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90화 (90/183)

48. 원수

전쟁 전, 인도에서 무려 102명을 죽인 연쇄 살인마가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범한 하류층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그는 자신 주변에 일어나는 지옥도가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는 홀로 깨우쳤다.

그가 발견한 생존의 방식은 그가 사랑하던 대자연과 닮아 있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뺏고 다시 죽이고 뺏는 살육과 약탈의 연쇄.

그 과정에서 강간과 고문, 시체 모독이 있다고 하지만 그 사내는 날조된 증거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최후 변론 때 그 사내가 판사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원수로 삼느니 차라리 내가 누군가의 원수가 되는 게 잘못된 일이냐고?

*

전쟁이 시작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마음이 느슨해지는 건 음식이 상하거나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디펜더가 집으로 가는 길에 총을 맞았다.

눈먼 총이다.

늘 상상만 하던 일이 내 가까운 곳에서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디펜더 동생의 말에 의하면 당장 생사에 지장은 없다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이름 모를 적과 치열한 대치를 하고 있단다.

“준비하고 출발할 테니. 그전까지 버티라고 해.”

아무리 바쁘다고 해서 아무 준비 없이 가는 건 안 가느니만 못한 일이다.

꼼꼼하게 준비물을 챙겼다.

의약품과 의료도구, 무기, 그리고 방탄대책.

방탄조끼와 헬멧은 좀처럼 착용하지 않는 물건이다.

무겁고 불편한 것에 비해 효과가 시원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것도 약간은 마음의 위로가 되겠지.

이동수단은 모터사이클을 택했다.

부아아아아아앙-

가파른 북쪽 경사를 곡예를 하듯 내려가 개울을 건너 도로로 진입했다.

도로 위에서 잠시 모터사이클을 멈추고 주변의 풍경을 보았다.

풍경이 전과는 또 다르게 보인다.

“······.”

굳이 비유를 하자면 전쟁 직후에 보던 그 풍경과 닮아 있다고나 할까.

언제부터 눈먼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희석된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경계를 게을리했고 혹 총성이 들리더라도 나는 안 맞겠지 하는 안일함에 잠겨 들었다.

사실 언제라도 총을 맞을 수 있다.

이 박규가 어처구니없게 길을 걷다 총을 맞아 논두렁이나 배수로에 빠져 백골로 변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좀비 된 박규가 광야를 배회하며 새 친구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

멀리 곰보처럼 움푹 팬 구덩이가 보인다.

중국군이 가한 포격의 흔적이다.

디펜더의 영역이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부아아아아아앙-

굉음을 내며 모터사이클이 버려진 들판을 질주했다.

“스켈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켈톤 맞지? 맞으면 오른손 들어줘.”

“들었어.”

“아니, 왼손이잖아? 오른손 들어 줘. 응. 옳지. 착해.”

드론을 보고 내 위치를 알았나보다.

내 시야로는 드론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하늘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아마 소형 정찰 드론이겠지, 1kg도 안 되는 주제에 고도 6km까지 솟는.

“디펜더는 어디에 있지?”

“기다려 봐. 참새 한 마리 보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쪽에서 검은 점이 나타나 이쪽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왔다.

그 드론을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모터사이클을 멈추고 총을 겨누었다.

“사격 중지! 우리 드론이야.”

“이게 네 드론이냐?”

그렇게 내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응. 참새야.”

참새는 무슨.

중국제 자살 드론이다.

그걸로 광신도를 죽였고 광신도가 그걸로 중국군을 죽였다.

우리 팀은 아니지만 다른 팀 하나가 그 드론 스웜에 걸려 시체도 찾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당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따라와.”

자살 드론이 나를 디펜더에게 안내했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내가 직접 그녀에게 궁금한 사항을 몇 가지 물어야 했다.

“적의 숫자와 위치, 무기는?”

“디펜더의 상태는?”

“디펜더는 왜 교신에 응하지 않지?”

그녀는 쏟아지는 질문에 간신히 대답했다.

얼핏 봐도 심리 상태가 불안했는데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아!”

중간에 그녀가 고함을 질러 이유를 묻자,

“하나 배터리 충전을 안 한 걸 깜빡했네. 하나 떨어뜨렸어!”

아마 자신이 가진 드론을 전부 꺼낸 모양이다.

자신의 오빠를 지키기 이해서.

소중한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과할 정도의 전력을 투사하는 건 흔히 보는 실수다.

그녀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몇 개나 꺼내든 거야?”

“전부. 12개 정도?”

“······필요한 거 제외하고 전부 넣어.”

“왜?”

“방해되니까.”

“······알았어.”

디펜더 동생은 마지 못해 내 말을 받아들이는 눈치다.

아마 내 전투력을 일전에 보지 않았다면 내 말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좀 엉뚱하고 오빠한테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다정이의 성깔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건 잠깐잠깐 보이는 행동만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으니까.

저 멀리 곳곳에 포탄 구덩이가 있는 들판 너머 붉은 지붕 건물이 보인다.

예전에 카페로 이용되었던 건물이다.

카페의 이름은 럭키데이였다.

그토록 많은 포탄이 떨어져도 멀쩡하게 서 있는 걸 보면 이름대로 악운이 꽤 강한 거 같은데 그 악운이 남은 건물 안에 디펜더와 아마도 하나, 혹은 둘 정도의 괴한이 대치하고 있다.

디펜더가 교신기를 통해 말할 수 없는 건 그만큼 상대방이 가까이 있기 때문.

아마 작은 소리 하나마저도 목숨을 걸고 듣고 경계해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나는 여기서 희망을 보았다.

저런 작은 건물에서조차 대치가 길어진다는 건 상대방도 디펜더를 제압할 확실한 수단이 없다는 뜻이니.

아마 매복 공격 정도가 공격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여기는 스켈톤. 지금부터 건물에 진입한다.”

머리 위로 전투 드론이 내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주변에 보이는 건 없어.”

동생의 목소리다.

아마 디펜더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총기를 들고 천천히 느릿하게 때로는 구보로 달리며 카페로 접근했다.

경계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창가와 건물의 모퉁이.

수시로 동생에게 정찰을 부탁했다.

“서쪽 벽면.”

“없어. 아무도.”

“증원이 올 기미는?”

“주변에 살아서 움직이는 건 너뿐이야.”

“멀리 봐줘. 저격하는 놈이 있나 없나.”

“응. 기다려 봐. 없어. 깨끗해.”

짧은 문답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편안함이다.

일전에 더미 방공호를 만들 때 느낀 바지만 디펜더 동생의 가치는 대단히 높다.

혹 내가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이 디에스이라에가 이끄는 집단 급으로 숫자가 불어난다면 그녀의 가치는 아마 오빠보다 높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드론 전문가니까.

중국에서 드론은 지배적인 무기였다.

어웨이큰을 불신하는 그들은 드론을 몬스터에 대처할 인류의 희망으로 삼았다.

수많은 드론이 만들어졌다.

그중엔 드론으로 부르기 뭐한 기괴한 놈도 비일비재했다.

당연히 드론의 수준도 대단히 높았는데 드론 수준만큼이나 조종사의 실력도 탁월했다.

나는 숙련된 중국인 드론병이 단 두 기로 마치 게임을 하듯 광신도 수십 명을 몰이 사냥하며 건물로 몰아넣는 걸 본 적이 있다.

디펜더 동생이 그토록 많은 드론을 가지고 능숙하게 운영하는 건 그녀의 흥미도 흥미겠지만 디펜더 본인이 중국에서 드론의 잠재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느낀 것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먼저 드론을 사 모은 건 동생이 아닌 디펜더 쪽이라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이쪽이 우위라는 건 확실하다.

제공권, 정보, 화력 모든 것이 이쪽의 우위다.

내가 할 일은 안으로 들어가서 상처 입은 디펜더를 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죽음이란 건 보통 방심에서 오는 법이다.

지금도 그렇다.

동생의 유용함에 미소를 머금는 순간 창가에 뭔가 어른거렸다.

사람과 총이다.

다급히 몸을 숨이고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탄환은 거의 내가 서 있던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방심했으면 어쩌면 몸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탕! 탕! 탕!

바닥에 엎드림과 동시에 총격을 가했다.

맞추려고 쏜 게 아니다.

후속 사격을 가할 수도 있는 적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함이다.

운 좋게도 탄환이 유리에 맞았다.

그 와중에 적이 있는 지점과 거의 근접해서 탄환을 날린 것이다.

“아악!”

탄환은 맞지 않았지만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놀랐거나, 파편에 상처를 입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 목소리는 앳된 느낌이다.

풀숲에 은폐한 채 빠르게 포복해 시야를 확보하려고 하니 드론이 먼저 내 머리 위를 날아가 창가로 향했다.

“아무도 없어.”

“드론을 창문 앞에 대기시켜 줄래?”

“알겠어.”

지금 디펜더 동생이 가동한 드론은 3기다.

아마도 고고도에서 상황 전체를 관망하고 있을 정찰 드론, 뒤편에 호버링한 채 대기하고 있는 소형 자살 드론, 그리고 지금 이 전장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15kg급 중국제 전투 드론이다.

육중한 15kg급 전투 드론이 살벌한 총구를 들이댄 채 2층 창문 앞에서 호버링을 하며 앞을 견제했다.

창문이라는 변수 하나가 배제된 것이다.

그대로 전력으로 앞을 향해 질주했다.

카페까지는 30m.

한달음에 닿을 거리다.

그런데,

“!?”

출발한 직후 시커먼 인영이 모퉁이 옆에서 출현했다.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타타탕!

총성이 울렸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질주하는 그 순간을 정확히 노려서 오다니.

순간 내가 드는 의문은 하나다.

상대방은 둘인가?

아니면 이쪽을 관측할 수단이 있기라도 한 건가?

최소 이쪽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연이 두 번이 일어나면 필연이다.

특히 매 순간이 죽음과 연결되는 전장에서는 그것이 암묵의 룰이다.

철컥

소총 대신 권총을 꺼내며 건물로 천천히 접근했다.

디펜더가 왜 교신기를 꺼버렸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의 위치가 발각당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다.

소리를 통해 상대방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다.

“하나야!”

건물 안에서 디펜더의 외침이 울렸다.

반대쪽 창문, 아마도 출입구 있는 측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리라.

“한 놈이야! 조심해! 그 새끼 어웨이큰 같아.”

“어웨이큰?”

“고레벨은 아니고 저레벨. 최소 감지는 들고 있어.”

역시 그런 거였나.

그렇다면 앞뒤가 맞다.

방금 그 두 번의 움직임은 불합리할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을 찔러 왔으니.

“······.”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랄까, 올 것이 온 기분이랄까.

권총을 든 채 콘크리트 벽에 엄폐한 채 두 귀로 적의 위치를 살폈다.

1층엔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난 어웨이큰이 아니니 확신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어웨이큰도 대단한 능력은 없을 것이다.

파동을 일으킬 정도의 레벨, 즉 5레벨 이상이라면 디펜더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일 테니.

예상되는 능력은 감지다.

내 위치를 감으로 파악하고 총격을 가한 걸 보면.

하지만 다른 능력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레벨 어웨이큰의 능력 중 가장 흔한 건 감지, 통지, 인지, 예지.

이른바 사지(四知)라 불리는 능력이다.

저레벨 어웨이큰은 이 능력 중 하나만을 가지거나 하나를 불완전하게 가질 수도 있고 더러는 두 가지 이상을 완벽하게 가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가장 쓸모없는 건 휴대폰이나 무전기로 대체가능한 텔레파시인 통지겠지만, 나머지 능력도 썩 그리 대단한 취급을 받진 못한다.

예지만 해도 그렇다.

이름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그 예지라는 게 길어봐야 3초 뒤의 미래다.

주먹이야 피할 수 있겠지만 총알은 못 피한다.

하지만 총알을 맞는 상황을 한두 번 피할 순 있을지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런 쩌리 어웨이큰 조차 우리 같은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하지만, 놈들도 사람이다.

적어도 파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어웨이큰은 몬스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의 방식으로 사냥할 수밖에.

“디펜더! 그 새끼 인상착의 봤어?”

콘크리트 벽 뒤에 엄폐한 채 고함을 질렀다.

나 답지 않은 고성.

대답이 없다.

재차 고함쳤다.

“어떤 새끼야! 아니, 잡아서 어떻게 할 거야?”

그가 내 의도를 눈치채길 바랬다.

잠시 후.

“죽여야지! 이 새끼, 산 채로 찢어 죽여야지!”

디펜더는 내 기대에 부응했다.

심리전이다.

“나, 입구에 있다!”

“2층 복도 확보.”

“1층 로비로 진입. 클리어.”

“2층 계단 확보. 아, 후다닥 뛰어오르는 소리. 들었어?”

“나도.”

말로서 적에게 압박을 가한다.

조성용이 그랬던 것처럼.

전투 경험 많은 베테랑에겐 통하지 않겠지만 능력만 있는 철부지에겐 간장이 쪼그라들 정도의 압박감을 주겠지.

시연자도 평범한 군인이 아닌, 나와 디펜더.

숙련된 올드스쿨 헌터다.

그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디펜더.”

“스켈톤.”

아무 방해 받지 않고 디펜더와 합류했다.

그의 허벅지를 보았다.

“괜찮냐?”

이번에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디펜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지혈했어.”

디펜더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켰다.

“저기야.”

확실히 디펜더 남매는 진짜 남매인 모양이다.

“옥상에 없음~ 계단 아래에 쭈그리고 있겠지~.”

무슨 생각으로 드론에 스피커를 단 지 모르겠지만 스피커로 심리전을 거드는 걸 보니.

“너, 이 개새끼!”

드디어 계단 쪽에서 날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궁지에 몰린,

“넌 지옥에 갈 거야. 살인자 새끼!”

명백히 앳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우리와 대화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탕!

말이 끝나는 순간 총성이 들려왔으니.

주르륵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총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한 발짝 늦게 따라 흐르는 피를 보며 우리는 시체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격자는 소년이었다.

이제 열여섯 정도 됐을까.

“아.”

디펜더는 한 눈에 공격자를 알아봤다.

“1년 전 그놈인가.”

그가 다리를 절룩였다.

“우리를 덮친 약탈자 중에 부자가 섞인 집단도 있더라고. 아버지만 죽였어.”

“네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묻자 디펜더는 얼굴을 찡그리며 상처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 새끼가 아버지가 목맨 나무 쪽으로 도망가는 거야.”

“아.”

“실수였지.”

실수라는 말 한마디엔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가치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치명적인 실수군.”

원수가 되지 않는 가장 편한 방법은 원수로 여길 사람을 전부 죽여버리는 것이다.

이 끔찍한 세상에선 아마도 그것이 정공법이 아닐까.

“이 놈이 저스티스 민?”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저스티스 민은 집단을 거느리고 있어. 손등을 보니 나이도 있는 것 같고.”

“그렇다 이거군.”

물론 이 소년을 비호할 생각은 없다.

그의 휴대폰 안엔 그와 시커먼 남자들이 벌거벗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여성 앞에서 웃으면서도 브이 자를 그리고 있는 사진이 몇 개나 있었으니까.

인도의 사형수 말대로 누군가를 원수로 삼기보다 누군가의 원수가 되는 쪽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소리겠지.

단지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디펜더가 원수가 됐을 뿐이다.

그나저나.

“이거.”

디펜더의 상처를 보았다.

허벅지다.

수술 도구를 가지고 왔지만 내가 처리할 수 없는 부위다.

“아는 의사 있냐?”

항생제를 꺼내며 물었다.

“인천에 하나 있긴 해.”

디펜더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정신병자지.”

“살아 있냐?”

디펜더가 소년 쪽을 보았다.

“······어웨이큰이야.”

“어웨이큰?”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기거든.”

천하의 디펜더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 동기라는 사람 결코 만만한 놈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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