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민 (3)
백승현의 아내를 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첫인상은 어렸다.
얼굴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행동도 경험 없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미숙함이 선명하게 묻어 나왔다.
서른을 넘은 백승현과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것 같은 이 여자가 어떻게 만나서 아이까지 가지게 된 걸까.
전쟁 전이라면 갖가지 우연과 드라마를 써야 가능할 법 이야기지만 전쟁이 시작된 후 2년하고도 반년이 지난 현재 시점엔 그런 구구절절한 스토리는 필요 없다.
단지 팔등에 새겨진 불로 지진 자국, 얼굴에 난 흉터, 웃을 때 드러나는 빠진 이를 보면 즉석에서 설득력 100%의 인과관계가 만들어지니까.
“깡패들에게 잡혀 있던 걸 구해줬고 뭐, 그게 인연이 돼서 이렇게까지 된 거지요.”
처음 백승현은 내게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내게 경어를 썼다.
아마 내가 캡슐을 혼자 제거한 이후였으리라.
딱히 상대할 일이 없어서 그냥 놔뒀는데 이제는 다르다.
내가 이곳에 살기로 결정한다면 백승현은 나의 이웃이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선배.”
“뭐,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그쪽도 편하게 말해.”
“아니오. 저는 경어가 편합니다.”
애 아빠가 된 백승현의 집은, 그러니까 판잣집이다.
진짜로 판자로 만들었다.
건설 과정을 추측해보면 벽돌로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합판을 깔고 합판 위에 판자들을 얼기설기 끼워 맞추고 못질해서 슬레이트 지붕을 씌운 구조다.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축사나 농기구 창고를 그런 식으로 만드는 걸 본 적이 있고 실제로 김노인 밑에서 만들어보기도 했다.
당연히 상하수도 시설은 없다.
용변은 뒤편에 있는 공동 화장실에서 직접 해결해야 하고 물도 그 옆에 있는 수도관에서 받아 써야 한다.
“······.”
이게 집인지 돼지우린지.
“요즘 세상에 1가족 1주택이 얼마나 사친 줄 아나?”
백승현이 황당해하고 있는 날 보며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이 헌터 하우스는 전기가 들어오지. 무려 밤에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집 안에서 충전도 가능하지. 공용 휴대폰 충전소에서 줄 서지 않아도 폰도 충전 가능하고.”
이 사람.
이 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잠시 후, 백승현이 나를 내가 살게 될 장소로 안내했다.
나의 새로운 집 후보는 백승현 집을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는 또 다른 판잣집이다.
“······.”
이게 집이냐.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노숙자가 골판지로 지은 집을 좀 더 크게 불려 놓은 느낌?
안은 어떨까.
백승현은 궁색한 와중에도 나름 이런저런 벽지로 꾸며놓긴 했던데.
그래도 안은 적당히 아늑하지 않을까 내심 스스로를 위로하며 문을 열었다.
찍찍!
나를 반기는 건 시궁쥐 몇 마리.
구석 진 곳엔 혐오스러운 도시의 벌레들이 창궐하고 있었다.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런 데서 살아야 하나.
“소독 한 번 해야겠네.”
백승현은 그 벌레들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어차피 이 집은 전기 공사 안 했으니 소독 좀 하면 살만해질 거야. 이참에 누수도 손 봐야지?”
김다람이 내게 해준 말을 백승현에게 해주고 싶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겁니까?”
서둘러 집에서 빠져나오며 백승현에게 물었다.
백승현이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안 태워?”
“괜찮아요.”
그의 담배는 피지 않기로 했다.
그 담배에선 시체 맛이 나니까.
“반년 전인가?”
백승현이 담배 불을 붙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근에 지은 곳 아닌가요?”
“아니, 김다람이 있던 시절부터 있던 곳이야.”
“김다람요?”
백승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치를 봤다.
“김다람, 사라지기 전엔 무슨 일 한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 프리랜서 헌터들 관리자였어. 그 여자가 말 안 했어?”
“아니오. 그런 말은.”
내가 은퇴한 후 그녀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몇 번 있지만 일에 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국위원의 위원이라길래 높은 사람 정도로 생각했지 구체적인 직함을 들은 적이 없으니.
“평범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남아 있으려면······.”
백승현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능력으로는 턱도 없고 뭔가를 소모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과거에 쌓은 것들, 과거의 인연들을 땔감으로 쓰더라고. 그렇게라도 해야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으니까.”
백승현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회사만 해도 그렇잖아? 대기업 은퇴자들이 예전에 있던 회사 지식으로 연명하거나, 아니면 작은 기생충 회사 만들어 몸담았던 기업에 유지보수라는 명목으로 피 빨아 먹는 거?”
그의 말을 들으면서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알려 하지 않았다.
김다람이 정확히 국위원이라는, 어웨이큰들의 놀음판 된 무대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상훈이야 원체 집안도 좋은 사람에 정치 감각도 있고 연줄을 잘 만들어놔서 어웨이큰의 이능으로도 흔들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지만 김다람은 천애고아에 팀원 출신이고 딱히 본인 명의로 두각을 드러낸 게 없다.
머리가 좋고 꼼꼼해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세상에 능력 있는 사람이 한둘인가.
전장이라면 모를까 의사 결정하는 자리에 그리 높은 능력을 요구할 것 같진 않다.
이제 내 후배의 비밀이 선배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려고 한다.
“프리랜서 헌터 제도라는 거, 그 여자가 만든 거 알아?”
“김다람이 프리랜서 헌터를 만들었다고요?”
금시초문이다.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같은 은퇴자들 국위원에서 직접 고용하기도 책임지기도 싫으니 싼 맛에 부려먹으려고 만든 거지. 프리랜서라는 말, 일단 듣기는 좋잖아?”
백승현은 한 차례 코웃음을 치고는 남은 말을 마저 이었다.
“그 여자는 선배, 동기, 후배를 진짜 프리랜서 일용직으로 만들었어. 자신의 과거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은 거지.”
백승현이 한숨을 내쉬며 내 앞에 무전기를 꺼내보였다.
K-워키토키. 내가 가진 것과 똑같은 군용 무전기다.
“······그 여자가 군단파로 넘어간 날, 무전기를 놔두고 갔더라고. 아마 추적이 두려웠겠지. 무전기 주파수로 역탐지해서 포격이나 폭격을 가할 수도 있으니.”
“그때 이런 말씀 해주셨으면 좋았을 거 같네요.”
진심이다.
미리 그녀의 실체를 알았다면, 그녀를 애도하는 횟수도 자연스레 줄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헛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한 게 아깝다는 소리다.
“그때라니?”
“국회 앞에서요.”
백승현이 날 보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그때 이런 이야기 해봐야 안 믿을 거잖아?”
딱히 할 말이 없다.
백승현의 말이 맞다.
그때 그가 진실을 말해줬어도 나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질문과 그의 대답이 분위기를 삭막하게 한 건 사실이다.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침묵을 깬 건 백승현의 아기였다.
“애애애애앵-!”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아빠와 달리 목청이 아주 우렁찬 녀석이다.
곧 백승현의 아내가 우는 아기를 안은 채 판잣집으로 나왔다.
“아저씨~.”
“잠깐만.”
백승현이 나의 양해를 구하고 판잣집으로 돌아갔다.
백승현의 아내가 우는 아기를 백승현에게 내밀었다.
백승현은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레 넘겨받더니 아주 익숙한 솜씨로 아기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어이구. 착하지. 우리 아기. 우쭈쭈. 까르륵- 끼야호우!”
이상한 표정을 짓고 리드미컬하게 아이를 흔들고 인내하기도 하고 귓가에 부드러운 말을 속삭여주는 그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가 아이를 달래는 동안 그의 어린 아내가 내게 다가왔다.
“1년 후배라면서요?”
그의 아내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네. 그렇죠.”
“되게 동안이시네요? 아니, 어려 보인다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주무시는 거 같아요.”
“실제로 잘 먹고 잘 잡니다.”
그녀에게 내가 가지고 온 고라니 소시지를 내밀었다.
“이건 약소하지만 선물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하네요.”
“와. 소시지? 직접 만드신 거예요?”
“아니오. 지인에게 받은 겁니다.”
“아, 그렇군요. 우리 아저씨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실속이 하나도 없어서······.”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바닥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이내 밝은 얼굴로 좁은 복도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우리 아저씨 강하니까.”
“강한 사람 맞습니다.”
인정한다.
백승현은 강한 사람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
공동 화장실과 수도 시설이 있는 곳 앞엔 바다가 항만이 펼쳐져 있었다.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을 나는 걸 눈으로 좇으며 백승현이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자기 가족 전부 다 챙기고 나왔지.”
“정말입니까?”
“그것뿐이겠어? 프리랜서 헌터 중 자기 말 잘 듣는 놈들 포섭해서 함께 빠져나갔어.”
백승현에게 이야기해 준 내 후배, 김다람의 이야기는 현실을 닮아 있었다.
현실처럼 불합리하고 이기적이고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와 헤어지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해 본다.
“아무튼, 거취가 정해지면 연락할게.”
그녀는 내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연락은 오지 않았고 대신 날 죽이려는 인간들이 나타났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더라고.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걸 눈치채고 나만 쏙 빼놓고 이야기 안 해준 거 보면 말이지.”
백승현이 코웃음을 치고는 날 보며 씨익 웃었다.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할까?”
“뭐, 그 정도면 된 거 같네요. 그런데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습니까?”
내 물음에 백승현은 마치 소년처럼 짓궂게 웃었다.
“오리엔테이션 기억나나?”
오리엔테이션이라.
오랜만에 듣는 명사다.
아직도 기억난다.
꽃샘추위 속에서 천 명 가까운 신입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매스게임을 준비하던 장면이.
학년 대항 단체 매스게임.
그것이 우리 학교의 오리엔테이션이다.
우리 학교에선 신입생이 오면 한 학년 선배의 지도로 매스 게임을 준비하고 한 달 뒤, 운동장에 전학생이 모여 학년 대항 매스게임 경쟁전을 개최했다.
거기서 선배들은 보란 듯이 신입생에게 천 명이 한 명이 된 것 같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과시했고 중간중간 천둥 같은 고함을 일제히 내질러 우리의 기를 꺾어놓았다.
우리 신입생도 지지 않고 나름의 오기로 똘똘 뭉쳐 천 명이 하나가 된 것처럼 열연을 펼쳤다.
당시엔 무의미한 행사로 생각했는데 다 의미가 있었다.
그 긴 학교 시절 중에 이 행사가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걸 보면 말이다.
신입생 당시 3학년 선배 하나가 기억난다.
머리를 삭발한 선배였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수천 명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기는커녕 혼자 전체를 씹어먹을 듯한 고함을 내지르며 수천 명을 지휘했다.
그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멋졌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죽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운동장 스탠드 석에서 저마다 카드를 들고 천 명이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이던 어린 학생들은 늙지 못한 채 죽었다.
살아 남은 건 극소수고 그마저도 앞날이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고 있다.
“전현직이. 저주의 17기야. 특이하게도 남미에서 활동했지.”
백승현이 그 학교의 잔재들을 내게 보여줬다.
“방재혁. 15기. 무릎만 안 다쳤어도 더 크게 될 친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수 역할만 하고 있지. 그래도 총질 하나만은 김다람에게 뒤지지 않아.”
모두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오고 비슷한 시대를 보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왜일까.
“이쪽은 하태훈씨. 11기야. 내 선배지. 왜 씨냐고? 본인이 그렇게 불러달래.”
날 바라보는 이 사람들이 낯설어 보이는 건.
이질감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니다.
같은 매스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날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드문드문 적개심인지 경계심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눈빛을 보내왔다.
“신경 쓰지 마. 원래 여기 분위기가 그래. 다들 상처 입은 친구들이지. 그래서 경계부터 하고 보는 거야. 주인에게 두들겨 맞은 개들을 생각해보라고.”
백승현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좀 지내다 보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
대답하지 않았다.
퀭한 눈빛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뭐랄까, 나와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집 정리 시작해볼까?”
백승현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네? 선배 도우시게요?”
“모처럼 귀하신 후배가 왔는데 내가 직접 도와야하지 않겠어?”
백승현은 아예 날 밀쳐두고 자기가 직접 내가 살 집을 정리했다.
오래되고 썩은 판자를 떼어내고 소독제를 뿌리고 간이침대를 설치하고 전기선까지 끌고와 내 방에 전등을 달아주기까지 했다.
“······.”
지나칠 정도의 호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니나 다를까, 그러한 과한 친절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싸울 수 있나?”
백승현이 본심을 드러냈다.
오히려 그 모습에 익숙함과 안도를 느끼며 담담하게 답했다.
“어느 정도는.”
백승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뮤테이션이 있어. 그걸 처리하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이게 용건인가.
몬스터라면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뮤테이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런데 겨우 뮤테이션 상대로 백승현 정도나 되는 헌터가 쩔쩔 맨다라.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뮤테이션? 몇 마리인가요?”
혹시 아나.
수십 마리일지.
수십 마리라면 뭐, 거절해야지.
“한 마리.”
내 귀를 의심했다.
한 마리?
몬스터도 아니고 고작 뮤테이션 한 마리?
순수한 호기심을 느끼며 그의 눈을 보았다.
“어떤 놈이죠?”
“침팬지.”
“아.”
원종을 듣는 순간부터 꽤나 귀찮은 놈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침팬지는 침팬지다.
좀 커지고 강해지고 인간의 지능을 가진다고 해봐야 총알을 튕겨내는 재주는 없다.
“이걸 보라고.”
백승현이 휴대폰 안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폐허가 된 돔형 야구장.
그 입구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한 채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놈의 짓이야.”
“사람 같네요.”
뭐, 놀랄 일은 아니다.
내 뒷동네에도 사람 같은 놈 한 마리 살고 있으니.
골드라고.
“내가 아는 헌터 하나가 말하더군.”
백승현이 사진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뮤테이션. 어웨이큰일 확률이 있다고.”
“······그건 확실히 새롭군요.”
무심코 나는 은사 장기영을 떠올렸다.
“우민희가 그놈 시체를 가지고 오면 날 제주도로 보내주겠대.”
“제주도요?”
“그래. 제주도.”
“제주도로 간 피난선단이 실제로는 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그런 소문도 있지. 하지만.”
백승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쓰러져가는 그의 집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아이가 있었다.
“제주도로 가야 해.”
“거기가 반드시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백승현이 그의 어린 아내를 손짓해 불렀다.
아내가 다가오자 그는 자신의 아이를 안았다.
“김다람이 가고 싶어했던 곳이잖아? ”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기가 아비의 얼굴을 보고 꺄르르 웃는다.
그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그 아이를 흔들면서 백승현이 간절한 눈으로 날 보았다.
“우리, 김다람 가족보다 더 잘 살고 싶어.”
말에도 무게가 있겠냐만.
그의 한마디는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는 무게가 있었다.
그 무게는 적어도 한 가족분의 무게보다는 무거울 것이리라.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되겠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곧 고개를 들며 백승현에게 답했다.
“어딥니까?”
이유는 여럿 있다.
뮤테이션 - 어웨이큰을 보고 싶기도 하고 백승현의 실제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다.
모처럼 프리랜서라는 새 직업을 얻었는데 실력을 보이는 것도 예의라면 예의겠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이리라.
여기에 있으면 언젠가는 내가 그 괴물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백승현이 죽으면 다음 그 임무는 내게 넘어올지도.
그럴 바엔 차라리 백승현과 함께 하는 게 나으리라.
그러니까, 선배의 간절함이 내 가슴에 진하게 와닿아서 한 것만은 아니라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