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60화 (60/183)

39. 유세 (1)

뉴스나 정보 발표를 들을 때 우리는 흔히 일을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등의, 편집자 측의 의지가 개입된 표현을 종종 보곤 한다.

그 과장과 은폐는 의사표시의 한 방법이다.

의사표시의 방식은 사람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한 모양인데 그중에는 어떤 사실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익명848 : 젠장 몇 명이 죽은 거야?

Dolsingnam : 서울 외곽에 있던 친구 연락이 끊겼어. 전쟁 통에도 살아 있던 친군데.

익명458 : 군단파 애들은 몬스터 오기 전에 얼추 다 빠져나갔다던데.

keystone : 못해도 백만은 사는 거 아니었어?

Dies_irae69 : 백만까진 안 될 거야. 많아 봐야 30만 그 정도겠지. 그런데 왜 정부에서는 발표를 안 하는 거지?

...

...

정부에서는 몬스터의 접근을 알려줬지만 그로 인한 피해 상황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페일넷마저 먹통이 됐다.

존내논의 안위가 걱정이 돼서 부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83cm88kg18c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 살아 있어요. 초대형종이 군단파 쪽이 아닌 국회파 장악 지대로 몰려갔거든요. 그런데 거기 사람이 많이 살았죠. 엄청 죽었을 거예요.

페일넷이 먹통이 된 건 몬스터 침공이 아니라 자체적 네트워크 문제였다는 모양.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치지직

정부에서 긴급 라디오 방송을 실시했다.

“오는 수요일부터 국민대표 선거를 실시합니다. 투표는 각 대피소에 마련된 선거소에서 할 예정이며, 한 표를 행사하실 국민 여러분은 구 신분증, 아니면 피난소 등록증을 지참하시고 투표소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방송은 이게 전부였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이 죽었을지도 모를 사건이 터졌는데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선거 이야기만을 내보냈다.

당연한 일이지만 게시판에서는 엄청난 비난이 일어났다.

Dentist_Kim :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tntn_Orthopedics : 사람이 몇 명이 죽었는데 선거를 한다고? 미친 새끼들이잖아. 이거

berkut_break : 참, 무기한 임기 연장할 때 알아봤지

Denis_Oldman : 쟤들은 왜 안 죽어? 왜 끈질기게 살아 남냐고?

...

...

평소 글을 잘 쓰지 않는 눈팅족들이 글을 올릴 정도니.

심지어 그중엔 나조차 처음 보는 닉네임도 다수 있었다.

Defender : 다 죽여버리고 싶네

그 와중에 디펜더의 푸념이 인기글에 오른 건 여러 가지 의미로 의미심장했다.

좋아요 수가 지금까지 디펜더가 받은 최고치를 갱신했다.

평소 디펜더를 좋지 않게 보던 보수적인 사람마저도 이번에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소리다.

디펜더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가 부담스러운지 그답지 않게 약한 글을 올렸다.

Defender : 아니, 비행기 태우지 마. 아무리 나라고 해도 군대가 지키는 임시국회 청사까지 들어가서 총기 난사할 순 없는 법이니까;;

잠시 후 페일넷이 복구됐다.

우리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친구들이지만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우리보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층을 가진 한국 사회의 용광로 같은 사이트의 인기글 게시판에서는 우리보다 더 뜨겁고 신랄하게 선거를 비판했다.

그 백미는 역시 페일넷의 알파요 오메가인 인기 게시판 - 불판일 것이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을 읽어보았다.

ㅇㅇ : 국개의원 개새끼들 죽이러 간다 (23,123)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선거질이나 한다고? 그래 해봐.

내 투표지는 총알이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건장한 사내가 총기를 드러내놓고 선거위원회와 선거 후보를 모조리 죽이겠다는 살인 예고를 올렸다.

그 댓글 수는 무려 2만 3천 개.

꿀꺽

“와.”

엄청난 댓글이다.

1만 댓글을 받은 나보다 만 개는 더 받다니······.

나도 은근슬쩍 비슷한 레퍼토리로 글을 올려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게시판 아래에 나열된 글들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프로포폴 : 전직 헌터다. 오늘 사냥을 시작한다 (19,839)

ㅇㅇ : 내래 북한 출신이래 남조선 간나들 안되겠구마잉 (13,234)

임효창 : 부산통 효창이햄이다. (11,320)

몬스터 : 안녕하세요? 저는 몬스터입니다. (10,232)

KILLER : 선거 날에 보자. (9,327)

ㅇㅇ : 나 힘을 숨기는 어웨이큰인데. (8,234)

...

...

국민대표 죽이겠다는 인증글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놈들.

전부 다 진심은 아닌 거 같다······.

잠자코 보고 있자니 장난 글이 대부분.

그나저나 대체 몬스터는 뭐냐?

몬스터가 왜 인터넷 접속해서 글을 쓰고 있냐고?

“······센스 있네”

이런 상황마저 개그와 장난으로 승화할 수 있는 그들의 해학이 부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밖에 분노를 표출할 수 없는 이름 없는 자들의 씁쓸함도 느껴졌다.

혼란과 분노 속에서 하루가 지났다.

존내논의 위대한 작품은 그가 바랬던 순기능을 어김없이 수행했다.

페일넷 유저 다수가 폐허가 된 서울로 가서 현장을 살폈다.

곧 수십 개에 달하는 정보 글이 올라왔고 우리의 기자 양반이 그 수많은 정보 중 제대로 된 걸 걸러내고 편집해서 우리 게시판에 올렸다.

gijayangban : 이번 이럽션 서울 피해 상황 정리.txt

다들 긴 글 읽기 싫어하니 짧게 요약하겠음.

1. 피해는 서울 남서부 – 국회파 장악지역에 집중

2. 군단파는 초대형종 나타나기 전에 모두 퇴거

3. 군단파 장악지대엔 대형종 몇 마리 관측됐으나 모두 소멸. 피해 거의 없음

4. 더 호프 안 무너짐

정확한 사망자 수는 언급하지 않았다.

애당초 제대로 집계한 적이 없기에 모든 수치가 추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 오십만 명은 죽었으리라는 게 세간의 추측이다.

추측밖에 할 수 없는 건 시체가 없기 때문이다.

초대형종 크라켄 타입이 등대불처럼 비추는 파멸의 광선에 노출되면 인간의 육체는 재로 변해 흔적도 남기지 않으니까.

“후.”

드래곤씨가 남긴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의자에 기대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명을 끈 방공호의 유일한 채광은 열어 놓은 문에서 모로 들어오는 햇볕이다.

그 그늘이 점점 기울며 방공호의 깊숙한 곳에 미칠 때, 그러니까 중앙에 단차를 둔 토대 위에 우뚝 선 내 변기까지 닿았을 때 K-워키토키가 독특한 발신음을 냈다.

개인식별번호 : REDMASK

또 우민희인가.

요즘 연락이 부쩍 잦다.

설마 이 녀석, 내 정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는 없다.

존내논의 부하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박았다.

잠시 쿵쾅거리는 가슴을 다스리고 교신에 응했다.

“오~ 민희냐!”

“선배! 살아 있었네!”

“덕분에 살았다. 네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지 뭐야? 진짜 크라켄 타입이 내 집 앞까지 오는데. 와······.”

“보람이 있네. 그래도 우리 선배가 겨우 그 정도 몬스터에 죽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고마워.”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하던데.

설마? 우민희, 오늘내일하는 건가?

그런 발칙한 상상을 해보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곧 스피커 너머에서 흩어지는 듯한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말했잖아? 난 여전히 선배 높이 평가한다고.”

그런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이해하기로는 조롱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우민희는 그런 캐릭터니까.

그나저나 나도 마음이 많이 약해지긴 한 모양이다.

“······그래 봐야 올드 스쿨인데.”

참지 못하고 가슴 속의 말을 덜컥 꺼내는 걸 보면.

지쳤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조급함일 수도.

모든 것이 죽고 무너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본심을 말할 기회라는 게 그리 많지 않으니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말을 하고 후회했다.

필경 비웃음을 살 것이다.

우민희는 어웨이큰이 된 이후에 나를 비롯한 구 시대의 헌터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한 사람이니.

뭐, 비웃고 싶으면 비웃으라지.

옛날의 섬세하고 자존심 강한 프로페서가 아니다.

페일넷과 비바! 아포칼립스! 양대 사이트에서 동시에 욕을 먹는 인터넷 축구공 스켈톤이다.

솔직하게, 엄창이한테도 지는 우민희가 비웃어봐야 흠집 하나 나겠냐?

그런데.

“올드 스쿨이 과연 틀린 방법일까?”

생각지도 않은 발언이 내 후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잠시 판단해야 했다.

잠시 후,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틀린 방법이긴 하네······. ”

“······.”

“사람 너무 많이 죽잖아? 나도 올드스쿨 시절 다섯 번이나 죽을 뻔했고. 응? 옆구리에도 총알 자국 있고.”

대체 왜 말한 거냐.

“아무튼, 선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응? 도와줘야겠지?”

아무래도 이게 본론으로 보인다.

일단 내용이나 들어보자.

“······뭘 도와주면 되지?”

“별 건 아니고.”

스피커 너머에서 우민희 특유의 높고 가증스러운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선거 유세.”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째서인지 페일넷의 불판을 장식했던 갖가지 살인 예고 글을 떠올렸다.

*약속 장소에 장갑차 한 대가 서 있다.

액면이 있는 군인들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박 헌터님! 오랜만입니다! 무탈하셨죠?”

내가 우민희의 기묘한 제안에 응한 건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건 우민희 그 자체다.

과거의 우민희는 통제 불능의 광인이었다.

원래도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웨이큰의 힘에 눈 뜬 후엔 다가서기 어려운 인간으로 변했다.

마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할까.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 후배를 사지로 몰아넣고 그 후배가 죽으니 갖은 발광을 하며 정신병약을 복용하던 장면은 내가 그녀를 손절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일까.

그 우민희가 예전보다 성격이 나아졌다.

여전히 인성이 바닥인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서 인간 언저리까진 돌아온 것 느낌.

하긴 나도 많이 모났었지.

정말로 많이 부드러워졌다.

예전 프로페서 시절의 나만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내가 변했기에 그녀도 변했을 거라는 조금은 나이브한 생각이 날 움직인 첫 번째 계기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는 이번 몬스터 분출 당시에 우민희가 내게 보인 호의다.

진짜 나를 위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실제로 그 정보는 대단히 정확했고.

내 가장 신뢰하는 후배인 김다람조차 하지 않은 일을 우민희가 한 것이다.

적어도 엄창이 앞에서 그녀는 평범한 누나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성격 더러운 누나 말이다······.

“······.”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일이고 까탈스러운 아이마냥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을 처지도 아니니까.

김다람이 사라진 이후 나는 힘 있는 연줄이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 까막눈이 된다.

비바! 아포칼립스! 마저 없었다면 나는 원시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우연히 밀려온 폭풍에 휘말려 죽었을지도 모르겠지.

우민희를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겠지만 그녀와 약간의 연줄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걸 위한 약간의 노동이다.

딱히 손해 볼 건 아니다.

오히려 짬짬이 이득이 있다.

“서울 말입니까? 뭐, 안타깝게 됐죠. 주로 노인과 병약자가 죽었죠. 갈 곳도 없고 갈 의지도 없고. 피난 사이렌을 울려도 그냥 자기 집에서 죽길 선택한 사람들이 죽임 당한 거죠.”

정보도 듣고.

“이건 우민희 소장님께서 전하시라는 물건입니다.”

스우가 좋아하는 쥬시- 한 통조림도 얻고.

“곧 서울입니다. 뭐, 크게 놀라실 건 없을 겁니다. 사람만 깔끔하게 사라졌으니까요.”

모두가 이야기하는 서울에도 가보고.

“자, 이제 도착했습니다. 박 헌터님.”

서울의 풍경이 다시 한번 내 앞에 펼쳐졌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 하고도 7개월.

서울은 사실상 멸망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재앙에서 벗어나 아무도 없는 거리를 헤맨다.

“하하하······.”

미친 여자가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겨 젖가슴이 드러났는데도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텅 빈 거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녀를 지켜볼 뿐 말리지 않았다.

그녀의 후두부엔 쇳조각처럼 보이는 파편이 박혀 있었다.

“이쪽입니다.”

살아생전에 내가 선거 유세 같은 걸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민희가 내게 부탁한 선거 유세는 일반적인 유세가 아니라 내가 잘하는 일이다.

“우리 후보님이 선거 치적용으로 몬스터 한 마리를 사냥하고 싶으신가 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떨어질 거 같으시거든.”

물론 그녀가 부탁한 건 “선거 유세”지, “당선”은 아니다.

돕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인간에게 도움이 됐든, 되지 않든 그러니까 그 자리에 있어서 돕는 시늉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인간, 우리 쪽에 약점 하나 잡아서 협박을 해대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진짜. 예전엔 김다람이 대응했다고 하는데 다람씨. 비위도 좋아라. 나 같았으면 죽여버렸을 텐데.”

그 문제의 후보는 뒷짐을 진 채 폐허가 된 서울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뒤통수.

누군가 했더니 아는 얼굴이다.

“아, 국위원에서 소개한 헌터신가.”

그 사내가 날 돌아보았다.

“어?”

사내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 인간, 박상민은 제풍호 회장 사건 당시 나와 트러블이 있었던 사이니까.

나는 그를 학교 철거 때 본 적이 있지만 박상민은 그 사건 이후로 날 보는 게 처음일 것이다.

“다, 당신은?! 그때 그?!”

“싫으면 돌려 보내도 좋습니다.”

오히려 잘 됐다.

이런 인간과는 1초도 엮이기 싫으니까.

그런데 우리 박 의원님, 2년 전과 달리 요즘은 좀 궁하신 모양이다.

“하하. 무슨 말씀이세요. 헌터님.”

궁상맞은 얼굴로 내 눈치를 보는 걸 보면 말이다.

“가시죠! 차량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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