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91화 (91/183)

49. 광인

전쟁 전, 어떤 기자가 당시 교장이던 장기영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장기영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는데 - 그 기자는 메이저 언론사 소속이다 - 딱히 영양가 있는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장기영은 자기가 대답하고 싶은 질문에만 대답하고 대답하기 싫거나 민감한 주제는 동문서답이나 두서도 안 맞는 헛소리로 대응했으니.

그래도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문답이 있다.

헌터들의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발병 비율이 현저히 낮은 비결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장기영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인지 그는 호탕하게 그 비결을 이야기했다.

“본교에서는 나약한 학생을 받지 않습니다. 정신이 약한 자는 아무리 뛰어나고 특출나다고 해도 결국에 큰 사고를 치는 법이니까요.”

그는 자신이 개발한 정신력 측정 모델을 언급하며 어떻게 사람의 정신의 강약을 측정하고 단련할 것인가 하는 해괴한 소리를 1시간 30분 동안 늘어놓았다고 한다.

글쎄.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중국에 다녀온 우리 헌터의 PTSD 비율이 낮은 건 우리의 정신력이 장기영 말마따나 측정되고 훈육된 결과가 아니라, 단순히 다 죽었기 때문이다.

멀쩡하고 똑똑한 놈도 죽어 나가는데 마음이 불안한 놈은 더 쉽게 죽겠지.

장기영은 전쟁 중에 불안 증세를 보이는 친구를 조기 퇴역시키고 헌터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자신이 제창한 이론을 관철하려 했지만 그조차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어웨이큰의 대두로 장기영의 시대는 하루아침에 허물어졌으니.

그렇게 “정신병”을 지닌 전쟁을 경험한 헌터가 사회에 풀렸다.

그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지만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사회가 붕괴했다.

디펜더의 동기는 그러한 터지지 않은 폭탄 중 하나였다.

*

“괜찮은 친구였어. 유쾌하고 말도 많았지. 하지만 광신도의 춘절 공세부터 말이 없어지더니 공세가 끝날 즈음 결국 사람이 변해버렸어.”

디펜더의 상처는 겉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다.

정신도 또렷하고 출혈도 거의 멎었으니.

하지만 대퇴부, 동맥이 지나가는 부근에 총알이 박혔다.

이건 문제가 된다.

항생제를 주사해서 감염 위험은 최소화했지만 그 총알이 언제 동맥을 건드릴지 모르니까.

숙련된, 전쟁을 경험한 의사가 필요하다.

“······사람이 이상해졌어.”

지금 우리는 12인승 미니버스에 타고 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주워와서 수리하고 쓸 수 있게 하는 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게 디펜더의 취미란다.

“난 개인적으로 그 사람 불호.”

운전대를 잡은 건 디펜더 동생이었다.

“볼 때마다 미쳐가고 있어. 예전엔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디펜더가 자리를 비운 틈에 저스티스 민이 덮치기라도 한다면 디펜더에게나 동생에게나 그리고 나에게나 영 좋지 않은 이야기일 테니.

아주 대책이 없지는 않은 게 차량 곳곳에 장갑판을 달긴 했다.

그래 봐야 대전차 무기류 한 방이면 끝장이 날 테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동기라는 인간 그 자체다.

“어웨이큰이라며? 몇 레벨이지?”

“잡웨이큰이야.”

잡웨이큰.

5레벨 미만, 대몬스터 전투 부적격자를 부르는 멸칭이다.

하지만 그 잡웨이큰조차 위협적인 상대라는 건 오늘 오전에 있었던 전투만 봐도 알 수 있다.

디펜더에게 총격을 강한 그 녀석은 두 가지 권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인지와 감지다.

인지 능력은 어떤 대상을 인식하면 대단히 먼 거리까지 그 존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감지 능력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거리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니 감지 능력과 합쳐지면 이론상 뿌리칠 수 없는 추적자가 탄생한다는 소리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예지 능력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능력을 실전에 적용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가끔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이의를 제기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녀석이 어리고 미숙하기에 망정이었지 숙련된 살인자였다면 디펜더는 물론이고 그 동생도 내가 모르는 사이 죽임당했을 것이다.

“어떤 능력이지?”

“투시.”

상처가 고통스러운 듯 디펜더가 허벅지 위쪽을 어루만지며 얕은 신음을 흘렸다.

“자기 말로는 집중하면 실핏줄까지 보인다나?”

“수술할 땐 편하겠네.”

“실제로 퇴역하고 의사 쪽으로 진로를 잡았어. 눈 안에 CT보다 더 좋은 걸 내장한 놈이니.”

디펜더가 갑자기 상의를 벗어 탄탄한 근육을 드러냈다.

“이거 봐.”

그가 내게 등을 보였다.

흉터 자국이 보인다.

“이건?”

“자폭 드론 파편이 박힌 자국이지.”

수십 개 이상의 상흔이 있다.

그중엔 척추에 근접한 것도 몇 군데나 됐다.

전쟁 전에 디펜더가 불구의 몸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는 흔적이다.

“그 녀석이 모든 파편을 현장에서 제거했어.”

“대단하군.”

“당시엔 어웨이큰인지 본인도 몰랐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각성한 거지.”

“무자각 각성인가.”

“아마도.”

우리의 위대한 선지자 아이엠지저스나 내 동기 강한민, 나혜인처럼 화려한 각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현상 없이 어느 순간 어웨이큰의 능력을 개안한다.

이를 무자각 각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이쪽이 일반적인 각성의 형태다.

내가 괜히 시트지를 몇 번이나 입에 대고 검사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박규도 어웨이큰 적격을 얻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니.

“대충 기수만 보면 17기나 18기 같은데. 맞나?”

“어. 18기야.”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하고 다섯 기수 차이.

고작 다섯 기수 차이에 같은 올드스쿨 커리큘럼 교육을 받았지만 그 인생의 궤적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약간의 명예와 돈을 만질 기회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저주받은 기수는 이미 재학 중에 인생이 망가졌다.

그래도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저주받은 기수 중 어웨이큰 적격자는 오히려 다른 기수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지금에야 잡웨이큰이라 조롱받는 5레벨 미만 어웨이큰이 국위원 요직을 두루 차지한 걸 보면 말이다.

김다람 말에 의하면 18기 출신도 상당수 있었다고 들었다.

“저주받은 기수?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야. 우리 같은 올드스쿨이야 그대로 나락으로 갔지만, 어웨이큰 적격자는 자기 실력 이상으로 높이 올라갈 기회가 있었어.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년 하나가 나랑 같은 위원이라니까? 이제 20대도 안 꺾인 애가.”

지금은 꺾였겠지.

아무튼 그 황금 같은 기회를 보장 받은 사람이 인천에 남아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저 레벨 어웨이큰도 나름 대접을 받았을 텐데.”

“그게 불가능했어.”

“왜?”

나의 물음에 디펜더는 시선을 내리 까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신이 이상해졌거든.”

그 동기가 사는 곳은 인천 외곽의 버려진 폐차장이었다.

들어서는 입구 앞에서 디펜더 동생이 차를 세웠다.

“잘 들어.”

디펜더가 고통을 참는, 그러나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날 보았다.

“그 새끼가 뭔 소리를 하든 맞장구를 쳐줘.”

“······대체 무슨 소리를 하길래.”

“보면 알아.”

디펜더 동생이 경적을 두 번 울리고 폐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쌓인 폐자동차의 탑, 기괴하게 정육면체로 찌그러진 금속 덩어리들,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무튀튀한 것들, 거대한 짐승의 백골.

내 영역이 을씨년스럽다고 하지만 이곳에 비하면 잘 꾸며진 공원이다.

겉모습만 흉한 게 아니다.

“컹! 컹! 컹!”

맹견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크다.

맹견인 걸 감안해도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느낌이랄까.

설마 뮤테이션은 아니겠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며 차량이 폐차장 안으로 진입하는 걸 차가운 눈으로 주시했다.

멀리 컨테이너를 쌓아 둔 주거지가 보인다.

그런데 한 두 개가 아니다.

무려 수십 개를 마치 성처럼 쌓아 만들었다.

이 성채의 성주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더럽고 기괴한 폐차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정장을 걸친 사내가 컨테이너 위에 총기를 들고 올라서서 이쪽을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그 아래 컨테이너 옆엔 아마도 구속구와 사슬로 봉인된 뮤테이션 견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이쪽을 향해 짖고 있었다.

“종철아!”

디펜더 동생이 얼굴을 내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종철이라 불린 사내가 방긋 웃었다.

*

그의 이름은 허종철이었다.

디펜더와 같은 18기로 서구인처럼 눈두덩이 깊고 코가 튀어 나왔으며 털이 많았다.

특히 수염은 19세기 서양 지식인마냥 볼을 덮을 정도로 무성하게 길렀는데 그 수염은 비단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만은 아닐 것이다.

컨테이너 바깥에 수북이 쌓인 미녹시딜 약제를 보면 말이다.

“어디 보자. 정호야.”

디펜더의 이름이 공개됐다.

정호였다.

정호와 다정.

정자 돌림 남매였다.

“동맥은 안 건드렸네. 저쪽에 앉아 있어. 바로 처치를 해주지.”

그가 디펜더를 데리고 안으로 간 동안 안을 돌아보았다.

성채처럼 지었지만 내실은 형편 없었다.

멀리서 볼 땐 수십 개의 컨테이너를 이용해 성처럼 만들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컨테이너는 주거동, 식량 및 창고, 그리고 진료실, 총 3개에 불과했다.

그래도 내 방공호처럼 확장 계획은 있는지 다른 컨테이너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긴 했다.

“크윽!”

커튼으로 가려 놓은 진료동 안에서 디펜더의 신음이 들려온다.

디펜더 동생이 불안한 눈으로 상의 자락을 붙잡은 채 진료동 쪽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괜찮지 않을까?”

나름 위로를 한답시고 그녀에게 말해주니 그녀가 날 올려다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만 그 미소는 잠시뿐, 그녀는 수심이 드리운 얼굴로 진료동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침묵을 하기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책이 참 많다.

책장에 괴테,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슈펜하우어 등 인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는데 정작 현재 유종철이 읽고 있는 것은 - 책상 위에 펼쳐놓은 채 뒤집어 놓은 - 만화책이었다.

수술이 끝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분 만에 허종철이 밖으로 나왔다.

“다정아. 이거 봐.”

그는 스테인리스 쟁반 위에 담긴 핏물로 범벅이 된 탄환을 의료용 집게로 집어 디펜더 동생 앞에 보란 듯이 들어 보였다.

“네 혈육의 몸에 박힌 죽음의 씨앗이지.”

“오빠는?”

디펜더 동생은 그러나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와 디펜더에겐 다정다감한 그녀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저런 차갑고 딱딱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조금은 놀라웠다.

“안에 있어.”

디펜더 동생이 진료동 안으로 들어갔다.

허종철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기분이 꽤 나쁠 법한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은 채 서재랍시고 만든 판자로 만든 책상에 앉아 펼친 채 슬그머니 만화책을 책상 안에 숨기고 대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제목의 철학 서적을 근엄한 얼굴로 음미하듯 읽기 시작했다.

“······.”

딱히 그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만화책을 숨기고 어려운 책 읽는 척하는 시늉은 오히려 인간미마저 있었다.

그런데 디펜더 남매는 왜 저 친구를 그토록 싫어하는 걸까.

약간 비호감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이 친구를 멀리할 정도의 결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저 정도 외과 수술 실력이 있다면 영입 대상 1순위 아닌가.

“······.”

만약에.

내가 집단을 만든다면 말이다.

“학교 출신이라며?”

그 허종철이 날 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올드스쿨 헌터라면 이 나라에 억하심정 하나 정도는 갖고 있을 거 같은데.”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허종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책을 덮었다.

“헌터라면 국위원 애들이 왜 제주도에 간 지 알고 있겠지?”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인구수가 적기 때문이지. 그래. 인구수가 적어서 균열의 강도가 약하고, 작은 전력만으로 지키기 쉽기 때문에 제주도로 옮긴 거야.”

다 아는 이야기다.

수백 번은 이야기했고 듣고 생각한 이야기다.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제주도로 못 간 우리는 어떻게 될까?”

또 다른 해묵은 질문.

“다 죽겠지.”

이건 전혀 과장되지 않은 사실이다.

다 죽는다.

예외없이.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런데 아까부터 눈에 밟히는 게 있다.

이 허종철이라는 내 후배의 눈에 어느 순간부터 꿈틀거리고 있는 수많은 소용돌이다.

그의 눈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광인의 눈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만약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대꾸하지 않았다.

광인의 생각을 묻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니.

그러나 광인은 일단 마음을 먹으면 기어코 자신의 광기를 모조리 쏟아내는 법이다.

“인천에 모여 있는 인간이 전부 없어진다면?”

“······.”

“제주도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그때 디펜더가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허종철과 이야기 하는 날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무시하라는 소리다.

디펜더 동생도 비슷한 눈치를 줬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이야기다.

“인천에 있는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죽인다고?”

물어보았다.

광인의 생각을.

“핵으로.”

“핵이 어디서 나서?”

“저 아래 중국 애들 있잖아?”

광인이 방긋 웃었다.

*

SKELTON : (쇼킹 스켈톤) 인천에 핵폭발 가능성?!

인기를 끌만 한 소재가 있다면 가족의 불행조차 팔아먹는 게 인터넷 관심종자의 행태라고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조금 다르다.

SKELTON : (스켈톤 애널라이징) 당진 인근 중국 군부대가 보유한 핵과 인천 핵폭발의 연관성

이건 경고다.

인천에 남겨진 우리 인터넷 친구들의 경계심을 환기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지만 선각자는 외로운 법이다.

익명458 : 얘 전에 죽은 애 아니야?

Fox_games : 살아 있었네.

ㅇㅇ : 이 양치기 새끼 구라에 맛들렸나

익명848 : 스켈톤 그만해.. 보기 추해....

roka_gg : 흠

ㅇㅇ : 애널라이징은 시발 니 애널이나 제대로 닦아 허언증 새끼가

unicorn18 : 넷카마

mmmmmmmmm : ?

gijayangban : ?

dongtanmom : 냠...?

“······."

뭐, 선각자와 광인은 종이 한 끗 차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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