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공사 (2)
내 메인 방공호 옆엔 주거공간보다 더 커다란 차고가 있다.
방공호처럼 철근과 콘크리트로 내부를 보강했고 입구는 흙과 바위로 가려놓았는데 은밀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차고의 지대를 낮게 잡아서 차고 안의 차량이 경사 15도 내외의 경사로를 올라가게끔 설계했다.
이 차고 안엔 내가 전쟁 전에 빚쟁이가 되어가며 사 모은 갖가지 중장비와 차량이 가지런히 주차된 상태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굴착기, 로더, 천공기, 지게차, 불도저.
박규의 중장비 컬렉션이다.
대부분 중고지만 상태는 썩 괜찮고 백승현의 모터사이클처럼 정성스럽게 정비했다.
“와······.”
내 방공호 안에 손님이 들어온 적은 몇 번 있지만 내 차고 안에 사람을 들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걸 전부 혼자 만들었다고?”
다정이가 평소 컨셉도 잊고 날 빤히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모처럼 자부심이 기분 좋게 마음을 긁어주는 걸 느끼며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고생 좀 했지.”
디펜더도 놀라긴 매한가지.
그는 아예 날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 스서방.”
“아니, 뭔. 뭔 일만 있으면 스서방이래.”
내 계획은 나의 중장비 컬렉션과 디펜더 남매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메인 방공호 옆에 새로운 방공호를 짓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미 방공호로 기존의 방공호를 숨긴다는 계획이다.
“뭐, 이제 와서 공사를 하겠다고? 얼마나 걸릴 거 같은데?”
“한 달 정도?”
“그걸로 되겠어?”
수도나 전기 같은 건 일체 배제한다.
오직 땅만 파내고 콘크리트를 적당히 두른 후 내 방공호 비슷한 무언가를 만든 후 중앙에 변기만 놓으면 그만이다.
“변기가 가장 중요하지.”
디펜더에겐 변기 조달을 부탁했다.
“우리 집에 남는 거 하나 있긴 한데. 부서진 것도 괜찮겠지?”
“상관없어. 이 더미 방공호는 오래 전에 버려졌다는 컨셉이니까.”
디펜더 남매는 내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특히 디펜더 동생이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타블렛를 두드리더니 내게 화면을 보여줬다.
[ 발상 자체는 신선한데 과연 침입자가 어설프게 만든 모조 방공호를 보고 그냥 넘어가 줄까? 내가 그 사람들이라면 꼼꼼하게 확인하고 주변 점검도 할 거 같은데. ]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걱정 마. 오히려 그쪽이 내가 원하는 바니까.”
[ 진짜······? ]
“나만 믿고 일단 일이나 하자고.”
내가 방공호를 지을 때 의도했던 것은 끝없는 확장과 개변이다.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중장비를 팔지 않은 것도 그 때문.
공사 시점은 계획보다 앞당겨졌다.
내가 생각한 방공호 증축 시점은 이 땅에서 사람이 천연기념물급으로 사라진 시점이다.
그래야 총격의 위협 없이 뮤테이션이나 몬스터만 조심하면서 마음껏 공사를 할 수 있을 테니.
박철주만큼은 아니지만 방벽도 세우고 구할 수 있다면 태양광도 구해서 전기도 펑펑 쓰고 농사도 지으면서 안락하고 럭셔리한 인류의 황혼기를 즐기리라 생각했었다.
거기까지 이르는데 3년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인간이라는 생물은 질기고 강인했다.
여전히 대도시엔 백만 단위가 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고 황야 곳곳엔 도시에서 떨어져나간 나이 든 사람들이 잡초처럼 붙어 끈질긴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를 한다는 게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더 큰 위험이 날 덮치고 있다.
공사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필수다.
그렇게 해서 디펜더 남매와 함께 공사를 시작했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기도 했다.
나라는 인간이 팀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레베카가 합류를 원하는 이상 나도 이제 집단 생존주의로 노선을 변경할 필요가 생겼고, 디펜더 남매도 크게 드러내진 않지만 함께 영역을 지킬 동료가 필요한 눈치였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디펜더가 수시로 어두운 표정을 짓는 걸 보면 그를 노린다는 비바! 아포칼립스! 뉴비 - 저스티스 민이라는 녀석이 만만한 인간은 아닌 것 같으니.
뭐,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슬슬 우리가 운명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느끼고 있는 사실이니까.
“자, 좀 더. 그래. 옳지. 이쪽으로.”
새삼스럽지만 공사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하니 한결 편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확인해주고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니까.
디펜더의 과거는 어렴풋이 들었지만 중국에서 돌아온 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갖가지 험한 일을 한 모양이다.
공사 일도 많이 했는지 굳이 일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디펜더가 중장비 작업을 돕는 동안 디펜더 동생은 드론을 이용한 장비로 주변을 감시해서 걱정을 덜어주었다.
이 공사에서 발생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사 중에 군단파가 습격하는 것이니.
군단파가 아니더라도 개척자만 해도 골치가 아프겠지.
다행히 군단파를 비롯해 개척자가 오는 일은 없었다.
아마 이 주변에 포탄이 떨어지고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리라.
한 번 포탄이 떨어진 곳엔 또 포탄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
작업을 하는 동안 디펜더 남매에겐 더미 방공호를 숙소로 제공했다.
부려먹는 입장이라 내 방공호를 제의했는데 디펜더 남매 쪽에서 거절했다.
“사실 우리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시하거든.”
“화장실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공사 최대의 난적은 군단파도 다른 인간의 습격도 아닌 대자연 그 자체였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라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땅을 파헤친 자리에 빗물이 고여 도저히 공사를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정화조 청소용 펌프가 없었다면 도중에 공사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웅웅웅--
힘차게 돌아가는 펌프를 보며 디펜더가 놀란 얼굴로 날 돌아보며 물었다.
“대체 스켈톤. 넌 없는 게 뭐냐?”
“이거저거 준비를 많이 하긴 했지.”
“너무 과하게 준비한 거 아니냐? 보물 고블린도 아니고. 아니, 보물 스켈톤인가?”
빗물이 공사를 방해한 건 맞지만 땅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소형 굴착기가 기운 찬 엔진음을 내며 부드러운 토사를 한 움큼씩 파헤치는 걸 보면 속이 시원해졌다.
“이 정도면 괜찮을 듯싶은데?”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더미 방공호가 대략의 윤곽을 갖췄다.
토사 붕괴의 위험이 있어 내 방공호 실제 면적의 절반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중요한 건 중앙의 변기다.
그게 핵심이다.
잠시 쉬고 있자니 디펜더 동생이 에스프레소 기계로 우린 커피를 내왔다.
“커피야. 자.”
바리스타 자격증 보유자 아니랄까 봐 디펜더 동생이 만든 커피는 확실히 내 것보다 맛이 진하고 풍미가 살아 있었다.
“후.”
디펜더가 땀에 젖은 이마를 닦아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여긴 진짜 한적하긴 하네.”
“너도 킬 수 부쩍 줄었지?”
“죽일 놈들이 안 오는 걸.”
그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너 죽인다는 녀석, 아직도 너 찾고 있냐?”
“어.”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 영역 근처까지 온 적도 있어. 내가 남긴 사진을 보고 단서를 추측했나 봐. 가로등 하나 찍혔을 뿐인데 거길 찾아왔더라고.”
디펜더가 말하는 동안 디펜더 동생이 그 옆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감이 왔다.
이들 남매의 위기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걸.
둘을 동시에 시야에 담으며 물었다
“솔직히 말해 줘. 상황이 어때?”
디펜더와 디펜더 동생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동시에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도 좀 위험하긴 해.”
아무래도 상대방을 시험하는 건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저 남매도 나라는 인간을 좀 더 잘 알기 위해, 이번 공사를 함께 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인터넷상의 친분이 있다고 하나 그것만으로 상대방에 대한 모든 걸 안다고 볼 수 없으니.
이 스켈톤도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
디펜더 동생 같은 예쁘장한 여자와 함께 생활하다보면 갑자기 야수로 돌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흔한 이야기다.
허물없이 잘 대해주던 남자가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강간마로 변하는 건.
온기가 남은 남은 커피를 가볍게 흔들다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군.”
모든 사람이 힘들어지는 시기다.
나름 대비를 했지만 멸망이라는 가혹한 이벤트는 공평하게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게에 짓눌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공사가 끝나면.”
허리 춤에 찬 도낏자루를 매만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새끼 죽이러 갈까?”
디펜더와 디펜더 남매가 놀란 눈으로 날 보았다.
그 남매를 보며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공사 도와줬잖아?”
“스켈톤.”
“걱정 마라. 자랑은 아니지만, 사람도 잘 죽이는 편이니까.”
이건 진담이다.
거짓이 아니다.
디펜더가 내 진심을 알아차리고 여동생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잠시 귓속말을 주고받던 남매가 동시에 나를 보았다.
“괜찮아. 지금은.”
디펜더 동생이 말했다.
“우리 문제니까 우리가 해결해 볼게.”
“잠깐만.”
내 방공호로 돌아가 종이 한 장을 쭉 찢어 거기에 펜으로 빠르게 휘갈겨 썼다.
[ ☆“전설의 헌터” 슈퍼 스켈톤 소환 쿠폰☆ ]
그걸 남매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라.”
내 쿠폰을 본 디펜더가 피식 웃었다.
다정이는 아예 입까지 가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진짜 유치해.”
다정이의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지. 괜히 군단파에게 노려지는 게 아니라는 소리.”
“뉘예뉘예~.”
동생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슈퍼 스켈톤 소환 쿠폰을 보고 있는 오빠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뭐해? 고맙다고 해야지.”
“어, 응.”
디펜더가 동생의 채근에 어색하게 대답한 후 소환 쿠폰을 안주머니에 넣고 나를 보았다.
“고마워. 스켈톤. 마음만이라도.”
“아니. 진심이다. 언제든지 써라.”
“내 것도.”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디펜더가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인지 늘 차갑던 녀석의 얼굴엔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퍽이나 기뻤던 모양이다.
이 스켈톤의 소환 쿠폰이.
“그래. 꼭 써주마. 때가 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서로를 도울 때 가장 높은 효율을 낸다는 걸.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인 걸 택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도울 때다.
디펜더만이 아니다.
“아, 그리고 전에 말한 저격수가 있는데.”
“어.”
“그 친구들과도 한 번 만남을 주선해볼까 해.”
디펜더 남매에게 나와 함께 찍은 레베카와 스우의 사진을 보여줬다.
둘은 적당히 놀라며 또 경계하면서도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뭐, 때가 되면 만나게 되겠지.”
디펜더가 내 영역을 주위를 특유의 무신경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때가 되면 말이지.”
우리 디펜더는 당장은 모녀를 만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이 경계심 강한 살인자라는 걸.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것만큼이나 서로 다른 사람을 모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우리도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면 다툼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
그래도 적어도 이 남매와는 잘 지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 시작하자. 군단파 놈들 언제 들이닥칠 줄 모르니.”
무엇보다 디펜더 녀석, 1등급 일꾼이다.
*
전쟁이 시작된 지 2년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인천에서는 제2차 피난선단의 준비가 한창이란다.
여전히 군단파 쪽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지만 남쪽에선 사이비종교의 교세가 점점 확장한다는 불온한 소식이 들렸다.
점점 날은 더워졌고 창궐하는 벌레가 여름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언제나처럼 폭풍전야와 같은 이 우울한 시기, 우리의 공사도 마무리를 지었다.
내 방공호를 숨겨줄 비밀의 장막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흠······.”
다정이가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새 방공호를 응시했다.
“너무 대충 만든 거 아니야?”
디펜더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고생하긴 했는데 결과물이 영 별론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 같아.”
남매가 내 더미 방공호의 조잡함을 지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면적이 절반으로 줄었고 시멘트 타설도 적당히 간만 보는 수준이라 멀리서 보면 모를까, 방공호 안에 들어오면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중앙에 떡하니 놓인 변기만 없다면 다른 방공호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
하지만 중요한 건 변기다.
이 변기가 이 방공호를 특별하게 만든다.
“내 계획은 말이지.”
이 조잡한 방공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일단은 내 기존 방공호의 입구를 굴착기를 동원해 매립한다.
입구 하나가 없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더미 방공호 혹은 차고와 연결된 다른 출구를 이용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렇게 메인 방공호의 입구를 지워버린 다음, 그 입구 위에 있는 말라붙은 나무뿌리를 굴착기로 캐내 더미 방공호 위에 올려놓는다.
이 나무뿌리는 김다람이 김필성에게 말했던 내 방공호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침입자가 내 방공호가 있는 언덕에 도착하면 바로 이 나무뿌리를 찾을 것이고 그 아래 숨겨진 더미 방공호의 입구를 찾을 것이다.
더미 방공호의 입구는 메인 방공호처럼 단차를 두었다.
“환기구만 살펴봐도 들통나는 거 아닐까?”
전부터 내 계획에 의문을 갖고 있던 디펜더 동생 이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지금부터 마술을 부릴 거야.”
“마술?”
그 마술이란.
팅-
인계철선과 폭약으로 이루어진다.
청명한 소리가 나는 인계철선을 튕겨 보여 강도와 유연성을 확인한 후 준비한 폭약을 더미 방공호 곳곳에 설치했다.
“스켈톤. 너 설마?”
디펜더가 뒤늦게 내 계획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영문을 모르는 다정이에게 내 마술의 비밀을 알려줬다.
“폭발 엔딩이지.”
“폭발 엔딩······?”
김다람의 정보를 토대로 일단의 군단파 병사가 내 영역에 들어온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김다람이 알려준 표지를 보고 내 방공호의 위치를 신속하게 찾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내 방공호의 대략적인 특징과 장소만을 알지 정확한 장소와 생김새를 모른다.
그들이 아는 건 입구에 나무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방공호 중심에 변기가 있다는 것 정도다.
그들이 나무뿌리를 찾아 이 조잡한 더미 방공호에 들어온다.
거기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어둠 속에 놓인 변기 하나뿐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들이 그 너머를 침범한다면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인계철선이 그들의 발길을 멈춰세울 곳이고 그들이 멈춘 사이, 메인 방공호 안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이 박규가 폭약을 터뜨려 그들 눈앞에서 더미 방공호를 토사로 매립해버릴 테니까.
“나, 이거 추리만화에서 본 거 같아. 범인이 주인공 눈앞에서 희생자를 죽이는 척 하는 트릭이지?”
그제야 내 마술의 비밀을 눈치챈 다정이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뭐, 비슷한 예지.”
“스, 스서방!”
내 계획이 완벽한 건 아니다.
폭약의 양이 부족해서 원했던 붕괴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내 메인방공호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나름 감으로 양을 조절했지만 나는 폭발물 전문가가 아니니까.
그래도 가장 큰 위협은 아마도 내 방공호에 와본 인물이 다시 여길 찾는 것이겠지.
김다람.
그 얄미울 정도로 나의 가르침을 흡수한 가증스러운 후배 녀석이 말이다.
물론 그 녀석이 이곳에 온다면,
나는 방공호를 나와 그녀를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왜냐고.
그런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