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00화 (100/183)

55. 20시간 30분 (1)

“어느 쪽이 진실이건 간에 우리는 팝콘이나 뜯으면 돼. 팝콘은 없지만. 팝콘 있어?”

제주도 피난 선단 위성 사진의 진위여부는 현재 인터넷은 물론이고 인천 전체를 들썩이는 초대형 스캔들로 비화됐다.

사실 내가 볼 때 진짜 위험한 건 남쪽 균열이다.

중국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북경군구는 2차 대전 이후로 최대의 격전지라 불릴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정작 침식은 북경 일대에 얼씬도 못했다.

북경의 허를 찌른 건 후방 취약 지대에서 퍼져 나간 침식이다.

전방에선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데 후방이 궤멸되면서 북경도 덩달아 함락됐고 중국은 해안가 일대만 남기고 글자 그대로 전멸, 대만 침공이라는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취약한 후방이 무너졌다.

그 말은 남부 지대가 곧 침식으로 뒤덮일 거라는 이야기다.

경남이 무너지면 호남도 무너질 것이고 그 여파는 수도권으로 역류하겠지.

상황이 이렇게 위중한데도 세상의 관심은 온통 피난 선단에 쏠려 있다.

“·······.”

띵-

전자렌지에서 돌려놓은 팝콘이 완성됐다.

와그작-

뭐, 어떻게 보면 피난 선단에 관심을 두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남쪽이 붕괴한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나 혼자 가서 도끼 들고 설친다고 몬스터가 물러가는 일은 없을 테니.

와그작-

팝콘을 먹으며 우리 게시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난장판이 벌어진 건 당연지사.

사실 그거 보러 접속했다.

특히 가장 신나 할 놈의 반응을 고대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m9는 나의 기대를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mmmmmmmmm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m9라면 그 사진을 보고 오싹한 기분에 젖어 종일 아무 것도 못한 채 몸을 떨었을 것이다.

입주권이 탈탈 털리는 사고만 안 당했어도 그 배 안에 타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m9는 그런 거 없다.

자기한테 유리하면 자기편이고 불리하면 천하의 역적이다.

감탄고토의 화신 m9는 페일넷과 우리 게시판 두 군데서 동시에 활동하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행동했다.

mmmmmmmmm : 듣자하니 강도? 매그니튜드? 사람 많으면 강도가 높아진다며? 제주도 메리트가 미세먼지 적고 사람 적은 건데 사람 많아지면 무슨 소용? 내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안 받아~

뭐, 거기까지는 예상된 결과다.

우리의 m9 선생이 제주도 피난 선단 부정론자의 거장으로 오랜 기간 활동하셨으니.

그런데 이 m9녀석, 엄한 놈을 타겟으로 잡았다.

mmmmmmmmm : 냠냠 거리는 새끼. 냠남 거려봐.

m9가 동탄맘 – 백승현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것이다.

이 백승현이 인터넷에서 나와는 다른 의미로 참 못난 놈이다.

이 박규가 욕만 들어먹는 포지션이라면 백승현은 혐오를 부르는 포지션이랄까.

적어도 그는 혐오를 멈춰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냠냠만 안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 새끼는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와서 10년 전에도 안 하던 짓을 하는 걸까.

아무튼 나의 백승현에 대한 악감정은 뒤로 젖혀놓더라도 백승현은 그 자체로 인간 흉기다.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닌 놈이다.

실제로 나조차 죽이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뭐, 견적이 섰으니까 날 찾아 나섰다는 거겠지.

실제로 놈이 경험 있는 약탈자와 팀을 짜고 나를 공략했으면 상당한 위기에 몰릴 수도 있었다.

그 백승현에게 m9가 시비를 거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더 호프의 유일한 입주민 m9는 막말로 주소가 털린 사람인데 백승현이 앙심품고 RPG 같은 대전차 로켓이나 심플하게 총 한 자루 들고 가서 집 안에서 줄 매달고 일상 생활하는 m9 집에 총질을 하거나 로켓으로 불바다를 만들면 끝이라는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백승현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dongtanmom : 냠냠... m9 죽고 싶냠...?

와그작-

이건 진짜 위험하다.

백승현은 죽인다면 죽이는 놈이고 질 안 좋은 친구도 여럿 두고 있다.

그런데 m9의 간덩이가 부은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

mmmmmmmmm : 드루와 새끼야. 넌 임마, 입구 컷이야 ㅋㅋ 우리 아파트 초입부터 암벽등반인데 ㅋㅋㅋ

백승현의 협박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이 m9에게 뭐라도 충고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m9가 내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

애당초 m9 녀석, 나를 아주 이상한 놈으로 보고 있으니······.

다행스럽게도 백승현은 적어도 m9를 죽일 생각까진 하지 않는 모양이다.

dongtanmom : 냠냠... 참... 신포도라고... 자기가 못 가니 출처도 없는 합성사진 하나에 목숨을 거는 꼬락서니하고는.... 냠냠....

dongtanmom : 냠냠.... 그 사진을 믿기 전에 전에 정부에서 공개한 영상 반박부터 해야 하는 게 순서 아닌가? 냠냠..... 주장을 또 다른 주장으로 반박한다는 게.... 얼마나 무식하고 천박한 사고를 가지면 할 수 있을까? 냠...

동탄맘 말마따나 위성 사진이 100%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해상도가 높고 디테일이 있어 사실처럼 보이지만, 딥페이크 시대에 그런 사진 하나 조작하는 건 사실 장비와 프로그램,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그 사진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제주도에 가지 못한 사람이 앙심을 품고 사진을 합성할 가능성도 있고 어쩌면 군단파가 내부 목적을 위해 유포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왜 중국일까?

왜 선단을 굳이 중국으로 보낸 걸까?

안에 있는 선원들은? 같이 버리는 건가.

그런 명령을 내린다고 순순히 들을 사람들인가.

죽으러 가라는 명에 따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라리 피난 선단에 탄 사람들이 짐짝이 된다면 그냥 바다에 가라앉히고 도깨비방망이 같은 중국 잠수함 탓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뭐,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우민희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음흉한 여자가 내게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해줄까?

“스켈톤은 어떻게 생각해?”

다정이가 교신으로 내게 이번 사태에 대한 나의 입장을 물어왔다.

와그작-

“스켈톤 뭐 먹어? 설마 그 소리는 팝콘?!”

“강냉이.”

“강냉이······? 강냉이도 먹고 싶네.”

“방금 먹은 게 마지막이야.”

“그렇구나. 아무튼 스켈톤 생각은 어떄?”

“흠. 그러니까 말이지.”

내 생각은 일단 사진은 합성이 맞는 것 같다.

“사진은 합성이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제주 선단이 제주도에 갔으리라는 보장은 또 없을 거 같아.”

“뭐, 그리 이상하게 꼬아서 생각을 해?”

“아니, 그러니까. 중국에 보낼 이유가 단 하나도 없잖아?”

디펜더는 최근 부쩍 교신을 많이 해온다.

게시판 네임드에서 쫓겨나고 눈팅유저로 전락해 평소의 시니컬한 코멘트를 달지 못하게 되니 그 아쉬움을 고스란히 이 스켈톤에게 푸는 것이다.

“그게 내 생각이야.”

뭐,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도 좋지만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 또한 나름의 흥미로 운치가 있는 법이니.

“그렇구나. 스켈톤은 정부가 제주도에 피난민을 안 받아들인다는 입장이구나. 그렇다면 이번 2기 선단도 마찬가지겠네?”

“응. 마찬가지지.”

이번 2기 선단은 1기 선단보다 더 많은 30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을 한꺼번에 태운다고 한다.

1기와 합치면 50만 명이 제주도로 넘어가는 셈이다.

“아마 제주도에서 받아줄 일은 없을 걸?”

“동탄맘은 무조건 받아 준다는 입장이던데?”

“그 자식은 그냥 이상한 놈이고.”

“헌터라며? 그 사람도?”

“헌터 중에 싸이코패스가 많지.”

“아하.”

이때 까지만 해도 나는 제주 피난 선단이 제주도에 갈 일은 없다는 확신 비슷한 것을 같고 있었다.

내 확신은 그날 오후 하나의 메시지에 의해 강하게 흔들렸다.

DragonC로부터 온 메시지 :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두 번째 드래곤씨는 그동안 잘해주었다.

꾸준하게 드래곤씨의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해 올려 페일넷과 우리 게시판 심지어 외국에서 온 유저에게도 진한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

그를 제2의 드래곤씨로 만든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죄책감도 증오도 시간이라는 물결에 쓸려 희석되는 시기다.

특히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우리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멸망기에는 더더욱.

그가 내게 보낸 메시지는 내가 잠시 잊고 있던, 하지만 어렴풋이 예상했던 이별을 담고 있었다.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정부 측 인사라는 사람이 저희 가족을 제주도로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전문 예능인 자격으로.

드래곤씨의 내용물, 필크럼88은 전쟁 전엔 누구나 이름을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인기 작가다.

우리 게시판의 인기작가 드래곤씨와는 솔직히 급이 다른 인물이다.

정부에서 그의 능력을 높이 사고 데려가는 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SKELTON : 원고는 몇 화는 남았죠?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콘티 합치면 다섯 화 정도 남았는데, 드래곤씨 형님이 남긴 원안이 워낙 좋고 또 그리다 보니 마음에 쏙 들어서 제주도에 가서도 꾸준하게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

간만에 드래곤씨가 남긴 커피 머신을 이용해 향긋한 에스프레스를 뽑아 음미했다.

그를 보내주는 게 옳은 것일까.

내 마음은 저 친구가 저 땅에서 영원히 드래곤씨를 죽인 죗값을 치루는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드래곤씨가 그걸 원할까?

저 금붕어를 보니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사실 필크럼88의 위치는 상당히 위험하다.

바다 건너편에 중국군 잔당이 있고 남쪽엔 아이엠지저스의 도시가 있다.

그런 불안한 곳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도시보다 더 큰 불안에 휩싸일 수도.

도시에선 지켜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곳에선 자신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무게마저 짊어져야 하니까.

SKELTON : 제주도 가는 거 확실하답니까?

호기심도 느껴졌다.

제주도 선단의 진위를 놓고 제주도에 간다, 가지 않는다로 치열한 의견 다툼이 벌어지는 이 시국에 드래곤씨가 진짜 제주도에 간다면, 그 해묵은 논쟁이 종식되는 건 아닐까 하는.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네, 무조건 입니다. 메시지가 왔어요.

SKELTON : 누구한테 온 거죠?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 이건 비밀인데.

SKELTON : ?ㅅ?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

SKELTON : 누구한테 온 거냐고요.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진짜 아무한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SKELTON : (스켈톤 엄창) 다 걸고 맹세하죠.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기자 양반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자신이 정부쪽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진짜인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내 심경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드래곤씨에 대한 원한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영원히 붙잡아 놓을 순 없는 법이다.

충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는 드래곤씨의 원고를 80%나 완성했다.

나머지 20%를 완성할지 안 할지는 필크럼88 본인에게 달린 일이겠지만 정부에서 그를 데려가겠다고 제의를 한 이상 내가 막아선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정부 요인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는 게 전부겠지만, 그렇게 해봐야 뭐가 남을까?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필크럼이 남은 원고를 완성하는 데 거는 것이 죽음으로 가득 찬 지금 세상엔 좀 더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SKELTON : 인천에 갈 때 에스코트 해드리죠.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끝맺음은 괜찮은 형태로 남기고 싶다.

*

내가 아는 비밀은 남도 안다는 말이 있다.

한때 프로페서라 불리던 이 박규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평등한 게시판 1개 유저 스켈톤이 된 지금은 해당 사항이 있다.

ㅇㅇ : (국가넷 펌) 인간문화재 특별 전형.txt

드래곤씨에게 들었던 그 문제의 예능 특기자 우선 선발 제도가 국가넷이라는 어용 인터넷 사이트에 먼저 올라왔고, 뒤이어 페일넷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인간문화재 특별 전형은 말 그대로 예술적으로 재능 있는 사람을 특별히 피난 선단에 편성, 제주도에서 안전한 예술 활동을 영위하게 하여 그 선한 영향력을 한반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뿌려서 희망을 준다는 계획이다.

거기엔 필크럼88만 같은 웹툰 작가만이 아닌, 피아니스트, 연극인, 뮤지션, 트로트가수, 영화배우 등등 전쟁 전에 굵직한 활동을 이어나갔던 사람들이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렸다.

사람들은 그 리스트에 오른 인명록을 보고 의아해하기도 하고 이마를 탁치기도 하며 이제는 가버린 시대를 추억했는데 늘 그렇듯 좋은 의도는 언제나 이상한 방향으로 곡해되는 법이다.

ㅇㅇ : 야, 이게 진짜면 제주 선단도 진짜인 거 아니냐?

제주도 선단 긍정론자들이 이 전형을 앞세워 일제히 반격에 들어간 것이다.

이번 사안은 시종일관 제주도 선단 회의론자였던 이 박규조차 내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었나 돌아볼 정도의 설득력이 있었다.

뭐, 나 같은 경우엔 기자 양반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더 믿을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스켈톤이 흔들리는 판국에 다른 유저들은 오죽할까?

ㅇㅇ : 야, 이건 믿을 수밖에 없겠는데.

ㅇㅇ : 그러게 말이야. 유명인 데려다 놓고 죽이면 바로 뽀록 나잖아?

ㅇㅇ : 부정론자들 다 어디갔냐?

ㅇㅇ : 하여간 이 꼬륵이들. 틈만 나면 기어 나와서 신포도짓 해대더니, 합성 사진 하나 나왔다고 좋아서 발가벗고 지랄발광 하던 장면 생각하면 ㅋㅋ

ㅇㅇ : 사실, 피난민 부담되면 걍 바다에 가라앉히는 게 자연스럽지 굳이 왜 중국까지 가서 버리냐고?

...

...

대한민국 여론의 중심.

페일넷에서는 바야흐로 긍정론자의 시대가 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

부정론자의 거두였던 m9는 누구보다 강한 역풍을 맞았다.

그 중심엔 백승현이 있었다.

dongtanmom : 냠냠... m9야.... 엠이 아홉 명이라 m9냐? 제주도 선단 중국에 보낸다며? 뭐라도 말 좀 해보라고.... 냠냠....

dongtanmom : 냠냠... m9야. 왜 말이 없니? 기울어진 집에 사니 대갈통도 기울어진 거냐? 빨리 반박해보라고. 중국에 가서다 죽여버리는데 딴따라들은 왜 긁어 모으냐고.. 냠냠....

백승현은 그간 당했던 울분을 풀려는 듯 누구보다 잔혹하게 빈사가 된 m9를 물어뜯었다.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에서도 걱정이 될 정도로.

그런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다.

mmmmmmmmm : 이 쉽새기가....

와그작-

mmmmmmmmm : 너 어디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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