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행운 (1)
전쟁이 시작되고 2년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바야흐로 시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둔감한 시기로 접어들었다.
근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갖가지 참상과 기묘한 일을 목격한 우리 게시판 유저들은 이제는 어지간한 일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예전 디펜더의 살인 인증을 보고 모두가 경악하던 시절이 코미디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한 사내의 부활은 게시판 전체를 예전의 바짝 날이 서 있던 시절로 돌아오기에 충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MMMMMMMMM : 안녕?
m9가 부활했다.
MMMMMMMMM : 개자식들아? ^^
그것도 mmmmmmmmm에서 MMMMMMMMM로 말이다.
업그레이드라도 했다는 암시인가?
아무튼, 더 호프의 유일한 입주민인 m9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인물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의 무시무시한 생존 능력은 그야말로 이 시대의 적자(適者)라는 걸 여러 번의 인상적인 사진으로 입증한 바 있다.
나는 그가 허리에 줄을 묶고 기울어진 집에서 생활하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인천에서 계엄령이 떨어지고 시위대가 군인을 죽이고 군인이 시민을 죽이는 뉴스에도 시큰둥하기만 하던 우리 게시판 유저들은 과거의 친구가 나타나자 글자 그대로 벌떡 일어섰다.
익명458 : 아니, 이 새끼 뭐야.
익명848 : 어떻게 산 거야? 서울에 있는 놈 다 뒤진 거 아니었어?
roka3218 : 진짜 m9님 맞나요?
ㅇㅇ : 뭐야? 느그들 네임드야? 누가 설명 좀
Defender : 야. 너는 불사신이냐?
ㅇㅇ : 이놈이 누군데?
iamjesus : 옴마니반메훔
keystone : 이 새끼는 진짜 존경할만한 새끼지.
SKELTON : (스켈톤 경악)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9 아니, 새로 태어난 M9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최후의 주상복합 아파트 “더 호프”의 수분양자이자 유일한 입주민이 맞다.
누구보다 농도 짙은 열등감과 그런 열등감을 갖고 있음에도 절치부심하며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기회가 왔을 때 유감없이 본색을 드러내는 천박함.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이라 할만한 M9의 귀환은 그 천박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대 그 자체를 담고 있었다.
*
국회파 정부가 최악의 악수를 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해서는 안 되는 시기에 선거를 강행한 대가는 컸다.
묵묵히 인내하던 시민들이 결국 일어섰고 인천은 아수라장이 됐다.
다만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시민도 정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 대표와 정부 대표가 협상을 했다.
선거는 무기한 연기, 현역 국회의원의 지위 반납, 제주 정부의 지원 확보, 안전 보장, 식량을 비롯한 생존 수단의 확보 등 협상안은 시민 대표가 요구하는 안이 전부 받아들여 지는 모양새로 타결됐다.
시위는 해산됐고 다시 시민은 인내를 택했다.
하지만 불만이 완전히 봉합된 건 아니었다.
일부 시민은 대체 우리가 협상하는 정부의 실체가 뭔지 규명을 요구했다.
페일넷에 올라 온 글 하나가 당면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ㅇㅇ : 대체 정부 대표가 누군데? 왜 자꾸 바뀌는 거야? 왜 우리가 모르는 기구가 자꾸 생기는 건데? 대체 누가 뒤에 숨어 있는 거냐고? 국회 찌꺼기야? 군바리야? 아니면 제주도로 도망간 배신자 새끼들이야?
확실히 이번 정부는 누가 수장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대통령이 행정부 고위층을 데리고 모두 도망간 이래 어지간한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국회가 정부 일을 대신 떠맡는 기묘한 모양새로 운영됐다.
명백히 기형적인 모습이지만 거기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내전이다 몬스터다 갖가지 일이 터졌으니.
그 문제 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더 큰 화제가 항의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그 화제란 오랫동안 서울 – 인천 정부가 사람들을 달래오던 당근이다.
제주도로 향하는 선단이 곧 출발한단다.
일정은 선거 전에도 잡혀 있었지만 이번 새로운 발표 안엔 그 일정을 무려 한 달이나 앞당겼고 거기에 더해 시민들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정부 – 군부 – 국회가 가진 보유분을 모조리 시민에게 풀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새롭게 풀린 좌석만 2천여 석.
이벤트는 그것이 끝이 아니다.
gijayangban : 제주 피난 선단을 위해 조성 중인 국민주택 단지 전경.jpg
페일넷에 올라온 사진 속엔 웅장하게 솟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택지에 수천 채에 달하는 컨테이너식 주택이 열과 오를 맞춰 끝없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컨테이너 하우스는 조잡했지만 적어도 더 호프보다는 수천 배는 더 단단해 보였다.
건물의 자재가 아닌 실현 가능성의 측면에서 말이다.
시민을 달래기 위한 정부의 시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들은 기관지와 대자보, 가두 방송을 통해, 심지어 페일넷에 직접 글을 올리기까지 하며 새로운 정책을 알렸다.
대한민국 정부 : 향후 대한민국 P.A(포스트 아포칼립스) 계획.
P.A 계획에 의하면 우선 인천에 밀집한 국민들을 제주도에 순차적으로 이전한 후, 과거의 직업과 경력에 따른 직업 선정, 노동에 따른 합리적인 대가 지급으로 무너진 국가 경제 기반을 재정립한다고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주라는 척박한 땅에서 실시할 첨단 농법의 개발, 현재 교역이 끊긴 생존국가 간의 무역 재개, 지방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제시했고 궁극적인 목표로 서울을 비롯한 미수복 지역의 수복을 천명했다.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헛된 약속이야 몇 번이나 반복됐으니.
하지만 이번은 뭔가 달랐다.
분위기랄까, 기세라고 할까.
흐름이라고 해도 좋다.
현재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건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정부에서 설치한 전광판에 진즉에 제주도로 도망간 대통령이 오랜만에 뻔뻔한 낯짝을 드러낸 것이다.
“국민 여러분! 긴 전쟁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중국과 자유 중국 간의 휴전 협상이 체결됐습니다. 협상에는 각 전쟁 당사자 전체를 포괄하는 정전 협정 안이 포함되어 있는바 전쟁 당사자 중 하나인 우리나라 또한 이제 전쟁의 위협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입니다. 곧 각국 간의 무역이 재개될 것이고······.”
전쟁이 시작된 후 자취를 감춘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러 의문을 낳았다.
ㅇㅇ : 딥페이크 아니야? 뭔가 어눌한데
ㅇㅇ : 목소리도 합성 같고. 저 새끼 뒤졌잖아?
ㅇㅇ : 대역 아니야?
페일넷에서는 한때 대통령 사망설이 화제였다고 한다.
여기엔 여러 개의 가설이 있는데 국위원이 헌터들을 모조리 제주로 빼낼 때 대통령이 반대했고 이를 고깝게 본 국위원 헌터가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설, 대통령이 처음부터 제주도에 도망가 국위원 실세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다 재떨이에 맞아 죽었다는 설, 대통령이 제주도로 가는 도중에 비행기째로 바닥에 곤두박질해 죽었다는 설 등등이 있었다.
어느 쪽이건 페일넷 유저와 당시 서울에 있던 시민들은 대통령이 죽었다는데 거의 동의하고 있었다.
왜, 그 인터뷰 좋아하는 대통령이 몇 년 간 코빼기도 안 보이면 누구나 죽음을 떠올리기 마련이니.
아무튼 그 대통령이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대통령은 M9처럼 부활했고 절망에 빠진 시민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묵묵히 인내하고 견딘 수도권의 국민들에 대한 사죄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오는 피난민 선단 입주민 일부를 추첨해 고위층을 위한 공관 및 관사를 자진해서 반납하기로 했습니다.”
제주 정부가 현재 고위층이 살고 있는 공관과 관사를 추첨해 국민에게 제공하기로 했단다.
하나 같이 호화롭고 화려하며, 전쟁 이전 기준으로도 완벽한 럭셔리를 갖춘 고급 저택이다.
그런데 이 모양새는 어찌 일전에 정부에서 저지른 복권, 특히 더 호프 사건 때와 쌍둥이처럼 비슷했다.
시민들에게 강렬한 호응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모두의 이목을 추첨에 쏠리게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M9가 다시 한번 당첨이라는 행운을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MMMMMMMMM : 대통령 관사 당첨증.JPG
이것이 우리의 M9가 긴 침묵을 깨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진정한 이유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게시판은 또 다시 난리가 났다.
roka_hun : 와....
Dolsingnam : 이건 좀 부럽네
gijayangban : 진짜 대통령 사는 데가 아니라 1형 관사 말하는 거지? 238㎡ 짜리.
ㅇㅇ : 이 비바 새끼, 다 기울어진 아파트에서 살던 놈이라며?
iamjesus : 아니 시발?
keystone : 야 나 데려가면 안 돼? 밥 잘 지어. 쉐프라고?
Defender : 엄창이 사건 나만 기억나냐?
unicorn18 : 형. 나도 데려가. 나 미소년임.
Dies_irae69 : 인내의 선물이네.
SKELTON : 흠······. 그 정도인가?
...
...
기울어진 아파트에서 대통령 관사라니.
뭐, 정확히는 기자 양반이 지적한 것처럼 실제 대통령이 사는 데가 아니라 최고위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가장 크고 넓은 타입 관사가 M9의 새로운 이사 집이란다.
“······.”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진짜다.
잠시 방공호 뒤편에 씨를 뿌리고 농사일을 하고 돌아올 때까진 말이다.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흠... 이 정도인가? ㅇㅈㄹ
“?”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뭐, 축축한 방공호에서 평생 살아 ^^ 나는 햇볕 드는 제주도 대통령 관사로 간다! 귤 먹으러 가즈아아아아아---!!
“······.”
다리의 붕대를 풀고 상처를 소독했다.
“아야.”
조금 따끔하다.
내 손으로 파편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상처를 헤집어놔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으니.
돌팔이의 한계라고 할까.
다시 상처를 소독한 후 붕대를 감고 마음을 비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타닥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SKELTON : (스켈톤 분석) 제주도 피난 선단의 위험성.txt
1. 제주도는 좁고 토지 부양력이 낮음.
2. 식량이 없다는 소리.
3. 중국이 멸망했어도 바다엔 여전히 해상 잔존 세력이 활동 중. 특히 잠수함.
4. 대형 선단은 잠수함의 좋은 먹잇감임.
5. 당장 제주 정부가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이 제로임
6. 제주도 앞바다에서 안 받아줄 가능성 있다는 소리.
7. 제주도를 장악한 건 국위원임. 국위원은 어웨이큰? 인가 하는 사람만 우대한다 함. 평범한 사람 절대 안 받아줌.
8. 영감생신도 유분수지, 절대 받아줄 리가 없음!
딸깍
모처럼 장문의 글을 작성해서 업로드했다.
그런데 반응이 시원찮다.
영감생신도 유분수라는 회심의 개그를 넣었는데도 내 글에 댓글이나 좋아요는 달리지 않았다.
그렇게 무려 15분이나 투자한 고찰 글은 다른 유저와 페일넷 유입들이 쓴 뻘글의 홍수에 밀려 아래로 속절없이 밀려났다.
이렇게 무플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 한 명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클릭해보았다.
MMMMMMMMM : ㅋ
“하.”
거기까진 괜찮다.
모양새야 어찌 됐든 내가 쓴 글은 일종의 저격글이니까.
그런데 M9 녀석,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MMMMMMMMM : (M나인 영상) M나인의 비트박스 (1)
“?!”
틀림없다.
이건 내 저격이다.
M9가 앙심을 품고 나 스켈톤을 저격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신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어이. 스켈톤 보고 있냐?”
“아하하하하! 개 웃겨! 진짜!”
디펜더 남매다.
“너 대체 M9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너만 죽자고 물어대냐?”
디펜더의 물음에 나는 나와 M9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오해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내가 더 호프의 진실을 지인에게 입수했고 그걸 선의로 M9한테 알려줬는데 정작 M9는 내 선의를 악의로 받아들이고 나를 적대한 슬픈 이야기를 말이다.
누가 봐도 M9가 잘못한 일이지만 디펜더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M9 입장에서 볼 땐 네가 더 얄미울 수 있었을지도.”
“뭐?”
“욕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 모르냐?”
“시누이? 베르누이?”
“그러니까 니가 욕을 먹는 거야.”
“?”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는 와중 다정이가 말했다.
“야. 스켈톤. 게시판 좀 봐. M9가 또 시비 걸어!”
M9가 다시 새로운 글을 올렸다.
MMMMMMMMM : (M나인 투표) 비트박스 내가 낳냐? 스켈톤이 낳냐?
다른 건 몰라도 M9, 이 인간쓰레기 놈.
그 기울어진 집에서 비바! 아포칼립스! 꼬박꼬박한 건 확실하다.
존내논이 비바! 아포칼립스! 네트워크를 해킹하면서 보안이 약해지는 과정에서 게시판 툴에 접근이 가능해졌고 그걸 통해 우리 게시판의 능력자인 폭스게임이 새로운 기능을 몇 개 추가했는데 그중 하나가 투표 기능이다.
주로 우리 게시판 유저의 식사 메뉴 결정이나 유니콘18의 2D 여성 캐릭터 인기투표 등으로 하찮게 이용된 기능인데 M9가 그걸 알고 나와 자신의 대결의 장으로 이용한 것이다.
좌우지간, 지금 M9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래의 투표 결과는 나와 M9의 차이를 확실하게 말해줬다.
1. M나인이 잘한다 (22표, 88%)
2. 스켈톤이 잘한다 (3표, 12%)
“······아니.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스켈톤!”
갑자기 다정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거 기회로 삼는 게 어떨까?”
“기회?”
“내가 스켈톤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