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불멸 (4)
자전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찾아가 사람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침 날도 어둡고 개척자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건 최근 서울의 시국이 혼란해서 벌어진 결과겠지.
인천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잠자코 있던 권력 다툼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무기한으로 기한을 연장한 국회의원이 쓸데없는 자원과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국회 측에서 아예 국민대표라는 무려 500명이나 되는 유사 국회의원을 뽑겠다고 나선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개척단 중에서도 국민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놈들이 있는 모양이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사지로 내몬 사람의 숫자가 곧 업적이라면 자신의 몫을 주장할 만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생각 보다 비열하고 더러운 모양이다.
두 번이나 찾아간 드래곤씨의 방공호 앞에 이르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인물들을 발견했다.
방공호에서 꽤 떨어진 도로에 세 사내가 드럼통 안에 모닥불을 피운 채 술을 마시고 잡담을 떠들고 있었다.
아마 필크럼의 동생이라는 인간이 데리고 온 패거리겠지.
잠시 몸을 숨긴 채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저쪽에 저것들. 중국놈들 아니야?”
“저 새끼들. 다 죽여버리고 싶은데.”
“한미연합군이 상륙한 것들 다 바다로 쓸어냈다더니, 하여간 나랏놈들은 뻥만 친다니까.”
“그 만화가 새끼 마누라 쌔끈하던데. 시발. 걍 그 새끼도 죽이고 마누라 갖고 놀면 안 될까?”
“몰라. 형민씨가 정할 문제겠지. 덕분에 먹을 거에 술 왕창 챙겼으니. 이거만 해도 남는 장사 아니야?”
시답잖은 이야기.
딱히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는 이야기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총을 써서 죽일 수도 있고 도끼로 찍어 죽일 수도 있다.
행동에 나서기 전에 꼼꼼하게 정찰을 한 번 더 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 한 대가 서 있다.
방탄판을 댄 전기 차량.
옆엔 태양열 전지를 동반한 충전기도 놓여 있었다.
차량 안엔 사람이 없었지만 드래곤씨의 것으로 보이는 술과 식량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시 상대를 가늠했다.
방공호 주변에 3명.
방공호 안에 3명.
물론 드래곤씨는 죽었다고 전제한 상황이다.
차에 다가가 바퀴 앞뒤에 큼지막한 돌을 괴어 놓았다.
혹시 모를 보험이다.
물론 여기서 내 허락 없이 빠져나가는 이는 없도록 할 것이다.
천천히 모닥불에 다가갔다.
뒤를 경계하는 놈들이 하나도 없기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딱히 속도를 늦추지 않은 상태로 가볍게 걸어가 무방비하게 술병을 든 사내의 목을 도끼로 내리 찍었다.
푹!
도끼날이 살을 파고 들고 뼈를 찍어 부러뜨리는 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졌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비척거렸다.
그가 쓰러지기 전 또 다른 도끼를 고개를 돌리려던 사내의 머리를 향해 정확한 힘의 배분으로 찍었다.
쩍!
마지막 남은 사내는 운이 좋았다.
내 얼굴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으니.
하지만 동시에 운이 나빴다.
두 자루의 도끼를 동시에 몸으로 받아내야 했으니.
마치 벌목을 하듯 사내의 양목에 도끼날을 꽂은 채 그의 몸을 부축했다.
주루룩-
흐르는 피가 장갑을 낀 손에 묻었지만 옷에 묻진 않았다.
아이를 침대에 누이듯 천천히 그를 모닥불 옆에 눕혀놓고 방공호로 향했다.
방공호 앞에 전에 보았던, 자칭 필크럼의 동생이라는 자가 나와 필크럼이 앉아 있던 캠핑 의자에 앉아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를 힐끗 보았다.
총기는 없다.
방공호 문 또한 닫혀 있다.
“······.”
딱히 대화할 가치는 없는 친구지만 변덕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아니, 묻고 싶은 것도 있었고.
달빛이 나를 침범하게 놔두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냐?! 너는?!”
사내의 충혈된 눈동자가 곧 날 발견했다.
“무기를 들어라.”
피 묻은 도끼를 들어보였다.
사내가 의자에 파묻힐 듯이 움츠러드는 게 보인다.
“헌터라며?”
“뭐, 뭐야?! 여훈아! 여훈아!”
그가 모닥불이 있던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대답이 없자 사내는 이번에는 방공호 쪽을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호준! 호준아!”
권총을 들어 방공호 입구 쪽에 3발을 쏘았다.
탕! 탕! 탕!
총성이 울리고 탄환이 도탄되는 소리가 방공호 주변의 적막을 깨뜨렸다.
안에서 비명이 들리는 걸 확인하고 그에게 물었다.
“어디 갔어?”
사내가 치열하게 눈알을 굴리며 슬그머니 바닥에 놔둔 단도로 손을 뻗었다.
그가 단도를 쥐게 놔두었다.
“여기 있던 사람, 어디 갔냐고?”
그가 단도를 쥐어야 내가 원하는 답에 접근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
“죽였다.”
단도를 쥐자 사내가 진실을 이야기했다.
단도에 자신감이라도 묻혀 놓았는지 사내가 이죽거렸다.
“너도 알고 있었잖아? 니가 가면 그 새끼 뒤지는 거? 왜 그때 안 말렸어? 응?”
그러나 얻은 건 자신감뿐.
단도를 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도끼를 들고 그에게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사내가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며 개처럼 짖었다.
“이 새끼가! 미쳤냐?! 안 꺼져? 응? 응? 찌른다?! 응?! 찌른다?!”
결국 그가 먼저 단검을 찔러 들어왔다.
동시에 아마 습관대로, 다른 손을 뻗쳐 날 잡으려 했다.
두 자루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챙캉!
하나로 단검을 떨어뜨리고.
푹!
다른 하나로 팔꿈치를 찍어 날 잡으려던 팔을 덜렁거리게 만들었다.
“아아아아악!”
고통으로 울부짖는 그를 가만히 보며 물었다.
“헌터 맞냐?”
사내가 우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굳이 답변을 들을 필요는 없으리라.
그대로 도끼를 던졌다.
무심하게 도끼가 포물선을 그리고 울상을 지은 그를 향해 날아갔다.
1초 정도 걸리려나.
1초 정도면 자신의 행동과 운명을 깨닫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지.
아마 놈에겐 그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쩍!
단 한 번의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내는 도끼가 박힌 채 절명했다.
미간을 뚫고 박힌 도끼를 뽑아 뇌수와 피를 닦아낸 후 방공호로 향했다.
방공호 안에선 한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여성의 비명, 아이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다른 놈이 있을까.
있어도 관계없다.
한 손엔 권총, 한 손에 도끼를 들고 닫힌 문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문 열어. 다 죽여버리기 전에.”
문이 열렸다.
공포에 질린 가족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려했던 다른 적은 없었다.
혹시나 사각에 숨었나 싶어 구석을 확인했지만 그들이 전부였다.
내가 권총을 휘두르며 방공호 안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자니 필크럼이 내게 무릎을 꿇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세요! 적어도 제 가족은 가족만이라도······.”
“내 친구 어디 있어?”
DragonC.
우리 커뮤니티 게시판에게 재미라는 인생의 비타민을 주던 남자의 최후는 평범했다.
일말의 존중도 없이 논두렁 위에 간신히 얼굴만을 가릴 정도의 얕은 흙만을 덮은 채 썩어가는 사내를 보았다.
부패해가는 낯빛은 공교롭게도 생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검붉은 흙색.
시체 앞에서 필크럼이 목숨을 애걸했다.
“제가 안 죽였어요. 형민이가. 형민이가 죽이자고 해서······.”
“다시 묻어.”
그에게 삽을 던졌다.
“정중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필크럼이 드래곤씨를 매장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잠깐.”
작업을 잠시 정지시켰다.
시체에서 뭔가 굴러떨어졌다.
틀림없다.
비닐에 싼 종이봉투에 안에 든 종이뭉치는 드래곤씨의 원고다.
그 원고의 제목은 다름 아닌 “The Remnant”.
드래곤씨가 그토록 목을 매던, 그를 불멸로 만들어 줄 최후의 역작이다.
가만히 선 채 그의 원고를 읽어보았다.
그것은 콘티라기보다는 문자의 나열이었다.
드래곤씨는 먼저 말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콘티를 그렸다.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
이제 수긍이 간다.
그가 손이 느렸던 이유를.
두 번의 작업을 해야 했으니.
하지만 그가 남긴 문장은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필크럼이 묘를 파는 동안 방공호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두려운 눈으로 날 보고 있었지만 날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고 방공호 안을 보았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드래곤씨가 붙여놓은 자신의 작품 포스터가 모두 철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죽일 이유를 하나 더 찾으며 드래곤씨가 사용하던 작업대 앞에 앉았다.
“······.”
이것이 고인이 생전에 쓰던 노트북인가.
그의 노트북을 쓰다듬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인터넷 창엔 페일넷 게시물이 여럿 떠 올라 있었다.
전부 필크럼이 쓰고 보던 시시콜콜한 것들.
전부 닫아버리려고 하니 구석에 작게나마 우리 게시판의 창도 열려 있었다.
드래곤씨의 계정으로 우리의 게시판을 보았다.
늘 보는 적당히 혼란하고 적당히 멸망해가는 작은 세상.
무심코 보이는 것이 있다.
임시저장 목록이다.
하나의 글이 미완의 상태로 완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어보았다.
DragonC : 나 필크럼과 동업한다!
-필크럼 이 친구. 걍 난 놈이야. 상상력도 발군에 기본기도 장난 아니고. 와 시발, 솔직히 벽 느꼈다.
하지만 말이야. 친구들아.
내가 그놈보다 잘하는 게 하나 있더라고.
내가 필크럼보다 훨신 “낳은” 이야기꾼이더라고.
우리 크게 사고를 내 볼 거야. 이 드래곤씨와 필크럼88이 힘을 합쳐서!
“······.”
드래곤씨의 마지막 글은 게시판에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겐 확실하게 전달됐다.
그가 내게 말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네가 살 길이 하나 있다.”
방공호 안.
반쯤 탈진한 상태로 무릎을 꿇은 필크럼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드래곤씨가 되라.”
“네?!”
필크럼에게 드래곤씨의 원고를 내밀었다.
“그의 이름으로 이걸 완성하라는 소리다.”
“이, 이건?!”
필크럼의 얼굴에 미세한 경악이 떠올랐다.
“제가 그렸던 그것의 후속편인가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당혹감으로 콘티와 원고를 보던 필크럼의 얼굴이 점차 변했다.
놀라움과 충격으로.
“이, 이건?”
그가 정색하며 날 올려다보았다.
“소, 솔직히 좋네요!”
그를 남겨두고 뒤돌아섰다.
“얼마가 걸리든 관계없다. 이걸 완성해라. 그게 내가 널 용서하는 조건이다.”
더는 이야기를 섞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저 인간을, 저 인간의 가족을 전부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책상 한구석에 놓은 어항 속의 모조 금붕어가 격렬하게 요동치더니 날 향해 멍청한 얼굴을 돌렸다.
“······.”
어항을 품에 넣고 자리를 떠났다.
*
DragonC : “The Remnant” 2화
게시판에 드래곤씨의 회심의 역작 램넌트의 최신화가 올라온 건 그로부터 2주가 지나서였다.
인천에서 국민대표라는 기생충 500마리를 뽑는 쓸데없는 행사를 하며 모두의 분노를 사고 있을 때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단파의 정예가 다시 정권을 노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하던 혼란의 시기기도 했다.
그 답답한 시국에 올라온 드래곤씨의 최신화는 페일넷와 비바! 아포칼립스! 두 개의 이질적인 집단에 같은 감동을 몰고 왔다.
쏟아지는 수많은 찬사 속에서 나는 정신이 아찔할 것 같은 커피의 향기 속에 잠겨 그가 내게 당부했던 최후의 유작을 읽고 있었다.
SKELTON
낙서에 불과한 콘티 속엔 한 사내가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인터넷에선 어리숙했지만 현실에선 똑 부러지고 의리를 알고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치 학창 시절 다른 아이가 그린 만화를 나눠보던 그때의 기분으로 그의 낙서 작품을 읽어나갔다.
“에이. 그건 아니지.”
뭐, 드래곤씨가 나에게 강력한 인상을 받긴 받은 모양이다.
이 박규가 홀로 중형종을 무처럼 썰고 대형종마저 마치 검기를 연상케 하는 필살기로 처리하는 걸 보면.
나는 어웨이큰도 아니고 나는 검기를 쓰는 어웨이큰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 시발 꿈!”
작중 인물 스켈톤의 마지막 독백을 보면 말이다.
절로 모르게 쓴웃음인지 아니면 진심일지 모를 미소를 머금은 채 메모장을 켰다.
순백의 영원한 공간이 내 앞에 펼쳐졌다.
무심코 텅 빈 메모장에 두 글자를 쳤다.
불멸.
그 문구는 곧 맥없는 백스페이스 연타에 지워졌다.
“······.”
두 작가가 있었다.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남았다.
불멸이 되기 위해.
불멸로 남기 위해.
불멸을 남기기 위해.
“불멸이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멸이라는 진부한 단어로 드래곤씨의 의도를 표현하는 건 지나치게 사건을 단순화하려는 편의적인 발상이 아닐까?
모조 금붕어가 내 생각에 동의라도 하듯 내 쪽으로 몸을 틀어 흐리멍덩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내가 탁자를 가볍게 쳤고 그 반동으로 인한 여러 물리 현상이 겹쳐 이루어진 우연이겠지만 그 금붕어를 본 순간 하나의 생각이 꿈처럼 떠올랐다.
이 상황, 이 흐름이야말로 드래곤씨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자신의 죽음 그 자체로 완성되는 그러한 불후의 명작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죽은 자의 꿈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세계가 그의 작품에 편입됐다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