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94화 (94/183)

51. 인증 (1)

우리의 게시판 네임드 유저, 디펜더가 “인증”을 하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야 뭐, 그가 사람이 적고 평온한 곳에 이사를 갔고 거기에 더해 그를 노리는, 절대 게시판에 글을 쓰지 않는 유저의 저격을 받고 있다는 뒷사정을 알기에 그의 줄어든 활동에 특별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유저들은 달랐다.

익명458 : 디펜더 요즘은 왜 인증 안 하냐?

익명1131 : 그러게.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여기 들어온 이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mmmmmmmmm : 물로켓이라는 소리지 요즘 세상에 누가 당해주냐고? 약한 놈은 다 뒤졌는데

익명782 : 유입이긴 한데 디펜더는 페일넷에서도 꽤 유명한 놈이었어

...

...

유저들은 그의 부진한 실적을 지적했고 나아가 그가 이제 네임드로 남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르렀다.

ㅇㅇ : 인증 없는 디펜더는 뭐다? 걍 듣보 유저잖아~

내가 볼 땐 이런 흐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들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보인다.

만연한 죽음과 비극 속에서 감정이 무뎌지고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우리 중에 시체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살 정도 찌푸리겠지.

우리를 죽이려는 자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걸 주저하는 사람도 없겠지.

혹 매력적인 여자나 물건을 가진 약자 앞에서 주저 없이 총구를 들이대고 폭력을 행사할 녀석이 없다고 말할 순 없으리라.

나조차 그런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언젠가 사라져버린 약탈자라는 단어처럼 우리도 어느새 그 약탈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뭐, 내가 보기에도 최근 디펜더의 활동이 부쩍 줄긴 했다.

가끔 그, 혹은 동생의 시니컬한 독설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디펜더가 오랜만에 게시판에 글을 올린 건 텃밭에 간단한 농사를 짓고 집으로 돌아온 시점이었다.

Defender : 인증

디펜더가 올린 사진 속에 있는 건 2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엄지 두 개가 케이블 타이로 결박됐고 눈엔 청테이프를 칭칭 감은 상태로 낡은 의자 위에 강제로 앉혀져 있었다.

지금까지 디펜더의 인증과 다르게 인증 속의 그 사내는 살아 있었다.

이건 상궤를 벗어난 일이다.

지금까지 디펜더는 자기가 죽인 사람의 사진만 인증했지 산 사람을 인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는 양 디펜더는 하나의 글을 더 올렸다.

Defender : 저스티스 민. 나와라.

-메시지 보내지 말고 모두가 보는 게시판에 글 올려라.

살려달라는 말도 협상하는 말도 좋고 죽여 달라는 말은 더욱 좋다.

1시간 준다.

1시간까지 아무 행동 없으면 넌 니 시체 동생 인증 보게 될 거다.

“······.”

사람들은 디펜더가 변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그가 초반에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당시의 사람들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디펜더는 뭐랄까, 처음부터 완성된 유저였다.

시대에 따라 사고관과 도덕이 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다른 유저와 달리 디펜더는 처음부터 확고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거기에 맞춘 삶을 살아온 녀석이다.

닉네임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는 지키는 사람이다.

자신과 가족과 자신의 영역을.

그것을 건드리는 건 모두 제거한다.

단지 그는 자신의 수호를 “인증” 할 뿐이다.

이제 다시 디펜더가 인증을 했다.

게시판이 격랑에 휩싸이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

하지만 그 격랑이 결국 누구를 덮칠지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주인공인 JUSTICE_MIN이라는 유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마 디펜더와 나뿐일 것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적이 없다.

계정 검색을 해도 마찬가지.

전쟁 전부터 가입한 계정이지만 단지 존재만 할 뿐인 허무인(虛無人)이었다.

그러므로 디펜더가 그를 언급했을 때 우리 게시판 유저들은 저마다 강한 의문과 호기심을 드러냈다.

RKKArA : 저스티스 민이 누구야?

익명458 : 그러게. 듣보잡인데.

Foxgames : 누굴까요?

익명1131 : 누군지 모르겠지만 흥미롭네요

gijayangban : 활동이력이 없는 사람이네

...

...

다른 유저와 달리 나는 디펜더와 실제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다.

“디펜더.”

이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했다.

“응. 스켈톤.”

동생이 답했다.

“무슨 일이냐?”

“잠시만. 오빠 연결해줄게.”

동생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뭐랄까, 차갑고 사무적이었다.

이유는 알 것 같다.

지금 인질을 한 명 잡아두고 실시간으로 그들을 죽이려는 자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여러 대의 드론을 가동하며 오빠 쪽을 지원하고 있지 않을까.

“오. 스켈톤.”

곧 디펜더가 연락을 해왔다.

“내가 전에 총 맞은 거, 단순히 우연만은 아니야. 전부터 그 새끼 사냥하려고 벼르고 있었거든. 그날도 단서를 찾고 방심하는 길에 총을 맞은 거지.”

디펜더와 저스티스 민의 싸움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렴풋이 예상하긴 했지만 디펜더가 저스티스 민을 사냥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난 그가 수비적인 입장으로 자신과 동생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다.

“말하지 그랬냐?”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디펜더 녀석.

전부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놈이었지.

동생은 방구석에 콕 박히는 걸 좋아했고.

뭐, 그래서 남매 사이가 돈독한 모양이다.

“급하면 연락을 하려 했지. 그 정도는 아니라서. 아무튼, 끊을게.”

교신이 끊겼다.

디펜더의 인터넷 절친인 이 박규도 다른 게시판 유저처럼 평범한 한 명의 관객이 됐다는 소리다.

이제도 다른 유저처럼 디펜더가 글을 올린 시간과 현재 모니터 화면 하단에 혹은 집안에 놔둔 시계가 표시하는 시간을 수시로 비교하고, 저스티스 민이라는 미지의 유저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디펜더나 혹은 저스티스 민이 올릴 글을 보고 추측해야 한다.

나름의 각오를 하고 팝콘을 찾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려 할 때였다.

“스켈톤.”

또 다시 교신기가 울렸다.

디펜더의 것은 아니다.

레베카 모녀의 것이다.

이 교신기도 디펜더에게 받은 거지만 주파수를 조정해 디펜더 쪽과는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까, 나는 디펜더와 저격수 모녀를 상대할 때 각각 다른 두 개의 교신기를 써야 한다는 소리다.

자원의 낭비지만, 디펜더 쪽에서 그들과 섞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라 나 혼자 두 개의 교신기를 번갈아 쓰게 됐다.

아무튼 그 레베카는 디펜더를 알고 있었다.

“디펜더, 스켈톤 친구지? 옆에 산다는?”

“응.”

“방금 그 글 뭐야?”

“너, 한국어 게시판도 보냐?”

“지금 미국 밤인걸. 리젠률 적어. 심심.”

“아무튼, 인질 말이지?”

“응.”

“그게. 나도 자세한 정황은 몰라. 하지만 예전부터 디펜더를 죽인다고 협박하는 놈이 있었지.”

“협박? 그게 뭐야?”

중간에 스우가 끼어들어 현재 상황을 레베카에게 자세하게 전달해주었다.

“그런 일이······.”

“스켈톤.”

스우가 이번엔 날 불렀다.

“어. 스우. 쥬시한 거 달라고?”

“아니.”

스우가 정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 앞에서 달리던 차가 뒤집어졌어.”

“그래?”

“응. 아마도 그 디펜더라는 사람. 우리 집 앞에서 전투한 거 아닐까?”

“거리는?”

“북동쪽으로 4km?”

“아주 집 앞은 아니네?”

“앞마당.”

스우가 어리다고 하지만 엄마와 함께 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총 한 자루에 의지해 자라온 아이다.

게다가 엄마보다 어른스럽고 속이 깊다.

나름의 감이 있을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백승현의 모터사이클을 끌고 그대로 레베카 모녀의 영역으로 직행했다.

백승현의 모터사이클을 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백승현 녀석, 이 모터사이클을 준 건 후회하지 않을까?

진짜 내가 돈지랄하고 산 물건보다 수십 배는 요긴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구성 좋은 이륜차의 편리함은 멸망기에서도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우수한데 왜 나는 이 좋은 걸 사지 않은 것일까?

내 창고에 잠자는 중장비 한 대만 팔아도 축구팀을 꾸리고도 남는데 말이다.

뭐, 내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내 스승 장기영이 오토바이는 과부 틀이니 절대로 타지도 말고 살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했고 그의 수제자인 나는 무비판적으로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으니까.

부아아아아앙--

그런데 내 스승이지만 솔직히 맞는 말은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뭐랄까.

이야기를 놓고 보면 90%가 개소리인데 나머지 10%가 맞는 말이라 어거지로 먹히는 느낌이랄까?

모터사이클도 그렇다.

이렇게 좋고 편리한데.

경쾌한 엔진음과 속도감을 느끼며 한달음에 레베카의 영역에 도착했다.

빌딩 위에서 스우가 날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스켈톤!”

“왔다.”

지극히 미국적인 장식으로 가득 찬 계단을 올라 옥상에서 스우가 내미는 감시 장비로 버려진 들판을 관측했다.

과연 뒤집힌 차가 있다.

“저기서 사람들이 안에 탄 사람 끌어내더라고.”

“사람들이라고?”

“응.”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아니. 남자 셋.”

“음. 디펜더는 아니네.”

스우가 다른 사건을 이번 사태로 착각한 모양이다.

디펜더는 하나가 아닌 둘이지만, 그렇다고 셋은 아니니.

그것도 남자 셋이라니.

시간을 확인했다.

디펜더가 예고한 시간까지 앞으로 20분이 남았다.

20분 안에 저스티스 민이 글을 쓰지 않으면 디펜더가 확보한 인질은 죽는다는 소리다.

“레베카. 보고 있어?”

“응.”

레베카 옆으로 가서 그녀가 보는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화면이 좁아 보이자 그녀가 옆에 있던 불 꺼진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그 모니터엔 노트북에 떠오른 것과 똑같은 화면이 떠올랐다.

“뭐, 뭐냐? 이건?”

“듀얼 모니터.”

원어민 발음으로 레베카가 답했다.

“이런 것도 가능한가.”

“스켈톤 바보야?”

“······.”

레베카의 타박을 받으며 서브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을 보았다.

“아, 좀 스크롤 정신없이 하지 좀 마.”

“로마에 가면, 로마 밥을 먹어라.”

“뭔, 로마야. 여긴 한국이다. 그리고 그 장비 누가 줬다고 생각해?”

“시효취득.”

“뭔.”

레베카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보니 먼 곳에서 총성이 들렸다.

옥상 위에 있던 스우가 총과 감시장비를 들고 내려왔다.

“사람들이 차에 탄 사람 죽였어.”

“그래?”

“응. 타고 있던 여자는 끌고 가고.”

평범하게 이야기하지만 엄밀히 놓고 보면 누군가의 끔찍한 비극이다.

그 비극을 스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익숙해진 모양이다.

하긴 그녀도 멸망기를 살아가는 사람.

어떻게 보면 지하에 사는 나보다 높은 곳에 사는 그녀가 나보다 더 많은 비극을 봤겠지.

“스켈톤. 디펜더한테는 무슨 일 있어?”

“아니. 아직은.”

스우가 내 옆에 와서 나와 같은 모니터를 보았다.

타닥타닥

레베카가 신들린 타이핑으로 한국어 게시판에 모르는 단어를 사전으로 검색하면서 현재 우리 게시판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동안 나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해 생각했다.

먼저 떠오르는 건 걱정이다.

디펜더 녀석.

분명 저스티스 민이 중규모 집단이라 하지 않았나.

그것도 그가 두려워할 정도로 전투에 능한.

분명 그들과 싸울 때 내게 도움을 청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이들과 싸울 때 나를 부르지 않은 건 왜일까.

의문보다 앞서는 건 아쉬움이다.

“······.”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슷한 일이 있었지.

내가 김필성 무리와 사투를 벌일 때 디펜더 소환권이 있음에도 쓰지 않았었지.

그건 디펜더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디펜더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그들만의 싸움을 하려는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가봐야 겠다.”

레베카와 스우가 날 동시에 올려다보았다.

“벌써 가? 아직 시간 안 됐는데?”

“아니, 걱정돼서.”

디펜더는 내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의 생각이다.

그가 날 부르지 않아도 최소한 옆엔 있어줘야 겠다.

그들이 뒤늦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을 때 언제라도 도울 수 있도록.

그들을 잃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날 잃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런데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이었다.

“스켈톤!”

레베카가 모니터를 보며 소리쳤다.

“음?”

서브 모니터에 새로운 글이 떠올랐다.

Defender : 추가 인증.

글을 올린 건 저스티스 민이 아닌 디펜더였다.

추가라는 단어엔 처음 디펜더를 봤을 때 느낀 섬뜩함이 묻어 있었다.

“클릭한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레베카가 글을 눌렀다.

하나의 사진이 떠올랐다.

“스우. 괜찮아?”

스우의 눈을 가려주진 않았다.

그건 내가 할 일도 아니고, 지금 시대엔 호들갑에 불과한 행위니까.

“괜찮아.”

스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보았다.

그 화면엔 세 구의 시체가 있었다.

과거의 디펜더는 시체의 얼굴을 비닐이나 다른 쓰레기로 가려서 올렸지만 지금 다르다.

죽음 당시에 느꼈을 고통과 공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그러진 얼굴들이 모니터 중앙을 섬뜩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 너머엔 아까 보았던 결박된 사내가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Defender : 5분 남았다.

디펜더가 다시 경고했다.

누구도 그의 글에 답글을 달지 않았다.

그 흔한 비아냥도 호들갑도 없었다.

그 게시판에 감도는 불길한 침묵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디펜더지.”

정작 호들갑을 떤 건 나였던 모양이다.

몬스터를 죽이는 건 내가 더 잘하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디펜더의 전공이다.

녀석은 저주 받은 18기,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갔지만 정작 사람을 더 많이 죽이고 학살해야 했던 비운의 기수니까.

불온한 침묵 속에서 운명의 시간이 왔다.

오후 4시 02분.

그러니까, 처형까지 앞으로 1분.

쥐죽은 듯 고요한 게시판에 하나의 글이 떠올랐다.

JUSTICE_MIN : 미안하다. 사과한다.

저스티스 민이 나타났다.

씁쓸한 사죄의 말과 함께.

하지만 그가 글을 적은 직후 또 하나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Defender :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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