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민 (2)
“아, 선배? 무슨 일이야?”
우민희의 기분은 꽤나 좋아 보였다.
“좋은 일 있냐?”
“아, 인터넷에 웃긴 사람이 글을 올려서.”
“인터넷? 지금 세상에 어떻게 하는 거냐? 랜선 다 끊기지 않았냐?”
“그런 게 있어. 내가 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선배 개인식별번호랑 똑같은 이름 쓰는 인간이 있거든.”
“스켈톤?”
“응. 사람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진짜 뭐야. 근본부터 뒤틀린 그런 느낌?”
“아, 뭔지 알 거 같아.”
너잖아. 너.
누가 누구보고 이상하다고 할 자격 있는 건지.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다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인천에 일자리 있냐? 여기, 슬슬 위험한 거 같아서.”
“인천에 오려고?”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건 아니지만 내 방공호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다른 방법도 궁리해봐야 한다는 소리다.
가장 큰 동기를 제공한 건 우민희라는 인간의 변화일 것이다.
그 손도 못 댈 정도로 광기를 풍기던 내 후배도 서른 정도 먹으니 사람 비슷한 것으로 변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쉽게 연락을 주고받으리라고는 적어도 1년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역으로 다른 사람도 변했다.
그 김다람이 저렇게 변할 줄 상상이나 했겠나.
나와 가장 손발이 잘 맞던 영혼의 파트너가 이제는 과거의 선배이자 팀장인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팔아넘기고 있다.
그녀에게 계산적인 면모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녀가 김필성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는데 걸리는 시간이 딜레이가 없다는 건 나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단 한 번 둘러나 보려고.”
어차피 국회파와 군단파라는 투쟁에서 국회파를 골랐다.
우민희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뭐, 말리진 않을게. 선배 덕분에 큰 건 하나 해결하기도 했으니. 그런데 그 일자리 선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여기 포화상태거든? 거기다가.”
아무리 사람이 변해도 본성까지는 쉬이 바뀌지 않는다.
우민희를 상대하다 보면 여러모로 피곤할 것이다.
“혼자 와야 하는데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어?”
“장갑차 안 보내주냐?”
“내가 필요 없는데 굳이?”
벌써 그 싹을 드러내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어쩌면 지금 연락을 받은 것도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혼자 가볼게.”
“오면 연구실에 찾아와. 연락은 해둘게. 나 있는 장소 어딘지 알지?”
“그, 그래.”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민희를 상대하다 보면 더러운 꼴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냐.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단은 한 번 내 눈으로 보고 싶다.
멸망해가는 도시에서의 생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 럭셔리한 방공호 생활을 해온 내가 과연 거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 그리고 선배.”
우민희가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혹시 옛날에 돈 빌린 적 있어?”
“어, 응. 조금?”
무엇보다 중요한 점 하나.
“도박하다 날린 적이 있어서.”
내가 엄창이라는 건 무덤까지 들고 가야 할 비밀이다.
*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울 예정이기에 이웃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다.
“뭐? 일주일 동안 인천에 있겠다고?”
먼저 디펜더에게 연락했다.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고.”
“뭐 하려고? 그 번잡스러운 동네에?”
“그게, 슬슬 이사도 고려해봐야 해서 말이야. 상황이 좋지 않거든.”
“군대에 찍힌 거냐?”
“어, 뭐. 그렇지. 터가 좋았는데 이제는 터가 안 좋잖아?”
“굳이 이사를 가야할 지 모르겠네. 군단파가 너 하나 찍어내자고 백만 대군 보낼 건 아닐 거 아니야? VIP도 아니고.”
VIP 소리가 나오니 디펜더 동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스켈톤 혹시 VIP? VIP였어?!”
동생이 흥분하니 오빠도 따라 흥분하는 건 이 남매의 특징이다.
“스, 스서방?!”
“아니, 그런 대단한 건 아니고. 걱정병이 도진 거지. 노파심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 하지만 말이야.”
디펜더가 음하는 소리를 내며 말꼬리를 흐렸다.
잠시 후, 그가 정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거기서 버틸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
쉽게 말했지만 사실 잘 모른다.
멸망해가는 도시에서 잠을 잔 적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행객으로 잠시 들를 때나 잠을 잤던 것이고 그 안에서 생활 비슷한 걸 영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하지만 도시의 삶이 보이는 것보다 비참하고 궁핍하고 끔찍하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잘 보려 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두 번째 선비가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던가.
내던져진 자들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당장 한파만 와도 죽을 수 있는 게 평범한 인간들의 삶이다.
식량 또한 걱정이 된다.
우리 게시판에서조차 심심찮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글이 나오는데 도시는 오죽하겠나.
개사료바가 출시된 것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어떻게 도시에서 용케 여전히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생각해서는 안 될 그런 문제라는 느낌이 팍하고 꽂혔다.
디펜더에게 여행 계획을 밝힌 후 다음엔 저격수 모녀에게 연락했다.
“스켈톤? 우리가 그 집 써도 돼?”
역시 우리 저격수 모녀는 사정이 많이 어려운 모양이다.
레베카가 후안무치한 성격인 것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을 비우자마자 남의 집에 들어가 살겠다는 발상이 하루이틀 쌓인 불편함으로는 탄생하긴 어렵다.
물론 내 대답은,
“아, 안 돼.”
거절이다.
“왜?”
“여기 위험해. 봤잖아? 헬기, 전투기 오는 거.”
“아.”
“요즘 많이 힘들어?”
“엄청 힘들어.”
“그, 그래. 내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교신을 끊으려고 하니 스우가 레베카를 밀쳐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켈톤!”
“응.”
“우리 괜찮아. 더 버틸 수 있어.”
“그래?”
“응. 대신 올때 쥬시- 한 거.”
“과즙 많은 거 말이지?”
스우 녀석.
설마 아는 건가?
저렇게 나오는 게 내 마음을 더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랬다면 멍청한 엄마와는 다르게 타고난 여우일지도 모른다.
그럴 리는 없겠지······.
사실 서울이나 인천이나 나한테는 비슷한 거리다.
교통수단으로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골랐다.
무기는 중국제 소총과 권총 한 정, 도끼라는 단출한 여행 장비로 준비했고 그외 약간의 식량과 물물거래용 고라니 고기 소시지, 물물교환용 술과 담배 등을 챙겼다.
담배 재고가 없었는데 김필성 패거리가 들고 있던 게 있어 디펜더와 반으로 나눴다.
방어구로는 방탄조끼 하나를 걸칠까 싶었는데 계절도 계절이겠다 그냥 놔두고 갔다.
방어력도 방어력이지만 평소 체력과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 쪽이 개인적으로 낫다고 생각해서 내린 판단이다.
늘 그렇듯 해가 지길 기다려 야음을 틈타 익숙한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 영역은 오랫동안 공백 상태였다.
중국군이 돌아다니고 핵이 떨어진 지역이라 나라조차 포기했다는 소문이 들어 사람들이 거의 들어서지 않았다.
실제로 나라에서는 취약한 서부 쪽을 일부러 방치하기도 했고.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2년하고도 반년 정도 지난 현재 시점엔 내 영역에도 사람이 종종 산다.
개척자들이다.
지난겨울을 이겨낸 개척자들 일부가 야산과 구릉, 혹은 버려진 아파트 쪽에서 나름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존 중이다.
그들의 행동양식은 약탈자와 민간인의 경계 선상이란다.
대체로 우호적으로 행동하지만 상대방이 자신보다 약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어김없이 약탈자로 돌변해 상대방의 것을 뺏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안이 유지되는 곳까지 인간을 최대한 피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익숙한 길을 따라가던 중 최소 3개 이상의 개척자 캠프를 발견했다.
네댓 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캠프가 하나였고 나머지는 최소 스무 명이 넘는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총기로 무장했고 어김없이 보초를 세워 야간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캠프가 도로와 밀접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개천을 건너가야 했다.
다행히 계절이 계절인지라 물을 건너는 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강을 건너자 과거에 시흥시라 불리던 반쯤 무너진 도시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는 인천시 정부의 관할이다.
중국 군함의 포격과 핵공격으로 초토화가 된 대지 위 난민 캠프가 세워졌고 군대의 감시하에 체계적인 농업과 필요 최소한의 공업 수요품을 만들고 있다.
과연 거리에 접근하자 지키는 군인들이 보인다.
우민희가 알려준 대로 그녀 이름을 팔고 내 이름을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확실히 정부 쪽 장악지대로 오는 중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군인들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한다.
전파가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에 내 휴대폰도 꺼내 보았다.
과연 안테나가 뜬다.
군인들이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군인 하나에게 접근해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넌지시 물었다.
“여기 휴대폰 잘 되나요?”
“그럭저럭요.”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잘 터지는 느낌인데요.”
“그렇죠. 사람도 줄고 땅도 줄었으니. 덩달아 통신망도 확충했고요.”
“그래요?”
“사방에서 이상한 것들이 워낙 많이 나타나는 시대잖아요?”
“그렇긴 하죠.”
“휴대폰은 다 하나씩 들고 있고 전파만 통하면 인천에 모인 그 많은 사람 하나하나가 정보원이 되지 않겠어요? 게다가 페일넷 같은 놀 장소도 나라에서 마련해줬으니 일석이조죠.”
이 군인은 페일넷이 나라에서 만든 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누가 그런 위대한 사이트를 한 개인의 집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까.
곧 상부에서 연락이 왔다.
“자전거는 여기에 맡기세요. 지프로 모시라는 명령이네요.”
군인이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느껴지는 시기심과 탐욕이 섞인 시선 테러를 당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다음부터는 편안하게 연구소에 도착했다.
바다 내음 나는 부두에 도착할 무렵엔 여전히 늦은 밤이었다.
당직 직원 하나가 내게 연구소에 딸린 방을 배정해줬다.
방 안엔 2층 침대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없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
해가 뜬 후 일과가 시작됐다.
모처럼 남의 집에서 샤워를 했다.
꽤 괜찮은 샤워 시설이 있기에 기분 좋게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베이비파우더도 구비되어 있었는데 흠뻑 묻혔다.
베이비파우더는 나에게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뽀송뽀송한 상태로 방안에서 쉬고 있자니 우민희의 부하라는 사람이 날 찾았다.
전에 날 안내한 사람과는 다른 사내였다.
“죄송합니다만 우소장은 출타 중이시라.”
수더분한 행색에 하얀 가운을 입은 그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병이 있는 듯 딴 곳을 바라보며 우민희의 뜻을 전달했다.
“우소장님이 말씀하시길, 전직 헌터라고 하던데 맞으시죠?”
“네.”
“우소장님이 프리랜서 헌터 쪽을 추천하셨거든요? 지금부터 프리랜서 헌터 숙소로 안내를 하려고 해요.”
“프리랜서 헌터 숙소라는 게 있습니까?”
“아, 네. 실은······.”
사내가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프리랜서 헌터에게 딱히 복지 지원은 없었는데 최근 군단파 쪽에서 프리랜서 헌터. 그러니까 올드스쿨 헌터라고 하죠? 이쪽을 빼가는 움직임이 많아져서요. 부랴부랴 지원책을 내놨죠.”
“그렇군요. 프리랜서 헌터는 무슨 일을 하나요?”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예의상 물었다.
프리랜서 헌터라는 건 그러니까 일종의 해결사다.
나라가 힘을 쓰기엔 비용이 너무 들고 그 비용 대비 효율을 뽑을 수 없는 궁벽한 지역에 헌터랍시고 싸게 치이는 잉여 인력을 내보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헌터가 주로 상대하는 건 몬스터가 아닌 뮤테이션이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프리랜서 헌터들은 그럭저럭 음지에서 활약을 했다고 한다.
뮤테이션은 몬스터와 다르게 사방에서 느닷없이 나타나고 그런 것들을 일일이 군대가 처리하는 건 지나칠 정도로 비용이 크니까.
하지만 그 대접은 썩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백승현만 봐도 알 수 있다.
구시대 기준으로 A급 헌터였던 그는 개척단 같은 인간쓰레기와 호형호제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프리랜서 헌터들의 주거지는 연구소 뒤편에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연구소와 그 너머 빽빽하게 자리를 채운 항만 창고 사이의 좁은 골목.
거기가 프리랜서 헌터들의 주거지다.
헌터 거리
하얀 페인트 칠을 한 나무 판자에 매직으로 갈겨 쓴 문구가 그 거리가 어떤 곳인지 말해줬다.
“B-23호. 거기로 가시면 돼요.”
연구소 직원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혼자 가겠다고 말하고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드리운 골목 너머로 길가에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장기를 두는 노인, 빨래를 너는 노파,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는 아이들.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의외다.
분명 우리 구시대의 헌터들만 득실거릴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날 알아보는 놈 하나둘 만날 수도 있고.
“어?”
A-13이라는 푯말이 적힌 가건물 앞이었다.
한 사내가 날 보며 아는 체를 했다.
“여기로 오셨어요?”
백승현이다.
놀란 얼굴로 날 보고 있는 그의 팔엔 그를 닮은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