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지방
전쟁 전에 지방의 문제는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가령 같은 수해를 입어도 지방 쪽은 한 줄 뉴스 나오는 게 끝인데 수도권 쪽은 방송 3사는 물론이고 기타 상업방송까지 24시간 내내 특별방송을 편성해서 생중계한다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5천만 정도 되는 인구 중 무려 3천만이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으니까.
호들갑을 떨어도 더 많은 사람이 떨 것이고 기사를 작성하는 쪽도 조회 수가 많은 곳을 신경 쓰길 마련이니.
그 3천 만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든 현재 시점에서도 지방의 문제가 그다지 이슈가 안 된다는 건 전쟁 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페일넷 유저들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ㅇㅇ : 양산? 거기가 어디야? 거기서 터진다고 우리한테 별일 있겠어?
ㅇㅇ : 당장 우리부터 죽게 생겼는데.
ㅇㅇ : 지방 지키는 군인들 빼내서 여기 지키는 게 옳지 않냐?
ㅇㅇ : 지방에 군벌밖에 더 있나. 사실상 군벌이 지배하는 동네잖아
ㅇㅇ : 걍 버려야지. 수도권부터 살려야지. 비하하는 게 아니라 수도권 사람이 평균적으로 지방러보다 우수한 건 사실 아니냐?
...
...
우리 게시판 유저 중 지방 유저의 비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접근성 문제가 아닐까?
멜론 마스크의 비바! 아포칼립스! 위성 장비를 취급하는 “스타지언 코리아”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고 그 지점도 서울·경기권역에만 일곱 군데가 있었는데 지방엔 부산 한 곳에만 지점을 냈다.
부산 지점이 협소하고 직원도 불친절, 체험할 수 있는 장비도 거의 없다는 불평을 본 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나도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겠지.
게시판을 거슬러서 확인해보니 지방 쪽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전쟁 초반기만 해도 지방 유저는 꽤 있었다.
특히 경상권역 쪽의 유저 수는 상당한 숫자였고 호남 쪽 유저도 숫자는 영남 쪽에 딸리지만 양질의 컨텐츠를 만드는 우수한 유저는 크게 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쪽으로 보이는, 손수 만드는 계절 음식을 컨텐츠로 잡은 한 유저는 눈팅 유저 시절, 익명337과 함께 즐겨 찾기를 한 썩 괜찮은 유저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지방 유저처럼 그도 점점 업로드가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만이 아니다.
어느 순간, 지방 유저라고 할 만 한 유저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무관심도 무관심이겠지만 적어도 20% 이상의 지분을 차지했던 지방 유저가 사라진 것이다.
순간 드는 의문 하나.
지방이 수도권보다 생존의 난이도가 높은가?
아니라고 본다.
전쟁의 피해, 균열의 강도, 내전의 유무만 봐도 수도권 쪽이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남부 지방에 광신도들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지만 아무리 광신도들이 유능해도 그 짧은 시간에 지방 전체를 소멸하는 재주는 없다고 본다.
그들은 다 어디에 간 것일까.
최근 피서용으로 지어 놓은 오두막 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무심코 글 하나를 올렸다.
SKELTON : (스켈톤 질문) 그런데 지방 친구들 다 어디갔냐? 왜 요즘 안 보이지?
나름 준네임드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댓글이 안 달린다.
어쩔 수 없이 비장의 술수를 썼다.
SKELTON : (스켈톤 영상) 스켈톤의 탱크탑 제로투 댄스.msi
-낚시해서 미안한데 지방 유저들 다 어디감?
앞선 글과 달리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렸다.
unicorn18 : ㅉㅉ....
ㅇㅇ : 하 이 새끼
Dolsingman : 진짜 욕나오네
mmmmmmmmm : (순혈 서울 시민) ㅉㅉ
gijayangban : ?
...
...
어째 욕만 잔뜩 있고 도움이 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솔직히 우리 게시판에 도움 되는 인간이 몇 없는 건 사실이다.
과거엔 참 많았던 거 같은데.
그런데 그날 오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간 글의 댓글 알림이 울렸다.
누군가 내가 쓴 옛글에 댓글을 달았다는 소리다.
한 번 확인해보았다.
Busangalmaegi : 지방 유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나?
이 친구는 페일넷 유저다.
페일넷 유저와 우리 게시판 유저를 구분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닉네임을 클릭해 “메시지 보내기” 기능이 활성화되면 우리 게시판 유저고 그렇지 않으면 페일넷 유입 종자다.
그런데 이 친구.
닉네임만 봐도 부산 사나이의 향기가 짙게 난다.
이 친구가 내 게시판에 글을 달았기에 나도 게시판 말미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SKELTON : (스켈톤 긍정)
메시지로 보낸 것도 아니고, 내 게시판에 서로 댓글 다는 식의 소통이라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서로 댓글을 달아봐야 알람이 오는 건 나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부산갈매기는 내 게시판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Busangalmaegi : 혹시 국민넷 캐쉬 있냐?
바로 댓글을 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개념을 제시한다.
SKELTON : (스켈톤 금시초문) 국민넷은 뭐냐?
Busangalmaegi : 촌놈도 아니고 어디 사냐?
SKELTON : (스켈톤 프라이버시) 경기도
Busangalmaegi : 인천에서 멀지?
SKELTON : ㅇㅇ
Busangalmaegi : 하, 도움이 안 되네.
SKELTON : 대체 국민넷이라는 게 뭐냐?
Busangalmaegi : 이번에 페일넷에 대항해 나라에서 새로 개통한 웹사이튼데, 국민넷 캐쉬가 있으면 오프라인으로 이거저거 바꿔 준다고 하더라고.
SKELTON : 그래? 나중에 국민넷 가입해서 캐쉬 얻을 수 있으면 줄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이 부산갈매기라는 놈. 인천에 사는 거 같은데.
그럼 인천 갈매기 아닌가?
Busangalmaegi : 마야어 게시판으로 가봐라
부산 갈매기가 선심 쓰듯 내게 미지의 영역을 알려주었다.
마야어 게시판?
마야 제국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마야어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언어, 화자가 있긴 한 걸까.
아무튼 부산 갈매기의 말을 믿고 마야어 게시판이라는 곳에 한 번 접속해보았다.
영어 게시판도 잘 들어가지 않는 내겐 머나먼 행차.
직접 재배한 참외 하나를 껍질째 와그작 씹으며 로딩을 기다렸다.
곧 마야어 게시판이 내 앞에 펼쳐졌다.
null : (부산) 이거 몬스터 아니냐?
null : (광주) 초대형 몬스터라는 놈이네. 어디서 찍은 거냐?
null : (부산) 동래구 쪽. 현재 계엄령 선포중임.
null : (포항) 이쪽은 아직 안전함.
null : (전주) 거기는 필수 산업단지가 있으니. 군인 아직도 있지?
null : (포항) 제철소 주변에만. 나머지는 그냥 방치 상태.
null : (광주) 또 우리 식량 수도권으로 싣고 가네. 인증.
null : (대구) 우리는 기름 만드는 족족 위로 올려보내던데.
...
...
처음 본 순간, 나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듯한 착각을 느꼈다.
뭐, 더하고 뺄 것도 없다.
한국어 게시판이다.
죄다 한국어다.
그런데 우리 게시판과는 명백히 다른 점이 몇 보인다.
전부 “null”이라는 동일한 닉네임을 사용하고 글을 쓸 때에는 자신이 있는 장소를 머리글로 표시하고 있다.
이중 하나의 닉네임을 클릭해봤는데 이쪽도 “null”이다.
아무래도 이 게시판.
만들다 만 게시판으로 보인다.
멜론 마스크의 변덕으로 공간은 마련했는데 개발순위에서 밀렸고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그 빈 구석을 용케 알고 우리 게시판 유저 일부가 이곳에 들어왔고 제2의 게시판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글의 숫자는 많지 않다.
이용자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한 게시판 화면에 이틀 전에 올린 글이 표시되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상 소수만이 활동하는 소모임이다.
그래도 나름 활동들은 열심히 하고 있다.
null : (광주) : 비행장에서 군용 수송기 이륙 남쪽으로 향함
새로 고침을 누르는 순간 따끈따끈한 글이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이들을 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왜 이 사람들은 우리 게시판을 놔두고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걸까?
한국어 게시판 유저가 페일넷 유저들이 유입으로 좀 많아졌다고 하지만 많아 봐야 천 명도 안 될 거 같은데.
눈팅유저를 빼면 실제로 게시판에 글을 쓰고 활동하는 건 백 명도 채 되지 않는다.
null : (스켈톤) 한국어 게시판 놔두고 왜 여기서 활동하냐?
바로 질문을 던졌다.
뭐, 댓글 안 달리면 안 달리는 거겠지.
그런데 뭐랄까, 내가 그 글을 올린 직후 게시판의 기류라고 할까, 분위기 같은 게 급속도로 변하는 느낌이다.
전자신호로 이루어진 게시판 분위기를 피부로 감지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건 알지만 비바! 아포칼립스! 고참 유저의 감이라고 할까.
null : 스켈톤? 그 개노잼 정신병자?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강하게 나온다.
그런다고 물러선 이 스켈톤이 아니지.
null : (스켈톤) ?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null : 여긴 왜 왔냐? 촌놈들 놀이터에.
null : (스켈톤) 게시판에 지방 이야기가 거의 안 보여서.
null : 솔직히 한국어 게시판에서 건질 글이 없는데.
null : (스켈톤) 왜?
null : 가끔 인기글이나 보러 가지, 우리 생존하고는 별 관계 없는 이야기만 떠드니까.
나를 제외하면 닉네임을 알 수 없는 구조지만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마야어 게시판 친구들의 숫자가 적어도 한 명 이상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곧 여러 개의 글이 앞다투어 올라왔다.
null : 맨날 서울이 어쩌구 저쩌구, 인천이 어쩌구 저쩌구. 솔직히 도움 안 되쥬?
null : 정보 교류하려고 이 서비스 가입했는데 우리 집하고 백만 광년 떨어진 동네 소식만 주구장창 떠드는데 듣고 싶겠냐고.
null : 우리도 한국어 게시판도 같이 하긴 해. 하지만 주로 모니터링 하는 곳은 여기지. 뻘글과 우리하고 상관없는 동네 이야기만 올라오는 거기서는 별로 얻을 게 없긴 하거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이 왜 한국어 게시판을 떠나 이 사라진 언어 게시판으로 이주했는지 알 것 같다.
지난 글만 훑어봐도 얼추 보인다.
이 게시판은 순수한 정보 교류를 위한 게시판이다.
잡담이나 일기장은 철저히 배제하고 서울권역을 제외한 비바! 아포칼립스! 유저들의 지역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익명의 유저가 자신이 떠난 이유를 정확히 설명했다.
null : 안 그래도 질이 점점 안 좋아졌는데 페일넷 유입들 오면서 더 질이 나빠졌지. 솔직히 그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 거기는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못 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게시판 수질이 나빠졌다, 이 말이다.
공감한다.
과거 고상한 신사들의 정보 교류의 장이었던 학구적인 시대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공감이 갈 수밖에.
null : (스켈톤 감사) 설명 고맙다.
아마 이게 내가 이 게시판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겠지.
내가 침묵하자 마야어 게시판 유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쉴새없이 스크롤이 올라가는 우리 게시판과 달리, 천천히 조금씩 떠오르는 글들을 새로고침을 누르며 눈에 담았다.
null : (부산) 초대형 몬스터 소멸.
null : (부산) 다른 각도
null : (부산) 양산맨은 죽었나? 왜 그날 이후 글을 안 올려?
null : (대구) 고창 균열은 괜찮냐?
null : (광주) 이쪽은 아직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 모를 일이지.
null : (대전) 광주로 차량으로 이동하려는데 괜찮을까?
null : (광주) 오지 마라. 군벌과 토호 새끼들이 이미 장악한 지 오래다.
...
...
느릿하지만 착실하게 게시판을 채워나가는 글들을 보며 나는 불현듯 과거의 우리 게시판을 떠올렸다.
전쟁 초만 해도 이런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 하루하루 주변을 감시하고 가슴을 졸이고 그 와중에서도 살기 위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던.
현재의 우리 게시판이 싫다는 건 아니다.
거기엔 가끔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도 있지만 고독하고 내몰린 사람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다.
단지, 위안을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 게 문제겠지.
“······.”
나도 그중 하나라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게시판의 수명도 그리 오래 남은 것 같진 않다.
null : (양산) 여긴 끝났다. 군인도 튀네. 이제 각자도생이다.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
간신히 버티던 이 나라의 종말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는 소리다.
마야어 게시판의 울림은 이내 페일넷에 퍼졌지만 늘 그렇듯 그다지 큰 반향은 얻지 못했다.
동남권 최대 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ㅇㅇ : [경축!] 제2차 제주 피난선단 출항 임박!
겨우 일부 시민을 싣고 가는 피난 선단이 산업 전반을 책임지던 한 지역의 소멸보다 더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절망을 질리도록 맛본 사람들에겐 한 줌의 희망이 더 맛있게 지는 법이니.
그러나 그 희망조차 의심스러운 시대다.
ㅇㅇ : 제주 1차 피난 선단의 실체.txt
한 유저가 위성 사진 한 장을 페일넷에 공개했다.
위성에서 찍은 화면은 중국 산둥반도에 자리 잡은 한 항구를 담고 있었다.
푸른 바다와 회백색으로 물든 세계가 겹치는 경계선엔 한 무리의 선박이 파도처럼 부두에 밀려든 채 좌초되어 있었다.
그 선박을 확대하자 선박 갑판에 쓰인 문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 대한민국 ]
이 사진이 진실이라면, 1차 피난 선단에 오른 이십만 명 중 제주도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전부 죽은 것이다.
한국 조차 아닌 이국의 뭍에서.
“······.”
한바탕 폭풍이 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