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68화 (68/183)

42. 낙원 (1)

멸망이 닥치기 전 비바!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내 피난처 자랑하기” 였다.

세계 각국의 멸망주의자들이 저마다의 피난처를 공개했고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그들이 인증한 피난처는 저마다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의 장점이 있었다.

피난처라고 해서 반드시 방공호를 파거나 방어 시설을 만드는 건 아니었다.

캐나다의 어떤 유저는 미국 원주민의 방식을 완전히 습득해 거추장스러운 장비나 공사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압도적인 야영스킬과 사냥기술을 통해 인증했다.

그가 자랑한 피난처는 끝없는 원시림이었다.

반면 압도적인 돈지랄로 모두의 입을 닥치게 하는 부유한 유저도 있었다.

천억이 넘는 호화요트에 생존 필수품은 물론 경호원과 헬기까지 구비한 그 아라비아 석유맨 앞에서는 감히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피난처를 구축한 건 재벌 출신인 박철주 회장이었다.

언덕 위에 웅장한 요새를 세우고 농축산물 시설을 갖추고 작게나마 골프장까지 마련한 그의 요새는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세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 요새는 느닷없이 떨어진 포격으로 파괴됐고 폐허가 되었다.

군단파의 포병대가 이유 없이 포격을 가했고 재벌의 성채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재벌 일가의 운명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이 내 영역에 찾아온 것은 제주 선단이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난 뒤였다.

*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눈나! 또 비트박스 안 올려줘?! 나 지금 완전 비트 타고 있어! (@@ )( @^))(@@ )( @@)

최근 유니콘18이 매일 내게 메시지를 보낸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유는 알 것같지만 조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참는 쪽이 좋겠지.

“······.”

전략적 모호성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선배.”

스켈톤의 비트박스 (4)가 올라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민희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

“선배 혹시 이상한 취미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지?”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그녀는 도망치듯 교신을 끊었다.

그 여자의 속마음을 알 방법은 없지만 아마 그녀는 이 스켈톤을 약간이나마 의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뭐, 개인식별번호와 비바! 아포칼립스! 닉네임이 같으면 누구나 의심할 법 하겠지만 말이다.

페일넷과 우리 게시판에서는 한창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주된 화제는 역시 제주도행 피난 선단이다.

정부에서 발표한 영상을 보니 수많은 선박이 푸른 제주항을 배경으로 줄지어 서서 수많은 사람을 토해내고 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던 가족? 혹은 환영 인파로 보이는 사람과 감격의 포옹을 했다.

그다지 행복할 거리가 없는 이 시대에 충분한 감동을 주는 영상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영상이 조작된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중 가장 뜨거운 열변을 토하는 건 제주도 게시판 최고의 네임드 m9였다.

멸망 전에 뭘 해서 먹고 살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지금 m9는 대한민국 최고의 페이크 영상 판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mmmmmmmm : 00:13 화면 좌상단 보라색 점퍼 입은 여성의 손이 노이즈 발생

mmmmmmmmm : 03:37 클로즈업 된 남성 눈동자의 들어오는 빛 방향과 옆에 서 있는 아이의 머리카락에 반사되는 빛의 방향이 틀림

mmmmmmmmm : 04:10 좌상귀에 자리 잡은 트롤 어선처럼 보이는 거, 그림자 방향이 다름 Q.E.D 증명 완료

“······뭔.”

난 잘 모르겠다.

이쪽은 그다지 연구하지도 않았고 사실을 의심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

그래도 긍정론자와 부정론자가 키보드배틀을 벌이며 싸움박질 하는 건 재밌는 일이긴 하다.

잠깐 보고 있으면 숙제 같은 시간이 훅 가버리는 걸 보니 말이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식량 정리다.

부스럭

영원할 것 같던 식량 창고도 슬슬 빈자리를 하나둘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냉동고의 소모가 극심한데 이는 의도한 것이다.

같은 식량을 먹더라도 냉동고에 보존된 걸 우선적으로 먹었고 처리하려 노력했다.

냉동고를 한 3년 가까이 가동해보니 전기도 전기지만 냉동고를 가동할 수 없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많이 쌓아두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무한한 전력과 안전을 확보한 뒤의 이야기다.

내 영역이 나름 안전한 곳이긴 하지만 100% 안전한 곳은 없다.

또 한 번의 위기가 언제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냉동식품의 비중을 줄이고 냉동으로 남기더라도 보존에 용이한 형태로 바꾸는 게 낫겠지.

생고기를 훈제로 바꾼다던가, 전처럼 페미컨을 만든다던가 아니면 육포나 소시지로 바꾼다던가.

가장 큰 애물단지는 골드가 준 사냥감이다.

골드는 짐승 몇 마리를 던져주고는 더 이상 내 영역을 찾지 않았다.

녀석이 생각하기에 그쯤이면 치료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모양.

그러니까 녀석이 생각하는 녀석의 목숨 값은 멧돼지 한 마리, 고라니 두 마리, 닭과 꿩 각 세 마리라는 소리다.

닭과 꿩은 허겁지겁 나 혼자 먹었지만 문제는 네발 달린 짐승고기다.

특히 고라니고기.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멧돼지고기조차 먹어내지 못하는 내겐 허들이 너무 높다고는 할까.

뭐, 아직 배가 덜 고픈 것이겠지.

이 끔찍한 세상에 반찬 투정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이 고라니 고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사슴류 고기는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들었다.

이놈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한 결과 소시지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육포와 달리 부피도 줄어들지 않고 보존력도 꽤 높으니.

소시지를 만들기 위한 재료와 기구는 갖추고 있다.

생각 난 김에 즉시 작업을 시작했다.

반쯤 벗겨놓은 가죽을 마저 벗기고 시체를 해체하고 뼈에서 살점과 지방을 분리했다.

꽤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지라 무전기와 라디오, 교신기를 옆에 놔뒀다.

위이이이잉---

잘게 자른 고기가 갈려 나가며 커다란 보울에 떨어졌다.

다음은 하얀 지방.

고라니에서 나온 게 아니라 돼지고기 지방이다.

소시지를 만들 땐 어떤 고기를 쓰던 돼지고기 지방을 섞는 쪽이 풍미도 좋고 예쁘게 잘 만들어진다고.

지방을 갈 땐 잘게 부순 얼음을 같이 가는 것이 포인트란다.

붉은 색 간고기가 반 정도 찬 보울 위에 하얀 색을 띤 간 지방이 소스처럼 얹어졌다.

순조로운 출발.

오늘 한 마리를 만들고 내일도 마저 해치워야겠다. 멧돼지고기를 포함해서.

맛이 어떨런진 모르겠지만 배가 고프면 나도 먹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작업에 박차를 가하려 할 떄였다.

멀리 차의 경적이 들려왔다.

개척단인가.

장갑을 벗고 잠망경으로 주위를 관찰했다.

미군기지로 통하는 쪽에 지프 한 대가 서 있다.

개척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상징하는 요란한 깃발이 없는 거 보니.

대체 어떤 사람일까, 잠시 관찰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무전기가 울렸다.

치지지직-

“박규 헌터님? 살아 계신가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

기억에 있는 목소리다.

누군지 기억하려고 애를 쓰고 있자니 그쪽에서 다시 교신을 해왔다.

“지영희입니다. 전에 도와주셨던. 살아 계세요?”

왜 두 번이나 살아 있냐고 물을까.

대답을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무시했다.

내게 볼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올 것이고 그러면 이쪽에서 저쪽이 몇 명을 데리고 왔고 무슨 용건으로 온 지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터이니.

잠망경 아래 보울을 갖다놓고 반죽을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아질산나트륨을 함유한 큐어링솔트가 뭉치지 않게 잘 비벼야 한다는 것이다.

아질산나트륨은 한꺼번에 10g 이상 섭취하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걸 안 넣으면 소시지 안에 또 다른 사람을 죽이는 병균이 발생한다고.

고로 아질산나트륨을 먹고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비비는 수밖에.

슥슥-

고기 반죽을 열심히 비비면서도 바깥의 동정은 지속적으로 살폈다.

대략 30번 정도 주무른 후 바깥을 관찰한 것 같다.

무전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지프 차량이 이곳에 오는 일도 없었다.

대신 다른 차량이 미군기지에 등장했다.

한두 대가 아니다.

거대한 집단이다.

컨테이너 트레일러 한 대, 대형 트럭 2대, 사륜구동 SUV 다섯 대에 달하는 마치 함대와 같은 대규모 차량무리가 내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규모가 워낙 크기에 즉시 일을 멈추고 무장을 점검했다.

총기와 실탄, 수류탄과 무반동포, 클레이모어.

여차하면 사용할 재블린도 만일에 대비해 배터리를 결합했다.

삐이익-

재블린의 가동음을 들으며 게시판을 통해 저격수 모녀에게 소식을 전했다.

“지금 내 앞에 대규모 차량 행렬이 있다. 그쪽과는 거리가 있지만 알아두라고.”

디펜더 남매에게 새로운 교신기를 받아 저격수 모녀에게 선물했다.

무전기도 좋고 인터넷도 좋지만 역시 근거리 통신엔 자체 암호화 기능이 있는 교신기만 한 게 없겠지.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스우가 대답했다.

“응.”

마음은 고맙지만 그들을 싸움에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한두 명이 아쉬운 싸움이라면 모르겠지만, 저렇게 시작부터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적 상대로 도와달라는 건 같이 죽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니까.

이 박규, 그 정도로 양심 없게는 살지 않았다.

디펜더 남매에게도 연락을 할까 싶었지만 그쪽으로 가려면 골드라는 시련을 넘겨야 한다.

일단 저격수 모녀에게만 사실을 알리고 계속해서 바깥 동정을 살폈다.

해는 중천에서 이제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햇볕은 따스하기보다는 따가울 정도였고 시야의 끝자락엔 어김없이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시계를 어지럽혔다.

잠시 생각했다.

지영희에게 내 소재지를 알려준 게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그건 아니리라.

마음이 불안해지면 모든 걸 후회하는 법이다.

그래서 의혹이 든 모양이다.

확실히 말하겠다.

나는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했다.

나는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저녁이 되도록 그들은 공군기지를 떠나지 않았다.

트레일러의 화물을 비롯한 장애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미군 기지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미군 기지 쪽에 사람들이 있어. 개척단은 아니지만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니 참고해라.”

디펜더에게도 연락을 보냈다.

“오케이. 스켈톤.”

다시 고기를 섞는 작업을 재개했다.

띄엄띄엄하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손을 차갑게 하던 고기는 이제 내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올라 있었다.

향신료와 조미료, MSG를 팍 넣고 기계로 한 번 섞어준 후 소시지 케이싱이라 불리는 콜라겐 껍질에 고기를 주입했다.

처음 하는 것치고는 작업이 잘 되었다.

소시지 케이싱이 예상외로 탄력이 높고 잘 버텨주어 모양새가 좋은 소시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맛은 기대하기 어려운 맛이리라.

누린내 나는 고기 맛을 가리려고 고기를 갈고 거기에 갖가지 향미료를 넣어 만들었으니.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정도도 인천에 있는 사람들에겐 호화로운 식사겠지.

당장 디펜더나 저격수만 해도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런 소시지를 열 개 정도를 만든 후 공군기지 쪽을 보았다.

“음?”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베큐 파티를 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즉시 방공호 밖으로 나와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폈다.

불판 주위에 모인 사람은 15명 정도.

남녀가 섞인 무리가 저마다 맥주가 담긴 잔을 들고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그쪽의 냄새가 이쪽에 풍길 리가 없지만 큼지막한 철제 꼬치에 갖가지 채소와 고기를 꿰어 숯불 그릴 위에서 진득하게 굽는 걸 걸 보고 있자니 그 향기가 이쪽까지 풍겨오는 느낌이다.

무심코 드는 생각 하나.

설마 날 음식으로 꾀어내려는 건가?

“······.”

그건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한 생각이리라.

하지만 그 풍경이 내 경계심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 건 사실이다.

“저기. 들리세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저, 박규입니다. 기억나세요?”

*

“오랜만이에요. 박규 헌터님. 연락이 없으셔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죠.”

지영희는 이번엔 부친을 동반하지 않았다.

굳이 묻진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내 앞에 서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

박철주.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양대 재벌인 석주 그룹의 회장이다.

그는 나에게 직접 말하는 대신 부하로 보이는 장년 사내에게 허리를 낮춰 뭔가 속삭였다.

그 사내가 지영희에게 뭔가 말했고 지영희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박규 헌터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여기 혼자 사세요. 아버지랑 같이 몇 번이나 확인한 걸요.”

아무래도 의심을 받는 쪽은 내 쪽인 거 같다.

항상 타인을 약탈자인지 아닌지 의심을 해서 그렇지 사실 나도 타인 눈엔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젊고 총기로 무장한 남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충분한 위협을 줄 수 있는 시대니까.

그것도 헌터 딱지를 단 인간이라면 더 경계하고 싶지 않을까?

지영희가 날 다른 테이블로 안내했다.

불판과는 거리가 떨어진 어두운 지점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날 위해 고기가 푸짐하게 담긴 접시와 맥주 한 잔을 내왔다.

“술은 괜찮아요.”

“콜라도 있어요.”

“콜라로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콜라를 가지러 간 동안 고기를 먹어보았다.

“!”

눈이 번쩍 뜨였다.

제대로 된 소고기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맛있는 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소고기만이 아니다.

함께 끼워 넣은 파프리카도 대파도 신선함이 살아 있다.

정신없이 꼬치 하나를 해치우고 있자니 지영희가 다가왔다.

“더 드실래요?”

“아니, 괜찮아요. 충분히 먹었어요. 그보다 여긴 무슨 일입니까?”

남은 접시를 천천히 비우며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지영희는 자신의 이야기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왜 그녀가 석주 그룹 쪽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지, 자신의 부친은 어디로 간 것인지.

대신 그녀는 그녀와 행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목적을 특유의 조곤조곤한 어조로 말해주었다.

“일본에 갈 생각이세요.”

“일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일본이라니.

지금 일본은 완전 봉쇄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어떤 선박, 항공기, 여하한 사람도 일본국에 출입을 불허한다.

부산에서 출발한 수천 명을 태운 난민선이 일본 군함의 포격으로 가라앉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 일본에 간다는 말은 적어도 내 귀엔 죽으러 간다는 소리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일본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허가를 받았어요. 회장님이 일본 정치인과 연줄이 있으시거든요.”

“그렇군요. 일본 어디로 가시나요?”

“오가사와라 제도로 가신데요.”

지영희가 웃으면서 휴대폰을 꺼내 아마 관광 홍보 목적으로 찍은 듯한 이국적인 열대 섬의 풍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회장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녀가 미소지었다.

“지옥에서 벗어나 낙원으로 가자고.”

그 미소가 너무나 행복해 보이기에 어떻게 갈 거냐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작은 희망 하나 갖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한 끼 잘 얻어먹었다.

그 정도면 된 것이겠지.

*

하루가 지났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고라니 소시지를 만들며 그들의 작업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무언가가 지게차에 실려 끌려 나왔다.

컨테이너 밖으로 끌려 나온 화물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비행기다.

아직 조립되지 않았지만 비행기는 이 세상 어디로든지 데려줄 것 같은 희망을 그 우아한 은빛 동체에 오롯이 품고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