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04화 (104/183)

56. 부활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걸 믿는다.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진실이라는 건 그들이 생각하는 진실에 부합해야만이 진정한 진실이며 나머지는 하등의 논할 가치가 없는 거짓이다.

동탄맘의 각성이 생각한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건 그 이후에 다른 글을 올리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주도라는 마지막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ㅇㅇ : 그래서 동탄맘 걔가 누군데?

ㅇㅇ : 걔 말을 왜 들어야 해? 걔가 찍은 흐릿한 사진, 그게 뭐? 그게 중국이면 달라지는 거 있어?

ㅇㅇ : 동탄맘이 중국에 갔는데 박주혁, 정설우, 이민혜 같은 연예인 제주도 간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해?

ㅇㅇ : 위성 사진도 조작하는 애들이 배 사진 하나 조작 못할까?

ㅇㅇ : 죽은 줄 알았던 필크럼도 제주도 도착했다던데?

ㅇㅇ : 꼬륵이 니들 말은 대한민구 전체가 물에 가라앉아도 안 믿어. 안 믿어 줄 거야.

...

...

이것이 페일넷의 지배적인 반응이다.

파멸을 직접 보고도 그 파멸을 부정한다.

이빨을 드러낸 포식자 앞에서 고개를 얼굴이 처 박는 타조처럼 말이다.

모든 이가 타조의 삶을 선택하진 않았다.

일부는 들개의 삶을 택했다.

그들은 나라에서 만든 사육장을 탈출해 광야에서의 새로운 삶을 도모하려 했다.

게시판에서 “새로운 피난민”의 발견이 곧곧 보고됐다.

익명883 : 이거, 익숙한 그 느낌인데.

RKKArA : 그러게

Keystone : 아니 씨발 몇 개월 잠잠하다 싶더니

Lone_wolf : 시즌 2인가.

...

...

백승현이 일으킨 파문은 찻잔의 소용돌이로 끝낸 게 아니다.

더 크고 더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사실 이는 예고되었던 재난이다.

단지 거인의 죽음이 억지로 연장됐기에 유예되었을 뿐.

철컥-

잠깐의 평화는 끝났다.

이제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찾아오겠지.

공교롭게도 이 시대의 갈림길에서 내가 떠올린 건 나의 인터넷 친구, 디펜더였다.

*

존내논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피할 수 있었을까.

ㅇㅇ : 비바! 아포칼립스! 게시판 검색 결과 방공호가 있을 만한 위치 특정 해 봄

ㅇㅇ : 원숭이도 따라 할 수 있는 결박 매듭 묶기

ㅇㅇ : 판사킬러 활용법.

ㅇㅇ : 비바에서 죽이고 싶은 놈.list

ㅇㅇ : 미군 교본 - 벙커 진압 전술 (1)

ㅇㅇ : 사람(특히 여자) 때려서 굴복시키는 법

ㅇㅇ : 비바 새끼들은 아스퍼거 독거노인들이라 두 명 이상만 있어도 입구만 찾으면 걍 방공호 겟임.

ㅇㅇ : 인간 해부도.jpg

...

...

그의 빛이 악의로 물들어가는 걸.

우리에게 맹목적인 적의를 가지거나, 반인륜적인 정보를 교환하던 자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당시에 그들은 게시판 인기 순위 저 아래에, 버려진 곳에서 그들끼리 음습한 취향을 교환하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나 백승현이 몰고 온 광기는 빠르게 페일넷을 잠식했고 음지에서 활동하던 자들을 양지로 끌어냈다.

그 단초가 된 건, 진저리나는 제주 선단 옹호 - 바판 대전이 아닌 전혀 새로운 유형의 글이었다.

ㅇㅇ : 원숭이도 따라 할 수 있는 방공호 뺏기 사용설명서

-준비물 : 다섯 명 이상의 사람과 총기

-출구를 모두 파악할 것

-환기구에 최루탄을 넣으면 대부분 무력화

-똥냄새를 찾아라

-위성장비 생김새 – 죽순처럼 땅 조금 뚫고 뾰족 튀어나온 놈을 주시!

-자폭을 할 수도 있으니 살려준다는 미끼로 대화를 유도

-비바! 아포칼립스! 게시판에서 위치 역탐지하기

...

...

잘 쓴 글은 아니다.

내용도 형편없고 부실하다.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다.

사람들이 제주 선단 글에 질릴 무렵 갑자기 인기글 순위에 등장한 이 글은 순식간에 수천 개의 댓글을 받으며 인기 글 상위권에 도약했다.

우리가 페일넷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라는 건 처음부터 예정된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안한 동거가 계속될 수 있었던 건 희망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무너지려는 조짐이 보이는 현재,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순서일지도.

gijayangban : 인천에서 다수의 사람이 빠져나간 건 사실이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우리가 레벨 업 한 것처럼, 그 친구들도 레벨 업한 사람이니.

기자 양반의 말은 핵심을 관통했다.

우리도, 그들도 레벨 업이란 걸 했다.

잔인함에 익숙해지는 것,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것, 나를 타인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 이기심을 가질 것.

두 번째 피난민 행렬이 첫 번째보다 쉽지 않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우리가 게시판을 통해 생존 정보를 교환한 것처럼 그들도 페일넷을 통해 약탈 정보를 교환하고 도시를 나선 것이니.

기자 양반이 오후에 한 장의 사진을 더 올렸다.

그 사진 안엔 인천을 빠져나가는 각양각색의 차량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탕! 타타탕!

먼 북쪽에서 총성이 들려온 건 새벽 무렵이었다.

일전에 반강제적으로 쫓겨난 개척자가 장악한 지대에서 나는 소리다.

총성이 잦아드나 싶더니 아침경에 다시 격렬하게 이번에는 세 군데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

개척자가 우회 병력으로 측면을 공격했거나, 아니면 피난민이 비슷한 전술을 구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탕!

저격수의 영역에서 실로 오랜만에 총성이 들린 건 정오 무렵이었다.

“차량 한 대가 무작정으로 이곳으로 접근해서.”

레베카가 교신으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개솔린 차? 작은 거 한 대였어. 총격을 받고 도망갔어. 다른 차는 없었어. 승객은 두 명 이상? 뒤 칸은 안 보였어.”

두 번째 피난민의 특징이 여기서 드러났다.

차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지만 무서운 사실이다.

차가 있다는 그 자체로 기동력이 있다는 걸 뜻하니까.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나만이 아니다.

다른 게시판 유저들도 저마다 두 번째 피난민들이 “기계화” 됐다는 걸 강조했다.

아마 그건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도보로 대도시를 떠나 교외로 향하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예전처럼 걷기 운동하는 시대도 아니고 발이 느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지천에 널린, 몇 마리일지 모를 뮤테이션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수십 명 규모의 집단도 간단하게 와해되는 법이다.

아마 기자 양반이 말한 “레벨 업”엔 이러한 교훈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겠지.

부릉---

경운기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엔진음이 내 영역에서 울려 퍼졌다.

하얀색 밴이다.

제대로 된 기름을 먹인 게 아닌 지 뒤편에서 소독약제를 살포하는 것마냥 시커먼 연기를 피어 올리며 논밭을 가로지르고 있다.

대체 뭘 하나 싶어 지켜보고 있자니 차에서 사람이 내렸다.

안경을 낀 남성 하나와 마찬가지로 안경을 낀 여성이 각각 차에서 내렸다.

뒤이어 아이로 보이는 아들과 딸 하나가 따라 내렸다.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전에 자주 보던 모습이다.

내 영역 아래 계곡에 찾아와서 단란한 한때를 즐기고 가던.

그러나 그런 평범한 가족의 손엔 제각기 총이 들려 있었다.

남편이 드론을 띄웠다.

“······.”

천천히 방공호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타고 온 차량만큼이나 너저분하고 시끄러운 드론 한 대가 내 영역을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보였으려나.

그건 알지 못하겠지만 그 가족을 태운 차량이 내 영역으로 직행한 건 사실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철컥-

선택지는 하나겠지.

내가 죽거나, 그들이 죽거나.

일부가 죽는 선택지는 없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살아난 일부가 나의 죽음을 가져올 것이기에 내가 죽는다는 선택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 이거 봐! 있어! 방공호야! 방공호!”

지극히 평범한 남성이 내 더미 방공호를 발견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 눈에 비친 건 을씨년스러운 폐허 뿐이겠지.

“뭐야. 이 방공호. 이상해.”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변기가 왜 저런데 있어? 변태가 살던 집 아니야?”

잠시 고민했다.

“······.”

이들을 전부 죽이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아이들의 소리가 내 살심을 가라앉혔다.

“아빠. 여기야? 이 방공호가 이제 우리 집이야?”

“원래 있던 놈은? 죽였어?”

“레벨 업”의 대상엔 아무래도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긴 멸망기의 아이들인데 멸망기의 방식으로 자라나는 게 맞는 것이겠지.

잠자코 있었다.

동작 감지 센서가 쉴 새 없이 점멸하지만 총기를 쥔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침입자의 반응을 살폈다.

원치 않은 불청객이지만 오히려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문외한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방공호의 은밀성과 더미 방공호의 효과를 확인해 볼 귀중한 기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부.

미숙하다.

“여보. 우리 여기서 살까?”

“어떻게 이런 데서 살아. 물 찬 거 좀 봐. 딱 봐도 공격당해서 다 죽고 버려진 곳 아니야? 제대로 돌아가는 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그런가. 페일넷에서 본 것과는 좀 다르네?”

“여기 말고 전원주택이나 찾아서 들어가. 거기가 더 꿉꿉한 지하보다 훨씬 낫지 않아?”

그때 한 마리 새가 푸드득하며 부부의 뒤편에서 날아 올랐다.

“꺄악!”

“왁!”

둘은 동시에 뒤를 돌아 총격을 가했다.

그들의 공포가 가라앉기 전까지.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그러게 귀한 총알만 낭비했네. 이제 탄창 두 개밖에 안 남았는데.”

“지랄 맞은 동네네. 여기는.”

맥빠진 표정을 지으며 부부가 주저 앉았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다가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해댔다.

“내 사탕 없어졌어. 내 사탕! 누가 가지고 간 거야?”

“차 안에 찾아봐. 어딘가 있겠지. 사탕에 발이 달렸겠어?”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엄마. 힘들어. 우리 오늘도 차에서 자야 돼? 그냥 피난소로 가면 안 돼?”

“그건 안 돼.”

“싫어. 애들 보고 싶어. 나는 왜 시트지 검은 색이야?”

“그걸 왜 나보고 탓해. 하루만 더 돌아보자. 진짜 괜찮은 방공호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대목에서 비밀 통로를 통해 그들 앞에 나서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말해주고 싶었다.

인천으로 돌아가라고.

그곳에 기다리는 게 죽음뿐이라고 할지언정, 이 가혹한 광야에서 당신 같은 사람은 일주일도 못 버틴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혹시 아나.

인천에서 생존의 달인과 친해져서 팀을 이루게 될지.

적어도 이 부부만으로는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나설 수 없는 건, 아까 말한 선택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겠지.

나의 존재가 알려지는 건, 나를 죽이는 것이니.

나는 내가 죽을 바에 다른 사람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아쉬운 듯 더미 방공호 주변을 돌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오히려 그들은 내가 참고할 만 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방공호 이상하지 않냐? 왜 환풍구도 없지? 방공호 공략 매뉴얼을 보면 환풍기 하나는 반드시 달려 있던데.”

“버려지면서 없어졌겠지.”

“구멍 같은 거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안 보이잖아?”

더미 방공호에 더미 환풍구를 만드는 계획이 즉석에서 수립됐다.

어려운 공사는 아니다.

대충 PVC관 하나 매립하고 고장 난 덕트 하나 달면 끝인 문제다.

“기름 얼마나 남았어?”

“벌써 반이나 썼네. 왜 이렇게 빨리 달아?”

“기름이 이상하니까.”

내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부부는 경운기 소리처럼 시끄러운 소리와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차량을 끌고 내 영역을 떠났다.

그들이 남긴 타이어 자국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이걸 지울 것인지, 남길 것인지.

지우는 게 좋겠지.

위장이란 건 한두 번이나 통하는 거지 끝없는 손님 러쉬 앞엔 별 재미는 못 보는 옵션이니까.

그 차량은 서쪽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일전에 내가 생각한 디펜더의 영역이다.

교신기를 켜고 디펜더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취했다.

“어이. 디펜더. 그쪽으로 차량 한 대 간다.”

디펜더는 그러나 답변이 없었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섬뜩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불청객이 남긴 타이어 자국을 지우는 게 내겐 더 급한 일이었으니.

대빗자루로 타이어 자국을 슥슥 문질러 지우던 중 싸구려 캔디가 눈에 들어왔다.

[ 대한민국 정부 제공 ]

이게 그 아이가 놔두고 간 캔디인가.

돌려줄 생각도 해봤지만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아 원기보충을 위해 내 입으로 가지고 갔다.

“······.”

싸구려군.

결론부터 말하겠다.

내게 더미 방공호의 효용성과 그 보완점, 그 반대급부로 내 영역의 평온을 깨고 내게 맛없는 캔디를 남겼던 가족은 불과 몇 시간 후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

Defender : 인증

방금 전에 본 사람이 죽은 모습으로, 그것도 흔한 인터넷 떡밥으로 소모되는 걸 보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Defender : 뭐라고 지껄여도 관계없어.

Defender : 내가 요즘 조용했던 건 이사를 해서지. 저스티스 민? 그 새끼는 워낙 악질이라.

Defender : 아무튼, 내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난 이상 내 인증은 계속될 거다. 깔려면 까. 어차피 싫어할 새끼들은 계속 싫어하잖아?

디펜더가 돌아왔다.

그답지 않게 장문의 해명까지 곁들여가며.

확실히 인기글이라는 건 타이밍인 모양이다.

디펜더의 복귀글은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추천수를 올리며 인기글에 등극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네임드가 된 시기도 피난민이 한창 문제 되던 시기다.

게시판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쫓겨났던 디펜더는 과거와 비슷한 흐름 속에서 그를 네임드로 만든 방식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자리에 복귀한 것이다.

“······.”

인터넷 친구의 화려한 복귀를 보고도 내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았다.

“어. 스켈톤.”

교신기로 디펜더가 연락을 취해 왔다.

“무슨 일이었어? 아까 우리 좀 바빴는데.”

“응. 스켈톤 인터넷 보고 있어? 우리가 쓴 글 봤어? 애들 반응 보이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응. 축하 해.”

마음에도 없는 축사를 던지고 서둘러 교신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가 남긴 “대한민국 정부 제공”이라는 낙인이 찍힌 싸구려 캔디의 포장지는 여전히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상태다.

그걸 버릴 지 불태울지는 내일 결정하겠다.

오늘은 잠시 눈을 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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