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02화 (102/183)

55. 20시간 30분 (3)

“마지막 부탁이야. 부탁할 처지는 아닌 거 알지만 한 번만 마지막으로 딱 부탁할게!”

백승현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이는 모습이 꽤 익숙해 보인다.

고개를 숙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부드러움이랄까.

“난감하네요.”

이 인간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도 않고 인터넷에서도 이 인간을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무심코 필크럼88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친구는 위성 장비 반입이 어렵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정말 반입이 안 되나요?”

“그래. 중국 잠수함 때문에 위치가 특정될 수 있는 신호를 가진 기기는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백승현이 아기를 어르고 달래면서 나를 간절한 눈으로 보았다.

“어떻게 안 되겠어?”

그를 가만히 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소에 한 번 들려볼게요.”

“그래 주겠어?!”

그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궁금해졌다.

필크럼88은 되고 백승현은 안 되는 차별의 원인이.

“······네.”

그와 헤어지고 헌터 거리 입구로 돌아와 연구소 입구를 기웃거렸다.

경비원에게 행선지를 말하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혹시라도 아는 연구원이 있으면 일이 편하게 진행되진 않을까 싶어서다.

오늘 운수는 좋은 모양이다.

연구소 앞에 내가 얼굴을 아는 여자 연구원이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고 있다.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누군가 나의 팔을 잡았다.

인지는 하고 있었다.

헌터 거리 입구 앞에 줄곧 서 있던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노인이 날 주시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무시라는 행위는 멸망기 도심에서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기본소양이다.

해서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는데 덜컥 손목을 잡은 것이다.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힘을 실어 팔을 휘저어 노인의 손을 뿌리치고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뭡니까?”

노인이 날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배에 타면 다 죽어.”

“저는 안 타요.”

“아니, 아까 당신이랑 이야기하던 짧은 머리말이야. 아기 안고 다니던. 그 사람도 배에 탄다며?”

“그 사람한테 직접 이야기하세요.”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래. 내 아들도 그 배를 탔어. 손주랑 함께.”

노인의 정신 상태가 불안하다는 건 3초도 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불안한 눈빛, 어눌한 말투, 시선은 날 향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 너머,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시공을 향하고 있다.

“······내가 죽인 거야. 그 갓난아기까지.”

또 넋두리인가.

어떻게 떼어내야 하나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거리 쪽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야! 안 꺼져?!”

백승현이다.

“안 꺼지냐고! 이 씨발놈이.”

그가 혁대를 풀어 당장이라도 후려칠 것처럼 위협하자 그제야 노인은 고개를 숙인 마지 못해 자리를 떠났다.

살벌하게 노인을 내몬 백승현은 나에게는 싱긋 웃어 보이며 두 손바닥을 합장하며 부탁한다는 시늉을 해왔다.

“······.”

정말로 하기 싫지만 백승현에겐 운이 따르는 모양이다.

담배를 피우던 여직원이 날 발견하고 먼저 다가오는 걸 보면 말이다.

*

“여긴 어떤 일이세요? 안 그래도 우소장님이 박규 헌터님 이야기를 요즘 많이 하시던데.”

이 여자의 이름은 패용하고 있는 출입증에 적혀 있었지만 일부러 보지도 않았고 읽지도 않았다.

“아, 다름이 아니라 내일 제주도로 가는 배가 출발한다고 해서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반감 때문이리라.

모든 사람이, 우리 학교 출신마저도 비참해지는 이 시대에 전쟁 전의 깨끗함과 발랄한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어간 사람들을 운운하지 않겠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

아무 준비도 안 한, 단지 연줄 하나 잘 찾은 인간이 나보다 잘 먹고 잘산다는 게 보기가 싫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잠깐 시간 되세요? 우소장님 회의 끝나면 잠시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부탁합니다.”

악감정과 별개로 일이 술술 풀린다.

내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린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백승현의 운인가.

뭐, 그는 나보다 3배쯤은 운이 좋아야 한다.

혼자인 나와 달리, 그에겐 아내와 아이도 있으니.

“선배. 오랜만이야.”

우민희와 대면했다.

그녀의 모습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 위에 세상을 비웃는 듯한 은은한 냉소를 떠올린 채 컴팩트한 검은 철제 테이블 앞에 차분히 앉아 있다.

이번엔 그녀의 의수를 특히 눈여겨보았다.

갈고리 같은 손가락 3개가 달리긴 했는데 어떻게 저걸로 물결무늬를 칠 수 있는지 궁금해서다.

하지만 우민희가 이 사실을 눈치채면 좋아하지 않겠지.

우민희가 내 시선을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용건을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백승현 말이야.”

“그 인간?”

백승현의 이름을 듣자마자 우민희가 입가에서 미소를 싹 지웠다.

“······그 사람이 애 아빠거든. 아기 키우는 거 알아?”

“관심 없어.”

“아기를 위해서 뭔가를 싣고 싶다고······.”

“뭘?”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우민희의 짜증 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내 뇌리를 뒤덮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백승현 따위를 위해 우민희의 비위를 맞춰야 하나?

이번 사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못난 선배 때문에 잘난 후배 눈치를 보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건 아니다.

내가 뭐 백승현한테 지킬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정색하고 진실을 말했다.

“아, 사실은 백승현 그 인간이 인터넷 위성 장비? 그걸 배에 가지고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학교 다닐 때 고자질을 많이 했다.

고자질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사명감에 불타던 박규 소년은 조금이라도 학풍에 어긋나거나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학생을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까탈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린 애의 치기로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학교를 졸업하면 동문과 함께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

칠칠치 못한 동문에게 발목을 잡히느니 학교에 있을 때 미리 쳐내겠다는 멀리 보는 혜안이 박규 소년의 진정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의 가락을 살려 내 후배에게 진실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다.

“······그 인간도 이게 컴플라이언스 위반이라는 걸 알고는 있더라고. 그러던 그 인간이 법과 원칙을 지킬 사람은 아니잖아? 그래서 그 졸렬한 머리통 굴릴 끝에 내가 예전에 너랑 같은 팀이라는 걸 기억해내고 나보고 너를 만나 위성 장비를 반입할 수 있는 불법을 알아보라고 시킨 거야.”

우민희가 날 빤히 쳐다보다 한마디 했다.

“선배, 숨도 안 쉬고 말하는 거 처음 봐.”

“······정의감에 불타다 보니.”

우민희가 씨익 웃는다.

흉터를 가리기 위해 과할 정도로 하얀 분칠에 피처럼 빨간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웃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내 눈에조차 섬뜩해 보였다.

“냠냠?”

우민희가 날 떠본다.

기습적인 공격.

“냠? 배고프냐?”

이 여자, 아직도 날 의심하는 건가.

“선배 인터넷 하지?”

의심하는 모양이다.

이토록 집요하게 추궁하는 걸 보면.

“아니. 안 하는데. 전에도 우리, 이런 이야기 하지 않았냐?”

“······인터넷 할 거 같은데.”

“아니, 나는 인터넷 정말로 안 좋아해.”

“왜?”

“편리한 건 인정하는데 사람들이 다 가면을 쓰니 다들 아무렇게나 말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너도 알잖아?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나의 과거를?”

“스켈톤.”

“스켈핑? 아, 그거 안 한 지 오래됐네.”

“스켈톤 몰라?”

“아~ 내 개인식별부호! 그건 왜 물어?”

“왜 스켈톤이야?”

우민희가 날카로운 갈고리 손가락이 달린 의수를 다른 손으로 구부려 갈고리 날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그 의수에 턱을 괴며 날 넌지시 올려다보았다.

“왜 스켈톤으로 지었어? 콜사인도 아니고.”

왜 이러냐.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책 잡힐 일은 단 하나도 한 게 없는데.

이 녀석 설마 마음을 읽는 계의 능력인가?

그런데 그건 저레벨 어웨이큰에게나 발현하고 그마저도 공격 의사나 호감 정도를 확인하는 게 전부다.

“스켈톤? 그건 중국에서 얻은 별명이지.”

뭐, 물어 봤으니 대답해주는 게 예의긴 하겠지.

스켈톤이라는 닉네임의 출처는 중국이다.

피와 전쟁, 죽음과 권태, 그러나 여전히 인류가 망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지배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말로 뇌신 타입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발견한 신형 중형종이 전장에 나타난 적이 있다.

다른 중형종이 그러하듯 본격적인 전투 담당 몬스터로 무지막지한 전류를 사방에 방사해 근접전을 준비하던 중국계 헌터들을 모조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전기구이 신세로 만들었다.

놈이 지휘부까지 육박해 올 무렵 나는 발견했다.

녀석이 뿜어낸 전류 일부가 무너진 건물 옥상에 있던 피뢰침에 끌려 들어가는 걸.

거기서 팀장이던 나는 즉석에서 계획을 세웠다.

녀석의 경로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전기 유도체를 설치하고 절연복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박규가 김다람을 위시한 원거리 조의 엄호를 받아 놈에게 접근전을 거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전류와 충격파를 동시에 방출하는 집채만 한 괴물 앞에서 사투를 펼친 이후, 중국인들이 내게 박수를 치며 날 더러 해골병사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몬스터가 충격파와 전류를 방출할 때마다 이 박규의 몸이 해골처럼 보였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뒤에서 촬영한 영상에 의하면 도끼를 든 해골 병사가 몬스터에 달려들어 그것을 도륙 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게 스켈톤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이유야. 프로페서는 솔직히 너무 남사스럽잖아?”

“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그나저나 참 무모하네. 그 타입을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처리할 줄이야.”

우민희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선배답다고 해야 하나.”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간 후 내 쪽에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번 일. 못 들은 거로 해줘. 백승현이 워낙 매달리다 보니.”

m9를 살린 것만으로 목적은 달성했다.

그 이후는 아무래도 좋은 일.

이대로 백승현을 만나지 않고 그냥 갈 생각이다.

앞으로 영원히 볼 일도 없는 인간이니.

그런데,

“아니. 괜찮은 생각인데?”

우민희를 과소평가했나보다.

“아주 재밌는 생각이야.”

흉터로 얼룩진 얼굴에 특유의 제멋대로에 잔혹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다.

그랬었지.

내 후배, 우민희는 도저히 속을 알 수 인간이었지.

“선배. 양상길 알지?”

그녀가 날 향해 넌지시 묻는다.

“양상길?”

양상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올드스쿨도, 어웨이큰도, 심지어 군인 출신조차 아닌 주제에 운과 정치질 하나로 국위원의 가장 높은 자리를 꿰찬 어찌 보면 입지전적인 사람으로 죽은 이상훈의 상관이다.

이상훈은 단 한 번도 그를 상관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그 인간의 이름이 왜 우민희 입에서 갑자기 나오는 것일까.

“제주 선단, 양상길 작품이거든.”

“그래?”

“응. 양상길 원장. 알다시피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전쟁이 시작된 지 이제 3년째야. 슬슬 그 사람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 전적도 없고 어웨이큰도 아니고, 행정고시 합격한 게 유일한 경력인 사람이니.”

“······양상길이 무슨 짓을 한 거지?”

“보면 알겠지.”

우민희가 허공을 노려보며 잔혹한 웃음을 흩뿌렸다.

“······.”

그녀가 날 보았다.

“동탄맘에게 전해. 가지고 가도 된다고.”

“동탄맘이 누구지?”

“와~ 선배, 가드 확실하네. 역시 프로페서야.”

어림도 없지.

불굴과 부동심 빼면 시체인 박규를 흔들려 하다니.

그건 그렇고 이 여자, 진짜 내가 스켈톤이라고 100% 확신하는 건가.

설마 제풍호 회장 썰을 보고?

그것만으로는 심증이 부족하다.

아마 그녀는 게시판의 닉네임과 개인식별부호의 유사점만을 보고 집착을 하는지도.

그건 그렇고,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말을 우민희가 했다.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제주선단. 문제 있냐?”

“아마도? 그런데 그게 중국에 갈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지.”

역시 중국에 간 건 진짜였나.

“일종의 사고?”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질 무렵, 백승현이 내게 준 운이 바닥이 났다.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유선전화가 시끄러운 벨소리를 내고 울렸다.

그녀는 내게 가보라는 손짓을 갈고리 3개가 달린 손으로 했다.

“우리, 다음에 이야기해. 조만간 재밌는 일 많이 벌어질 거 같으니.”

아주 잠깐이지만, 나는 그녀의 의수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

“어이쿠, 우쭈쭈~. 끼얏호우~! 그래그래. 착하다. 착해.”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건 늘 백승현의 몫이었다.

그의 어린 아내는 옆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타닥타닥

그녀가 타이핑을 하는 걸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dongtanmom : 냠냠... 제주도 못 가는 거지새끼들... 내일이면 안 보겠네... 냠냠....

“?”

순간 나는 내 안에 쌓은 벽 하나가 무너지는 걸 느꼈다.

설마, 동탄맘의 정체는 백승현이 아닌 백승현의 아내였나.

아주 잠깐 백승현에게 죄책감 비슷한 걸 느꼈다.

아무리 이놈이 악한이라고 해도 동탄맘이라는 누명을 씌운 건 명백한 중죄니까.

“야. 이거 봐. m9 얘. 또 틱틱거리는데?”

그의 아내가 백승현을 돌아보며 웃으며 말하자 백승현이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노트북 앞에 앉더니 꽤나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쳤다.

dongtanmom : 냠냠.... 제주도에서.... 님들 천천히 고통받고 뒤져가는 거 팝콘 먹으면서 지켜볼게요.... 냠냠....

“······.”

부창부수였나.

아니면 유유상종인가.

나이의 벽이 예전만큼 높지 않은 시대지만 둘이 부부가 되면 어찌 보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구제불능의 신혼부부에게 전할 소식이 있다.

“진짜?! 반입해도 된다고?”

“네.”

“역시. 프로페서! 아무리 한물갔다고 해도 나 같은 잡헌터와는 차원이 다른 끗발이 있네! 진짜!”

백승현은 정말로 기뻐하는 눈치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

다만 그의 품에 안긴 그를 닮은 아기는 순진무구한 눈동자에 나를 물끄러미 담는다.

그 아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쟤쥬됴.”

옹알이인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런데 나만 처음 보는 게 아닌 모양이다.

“말했어!”

“처음으로 말했어!”

인터넷에 그토록 독한 말을 쏟아내던 사람들이 이제는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기쁨을 담아 자신들의 결실을 얼싸안고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적어도 여기서는 평범한 사람인 모양이다.

“저기.”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중국행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하지만 행복에 겨운 사람들이 그러하듯 백승현은 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뭐? 예체능 딴따라들은 살리고 우리는 죽일 거 같다고?”

“루머입니다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아니, 박 후배도 그런 꼬륵이들 말을 듣고 다니는 거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출항 당일.

나는 부둣가에 선 수많은 사람과 함께 제주라는 약속된 낙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먼저 찾은 건 필크럼이었다.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유명한, 플래쉬 세례를 받는 사람들과 같은 줄에 서서 같은 배를 탔으니.

그가 탑승한 배는 유조선을 개수한 희망 호. 2차 선단의 기함이다.

뒤이어 백승현을 찾았다.

상대적으로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하는 뒤편에 있던 그는 아기를 안은 채 배에 올랐다.

그가 탑승한 배도 희망 호다.

백승현도 필크럼도 같은 배를 탔다.

“······음?”

예상과 전혀 다른 흐름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서려는 차였다.

외마디 비명이 뒤에서 울려 퍼졌다.

뒷골목에서 한 노인이 소년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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