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유세 (4)
툭.
총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총기를 비어 있는 손으로 회수하고 탄환을 제거한 다음 총구를 귀 뒤에 겨눈 채 몸을 수색했다.
“······으.”
박상민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토록 당황할 일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
이 인간이 동정심을 유발해 나를 방심하게 한 후, 총기로 위협해 나를 사지로 내모는 것 정도는.
그의 유니크한 인생사와는 다르게 진부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다.
“······.”
어떻게 할까.
죽이는 게 옳을 것이다.
아마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겠지.
문제는 방식이다.
굳이 총기를 쓰고 싶진 않다.
총성이 울리고 구멍이 뚫린 시체가 발견되면 어떻게든 잡음이 흘러나올 것이고 우민희의 신경을 긁을 수도 있으니까.
“뒤돌아 서.”
“저기, 박 헌터님. 이건 오해입니다. 캡슐을 상대로 인티미데이팅, 그러니까 위장사격을 한 번 해보려고······.”
퍽!
권총 손잡이로 그의 어깨를 가차 없이 내리찍었다.
“아악!”
“앞으로 걸어가.”
“뭐, 뭘 하려는 겁니까?”
“앞으로.”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기 의사당 안에 스파이더 타입이 있다.
확실하다.
박상민 말대로 거점을 구축하지도 않았는데 하수인을 쏟아내는 게 걸리긴 하지만 하수인의 흔적은 부정할 수 없는 스파이더 타입의 증거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패턴을 가진 개체일 수도 있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몬스터는 꽤 자주 패턴을 변경한다.
물론 스파이더 타입이 내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일 가능성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럴 경우에도 보험은 있다.
캡슐을 깨우면 그만이다.
다만 그건 꽤 귀찮은 과정을 거치기에 어디까지나 마지막 선택지로 미뤄두었다.
바닥에 이어진 스파이더링의 흔적을 향해 박상민을 내몰았다.
침묵 속에서 공포감을 조장하며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방식은 내 선배 백승현에게 배웠다.
“이,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박상민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허락했다.
적어도 그가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는 마음대로 떠들게 할 생각이다.
“저도 유감입니다. 그쪽이 화를 내는 건 이해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몰라요. 아마 부담이 컸겠죠.”
“······.”
“밖에 우리 어머니 보셨죠? 제가 아까 어머니 이야기를 좀 했는데 사실입니다. 정말로 드센 분이에요. 동어반복에 다름 아니겠지만 저는 어머니가 던진 작은 공이죠. 던지는 순간부터 벡터값이 정해졌다는 소리죠.”
“······.”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죠?”
때마침 복도가 어두운 곳으로 향해 뻗어 있었다.
“······저기.”
랜턴을 켜서 앞을 비췄다.
풍경이 변했다.
“거미줄”이 있다.
진짜 거미가 치는 거미줄이 아닌 스파이더 타입이 근거지에 만드는 침식 현상을 말하는 거다.
일렬로 쭉 뻗었어야 할 복도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비틀어졌고 지면 그 자체가 융기한 것 같은 회백색 돌출부가 바닥, 천정, 벽면을 가리지 않고 솟아 중력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이것이 스파이더 타입을 난공불락으로 만드는 거미줄이다.
아직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건 확실하다.
완벽한 거미줄은 단지 눈을 어지럽히는 것만이 아닌, 중력의 방향조차 잊게 할 정도로 요사스러우니까.
“저를 죽이려는 겁니까?”
“다른 방법 있습니까?”
“날 죽이면 댁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박상민이 발걸음을 멈췄다.
철컥
“네, 아까 백승현이라는 양아치 새끼가 말한 것처럼 팽 당한 거 맞아요. 당신보다야 많겠지만 그 집단 평균에선 어린 편이고 아버지 후광도 이젠 없으니. 하지만 말입니다. 박 헌터님.”
박상민이 뻔뻔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죽은 박상민은 의미가 있다고요?”
“······.”
“쓸 만 한 카드다. 이겁니다.”
박상민이 두 팔을 벌렸다.
“때려죽이든 총으로 죽이든 마음대로 하세요. 더는 못 가겠으니.”
그가 내게 다가왔다.
어둠에 가려졌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마음대로 하라고. 이젠 시발. 지긋지긋해.”
박상민은 울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마치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죽을 때까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다 뒤져야 하나? 국민의 대표라는 자가?”
박상민이 갑자기 멈춰섰다.
내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하나의 생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 직업도 남의 뜻을 의회에 전달하는 거였네. 실상은 다르지만 대의제라는 거 문구만 놓고 보면 그런 의미잖아?”
그가 뭐라고 하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복도의 어둠 저편으로 회백색 빛이 번들거렸다.
지하의 주인이 우리를 발견했다.
박상민도 그 사실을 깨달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복도를 가득 채울 듯이 다가오는 거대한 괴물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모, 몬스터······!!”
정답이다.
“스파이더 타입!”
그것도 정답이다.
거미를 닮은 세 개의 체절과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회백색의 괴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스파이더 타입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뿔이 있다.
사람보다 더 큰 뿔이 우람하게 우뚝 서 있다.
스파이더 타입에 뿔이 달린 건 적어도 내가 아는 사례 중엔 없다.
변종인가?
아마 그럴 확률이 대단히 높다.
놈의 쩍 벌린 아가리에서 놈을 닮은 작은 거미가 쏟아져나오는 걸 보면.
통상 스파이더 타입은 거점을 구축하고 알이라 할 수 있는 부등다면체를 낳아 거기서 스파이더링을 만들어 영역을 수비한다.
반면 저 녀석은 몸 안에 하수인을 수납했다 필요할 때 꺼내고 있다.
새로운 유형이다.
학교에서는 말한다.
새로운 몬스터나 그 변종을 발견하면 무조건 전투를 회피하라고.
맞는 말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려고 온 것이고.
하지만.
“······.”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편이다.
그놈의 호기심도 호기심이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늘 새로운 것에 부딪쳐서 정체를 알아내고 모두에게 내 교훈을 공유해 은사가 지어준 프로페서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헌터라는 걸 몇 번이고 증명했다.
여러 개의 아종 및 변종 발견, 새로운 패턴의 발견과 그 파훼법 제안, 신종 대형 몬스터의 발견, 뮤테이선 기전의 발견, 균열 내부의 생태계에 대한 보고서.
이 모든 건 프로페서 시절 내가 일구어 낸 업적이다.
단지 잘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이러한 탐구와 지식의 보고가 프로페서라는 이름을 구시대의 전설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야 할 때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내 호기심의 충족이나 인류의 적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다.
단지 사람 하나를 죽이려고 왔다.
몬스터를 누구보다 증오하고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던 나는 이제 내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 하나를 몬스터에게 던져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째서일까.
“이 박상민이 스스로 일어서고 걸어가는 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어머니 봤죠?”
“······.”
“이제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사시겠습니까? 도와주세요. 이번 한 번만요. 네? 그쪽도 어머니가 있을 거 아닙니까”
이 사람의 뻔하디 뻔한 감정선의 자극만은 아닐 것이다.
“당신도 자랑스러운 아들 돼보고 싶은 생각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았습니까?”
박상민이 울먹이며 호소했다.
“나는 부모가 없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그를 지나쳐 다가오는 회백색 괴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해서는 안 된다는 내 이성과 별개로 내 본능은 반사역장 최소 사거리라는 객관적인 사실과 녀석의 어기적거리는 패턴이라는 스파이더 타입에게 균일하게 보이는 느슨한 약점을 정확하고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한 가지 다른 점은.
“끼리리리릭!”
아가리 안에서 다수의 스파이더링을 쏟아낸다는 것.
탕! 탕! 타타타탕!
달려드는 놈들을 권총으로 거꾸러뜨렸다.
철컥
순식간에 탄창 하나를 비우고 다음 탄창을 장전하려고 할 때였다.
웅----
기이한 울림이 공기를 타고 내 심장을 떨게 했다.
즉시 권총을 바닥으로 미끄러지게 하듯 멀리 날려버렸다.
우우우웅---!!
울림이 극한으로 울림과 동시에 권총이 스스로 튀어 올랐다.
펑! 퍼퍼퍼펑!
권총이 스스로 폭발하며 파편과 탄환을 사방에 흩뿌렸다.
기폭.
몬스터의 권능이다.
내가 도끼라는 냉병기를 택한 이유 중 하나.
푹!
파편 하나가 내 허벅지에 박혔다.
뼈와 힘줄을 끊어놓은 건 아니지만 상당한 고통과 더불어 출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얕다.
내 몸에 박힌 파편이 다이렉트로 내 몸에 박힌 게 아니라 바닥을 맞고 도탄되면서 관통력이 상쇄된 상태에서 박혔기에 이 정도에서 그친 모양.
“바, 박 헌터님?!”
이제 놈은 내 영역 안에 있다.
좁은 복도 안에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을 쑤셔 박은 채 여러 개의 더듬이를 역겹게 버둥거리며 안에서 자신을 닮은 새끼를 토해내고 있다.
스르릉-
두 자루의 도끼를 꺼냈다.
스파이더링이 일제히 날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의 춤사위가 시작됐다.
무정한 도끼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머리가 으깨지고 몸통이 짓이겨진 스파이더링의 시체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허, 허억!!”
박상민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안 도망간 건가.
아무래도 좋다.
이제 남은 건 나와 박상민과 그리고 몬스터 한 마리.
놈이 여섯 개의 다리를 복도 깊숙히 박아 대가리를 천정에 붙일 정도로 높였다.
그러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쩍!
다리를 찍었다.
쩍! 쩍! 쩍!
놈의 거대한 몸통이 무너지도록, 그리하여 그 추악한 대가리가 내 손에 닿을 수 있도록.
“끼리리리리······.”
막 새끼를 통해내려는 놈의 대가리를 향해 두 자루의 도끼를 동시에 내리 찍었다.
쩍!
몬스터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후회였다.
괜한 짓을 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죽인 놈이 경련하고 반짝이는 재로 변해 사라지는 걸 보는 감각은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내게 만족감을 줬다.
누구도 상대한 적이 없는 새로운 놈을 죽일 때는 더더욱.
“······.”
아직도 전장을 그리워하나 보다.
그 수많은 절망을 보고도.
“괜찮습니까?!”
빛이 미치는 끝자락에서 박상민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이게 진짜 헌터군요······.”
상처는 얕다.
하지만 걸리적거릴 정도는 된다.
아까 통증을 느끼지 못한 건 피격 당시 아드레날린이 온 몸을 휘감은 결과겠지.
“충격이네요. 진짜 인간이 혼자서 몬스터를 죽일 수 있다니······. 정말이지. 이 박상민! 감동 받았습니다!”
“갑시다.”
“네?”
“가자고요.”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나는 죽인다는 말 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댁이 내게 총을 겨눈 적은 있지만 말입니다.”
확실히 마음이 둥글어지긴 했다.
우민희 아니, 그 이상으로.
아니, 진작 이런마음을 가졌다면 내가 이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
그 작은 용서 하나 못해서 몇 명을 떠나보냈던가.
강한민. 그리고 나혜인.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용서받지 못했다.
그들 또한 나를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박상민이 자신의 양복을 찢어 내 상처를 감쌌다.
“동맥을 당한 건 아닌 거 같네요. 아는 의사가 있습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혼자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의사당에 진입했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두 남자는 어떤 과거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의사당 안엔 여전히 캡슐이 의장석에 당연하다는 듯 역겨운 회백색 광택을 번들거리며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
어쩔 수가 없다.
아마 저건 일종의 상징이겠지.
이 나라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대한민국은 끝났다.
진작에 끝났지만 몬스터는 그 영혼과 뿌리마저 파괴하려는 듯 우연을 가장하여 우리를 능멸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애써 외면하며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요. 박규 헌터님.”
나를 부축하던 박상민이 갑자기 나에게서 떨어져 단상으로 향했다.
뭘 하려는 걸까.
설마 이제 와서 나를 배신하려는 건가?
총도 없는데?
아니면 캡슐을 공격해 동귀어진이라도하는 걸까?
갖가지 불길한 추측이 감도는 가운데 박상민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선택지를 골랐다.
“으라차!”
박상민이, 저 전직 국회의원이 의사당 중앙의 캡슐을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뭐 하는 겁니까?”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회백색 물체를 번쩍 안은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의사당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 박상민입니다.”
“내려 놓고 오세요. 기껏 살려줬더니.”
“아니오. 해야만 합니다. 불이 붙었어요.”
“네?”
“박규 헌터님이 싸우는 걸 보니, 저도 뭐랄까. 싸워야 한다.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죽고 싶습니까?”
“이거만 옮기면! 나도 다시 여기로 돌아갈 수 있어요!”
가끔 생각해본다.
멸망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그 파괴 속에서 병들어가는 인간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몇 번이고 보았던 파멸이지만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의 파멸은 추악하지만 어떤 이의 파멸은 고결하고 아름답다.
의사당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보았던 발췌개헌이나 사사오입 속의 무력한 의원과 달리 박상민은 어떤 선배 의원보다 강력하게 헌법 수호의 의지를 드러냈다.
한 명의 국회의원이 그 직을 유지하기 위해 글자 그대로 국회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세력을 몰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활동 만큼이나 그는 선거 활동에도 진심이었다.
“이 장면. 찍어주세요. 휴대폰 있죠?”
“아니오. 배터리가 없어요.”
박상민이 캡슐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자기 휴대폰을 꺼내 내게 던졌다.
“뭡니까?”
“유세 활동 지원하러 오신 거 아니세요? 본분을 지키세요. 제 선거 활동은 이제부텁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했기에 나는 상처의 고통도 잊고 휴대폰을 꺼내 캡슐을 낑낑거리며 옮기는 박상민을 프레임에 담았다.
쿵!
박상민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혀를 깨물 것 같은 흐릿한 발음으로 가까스로 말했다.
“이제 내 발로 걸어갈 겁니다! 시발. 좆같이 힘들네. 허리가 빠질 거 같지만! 이게 이 박상민의 진정한 첫 시작이라고요!”
쿵!
“어머니가 던진 작은 공이 아닌, 스스로 걸어가는 아들로서 말입니다.”
잠자코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가 선택한 일이고 그를 위한 일이니까.
조금은 그를 응원한 것도 사실이다.
“저기 한강이 보이네요. 국민의 대표로서 저기에 이놈을 풍덩할 겁니다!”
박상민의 발하나가 의사당 바깥을 내디뎠다.
“자, 이제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당을 신성한 의사당에서 축출하려 합니다. 클로즈업 해주세요!”
화면을 확대 하는 순간 프레임을 먼저 덮은 건 박상민의 웃는 얼굴이었다.
뭐랄까.
자유를 느끼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보육원 아이 옆에서 어색하게 지은 미소와는 차원이 다른.
그러나 그 뒤에 갑자기 터져 나온 하얀 노이즈가 애써 지은 미소를 덮어버렸다.
캡슐이 터졌다.
“······이것이 아드님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박상민의 모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한 모질고 강한 눈을 부릅뜬 채 힘겹게 힘겹게 캡슐을 들고 의사당 밖으로 몰아내려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때마침 장갑차가 왔기에 자리를 떠났다.
어둠 너머로 아까 보았던 미친 여자가 노파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박상민에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선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만 분출되던 분노가 현실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수십 만의 인파가 정부 청사에 몰려들어 현재 상황을 규탄했다.
모든 일정이 중단됐고 군대가 군중을 막아서고 총기를 겨누었다.
“그래서, 박상민은 어떻게 됐지? 죽은 거야? 몬스터는? 처치했고?”
이야기를 듣던 디펜더가 교신기를 통해 넌지시 물어왔다.
“빨리 말해줘. 스켈톤.”
그의 동생도 강한 흥미를 드러냈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을 담담하게 내 이웃에게 전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폐허가 된 국회의사당은 스파이더 타입이라 불리는 소형종 몬스터가 장악했다.
스파이더 타입은 정주형 몬스터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표준적인 몬스터지만 국회를 장악한 그 녀석은 다른 개체와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었다.
뿔이 있었고 그 뿔에 한 사람이 꿰뚫린 건지 아니면 그대로 붙은 건지 하여간 부속품처럼 달려 있었다.
몇 가지 우연과 불행이 뒤섞여 한 사내를 마치 대양을 오가던 범선의 선수상(船首像)처럼 몬스터의 뿔 부분에 박제해놓은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지붕이 뚫려 덧없이 푸른 하늘이 내비치는 의사당 안에서 박상민이라는 사내의 마지막 모습을.
눈을 뜬 채 뿔 위에서 굳어버린 박상민 아랜 몬스터의 입이 뻐끔거리며 열리며 작은 거미들을 쏟아내어 텅 비어버린 의사당 안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박상민, 이제는 국회 그 자체가 된 남자가 의원들을 내보내 표결과 부결을 반복하며 전쟁 전의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사람에겐 여덟 개의 다리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