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57화 (57/183)

37. 불멸 (3)

반격의 기세는 점점 커졌다.

“타이푼”의 조회 수는 점점 늘어났고 댓글과 추천 수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기세를 더해갔다.

그 뜨거운 열기는 최근 필크럼이 올린 신작 단편 “일진 사냥꾼”을 넘어설 정도였다.

마침내 “타이푼”이 “일진 사냥꾼”의 추천 수를 뛰어넘자 사람들은 말했다.

드래곤씨가 필크럼을 넘어섰다고.

그 만년 2, 3류 작가가 드디어 탑 클래스 작가와 비빌 정도로 올라왔다고.

기묘한 건 필크럼의 반응이다.

그는 이번 드래곤씨의 역작에 아무런 반응을 드려내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문제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 게시판 일동은 드래곤씨의 화려한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드래곤씨는 심심한 감사를 표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그는 오직 나에게만 자신의 진정한 속내를 밝혔다.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누가 이기고 지고 그게 뭐가 중요해? 난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마냥 좋기만 한데.

SKELTON : 그래?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전쟁 전엔 꿈이나 꿨겠어? 나 같은 히트작 하나 없는 중고작가가 탑클래스 작가와 비빈다는 게. 다 전쟁이 가져다준 기적인 거지.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난 진정 지금 살아 있음을 느껴!

활자 너머로 드래곤씨의 기쁨이 느껴졌다.

틀림없다.

그는 진심으로 이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페일넷과 비바! 아포칼립스! 두 사이트를 동시에 끓어오르게 한 두 작가의 경쟁은 그렇게 동화 같은 결말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아직 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나가 더 있었다.

*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죽기 전에 내 최후의 작품을 완성해야지.

SKELTON : 렘넌트 말이지?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 그건 무조건 그려야 해. 죽어도 그걸 완성하고 죽겠다고 결정했어.

SKELTON : 불후의 명작인가?

DragonC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런 대단한 건 아니야. 어차피 살 날 얼마 안 남은 인간의 몸부림 같은거지. 그건 그거고 아무튼, 기다려 봐. 곧 재밌는 소식이 있을 거야.

그 재밌는 소식은 영영 알 길이 없었다.

뒤이어 터진 또 다른 사건이 그 소식을 묻어버렸으니까.

필크럼88 : 패배를 인정합니다. DragonC님.

필크럼이 패배를 인정했다.

모두가 보는 게시판에서 자신이 패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진의를 의심하게 충분한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먼저 드래곤씨님의 그림을 동의없이 표절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 의도는 드래곤씨님을 화내게 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4년 전, 플랫폼에서 주최한 작가 연말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죠? 그때 인사 나눴던 거 같은데요.

무례한 부탁이지만 혹시 방공호에 남는 자리가 있을까요?

드래곤씨님의 렘넌트를 제 식으로 이해하며 그리면서 가슴이 뛰는 걸 느꼈습니다.

이건 대작이다. 인류사에 남을 대작이다.

머슴 노릇 하라면 하겠습니다. 별채에 살아도 좋아요. 저도 부디 렘넌트의 끝을 보고 싶습니다!

*

“······.”

발단을 제공한 건 나일 것이다.

이 박규가 11살 어린이로 변신해 제주도행 선단 자체에 의문 부호를 붙였으니.

페일넷의 침공도 하루에 한 번 있을 정도로 뜸하겠다, 최근 심심해진 게시판 유저들은 인기 작가 필크럼88의 글을 보고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keystone : 와 필크럼88님이네. 나 하이스쿨 엠퍼러 광팬인데.

익명848 : 스튜디오 차리는 건가? 의외로 시너지가 나올지도?

unicorn18 : 필크럼88님. 저 커미션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Defender : 야 필크럼88 너 혼자냐?

언제나 그렇듯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건 나의 인터넷 친구 디펜더다.

키보드를 두드린 건 동생 쪽으로 보인다.

Defender : 설마 애새끼 처자식 부모 이딴 불행세트 줄줄이 비엔나로 데리고 오는 거 아니지? 우리도 슬슬 식량 떨어지는 애들 하나둘 나오고 있는데.

이 글이 올라간 후 답글이 달리기까지 1분하고도 10초 정도의 간극이 있었다.

필크럼88 : 아내와 아들, 동생 포함해 3인 가족입니다.

Defender : 남동생은 아니겠지?

필크럼88 : 남동생입니다.

Defender : ㅋ

교신기가 울렸다.

“스켈톤! 컴퓨터 보고 있어?”

아니나 다를까 다정이의 신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필크럼 이 새끼, 아니, 이 분! 참 뻔뻔하지? 응?”

“······좀 그렇긴 하네.”

가족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성인 남성만 세 명?

방공호 뺏겠다는 소리 아닌가.

게다가 드래곤씨의 방공호도 그 혼자 살기엔 넉넉했지만 넷이 살기엔 좀 비좁지 않을까?

드래곤씨가 선물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정이에게 물었다.

“드래곤씨 그 사람 어떻게 나올까?”

“당연히 안 받아들이지 않을까?”

“역시 그렇겠지?”

늘 느끼지만 사람이라는 건 정말로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속만큼 변화무쌍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게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인간이 몬스터같다면 이 세상은 참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드래곤씨는 모두의 예상을 깨는 선택지를 골랐다.

DragonC : 좋습니다.

*

필크럼88과 드래곤씨의 대면식에 내가 참석한 건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내가 드래곤씨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다면 드래곤씨가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필크럼이 사과할 일도 없었을 테니.

물론 드래곤씨는 당분간 볼 수 없었겠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안전한 방공호를 마련한 드래곤씨와 달리 필크럼은 현실 그 자체가 그를 짓누르고 있으니.

미래에 제대로 대비를 못한 죗값을 받아 그가 죽고 드래곤씨가 혼자 남는다면 결국 그가 승리한 게 아닐까?

그런데 드래곤씨의 생각은 나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아무튼 일은 벌어졌다.

상대는 네 명이다.

필크럼88의 가족과 그의 동생.

반면 이쪽은 드래곤씨 한 명.

그나마 내가 있기에 드래곤씨가 그나마 고개를 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필크럼88은 딱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웹툰 작가다.

적당히 젊은 외모에 적당히 하얀 피부, 적당하게 세상을 깔보거나 혹은 무심한듯한 눈빛.

그는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드래곤씨님이세요?”

이 사람.

예전에 드래곤씨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점점 내면에서 강해지는 반감을 느끼며 드래곤씨를 위해 자리를 비켜줬다.

“제가 드래곤씨입니다. 필크럼88님.”

“심호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보다 연상이신 거 같은데.”

“최용수입니다.”

두 작가가 악수를 교환했다.

시종일관 웃고 있는 건 필크럼이었다.

반면 드래곤씨는 대체로 무표정했고 가끔 상대방의 말에 반응해 어색한 미소를 내비쳤을 뿐이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기보다는 필크럼에게 끌리는 모양새였다.

“정말로 죄송했어요. 정말. 용수형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인지도 모르고 도발을 하다니. 참, 흑역사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삶이 팍팍하고 지랄 맞으니. 진짜 서울에서 쫓겨나 인천으로 갈 땐 정말이지 시발. 하. 진짜 더러운 기분이었죠. 이 심호준이 인천까지 가는구나! 하고!”

“저, 인천이 고향이에요.”

드래곤씨가 쓴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하하.”

필크럼이 데리고 온 가족들은 김다람과 달리 방공호 시설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아마 저것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살아왔다는 증거겠지.

뭐, 필크럼이나 그 가족은 아무래도 좋다.

진짜 가족인 거 같고 필크럼도 만화가 본인 같으니.

태블릿을 놀릴 때 한 번에 멋진 남성 캐릭터를 한 번에 그려내는 솜씨는 마술을 보는 듯했다.

내가 신경 쓰는 건 필크럼의 동생이라는 자다.

190cm에 달할 정도의 장신에 한 눈에도 단련된 육체의 소유자였는데 필크럼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동생인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

이 인간은 처음부터 불온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더니 곧 드래곤씨를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저기. 아저씨. 혼자 살아요?”

아저씨라는 말에 드래곤씨가 약간의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사내는 실실 웃을 뿐 드래곤씨의 감정 따윈 일말의 고려도 없다는 뻔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혼자 삽니다만.”

“아, 어쩐지. 홀아비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

그가 날 돌아보았다.

“이 사람은 뭔가요? 혹시, 뭐 친구? 보디가드? 뭐 그런 건가.”

나도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하긴 나를 내려다볼 정도로 키가 크고 덩치가 좋으니 자신감이 생겼을지도.

드래곤씨가 필크럼을 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필크럼이 실실 웃으며 동생을 소개했다.

“아, 제 동생이에요. 닮지는 않았지만 동생이 아니었다면 여기 올 엄두도 못냈겠지요. 아, 제 동생은 헌터입니다.”

“헌터요?”

“네. 전쟁에도 참가한 적이 있죠. 지금은 그 뭐냐? 어웨이큰? 그런 사람들한테 밀렸다고는 하는데.”

필크럼의 동생이 코웃음을 치며 갑자기 단검을 들어 손끝에서 핑그르르 돌렸다.

“내가 그냥 나온 거야. 어차피 있어 봐야 총알받이밖에 안 될 거 같으니까.”

이 친구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신나게 돌리던 단검을 허벅지에 묶어놓은 칼집에 꽂아 넣더니 날 보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아까부터 왜 자꾸 이쪽을 빤히 쳐다볼까? 혹시 게이세요?”

“쳐다보면 안 됩니까?”

“저기, 눈치 없다는 소리 많이 듣죠?”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주먹 깎지를 끼며 우두둑하는 소리를 냈다.

“꼬우면 스파링 한 판 뜰까요?”

“아니오.”

“그럼 시선 까시거나 딴데 보세요. 신경 좆같이 쓰이니까.”

“나는 스파링은 안 뜨고 실전만 하는데.”

그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곧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성을 토해냈다.

“야! 이 씨방새야!!”

그가 내게 우악스러운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필크럼이 그를 막아섰다.

“형민씨! 참아요!”

“아니, 씨발 이 새끼가 열받게 하잖아요?”

“아니, 좋게좋게 가자고요. 형민씨 처음부터 삔또 상해 있었잖아요?”

“오다가 시체들 보니 기분 나빠졌으니까! 아무튼 씨발 저 새끼가 뭐? 실전? 지랄하고 자빠지네. 처 뚫린 입이라고.”

“아니 형민씨!”

“하, 시발.”

돌아가는 꼴을 보니 동생 같지도 않다.

아마 호위조로 깡패 같은 놈 하나 데리고 온 거 같은데 이쯤 되면 드래곤씨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씩씩거리는 사내를 무시하고 드래곤씨를 방공호 밖으로 불러냈다.

“괜찮겠어?”

솔직하게 안 괜찮아 보인다.

저건 그냥 깡패요 건달이다.

필크럼88은 그나마 사람 같은데 그놈도 마냥 좋은 사람 같진 않다.

사람이 좋았다면 저런 깡패 같은 걸 데리고 오지도 않았겠지.

“내가 볼 때 저 새끼들 그냥 너 죽이거나 쫓아내고 방공호 먹을 생각 같은데.”

99%도 아니다.

100%다.

“그럴 수도 있겠지.”

드래곤씨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탓일까.

병적으로 검어 보였던 그의 안색은 더욱 진한 흑색을 띠고 있었다.

드래곤씨가 알약을 꺼내 씹지도 않고 삼킨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필크럼은 진짜야. 실물이야. 내가 멀리서 보았던 그 필크럼이 맞아.”

“난 안 내키는데.”

“3일.”

드래곤씨가 손가락 3개를 폈다.

“3일 뒤에 연락 줘. 내가 도움 필요하면 대답할 테니.”

“아니.”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3일 뒤에 네가 나에게 연락을 해. 연락 없으맨 내가 바로 갈 테니. 그게 더 낫지 않겠어?”

“······.”

드래곤씨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못마땅한, 그러나 애써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드래곤씨가 날 향해 웃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빤히 보이는 암울한 미래가 앞에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설마 내가 미덥지 못해서?

그건 아니다.

이 박규, 퇴물 취급을 받고 여기저기서 무시당하지만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증오는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

잠시 심호흡을 하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 콜사인. 프로페서가 맞아.”

“프로페서? S급?”

“3초.”

“?”

“저 안에 큰소리 치는 놈 포함해서 3초면 정리 가능하다.”

도끼가 내 손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

“대답해라.”

드래곤씨는 처음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넉넉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손짓했다.

귀를 가까이 대보란다.

“필크럼이 내 것 그대로 베껴서 그려서 나 곤란하게 한 적 있지? 처음엔 화가 엄청났지. 진짜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로 화가 났어. 진짜 당장 인천 가서 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실제로 놈을 죽이려고 뇌내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고!”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나고 보니, 뭐랄까. 이것도 괜찮은 거야. 몰라. 나도 그림쟁이고 자존심이 있는데.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 그런데 지금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이 기분은 진짜야.”

드래곤씨를 보았다.

아마 간이 안 좋아 시커멓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검게 변한 얼굴로도 가릴 수 없는 진의로 넘치고 있었다.

“3일만 지켜봐 줘.”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선택한 길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또한 한 명의 커뮤니티 유저.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아, 그리고 선물이 있어.”

“또?”

“어. 잠깐만. 따라 들어와 봐.”

드래곤씨가 내게 준 선물은 솔직히 내 예상을 넘어섰다.

에스프레소 기계였다.

그것도 대량의 냉동 커피 원두를 동반한.

“아니, 그거 그냥 놔두면 안 되요? 네?”

지켜보던 필크럼의 아내가 한소리를 했다.

옆에서는 거구의 사내가 구시렁거리고 있었고 필크럼이 그를 간신히 말리고 있었다.

의아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런 걸 내게?”

“나 커피 끊었거든.”

옆에서 필크럼 아내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우린 안 끊었는데?”

드래곤씨는 그 말을 무시하고 한사코 내게 에스프레소 기계와 원두를 가져가라고 부탁했다.

“부탁이야. 두 번이나 와줬는데. 그거에 비하면 이건 거저지. 내 마음이니 꼭 받아줘!”

“······.”

“걱정 마. 나도 총질 해 본 적 있으니. 지금은 골골거리지만 나도 육군 만기전역자야.”

원하지 않았던 선물을 안고 방공호로 돌아갔다.

3일이 지났다.

드래곤씨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