은 전역을 선사했다.

디펜더가 부서진 장비를 보며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종철이 그 새끼는 어쩌다 사람이 저렇게 돼버린 걸까.”

“······글쎄.”

답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어떤 나라에도 자국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하는 요리가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나라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으니.

허종철은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을 누구보다 증오했다.

그렇기에 그는 삼백만을 죽일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증오가 막연한 증오인지, 맹목적인 증오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전자라고 본다.

그가 한국인 전체에 맹목적인 증오를 느꼈다면 좀 더 다른 식으로, 적극적으로 이 나라를 끝장내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변절자라고 본다.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이유로 같은 민족을 싫어했다는 점에서.

그런데 변절자는 하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까 이유를 물어보셨죠?”

마씨가 내게 다가왔다.

“왜 제가 부대를 배신했는지?”

중국 군복을 벗어던진 그는 허종철의 옷장에서 꺼낸 양복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이제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겠네요.”

이제는 완연한 한국인처럼 보이는 그 사내는 폐차장과 그 너머에 펼쳐진 바다와 도시를 보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곧 꺼져가는 한숨과 함께 그 사내는 진정한 속내를 드러냈다.

“저도 내 나라가 싫습니다.”

그는 손을 흔들며 도시로 향했다.

외국인인 그가 한국인의 도시에서 무엇을 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속으로 조용히 그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그의 퉁퉁 부은 표정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명의 변절자라.”

떠나가는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겠다.

*

“방금 보냈어. 컬러 사진.”

다정이가 새롭게 찍은 뮤테이션 시체를 내게 보내왔다.

다행스럽게도 거기엔 골드도 새끼도 없었다.

하지만 골드 옆에 있던 암컷이 죽은 쥐처럼 뒤집힌 채 누워 있는 것이 눈에 밟혔다.

다정이가 보낸 다른 사진엔 골드 패거리로 추정되는 뮤테이션 개들이 황무지를 떠나 남쪽으로 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모처럼 원두커피를 내려 잔에 담은 채 언덕 위에 올라 커피를 음미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느덧 대지가 갈색과 황금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후.”

느릿하지만 내 주변의 세계도 변해간다.

바람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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