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코스모스
잠자리가 날고 코스모스가 피고 드문드문 자란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가끔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아마 중국 파견 초기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이 좀 더 밝고 희망이 있고 그리고 여전히 이계에 탐욕을 가지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임무 중 작은 부상을 입었다.
썩 대단한 부상은 아니었다.
약간의 찰과상과 뼈에 금이 간 게 전부였다.
하지만 당시의 세상은 살 만하고 여유가 있었기에 나 같은 경상자도 후방으로 운송해 극진한 간호를 받게 했다.
중국 정부는 어째서인지 우리에게 좋은 대접을 해줬다.
나와 같이 싸운 중국인 병사들은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야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우리는 이름 모를 중국식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최신식 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계절도 가을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중국인답게 정원엔 이름을 몰라도 시선이 머무는 각양각색의 꽃들을 심어 놓았는데 정작 내 시선을 잡아 끈 건 정원이 끝나는 지점, 공사 자재와 자갈, 정돈되지 않은 자갈밭 위에 드문드문 꽃을 피운 코스모스였다.
그 단순하면서도 수수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과할 정도의 화려함에 지쳐서 그 코스모스에 시선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우리를 이런 곳에 보낸 이유는 오래 지나지 않게 알게 되었다.
내 수발을 들어주던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던 중국인이 몇 번이고 은밀하게 전향을 권유했다.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돈과 아름다운 아내, 신분 보장은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명예까지 보장해주겠다고.
얼마나 그 유혹에 넘어간 지는 알 수 없지만 얼굴만 아는 동기와 선후배 몇 명이 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에 넘어가 오성홍기를 가슴에 달고 우리와 같이 작전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있다.
당시엔 중국이 가장 강성하던 시점이었다.
미국 조차 균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간 미국의 지나칠 정도의 자국민 우선주의에 지쳐 있던 동맹국들이 단체로 이반했다.
특히 유럽 쪽과 결별은 팍스 아메리카라는 한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유혹에 굴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느 날처럼 전장 조기 복귀를 희망하며 메디컬 체크를 마치고 일과처럼 정원 경계 너머의 코스모스를 보러 가던 중이었다.
내가 잘 아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말 한 번 섞지 않은 여자가 내가 바라보던 코스모스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혜인.
나와 이상훈 뒤에 이름을 올리곤 하던 여성이었다.
예쁘다기보다는 범접하기 어려운 외관을 가진 그녀는 늘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가 어딜 바라보고 있었던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실력자였다.
남자였다면 어쩌면 나조차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과 센스가 있었다.
실제로 팀을 이루고 자질을 겨루는 대항전에서 그녀는 거의 나를 탈락시킬 뻔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운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내 은사 장기영과 파워게임을 벌이다가 패배한 후 중국에 넘어가 모든 기술과 노하우를 다 팔아먹었던 고종범의 제자였다.
장기영이 양반이 못 되는 건 고종범은 물론이고 그 라인마저 씨를 말리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고종범 라인 - 특히, 그의 제자들은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전역에서 전투를 강요당했다.
나혜인도 그러한 불운한 라인 중 하나였다.
나는 그녀가 입원하기 전에 그녀가 소속됐던 팀이 전멸하고 그녀 혼자 살아서 이곳에 왔다는 걸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나와 달리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그 일부분엔 코스모스를 방불케 하는 색채가 번져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자 발걸음을 돌렸다.
생각을 해서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습관적인 회피였다.
“코스모스 좋아하지?”
그다지 귀에 익지 않은 목소리가 떠나려던 나를 붙잡았다.
“딱히.”
당시의 자세는 프로페서답지 않게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려는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
“거긴 어때?”
“거기라니.”
“네가 있던 곳. 거기도 몬스터가 넘쳐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자세를 바로 잡으며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옆얼굴은 꽁꽁 싸맨 붕대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 시선이 코스모스를 향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쪽은 상당히 많았어.”
내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던 건 그녀가 몬스터를 입에 올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몬스터라는 내 증오의 대상은 장기영이니, 고종범이니, 라인이니, 동기니, 그런 사소한 감정을 간단하게 불식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뭐에 당한 거냐?”
물론 지금 같은 세심함은 스무 살의 내겐 부족했다.
그녀의 팀이 전멸했다는 걸 알면서도 당시의 일을 후벼 파낸 걸 보면 말이다.
내 질문에 그녀가 보인 반응은 분노도 슬픔도 아닌 웃음이었다.
“너.”
그녀가 날 돌아보았다.
“진짜 몬스터 좋아하는구나.”
항상 먼 곳을 보는듯한 시선은 날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에 그녀가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정원에서, 재활시설에서, 그리고 정원 끄트머리의 자갈밭에서.
내가 그녀를 피한 건 그녀와의 만남이 불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원했던 건 오로지 빠른 전선 복귀였다.
한 놈이라도 몬스터를 죽이고 없애는 것이 홀로 이 세상에 남겨진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사명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전선 상황은 양호합니다. 아직 여유가 있어요. 완전하게 회복을 하시고 전선에 투입되도 늦지 않습니다.”
장기영의 사관학교 후배라는 파견대장이라는 작자는 나의 전선 복귀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곧 그 배려가 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가 장기영이 애지중지하는 수제자였기때문에 베풀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의 일부분은 장기영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그 인간이 만든 이론이라는 게 모조리 엉터리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엉터리 이론 때문에 이런 안락한 곳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혜인을 찾아갔다.
그녀에게 다짜고짜 용건을 이야기했다.
“팀을 바꾸자고?”
얼굴을 감싸고 있던 붕대를 푼 그녀의 모습은 퍽이나 아름다웠지만 당시의 내겐 그러한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내가 속한 팀에 네가 대신 들어가라.”
“지금 우리 팀에 나 말고 다른 팀원은 없는데. 사실상 해체된 거야.”
“어차피 재편성 될 거 아니야? 그 재편성될 팀에 들어가고 싶다.”
“······왜?”
그녀가 내게 묻더니 이내 그녀답지 않은 실소를 터뜨리며 자신이 답했다.
“몬스터가 좋아서?”
당시 나는 아무 답도 주지 않았는데 그게 그녀의 오해를 샀던 모양이다.
그녀가 날 찾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정원에서, 재활시설에서 그리고 정원의 끄트머리 자갈밭에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몇 번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만남이 싫지만은 않았다.
한국 나이로 치면 대학 1학년 즈음의 풋풋하면서도 모든 게 설레는 시기였으니.
이제 꽃잎이 몇 남지 않은 코스모스를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멀리서부터 다가와도 나는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이제 곧 겨울이네?”
그녀가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책이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그녀가 몰고 온 가벼운 바람에 위태롭게 버티던 코스모스의 꽃잎 하나가 떨어졌다.
“사람의 운명이 태어나면서부터 예정되어 있다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모든 행운과 비극, 심지어 죽음조차 미리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그 질문에 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나답지 않게 그녀의 말장난에 어울려주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블루레이나 음반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그녀가 멀리 보는 시선에 날 담으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글쎄. 혹 그렇다면 저장된 용량을 끝까지 재생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그 안에 다른 사람의 내용이 저장되어 있다면?”
그녀가 내게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겐 코스모스가 품지 못한 향기가 났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무의미하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을 보았다.
눈이 크고 번들거리고 때로는 쌍으로 겹쳐 있는 몬스터를 닮은 벌레들을.
“무슨 뜻이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는 지면을 보고 있었다.
“만약에 말이지.”
나혜인과 주저함은 양립할 수 없는 명제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우리의 운명이 처음부터 가깝게 될 거라고 예정되어 있고 우리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평범하게 평범한 사람처럼 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
“······그런 운명은 내게 없을 것 같다.”
딱 잘라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감과 실망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조기에 전선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의 나는 그런 놈이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알고도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좋은 그런 인간이었다.
그녀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팀을 바꿨어. 새로운 팀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고.”
“······그래.”
날 바라보던 시선은 다시금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던 그녀의 향기가 새삼스레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약간의 미련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만둘 거냐?”
프로페서 답지 않은 질문을 던진 걸 보면.
그녀는 뒷모습을 보인 채, 아마도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이후 그녀의 존재는 까맣게 잊혔다.
그녀가 속했던 격전구는 단 하루 만에 중국 일개 연대가 중대 수준으로 줄어들 정도로 사투가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핀 코스모스를 보고 잠시 잊고 있던 나혜인을 떠올렸고 그녀가 그만두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할까 망설이다 결국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의 팀원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다지 놀라움 없이, 자연스럽게 업무적으로 인사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당시의 그녀와 과거의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보기 드문 파란 하늘 아래 잠자리들이 날던 자갈밭 위에 핀 코스모스를 함께 바라보던 과거의 나혜인과 현재의 나혜인은 전혀 다른 누군가다.
그 위화감은 날 아닌, 나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 탓만은 아니리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여담이지만 내가 나혜인과 함께 코스모스를 보던 시절 먼 뒤편에 강한민이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그 둘은 각성했고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건, 균열 안에서 내가 장군 타입에게 치명상을 입고 실종됐을 때 그녀가 앞장 서서 날 버리자는 의견을 말해서가 아니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질서라고 한다.
질서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이미지가 다르겠지만,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의 안배에 의한 질서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른바 예정된 것.
그녀는 인간의 운명이 날 때부터 예정된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니까 나혜인의 논리에 따르면 그녀에겐 처음부터 구원자의 운명이 주어졌고 이 박규에겐 관망하는 은둔자의 운명이 주어졌다는 이야기다.
“······.”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이야기다.
타닥타닥
게시판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SKELTON : (스켈톤 사색) 인간의 운명은 날 때부터 예정된 것인가?
당연히 나혜인의 이름과 내가 헌터였다는 건 쏙 빼고 말이다.
과거와 달리 수준이 떨어진 게시판답게 나의 철학적 소고에 관한 글에 대해선 아무런 의견이 달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하나의 댓글이 달려 있다는 걸 발견했다.
gijayangban : 엄창이?
슬그머니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상쾌해진 기분이다.
운명이 예정됐건 아니건, 좆됐다는 감각은 이토록 생생하게 와닿는 것이니.
“······.”
들판에 핀 코스모스를 보며 빠르게 식어가는 한기를 느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