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판결 (3)
멸망기라고 해도 일요일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
중국에 있을 때도 상황이 어지간히 좋지 않은 이상 일요일은 꼬박꼬박 쉬었다.
그래도 매일의 루틴은 잊지 않는다.
새벽엔 텃밭을 가꾼다.
낮이 되면 햇살이 너무 뜨겁기에 운동 삼아, 소일거리 삼아 작물을 가꾸고 익은 거나 필요한 건 수확을 한다.
현재 내가 재배하는 작물은 상추, 오이, 무, 배추, 참외 총 다섯 종류다.
대파를 심지 않는 건 요리를 잘 하지 않아서다.
요리라는 게 결국 불을 쓰기 마련인데 불은 연료를 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특히 냄새를 많이 퍼뜨리니까.
적당히 익은 참외를 광주리에 담고 썩은 줄기를 가위로 잘라주고 잎 상태를 확인하고 휴식을 취했다.
휴식 장소는 집 아래 흐르는 개울이다.
부쩍 물이 맑아진 계곡물에 몸을 가볍게 씻어주고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굳이 에어컨을 쓰지 않아도 하루를 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솟는다.
그래도 밤이 되면 결국 에어컨을 틀고 말지만.
멍하니 흘러가는 계곡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음?”
뭔가 커다란 게 물속에서 움직였다.
물고기는 아니고 새우처럼 생긴 무언가다.
그런데 새우치고는 너무 큰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옆에 놔둔 소총을 들고 천천히 텀벙텀벙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자니 갑자기 뒤에서 K-워키토키가 울렸다.
“전에 거래했던 헌터분! 전에 거래했던 헌터분! 계신가요? 제 목소리 기억나시면 대답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급한 일입니다! 반드시 사례할게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만석이였다.
*
용무가 용무다 보니 이번에는 디펜더 없이 혼자 만석이네 상점으로 향했다.
“아. 헌터님!”
만석이는 가게 밖에 멀찌감치 나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컨테이너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
“······크게 한바탕했군요.”
성채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판대는 박살이 났고 핏자국과 대충 천으로 덮은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두 명이 지켰는데 여섯 명이 당했어요. 탄환 수백 발에 헌터 장비까지 썼는데도 생채기도 못 냈습니다.”
이 만석이라는 사내는 갖은 호들갑을 떨며 장사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차분하고 침착하게 피해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 모습은 아마 그가 회사를 다녔을 때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며 어제 벌어진 전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굳이 결론을 말하자면 만석이의 대패다.
도시 안에서야 막강한 갱단 두목이라지만 만석이는 도시라는 성벽 밖의 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도 몬스터를 멀리서 보고 가끔은 뮤테이션도 목격했을 것이다.
헌터라는 작자도 십중팔구 상대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겠지.
말만 헌터지 일반 병사와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니.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몬스터가 아닌 뮤테이션 정도라면 이쪽에서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과는 비참한 패배다.
상대는 평범한 뮤테이션이 아니다.
뮤테이션도 뮤테이션 나름이다.
갓 변이를 일으켜 덩치만 크고 힘만 강해진 녀석은 아프리카 사파리 사냥감들처럼 총알 세례를 받고 사냥꾼의 트로피로 전락하지만 거듭된 전투 속에서 인간을 죽여 경험을 쌓은 개체는 놈들이 인간을 트로피로 삼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나마 건재할 때 골드 패거리를 처리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만석이가 굳은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표적이 된 이상,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일대는 이제 놈의 사냥터니까요.”
“그건 어렵습니다.”
만석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를 묻기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사람이 빠져나가면서 우리가 관리하던 피난 캠프가 없어졌습니다. 다른 캠프는 이미 저 같은 놈이 장악하고 있는데 걔들하고 싸워서 얻는 게 없어요. 걔들이 관리하는 캠프도 뿌리부터 흔들리는데. 안전한 캠프는 빽 있는 애들이 꽉 잡고 있고.”
아무래도 그가 이 황야에 진출한 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하기 위함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황야에 쏟아져 나온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에겐 나름의 비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이 상점을 확보해야 합니다. 여기를 이 주변으로 쏟아질 사람들을 하나를 묶는 구심점으로 만들 생각이거든요.”
“구심점요?”
“이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둘 터 잡는다고 칩시다. 천날만날 총부리 대고 신경전 벌일 건 아니잖습니까.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도 아니고 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결국 주변에 사람들이 터를 잡으면 모일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거래도 하고 유흥도 즐기고.”
만석이가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깡패답지 않은 열의를 드러냈다.
“여기를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로 만들 겁니다.”
그의 꿈이 뭐든 간에 그가 이곳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도와주십시오.”
나 같은 자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나도 이곳에 마냥 선의만으로 온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게 전부입니까?”
그 뮤테이션.
훗이라는 녀석은 죽어야 한다.
골드 패거리가 야생동물 사냥으로 먹이활동을 이어나가는 반면, 훗은 오로지 인간 사냥만으로 먹이 활동을 하고 있으니.
경험을 쌓아 요령을 익히면서 인간이 가장 쉬운 사냥감이라는 걸 인지했을 것이고 어쩌면 인간 사냥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영역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만석이 상점이 당했다는 건 내 영역도 놈의 영역 안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다.
만석이의 부하가 묘사한 것처럼 소리도 없이 수백 킬로그램짜리 괴물이 허공에서 덮친다면 이 박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쥐나 토끼처럼 죽을 것이다.
“증원을 불렀습니다.”
“몇 명이 더 옵니까?”
“두 명요.”
“전투 경험은?”
“사람은 좀 패고 다녔는데······.”
“뮤테이션 최소 인간 상대로 총격전을 벌인 경험은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만석이는 시선을 돌렸다.
“아니오. 없을 겁니다.”
쓸 만한 친구는 없다는 건가.
하지만 최소한 고기 방패는 해줄 수 있겠지.
냉정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들을 이용해 훗을 죽일 것이다.
그것이 나와 내가 지키려는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고기 방패로 쓸 인간들이 인간쓰레기라면 뭐, 마음의 짐은 덜 수 있겠지.
“갑자기 왜 미소를 지으시죠?”
내 감정이 새어나간 모양이다.
“옛날 생각을 잠시 해서요.”
김다람이 내 생각을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언제는 고기 방패로 쓰는 인간들을 가려서 썼냐고.
부정하진 않겠다.
그때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팀원을 살리면서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그럼 슬슬 계약 조건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만.”
대가를 요구하는 건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기도 하거니와 내 서늘한 본심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제 저 험상궂은, 그러나 아이처럼 겁먹은 사내들을 장기 말로 써야 한다.
“전에 배터리 필요하다 하셨죠?”
만석이가 준비한 물품은 시원찮았다.
모터사이클만으로 실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다.
어쩔 수가 없다.
저쪽도 살림살이가 박살이 났는데.
선심 쓰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나마 온전한 가판대 위에 올린 상품을 가리켰다.
“저거.”
“아. 헌터 무기요?”
“네. 저것도 받을 수 있을까요?”
만석이의 얼굴에 잠시 고민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솔직하게 말해서 헌터 무기. 저도 어제 써봤는데 못 쓰겠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근접전 – 몬스터의 반사 역장 범위 내- 상황에서 몬스터를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치명타를 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서 만든 놈들이니.
백승현이 갖고 있던 대구경 라이플이야 뮤테이션 상대로 쓸 수 있겠지만 그것도 반동이 보통 반통이 아니다.
백승현 정도나 되니까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이지.
경험 없는 사람이 헌터 무기를 손에 쥐면 위험한 폭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헌터 무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만석이가 내게 내민 헌터 무기는 총 3개다.
블레이더 하나와 내가 눈도장을 찍어두었던 하푸나이저 두 정.
“하나만 받겠습니다.”
“정말요?”
“대신, 다음에 거래할 땐 잘 해주셔야 합니다?”
“아, 이분. 진짜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
만석이의 부하와 함께 컨테이너 성채 주위를 돌며 어제 급습한 훗의 행동 패턴을 내 나름대로 재구성해보았다.
성깔이 있는 건 확실하다.
반격을 했다고 여섯 명이나 찢어발겨 놓고 간 걸 보면.
심지어 죽인 사람의 머리를 컨테이너 박스 위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고 한다.
녀석을 죽여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찾으며 나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것들과 마주쳤다.
여자들이다.
겁에 질린 여성들이 컨테이너 안에 벌벌 떨며 고개만을 내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안내를 맡던 깡패가 말했다.
“동정심 가질 필요 없어요. 자업자득인 년들입니다.”
“그래요?”
“만석이 형님은 납치나 인신매매 같은 거 안 합니다. 대기업 계시던 분답게 계약 관계 확실히 따지시죠. 그냥 저년들이 멍청하고 못나서 저기 있는 겁니다.”
사다리를 타고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엔 내가 잘 아는 사내가 장대에 묶여 있었다.
알몸의 판사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토록 끔찍한 상황에 처했건만 그의 눈빛은 놀랍게도 또렷했다.
심지어 그는 날 보자 은은한 미소까지 머금어 보였다.
제정신인가.
아니면 광기의 형태가 저런 모습일까.
궁금해하며 컨테이너 위쪽을 돌아보았다.
“저기에 합판 같은 걸로 깔아서 컨테이너 위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헌터님.”
“그리고 잠깐 사람들 좀 모아서 작업을 해야겠는데.”
“어떤 노가다를 하면 될까요?”
“주변에 팔뚝 이상 되는 나무들을 모아주세요. 혹시 여기 공구 있나요? 전기톱이나 목공톱 같은.”
“찾아보겠습니다. 헌터님.”
위이이잉--
공구는 역시 좋은 것이다.
공구 하나가 인간 수십 명분의 일을 척척 해낸다.
목공톱과 깡패들이 모은 나무로 훗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끝을 창처럼 날카롭게 세운 가시 말뚝을 만들었다.
“각자 방어지점에 이걸 배치할 겁니다. 녀석이 우리를 덮치다 제풀에 고슴도치로 만드는 거죠.”
내 계획을 들은 깡패들은 모두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찬사를 내뱉었다.
“오오.”
“역시 프로 헌터님이시네.”
“대단합니다! 헌터 형님!”
헌터님에서 헌터 형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아예 곳곳을 가시 말뚝으로 도배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형님이 돼서 그런지 발언권도 훨씬 강해졌다.
만석이가 내 말을 듣더니 즉시 소리쳤다.
“여자들 풀어! 그년들도 일하라고 해!”
위이이이잉-
곳곳에서 가시 말뚝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주변을 천천히 돌며 사람들이 당했다는 장소와 살해당한 방법을 되새겼다.
녀석이 즐겨 쓰는 방법은 급습이지만 두 다리로 걸으며 부리만으로 사람의 정수리를 쪼개는 방식도 쓴다고 한다.
뒤에서 달려든 깡패를 날갯짓만으로 기절시키는 건 덤.
급습을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 괴물은 지상에서도 충분히 사람 한둘 정도는 가볍게 씹어먹을 정도로 강하다.
걸어 다니는 공룡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나저나 보면 볼수록 어려운 상대다.
공중전은 엄두도 못내거니와 지상전까지 강한 괴물이라니.
“······.”
급조한 말뚝을 설치한다고 사람을 몇백 명이나 먹어치운 괴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시 말뚝은 일회용이다.
한 번에 녀석에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그렇다고 밤에 보이지도 않는 놈을 상대로 2차 대전 마냥 탐조등 켜고 총알을 난사할 수도 없다.
탐조등도 없거니와 그렇게 총알을 써대면 내 영역에 쌓인 총알도 하룻밤 새에 거덜 난다.
떠오르는 답은 하나다.
“블레이더.”
블레이더.
격발 순간, 예리한 티타늄제 칼날 18개를 비처럼 쏟아내는 헌터 장비.
몬스터 상대로는 펀치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던 물건이지만 적어도 이런 싸움에서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블레이더라는 게 총알 대신 칼날을 채용한 대형 샷건이니.
제대로만 방향만 보고 격발한다면 뮤테이션 정도는 일격에 걸레짝으로 만들고도 남겠지.
오히려 블레이더의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인 눈먼 칼날이 도탄되어 이쪽으로 날아오는 걸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아무튼, 이 블레이더가 있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녀석을 먼저 발견하고 녀석이 범위 안에 있다는 전제 하에 무조건 내가 녀석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박규, 저 깡패 만석이를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다.
“아, 이거요? 블레이더라고 하죠? 나도 어떤 건지 알아요. 알지.”
만석이가 빙그레 웃었다.
“이건 내가 쓰려고.”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에게 본심을 읽히지 않기 위해 빠르게 단념하고 자리를 떠났다.
해가 지기까지는 3시간이 남았다.
여전히 깡패들은 컨테이너 곳곳에 말뚝을 박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비어 있는 컨테이너 위로 올라갔다.
“······.”
다시 알몸의 판사와 마주쳤다.
그는 날 또렷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시하고 내려가려고 하니 그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적절한 울림을 가진 청아한 목소리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의 사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친구 딸 죽였다는 사람 풀어준 건.”
“그래요?”
말을 섞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내 안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 그의 말을 받고 말았다.
알몸의 사내가 확신을 담은 시선으로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감방에 갇히는 걸 막는 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좆까!!!!!!!!!!”
컨테이너 아래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만석이의 것이다.
“야! 저 새끼 매달아! 저 새끼 미끼로 쓰게!”
알몸의 판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을 풀어줄 겁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판사로서 제가 내린 판단이니까요. 구속 사유가 불충분한 사람을 심증만으로 다 잡아 가둔다면 이 세상에······”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깡패들이 알몸의 판사를 꽁꽁 묶어 장대 위에 높이 올려놓았다.
만석이가 장대 아래에 LED 조명등을 깔며 날 향해 넌지시 말했다.
“그 부엉이 새끼가 이놈을 낚아채는 순간을 노려 블레이더를 쓰려고 합니다만.”
만석이게 내게 블레이더를 내밀었다.
“······해주시겠습니까?”
그 눈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