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유세 (3)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사실 그냥 떠날 수도 있다.
무시하면 그만이다.
언제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사후세계가 있다면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확률이 희박할 것이다.
그 사후세계는 전례 없는 손님으로 붐빌 테니까.
하지만 어둠 속에 홀로 남겨져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노파의 모습을 보니, 또 그 아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내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못내 걸렸다.
장갑차가 올 때까진 시간이 남았다.
의무감인지 변덕인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의원님의 죽음은 영웅적이었습니다.”
박상민의 모친은 기가 센 사람처럼 보였다.
낡고 떨어진 흔적이 있지만 옷도 고급스러웠고 몸에 걸친 장신구도 예사롭지 않았다.
다만 기품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건 그녀의 성격이 기품을 받아들이기엔 지나칠 정도로 모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바보 등신이 영웅처럼 죽을 리가 없지.”
노파가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당신이 죽였지? 응? 니놈이 죽였잖아?”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으려 든다.
손을 내저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말조심하세요.”
“이게 어디서 말대답이야! 천한 쌍놈의 자식이! 족보도 없는 후레새끼가!”
“말버릇!”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도 고압적이기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전쟁 전엔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천한 것이?!”
노파가 손을 들어 내 뺨을 때리려고 했다.
이건 선을 넘었다.
다른 제압 방법도 있겠지만 교훈을 주기 위해서 발로 밀어 뒤로 나뒹굴게 했다.
“아악!”
몸에 고통이 새겨져야 정신을 차리는 족속도 있다.
이 여자도 그런 부류로 보인다.
바닥에 나뒹굴어 좋은 옷이 흙먼지로 뒤덮이고 구석구석 고통이 느껴지자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땅바닥에 엉덩이를 깐 채 고개를 숙였다.
“왜 다들 싫어하잖아? 내 아들. 상민이, 우리 아들 상민이······.”
노파의 눈에 처음으로 물기가 비쳤다.
잠시 고민했다.
이 무례한 노파에게 진실을 이야기할 것인지 말 것인지.
“······.”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박상민에게 돌아오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내가 들은 순간부터 말이다.
의무감이라고 해야 하나.
박상민은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그에게 있었던 일만큼은 모친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자. 순서대로 말씀드릴게요. 못 믿으시겠으면 의사당 안에 들어가셔서 직접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노파를 떠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솔직히 정부가 도망가고 나라가 개판 된 상황에서 국회가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헌법상 우리의 역할은 입법과 행정부의 견제입니다. 그런데 그 견제라는 것도 나라가 정상적인 반석에 놓였을 때나 가능한 거 아닙니까?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부터가 도망갔어요. 남은 건 공무원뿐이죠. 행정부 수반이 다 달아났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박상민의 항변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정도로 이해했다.
“선거도 우리가 정한 게 아니에요. 내가 정한 건 아니야. 윗대가리가 정한 거지.”
그는 나에게 질문을 유도하는 말을 여러 번 던졌는데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죄다 무시했다.
의사당이 저 앞에 있었다.
박상민이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사진 하나를 내게 보여줬다.
사진 속엔 우울하고 지저분한 아이들 여러 명이 열과 오를 맞춰 서 있었고 그 중심에 박상민이 당당하게 한 사내아이의 어깨를 잡고 서서 웃고 있었다.
박상민이 사진 속의 자신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비호감인 건 압니다. 정치인의 숙명이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고요. 하지만 판사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낳다? 낳는다고요?”
“아니요. 뭘 낳아요? 낫다고요. 버-스가 아니라 베러!”
“아. 네.”
“이 사진은 제가 후원하는 사설 보육원의 사진입니다.”
박상민이 뿌듯한 눈으로 사진을 넘겼다.
단체 사진만이 아니라 쓰러져가지만 나름 생활감이 느껴지는 보육 시설의 풍경과 아이들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마다 박상민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정치적 미소를 짓는 것도 나름의 감상 포인트였다.
“부모를 잃고 헤매는 수많은 아이를 구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에 국민대표에 뽑히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을 돌봐 줄 힘이 없게 되죠.”
박상민이 슬픈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제가 안 뽑히면 이 아이들 다 죽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의도가 유치할 정도로 뻔했기에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제 의사당은 목전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있고 권세 있던 자들이 드나들던 문은 활짝 열린 채 부식되고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며 깃털을 흩날렸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말을 거역했네요.”
박상민이 말했다.
앞선 이야기와 달리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가 웃으면서 날 보았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인간이 평생 엄마가 시킨 대로 살아온 마마보이라는 게.”
그가 문을 열었다.
“저는 안 들어갈 겁니다.”
딱 잘라 말했다.
“들어가는 시늉만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머니가 지켜보고 계시잖아요.”
“······.”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에 발을 들이는 건 처음이지만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냄새나고 어둡고 혼란스러운 폐허만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보다 내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바닥에 남겨진 자국이다.
“?”
박상민을 돌아보았다.
“캡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캡슐 맞아요.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누가 악의적으로 저지른 일인지 의사당 중앙에 떡하니 있더라고요.”
“이 자국 보이십니까?”
바닥을 가리켰다.
복도 바닥엔 마치 날카로운 정으로 찍은 듯한 자국이 자로 잰 것처럼 균일한 거리를 두고 점점이 찍혀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역시 박상민은 경험이 거의 없다.
알고는 있었다.
그가 헌터 자격을 내세워 비례대표를 따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장은커녕 교육 과정마저 의심스러운 자격증을 딴 인간이라는 걸.
“몬스터 소형종 중에 스파이더 타입이라는 게 있습니다. 지구의 거미와 유사하지만 다리가 6개밖에 없는 놈이죠. ”
“그,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주형 몬스터의 대표적인 타입 아닙니까? 거점만 구축하면 다른 어떤 정주형보다 퇴치하기 까다롭다는.”
“왜 까다로울까요?”
“그, 그건.”
“미로를 만들고 새끼를 까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하수인이라고 해야겠지만.”
박상민이 언급한 말은 사실이다.
스파이더 타입은 일단 거점을 구축하면 다른 어떤 소형종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점거한 지형 자체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수백 마리에 달하는 자기를 닮은 하수인 - 스파이더링을 만들어 그 미로 안에 들어간 인간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니까.
“그 하수인의 흔적이 곳곳에 있네요. 캡슐 외에도 몬스터 한 마리가 이 곳에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형 개변 현상은 안 보이는데요?”
박상민이 두리번거렸다.
“스파이더 타입은 거점 주변을 순식간에 침식지대로 바꾸어 자신의 요새로 만들지 않습니까?”
“최근에 나타났겠죠. 초대형종에 섞여서.”
“그런데 스파이더 타입이 하수인을 생산하는 건 거점을 만든 이후로 아는데.”
“······.”
공부는 열심히 한 모양이다.
이번은 이 사람이 말이 옳다.
스파이더 타입은 마치 여왕개미처럼 일단 자신의 영역을 완벽하게 구축한 후에야 스파이더링을 생산한다.
그 전후 관계가 바뀌는 일은 적어도 내가 전장에 있었을 땐 보고된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박상민이라는 사람.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을 나왔고 대학원도 미국에서 수료했다.
헌터 경력이 너무 하찮게 급조되서 이 사람의 모든 걸 부정할 뻔했다.
“······하아.”
박상민이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몬스터의 영역에 있다는 공포감도 공포감이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피로함이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더 이상 안 가실 거죠?”
“네.”
“10분만 있다 갑시다. 그래야 어머니가 납득하실 거 같으니.”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딱히 할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십 대의 소년들이라면 한 차례 투닥거리고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늙어버린 어른들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화해라는 건 없다.
화해를 하기엔 그들이 터 잡은 땅의 위치가 너무나 다르다는 걸 서로가 아니까.
“김다람씨 선배였다면서요?”
박상민이 긴 침묵을 깼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다람씨는 그나마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겨우 2분이 지났다.
10분은 된 거 같은데.
“우민희라는 사람은 좀 이상하더군요. 말을 이상하게 해요. 뭐랄까. 기분 나쁘게? 악의는 없는데 말투 자체가 그렇더라고요. 그냥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해요.”
우민희가 그런 게 있지.
박상민이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머니처럼 말이죠.”
그를 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다.
공교롭게도 두 번 다 그가 어머니를 언급했을 때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의 모친은 성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기세고 까탈스러운 사모님의 전형이랄까.
백화점 명품점 같은데서 어린 여직원 무릎 꿇려놓고 갖가지 말로 면박을 주는 듯한 그런 이미지가 단박에 연상됐다.
박상민이 먼 곳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뭐, 따지고 보면 여기 이러고 있는 것도 우리 어머니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니는 가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아니오. 그러니까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말입니다. 그러니까 관성 같은 거죠. 어머니가 만들어 낸 관성에 떠밀린 거죠.”
“관성이라······.”
“어머니 자궁에서 나온 이후부터 제 인생은 정해졌죠.”
박상민이 손을 펴서 자신의 손바닥을 응시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유심히 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손금처럼 말입니다.”
“······.”
“간식, 놀이, 옷, 학교, 취미, 친구, 마누라. 전부 다 어머니가 정해줬어요. 국회의원이란 직업을 갖게 된 것도 어머니 덕분이지요.”
“좋은 집안 출신인 모양이네요.”
“네. 사실입니다. 재수 없으시겠지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아버님은요?”
저렇게 드센 여자의 남편은 과연 어떤 삶을 살까.
“새 살림 차려서 나갔어요.”
과연.
“누가 그 성격을 버티겠어요? 제 마누라도 못 버티고 나갔어요. 제 동생도 자폐증 비슷한 병에 걸렸고요. 보면 놀랄 겁니다. 이 싸가지 없는 박상민 밑에 그런 어눌한 동생이 있다는 걸.”
확실히 이 사람, 자기객관화는 확실히 되어 있다.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람을 상처 입히고 이용하는 인생을 살아올 수 있다는 것도 어찌보면 대단한 일이겠지만.
대체로 못난 사람들은 자기가 못난 걸 모르는 법이니.
그나저나.
“10분이 됐네요.”
박상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묘하게도 아쉬움을 느낀 건 내 쪽이었다.
나보다 겨우 다섯 살 정도가 많은, 나와 전혀 다른 인생 역정을 겪은 사내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만 것이다.
어찌 보면 운명이 지어준 흥미일지도.
그가 겪은 강압적인 부모의 이야기는 나처럼 부모가 없는 사람에겐 경험할 길이 없는 환상이니까.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아울러 나는 이 박상민이라는 사람이 허투루 국회의원이 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 사람, 흐름을 잘 읽는다.
건방지고 오만하며 이기적인 성격 속에 날카로운 통찰력이라는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
의원 박상민이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빠르게 알아차리고 인간 박상민으로 내게 낚싯대를 드리운 건 박수를 쳐줄 정도로 기민한 대응이었다.
덕분에 나는 예정에도 없던 헌정사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사당으로 향하는 복도엔 여러 개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발췌개헌, 사사오입, 체육관 선거.
국회의 무력함을 상징하는 헌정사의 오점이 현대미술적인 화풍으로 화폭에 담겨 지붕도 없는 폐허 아래 마모되고 있었다.
“제가 처음 의사당에 들어가던 날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편안한 발걸음으로 의사당을 향해 걸어가며 박상민이 말했다.
“모든 것이 놀랍고 새로웠죠. 처음으로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어요.”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눈은 단상 중앙에 뻔뻔하게 서 있는 원형의 회백색 물체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령 그것이 어머니가 마련해준 레일 위에 있는 것일지라도.”
멸망해버린 수도의 중심에 몬스터의 알이 놓여 있었다.
“나는 여기가 좋아요.”
박상민이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 전 그에 손에 쥔 금속과 플라스틱이 섞인 익숙한 손잡이가 드러났다.
권총이다.
“······.”
예상한 일이다.
철컥
“총, 바닥에 버려.”
총구를 먼저 겨눈 건 내 쪽이다.
“3초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