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민 (6)
원숭이를 죽이는 것도 어려웠지만 운반도 일이었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나 달라붙었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와이어를 뮤테이션 몸에 걸고 간신히 좀비 영역을 탈출할 수 있었다.
당연히 떠날 때 수천 마리의 좀비들이 열렬한 배웅을 했는데 나는 그 상황에서 위기감보다 코믹함을 느꼈다.
갑옷 입은 원숭이가 질질 끌려가는데 그 뒤로 수천 마리 좀비가 발광해서 달려오고 있는 광경이 마치 어릴 때 본 만화영화에 나올 법한 한 장면 같아서다.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랄까.
길몽은 아니고 흔한 개꿈.
그래서 도시로 돌아왔을 때 잠에서 확 깬 기분을 느낀 모양이다.
가난, 궁핍, 굶주림, 불안, 두려움, 질병, 자포자기.
도시의 분위기는 엄혹한 현실 그 자체였으니.
이런 곳에서 매일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와. 이게 그놈인가요?”
거리의 사람들과 달리 전쟁 전의 활기를 간직한 사람도 있다.
연구소 직원들이다.
내가 방문할 때마다 항상 바쁜 척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월급 도둑질만 하던 그들은 뮤테이션 시체를 보고 쾌활하게 웃으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직원 하나가 뮤테이션 대가리를 밟고 유명한 사냥꾼처럼 포즈를 취했다.
“자, 어때?! 마수 사냥꾼 등장이요~!”
이에 대해 우리 헌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작은 세계에서 우리는 을이었다.
잠시 후 기다렸던 직원이 나타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헌터님들. 이건 우리가 드리는 마음의 선물입니다. 아, 이건 보너스 같은 거니까 실제 보수는 나중에 합산해서 같이 드릴게요.”
처음 보는 나긋나긋한 여직원이 우리에게 나름의 보상을 줬다.
남자 직원이 끌고 온 수레엔 고기와 쌀, 기타 부식과 술이 담겨 있었다.
“와, 쌀이다! 쌀!”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천영재는 쌀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쌀밥 진짜 먹고 싶었다고!”
고통조차 잊고 입에서 침까지 흘리는 걸 보면 진짜로 그리웠던 모양이다.
나머지도 고기를 보며 꽤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특히 종이 안에 싼 붉은 고기는 소고기처럼 보였다.
“이거 냉장육 같은데?”
하태훈이 고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요즘 세상에도 냉장육이라는 게 있구나.”
“그러게. 마블링 좀 보라고. 와,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지?”
백승현을 포함한 나머지도 고기를 보고 놀라워했다.
“진짜네.”
“진짜 소고기야.”
하지만 늘 삐딱선을 타는 방재혁이라는 친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뒤틀린 시각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이거, 뮤테이션 고기 아닌가.”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 게시판 친구들처럼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놈이 나타나면 일치단결해서 단체 무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다만 우리 게시판에서는 이상한 친구가 헛소리를 하면 차단해서 그의 헛소리를 안 보는 방법이 있지만 현실엔 그런 기능이 없다.
“뮤테이션 고기네. 군단파 새끼들이 먼저 처먹기 시작했다는 거.”
방재혁이 운을 띄워보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입을 닫을 방재혁이 아니다.
“소새끼한테 뮤테이션 인자 투입해서 덩치 확 불린 다음에 그걸 도축해서 먹는 거야. 기존 소보다 고기가 5배는 더 나온다고 하더라고. 소 한 마리만 처 잡아도 일개 사단이 처먹을 양이 나오는 거지.”
신나게 주절거리는 방재혁을 향해 하태훈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또 페일넷이냐?”
“어.”
“그 이상한 사이트 작작해라. 한 번 들어가 봤는데 정신병자만 가득하더니만.”
“아니, 거기 말고 진실을 말하는 데가 어디 있냐고? 페일넷은 빛이야! 빛!”
“······.”
“아니, 하선배. 그러지 말고 들어보라고.”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나 학교 출신인 거 스스로 포기했으니까.”
“하형!”
그렇게 두 헌터가 사이 좋게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거리로 돌아왔다.
“자, 다들 모여! 고기 먹자! 고기!”
천영재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사람들을 불러보았다.
고기라는 소리에 거리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거리를 나와 급수대 옆에 마련한 불판 옆으로 모였다.
사람이 꽤 된다.
30명 가량.
“와~ 고기다! 고기!”
특이하게도 애들이 많았다.
애들만큼이나 나이 든 사람들도 많았고.
잠자코 불판 옆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백승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가족 때문에 남은 사람도 많지.”
“그런 거 같네요.”
“방재혁도 아까 봐서 알겠지만 사격 수준만은 S급이야. 다리를 좀 다쳤어도 충분히 쓸 수 있지.”
좀비들과 추격전을 벌일 때 방재혁의 사격술을 볼 수 있었다.
휴대폰 보며 낄낄거리고 페일넷에서 본 헛소리를 뇌내 필터 안 거치고 지껄이던 평소 모습과 달리 방재혁은 그 반동 심한 45구경 권총으로 치명적인 각도로 오는 좀비의 머리만을 골라 총알구멍을 박아주었다.
그 방재혁 옆엔 어머니로 보이는 장년 여성이 앉아 웃는 얼굴로 아들의 귀환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저래 보여도 효자거든.”
백승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덧붙였다.
그 방재혁의 어머니를 포함한 아낙네들이 채소와 고기로 한껏 솜씨를 부려 음식을 내왔다.
손맛의 마법이랄까.
한정된 식재와 향신료만으로 꽤 먹을 만 한 반찬이 완성됐다.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소고기다.
치이이이익-
곳곳에 놓인 불판에서 고기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졌다.
사냥에 참가한 사람들 기준으로 고기 양은 꽤 많았다.
하지만 헌터 거리 전체를 먹이기엔 넉넉한 양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명당 세 점 정도?
말 그대로 맛만 보는 수준이다.
그래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람 사는 맛이 느껴졌다.
다들 모여서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술잔도 기울이면서 옛날이야기도 하고.
“······.”
그런데 이게 맞나?
모두가 함께 웃고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째서인지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소외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그냥 이 분위기, 이 억지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흐름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
좀 과하다고 할까.
무엇보다 부족한 고기와 아쉬운 듯 남은 불판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밟혔다.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소리가 있지만 실제로 콩 한 조각을 나눠 먹는다는 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백승현의 아내가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자, 이거 드세요! 소시지예요!”
내가 만든 고라니 소시지가 불판 위에 올랐다.
치이이이익--
나에겐 필요 없는 고기지만 여기서는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와, 맛있어!”
“존맛이네!”
시험 삼아 한 개 집어 먹어보았다.
“오.”
의외로 먹을 만 하다.
“왜 이렇게 못 어울려?”
백승현이 내게 소주잔을 들고 왔다.
함께 술잔을 교환한 후 백승현이 저 부두 너머로 어둠을 머금은 채 출렁거리는 바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쭉 혼자 살았지?”
“네. 그런 셈이죠.”
“익숙해지기 어렵겠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
“제주도로 갈 겁니까?”
“당연히 가야지. 어떻게 잡은 기횐데. 2차 선단 확실하게 확보한 건 물론 현지서도 살 집도 제공될 거야.”
백승현이 그답지 않게 흥분하며 뒤에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아내와 아이를 거나하게 취한 눈으로 응시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끝이지.”
“인터넷 안 하세요?”
“예전엔 했지.”
“페일넷 여기서는 접속 잘 되는 거 같은데. 페일넷 안 해요?”
“페일넷? 아 그거. 내가 폰으로 뭔가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게다가 그런 것도 있어.”
백승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인터넷을 하면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날 싫어하더라고.”
“왜요?”
“모르겠어. 그냥 나보고 죽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
대체 인터넷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아무튼 백승현은 인터넷을 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 일타강사 m9의 강의를 보라는 건 아니지만 제주도행에 약간의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럼 즐기고 있어. 아내랑 볼 일이 있어서.”
백승현이 떠나자 누군가 절뚝거리며 내 앞에 다가왔다.
천영재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난 그가 내게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간하면 선배 소리 안 하는데, 당신은 선배 자격이 있네. 한잔하쇼. 박 선배.”
싸가지 없는 말투와 달리 술을 따르는 자세는 마치 양갓집 규수처럼 조신했다.
같이 한잔하며 그에게 물었다.
“이걸로 어려운 놈은 다 잡은 거겠지?”
솔직히 힘들었다.
뭔 놈의 뮤테이션이 이렇게 까다로운지.
그런데 천영재 녀석.
“뭔 소리야?”
나를 미친놈처럼 보고 있다.
“이제 칠흉물 중 하나를 잡았을 뿐인데.”
“뭐? 저런 게 여섯이나 더 있다고?”
“일곱은 무슨, 더 있어. 칠흉물 위에 다섯 불가사의, 다섯 불가사의 위에 삼신수, 삼신수······.”
“······.”
디펜더 말이 맞다.
이런 곳에 오는 게 아니었다.
*
“돌아가시겠다고요?”
좀처럼 눈을 쳐다보지 않던 직원이 내 눈을 응시했다.
그 어색한 눈 마주침 속에서 나는 그의 불안과 짜증을 느낄 수 있었다.
“왜요?”
그의 물음에 대답 대신 똑같은 짜증을 담은 시선으로 대꾸해주었다.
잠시 눈싸움을 하던 그는 내 진심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는 상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 아, 소장님! 아~ 네! 아! 다름이 아니라······.”
우민희와 연락을 끝낸 그가 내게 돌아왔다.
“소장님이 수고하셨다고 가시려는 곳까지 교통편을 제공해주시겠다고 합니다.”
“······.”
“아, 그리고 소장님께서 헌터님에게 소정의 선물을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선물?”
우민희가 준비한 선물은 놀랍게도 비바! 아포칼립스! 계정이 깔린 노트북과 위성통신 장비였다.
“그게 헌터님 혼자 있으면 적적하니 이걸로 인터넷이라도 하시라고 전해달랍니다.”
“저는 인터넷 안 해요.”
“그래요? 그럼 제가 가져도 될까요?”
“다른 사람 줘도 되는 건가요?”
“네.”
백승현에게 줬다.
“아니, 뭘 이런 걸.”
딱히 이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건 아니다.
여전히 비호감이다.
뭐랄까, 섞일 수 없는 타입이라고 할까.
그래도 그는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다.
내가 제주도 가지 말라고 백날을 말해봐야 듣지도 않을 거니 인터넷을 보고 세상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페일넷은 싫다지만 혹시 아나.
우리 게시판엔 잘 어울릴 지.
“아, 진짜.”
백승현의 입이 귀에 걸렸다.
“나 인터넷 하면 욕 엄청 먹는데. 장난 아니고.”
장갑차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은지라 그가 장비를 사용하는 걸 구경했다.
인터넷을 모른다는 설정이라 도와주지 않았지만 백승현은 기계에 능숙한 지 곧잘 비바! 아포칼립스!에 접속하는데 성공했다.
dongtanmom : 냠
“음?”
“박규. 무슨 일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냠이라니.
그보다 닉네임이 범상치 않다.
동탄맘?
폭사해서 죽은 놈 아닌가.
노트북 상태를 보니 위성 장비만 회수해서 계정을 역탐지한 모양이다.
비바! 아포칼립스! 사용설명서에 따르면 위급하면 위성 장비만이라도 챙겨서 계정을 복구할 수 있다고 하니.
그나저나 왜 하필 동탄맘일까.
뭐,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
딱히 후회는 없다.
어린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의 손을 잡고 함께 우리 게시판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갓 발을 들이려는 가장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어이. 박규.”
떠나려는 날 향해 백승현이 불렀다.
“이거 받아.”
“이건?”
백승현이 가지고 온 건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모터사이클이었다.
마치 승마를 하듯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모터사이클을 타고 돌아다니던 그의 모습은 내 기억에 새겨진 백승현의 전형 중 하나.
그걸 내게 주겠단다.
“어차피 제주도에 들고 가기도 뭐하고, 솔직히 당신 덕분에 제주도에 갈 수 있는데 빈손으로 보내기 뭐해서.”
이건 의외의 수확이다.
“합성유도 잘 먹으니까 걱정 말고 타고 다녀. 정비도 끝내놨으니.”
“감사합니다.”
“아니, 뭐 감사해야 할 건 나지.”
백승현이 마치 장성한 딸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눈으로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저기.”
이제야 때가 무르익은 것 같다.
왜 이 사람이 내 영역에 찾아 왔는지.
몇 번이고 물을 기회가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내 예감이 안 좋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물어도 될 것 같다.
“혹시, 전에 제가 사는 곳 주변에서 무전기로 절 찾지 않았나요?”
“어? 어! 그런 적이 있지.”
백승현이 살짝 당황스러워 한다.
그 반응만으로 얼추 답을 확인했다.
마음이 차갑게 식는 걸 느끼며 물었다.
“왜 찾으셨나요?”
백승현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시선을 돌렸다.
“글쎄. 잠깐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서.”
“진짜요?”
“아니, 그땐 좀 궁했거든!”
역시 이 인간, 나와는 안 맞다.
*
다시 내 방공호로 돌아왔다.
어둡고 조용하고 어떨 땐 무덤처럼 보이지만 이곳에 돌아오자마자 뭐랄까, 마음이 놓인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나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
나는 이제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물밖에 나온 고기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나.
물고기가 공기에 적응했다고 쳐도 그걸 물고기라 할 수 있을까?
어항 안에 흔들리는 드래곤씨의 모조 금붕어를 보며 마음을 굳혔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
그 철갑을 두른 뮤테이션을 생각해본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 놈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놈도 그 행복이 영원히 계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는 나의 집이고 나의 안식처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
그게 내 고민의 끝에 나온 결론이다.
하지만 그 답을 얻기 위해 나는 또 하나의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dongtanmom : 냠냠... 제주도 못 가니까 까는 거잖아... 냠냠... 왜 가지지 못하면 신포도질을 하는 거지? 냠냠.....
게시판에 망자가 다시 나타나는 건 더 이상 놀란 일이 아니지만 새롭게 복귀한 동탄맘은 여러 의미로 게시판에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dongtanmom : 냠냠.... 정부가 사람을 왜 죽여? 냠냠.... 개척단? 나이 55세 이상 말 안 듣고 불만 많은 사람들 던진 건데? 냠냠... 설마 님도 그 나이대? 냠냠....
동탄맘이 복귀했다.
더 끔찍한 내용물과 컨셉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