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변절자 (1)
Dies_Irea69 : 집단생존주의자의 전투력.jpg
디에스이라에.
게시판을 대표하는 집단 생존주의자는 아이엠지저스 영입전에서 가장 빠르게 이탈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공개한 게시물에 의하면 그가 이끄는 비바! 아포칼립스! 한국어 게시판 이용자로 이루어진 멸망주의자 집단은 최근 군단파 잔당으로 추정되는 일단의 군인들과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완벽한 승리.
사망자는 물론이고 부상자 한 명 없이 공동체를 공격한 군인들을 일망타진했다고 한다.
사진 속엔 치열한 전투 흔적과 너부러진 시신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신들은 어김없이 어깨까지 덮는 기장을 달고 있었다.
군단파 군인들이다.
Dies_Irea69 : 개인 생존주의자 말마따나 대형 세력 상대로 우리가 은밀함 쪽에서 불리한 건 맞아. 하지만 그 대형 세력이 우리 같은 소규모 집단을 전력으로 노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설령 온다고 해도 와보라지. 죽더라도 놈들 옆구리에 사시미를 박아줄 테니까.
디에스이라에가 다음에 올린 사진엔 저마다 총기를 들고 선글라스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내들이 저마다의 포즈를 잡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사진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얼핏 보기에도 험준한 산줄기였다.
“······흠.”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우리 게시판은 이제 우리 멸망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페일넷 친구들을 비롯해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집단이 호시탐탐 게시판을 염탐하고 있다.
디에스이라에 정도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런 식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적을 천천히 생각해보면 아주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터넷, 비바! 아포칼립스!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아닌 현실 세계에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디펜더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그 대립은 디펜더가 꽁무니를 빼는 형태로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하지만 디펜더가 부활했다.
한 가족을 제물로 삼아.
인터넷 민심의 호된 맛을 보고 느꼈는지, 아니면 네임드라는 특별한 지위가 그리웠던 건지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최근 디펜더의 영상은 뭐랄까, 공들인 흔적이 있다.
Defender : 드론 킬.avi
남매가 공개한 짧은 동영상엔 언젠가 그들 남매가 내게 이야기한 묘기를 담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풀밭 위를 숨 가쁘게 뛰어가는 총기를 든 남성의 모습이 담겨 있고 무언가가 하늘 위에서 그걸 쫓는다.
사내는 수시로 두려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망하고 다시 질주를 이어나가지만 화면 상단에서 갑자기 화면을 덮을 듯한 거대한 물체가 화면 전체를 덮더니 빠르게 떨어져 내리며 가려진 화면을 드러냈다.
그것은 벽돌이었다.
벽돌은 정확히 질주하는 사내의 정수리에 적중했고 그는 감전을 당한 것처럼 차려자세로 경직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흑백 사진보다 컬러 사진이 생동감이 있고 사진보다는 영상 쪽이 훨씬 더 시선을 잡아끄는 법이다.
디펜더가 새롭게 올린 드론킬 인증은 가볍게 디에스이라에의 “인증”을 짓밟고 위로 올라갔다.
어쩌면 디펜더의 영상에 삽입한 흥겨운 뉴웨이브 트로트곡이 인기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디에스이라에는 아무 말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게시판 인기에 연연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게시판 여론을 신경 쓰는 디에스이라에다운 처신이라고 할까.
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다행스럽게도 서로의 무관심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Defender : 인증
디펜더가 또 하나의 인증을 올렸다.
나는 그가 내 인터넷 친구지만 그의 인증을 가급적이면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매의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서 타인의 죽음을 인터넷 소재로 소모한다는 게 여전히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다름이었으니.
그런데 그 인증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무려 200개가 달렸다.
우리 게시판에서 실제로 글을 쓰는 활동 유저 전체를 합쳐도 안 나오는 숫자다.
페일넷 애들이 왔거나, 아니면 키보드 배틀이 벌어졌거나 둘 중 하난데 후자 쪽은 가능성이 옅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이 박규도 시류를 이기지 못하고 디펜더의 인기글을 클릭했다.
처음 화면을 채운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왜 이 글에 댓글이 200개나 달린 지 단번에 이해했다.
사진에 담긴 시체는 중국군 군복을 입고 있었다.
*
Defender : 질문받는다.
이 녀석들, 아닌 척하지만 비인기 유저 시절이 꽤나 서러웠던 모양이다.
그답지 않게 따로 게시글을 파서 모두의 질문에 대답하는 코너까지 마련한 걸 보면 말이다.
Defender : 대단한 건 아니고 소총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던 녀석이었어. 뭔가에 쫓긴 듯이 내 영역에 들어오더라고.
Defender : 뭐로 죽였는데 피 한 방울 안 보이냐고? 망치로 죽였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후두부를 함몰시켰지. 원한다면 메시지로 보내줄게.
Defedner : 중국 애들 보복이 안 두렵냐고? 그런 거 다 걱정하면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냐? 솔직하게 나보다 더 걱정되는 사람도 우리 게시판에 있는데.
Defender : 어차피 중국 애들이 이거 보고 열 받는다고 해도, 지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다시 핵이라도 떨구려고? 나는 내 영역에 침입한다면 중국 놈이건 미국 놈이건 한국 놈이건 아무도 안 봐줘.
디펜더의 질문 글을 한 차례 훑어보고 디펜더의 인증글로 다시 찾아가서 댓글을 달았다.
SKELTON : 우와······
두 글자와 말 줄임표에 천만 가지 감정을 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저나 중국인이라.
어디서 왔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디펜더의 인증이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 페일넷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ㅇㅇ : 속이 시원하네. 벌레 새끼 죽은 거 보면
ㅇㅇ : 아직도 살아서 돌아다니냐?
ㅇㅇ : 어디냐? 나도 가서 몇 놈 죽이고 오게
ㅇㅇ : 본진 처 망하지 않았냐? 왜 아직도 살아 있어?
ㅇㅇ : 저 새끼들만 아니었더라도 우리가 이렇게 살 일이 없을 텐데
ㅇㅇ : 그냥 치가 떨려. 대한민국 역사상 1도 도움 안 되는 새끼들.
...
...
페일넷의 반응은 분노 일색이다.
하나 같이 살의와 증오를 드러냈는데 그들의 증오는 내가 몬스터에게 가진 증오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우리 게시판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Berkut_Break : 디펜더가 죽인 중국인은 어디서 온 걸까?
익명848 : 당진 너머에 있는 놈들 아니야?
익명1131 : 새로 상륙한 놈인가?
tntn_Orthopedics : 탈영병 아닐까?
익명424 : 나도 탈영병이라는 생각에는 동의. 새로운 상륙부대라는 생각엔 비동의.
...
...
증오와 분노만을 터뜨리던 페일넷 유저와 달리 “전문 생존자 커뮤니티”답게 객관적이고 실리적으로 이 사태를 파악하려 한다.
그 흐름은 내가 우리 게시판 초기에 보던 장면을 연상케 하는 구석마저 있었다.
실제로 우리 게시판의 반중 정서는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다.
중국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남은 세계 전체를 나락으로 밀어 넣은 중국 – 대만 전쟁을 시작한 주범인 만큼 평균적인 한국인 정도의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페일넷처럼 죽은 중국인의 시체를 보고 오로지 증오만을 쏟아낼 정도로 원한이 깊은 건 아니다.
이건 아마 우리 게시판 유저들이라면 공감하고 있을 전쟁 전, 사회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 때문이겠지.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나처럼 전 재산 탈탈 털어 미래에 대비한 “멸망주의자”는 유튜브나 지상파 방송 등에서 밑도 끝도 없이 조리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박규는 감방에 가 있을 수도 있다.
명색이 프로페서라는 자가 돈 떼먹고 배 째라 하고 감방에 들어간 잡범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딱히 이 사안에 관해서 디펜더에게 연락을 취하진 않았다.
디펜더가 자체 개설한 Q&A글을 보고 원하던 궁금증을 풀기도 했거니와, 교신기에 손을 대려고 할 때 드론으로 벽돌을 떨어뜨려 도망치던 사람의 머리통을 깨부수던 영상에 삽입된 신나는 음악이 교신기를 만지려던 내 손을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다.
레베카 녀석들의 이사를 대비해 준비할 게 꽤 많다.
그럴듯한 오두막은 레베카 덕분에 지을 수 있었지만 그 안에 설치할 보일러니, 전선이니, 단열재니 마감 공사는 오롯이 내 몫이니 말이다.
스우도 내게 특별한 요구를 해왔다.
엄마랑 같이 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자신만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개인실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공사가 끝난 마당에 벽을 증설할 순 없고 적당한 합판을 구해 방을 만들어야겠는데 이것도 나름 설계에 관한 일인지라 나름 궁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구상과 노동으로 마무리하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할 때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골드의 영역에서 나는 아마 뮤테이션 개들이 내는 소리다.
사냥이라도 하는 걸까.
먼 곳에서 나는 소리고 하루의 피로가 너무 짙었기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적당히 세안을 하고 입을 헹군 후 수건을 어깨에 걸친 채 방공호로 나와 주변을 정찰했다.
방공호 주변엔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어제와 동일.
방공호 너머, 내 영역 주위엔 특이사항이 있다.
언덕 아래 개울가 옆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보통 내 영역 주변에서 산 사람이 발견되면 그 사람이 죽었는가 살았는가, 살았다면 무장을 했는가, 무장을 했다면 그 의도는? 동료는 있는가? 이런 식으로 끝없이 사고의 확장을 하며 내 영역을 보존하는 결론으로 치달았겠지만 이번은 다르다.
사내를 보는 순간부터 나로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 사내가 입고 있는 옷은 디펜더의 인증 속 시체가 입고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으니.
그렇다.
중국군이다.
총기를 들고 주변을 신중하게 정찰했다.
다른 중국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하루를 방치했다.
사내는 쓰러진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죽은 것일까.
아니, 죽진 않았다.
아주 미약하지만 흉곽이 주기적으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미끼인가?
중국과의 전쟁이 임박했을 때 언론에서는 중국인을 악마처럼 묘사했지만 중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나는 그들의 몸에 흐르는 피의 온도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어떤 중국인은 나보다 더 뜨거운 피를 가지고 있었다.
좌우지간, 동료를 미끼로 쓴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저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아울러 내가 미끼라고 해도 한낮의 땡볕과 춥다고 느껴지는 밤의 선선함을 고스란히 얇은 군복 하나만을 입고 미동도 없이 버티는 건 어려운 일.
우리 헌터는 군인처럼 일주일 생존 훈련 같은 인내심 훈련 같은 건 받지도 않는다.
뭐, 필요하다면 스스로의 의지로 인내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
총기를 들고 천천히 쓰러진 중국군에게 접근했다.
그의 무장은 없었다.
숨긴다고 해도 권총 정도가 고작이겠지.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총부리를 겨누었고 손이 닿을 정도로 접근한 상황에서도 총구는 단 한 번도 사내의 몸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
발로 차서 엎어진 사내를 뒤집었다.
“어억. 어억!”
순간 혀를 찼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철컥-
죽지 않았다면 죽일 수밖에.
중국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다.
살려 둘 이유가 없다.
언어도 다른 이 사람과, 그것도 동맹국도 아닌, 전쟁 중인 적국 군인을 살려서 어디에 쓰겠는가.
해악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사, 살려 줘.”
사내가 말했다.
제법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내가 그에게 베풀 수 있는 자비는 빠른 죽음뿐이다.
미간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에 걸치고 있던 손가락에 서서히 압력을 높이고 있을 때였다.
“서울이 위험해! 핵폭탄! 핵폭탄 터뜨린다고!”
군인은 쉬어버린 목소리로 헛물을 들이키듯 힘없이 소리쳤다.
“이 나라마저 끝난다고······.”
내가 그를 죽이지 않은 건 인정이니 인류애 같은 나이브한 이유는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떨쳐낼 수 없는 병적인 호기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