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변신 (2)
REDMASK : 자, 그럼 엄창아. 몇 가지만 물을게. 그 리트지 니가 직접 테스트 한 거니?
엄창11 : ㅇ
REDMASK : ?
엄창11 : 왜여?
REDMASK : 엄창아 옆에 엄마나 아빠 없니?
엄창11 : 일 나갔어요
REDMASK : 아무리 익명이라고 해도 사람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단다. 우린 사람이잖니? 짐승이 아니라;;
엄창11 : 예압
REDMASK : 하아······
엄창11 : ??
REDMASK : 그래 지금 어디니?
엄창11 : 인천요.
REDMASK : 그렇구나... 그래 리트지를 테스트 할 때 혹시 환각 그러니까 헛것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니?
엄창11 : 헛것요?
REDMASK : 응, 강렬한 이미지라던가 떠오르는 게 있다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놀랄 정도의 빛 같은 게 엄창이 주변에서 퍼져나간다거나 그런 변화 말이야.
“······이미지라.”
그러고 보니 어웨이큰이 처음 능력을 개안할 때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 있다.
이른바 각성 현상으로 각성통, 각성시 등 다채로운 말로 불리는데 실제로 어웨이큰 마다 처음 능력에 눈 뜰 때 천차만별의 모습을 나타내는지라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 말하기 어려운 점이 없잖아 있다고 한다.
우민희는 그 각성 현상의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했다.
병적인 환상, 눈을 감고도 한동안 잔상처럼 남은 강렬한 이미지, 혹은 어떤 상징.
이건 낮은 등급의 어웨이큰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진정으로 강력한 어웨이큰은 이러한 각성통은 물론 주변에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시각적 혹은 정신적인 영향을 사방에 흩뿌린다고 한다.
나도 본 적이 있다.
강한민, 나혜인이 그 절망적인 전장에서 어떻게 개안을 하고 진정한 힘을 얻게 됐는지.
그들이 힘을 얻을 때 세상이 변하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다.
구원자라 불릴, 당대 최강의 어웨이큰 두 명이 동시에 개안을 했으니.
문득 내 은사가 떠올랐다.
그분은 각성 현상을 따로 보이지 않았던 걸까.
분명 리트지가 흰색인 걸 보면 누가 봐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각성 현상을 나타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REDMASK : 엄창아? 왜 말이 없니?
내가 생각에 잠긴 동안 우민희가 특유의 조바심을 드러낸다.
인터넷이고 내가 어리다고 생각해 참고 있는 거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 꿀밤이나 따귀 한 대가 날아왔을지도 모른다.
엄창11 : 커다란 도끼를 봤어요.
REDMASK : 도끼?
엄창11 : 네 날을 스스로 불타고 그, 그, 손잡이? 는 물 같았어요
대충 어웨이큰 각성자 수기집에서 본 이미지를 적절히 변용해서 말해줬다.
내가 왜 이걸 알고 있냐면 나도 어웨이큰 각성 시험에 참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죽을 뻔했다.
실제로 죽은 사람도 있다.
강력한 테스트를 할 수록 그 테스트는 사람의 혼백을 글자 그대로 분쇄해버리니까.
REDMASK : 그렇구나. 엄창이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한 지 알고 있지?
엄창11 : 아니오. 아는 형이 폰 빌려주면서 여기에 올려보라고 해서 올려 봤어요
REDMASK : 그, 그렇구나.
REDMASK : 엄창이는 지금 먹을 거 잘 먹고 있니? 휴대폰도 군대 옆에서 간신히 쓰는 거지?
엄창11 : 잘 먹지는 못해요 아빠가 가지고 오는 걸로 간신히 먹어요 그 이상한 영양바 같은 거?
REDMASK : 우리는 엄창이 가족을 제주도로 보내줄 수 있단다.
나왔다. 제주도.
엄창11 : 제주도요?! 저 배 타고 갈 건데요. 이미 일정이 잡혔어요
REDMASK : 언제? 몇 기 선단에?
엄창11 : 그건 잘 모르겠고 곧 출발한다던데요
REDMASK : 1기 선단? 음, 그건 안 타는 게 좋을 거야.
엄창11 : 왜요?
REDMASK : 중국 잠수함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거든. 운이 나쁘면 엄창이 가족이랑 함께 물에 꼬르륵할지도 몰라.
엄창11 : 그럼 제주도에 어떻게 가요?
REDMASK : 비행기를 타고 가야지
엄창11 : 지금 뜨는 비행기가 있나요?
REDMASK : 응. 마음만 먹으면. 걱정하지 마렴. 엄창이가 여기 와서 간단한 테스트 받고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이 되면 엄창이는 물론 가족 모두가 제주도에 갈 수 있어. 제주도에 가면 전기가 나오는 집도 있고 게임도 할 수 있단다. 엄창이 롤 좋아해? 나도 좋아해. 거기선 랭크 게임도 가능하단다?
우민희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엔 제주도의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타운하우스가 일렬로 서 있는 모습과 그 안에서 담소를 나누고 전쟁 전의 생활을 누리는 가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
대충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짐작하고 있었다.
역시나 제주행 선단은 또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이이었다.
진짜 능력 있는 어웨이큰 후보는 따로 비행기로 모셔간다.
이게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결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서울에서 몇 번 갔을 때 나라가 개판으로 치닫고 있는데 초중학교만 문을 연 걸 본 적이 있다.
이를 위한 포석인가.
어리고, 어리니까 어웨이큰 각성 확률이 보다 높고 세뇌도 시킬 수 있는 애들을 제주도로 죄다 뽑아가겠다는 건가.
김다람 같은 전쟁에서 구를 대로 구른 녀석은 알아서 살라고 내치고.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전부 들었다.
대화 내용도 전부 스크린샷을 찍었다.
여기서 대화를 끊을 수도 있지만 이왕 내 사랑스러운 후배와 일 대 일 채팅방에 있는데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
엄창11 : 좀비도 어웨이큰이 될 수 있나요?
REDMASK : 좀비가?
REDMASK : 엉뚱한 질문이구나. 좀비는 죽은 사람이란다.
엄창11 : 죽은 사람이 살아나면요?
REDMASK: 글쎄. 무의미한 실험이 아닐까?
무의미한 시험이란다.
이 여자는 내 은사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건가.
한 가지 더 물어보자.
엄창11 : 저 흰색이면 얼마나 강한 건가요? 누나는 이길 수 있어요?
REDMASK : 그건 무리지 않을까?
REDMASK : 누나는 엄청 강하단다?
엄창11 : ㅎㄷㄷ;;
REDMASK : 뭐, 엄창이도 제주도 가서 싸이킥 능력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특기를 굳혀나가면 누나보다 더 활약할 수 있을지도?
엄창11 : 그렇군요
REDMASK : 아무튼 엄창아 지금 어디니? 인천이라고 했지? 제8 부두에 올 수 있어?
엄창11 : 네.
REDMASK : 엄창아 ^^
“?”
REDMASK : 너 수도권에 없는 거 같은데.
엄창11 : 네?
REDMASK : 아~ 나랑 대화하는 네 고유번호가 우리 정부망 인터넷 대역폭에 잡히지 않는다고. 너 어디야? 엄창아? 지방이니? 응? 누나 성격 별로 안 좋단다~ 솔직히 말하렴~
설마. 이 녀석. 아이피 추적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였나.
하긴 페일넷 쓴 인간들 대부분이 정부나 군 통신망에 빌붙어서 쓰는 게 전부니 마음만 먹으면, 더군다나 그들이 만든 사이트 안에서는 특정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그 말은 우리의 작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아직 성이 안 찬다.
엄창11 : 누나 나이는 이름은 뭔가요?
REDMASK : 민희
엄창11 : 미니? 가슴이 미니? 키가 미니? 마음이 미니?
REDMASK : 장난치지마렴 ^^
엄창11 : 누나 나이는요?
REDMASK : 서른인데
엄창11 : 뭐야 이모네
REDMASK : 엄창아? ^^ iq추적 한다? ^^
<대화방을 나가시겠습니까?>
즉시 대화방을 탈출했다.
“······역시 네년이었구나.”
알고 싶은 건 전부 알았다.
우민희.
한때 내 귀여운 후배였던 그녀는 이제 부모에게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역할을 맡는다.
빨간 마스크라.
닉네임 한 번 잘 지었군.
어쩌면 자신의 역할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지은 닉네임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와 있을 때 그녀는 마스크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녀가 말하길 자신은 마스크를 쓰기엔 하관이 너무 예쁜 여자니까.
이 여자와 나눈 대화는 전부 일괄해서 스크린샷으로 저장했다.
특히 제주도 관련 부분은 꽤나 재미가 있을지도.
내 비록, 이 시대에서는 무력한 개인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지만 나도 인간이다.
같은 인간인데 엿 먹일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183cm88kg18c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이큐 추적요? 아이피 추적이겠죠. 페일넷이라면 모를까, 비바! 아포칼립스!는 게시판 보안은 허접해도 위성 신호 자체는 하늘에 갔다 다시 쏴 내리는 형태라서 특정하기 어려울 걸요? 안심하시고 계속 쓰셔도 됩니다!
우민희가 협박이 뻥이라는 걸 알지만 존내논의 부하에게 연락을 해서 안전을 확인받았다.
결론은 안전하단다.
그나저나 아이큐 추적이라니.
우민희 녀석 제대로 열 받긴 했군.
안전을 확인받은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뭐야? 그 글 진짜 스켈톤 네가 쓴 거였어? 왜 거짓말 했어? 우리 사이에?”
“스켈톤!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디펜더 남매와 교신기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아무튼 도와줘야 할 게 있어.”
내가 디펜더 남매에게 부탁한 건 내가 직접 찍은 스크린샷의 편집이다.
이미지 툴은 갖고 있지만 편집에 서툰 나는 내가 말하려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잘 와닿게 하는 재주가 부족하다.
반면 디펜더, 특히 동생 쪽은 이쪽에 능하다고.
“이런 느낌으로, 페일넷 거지들이 잘 볼 수 있게 이미지 용량 줄이고 글자 또렷하게 보정했어. 하지만 거기에 올릴 땐 원본도 같이 올리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신빙성이 생기거든.”
“고마워.”
“고맙긴. 우리 사이에. 나중에 초대나 해줘. 스켈톤 집 보고 싶네?”
다정이는 교신기로는 잘도 이야기 한다.
실제로 눈앞에서는 목소리가 작고, 오빠가 같이 있어야만 목소리를 내는 성격이긴 한데 차차 변하겠지.
당분간 이들과는 꽤 오랫동안 동맹 관계를 유지할 거 같으니까.
아무튼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보완한 나의 계획은 우민희와 그녀 뒤에 있을 역겨운 인간들의 계획을 까발리는 것이다.
나는 존내논이 아니기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능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세계를 통해 제 발로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능력 정도는 있지는 않을까?
ㅇㅇ : REDMASK 낚은 결과(충격 주의)
하나의 글을 가드 수험생 게시판에 업로드했다.
그 게시판엔 페일넷 이용자도 잘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한 우민희와 나의 대화 내역이 들어 있었다.
특히 중요한 건 제주도에 관한 부분이다.
그 선단의 종착지는 제주도가 아닌 죽음이다.
아마 개척자보다 더 대량으로 더 간편하게 필요 없는 사람들을 제거할 것이다.
컨테이너선 한 척에 태울 수 있는 사람만 수만 명에 달하니까.
제목부터 시선을 끄는 나의 글은 곧 엄청난 조회수와 더불어 어마어마한 댓글을 수집했다.
ㅇㅇ : REDMASK 낚은 결과(충격 주의) (1132)
ㅇㅇ : 진짜냐? 이거?
ㅇㅇ : 제주도 행 배 뭔가 싸한 느낌 들더라니
ㅇㅇ : 걍 개척자잖아? 걍 배 타는 개척자잖아?
ㅇㅇ : 우린 이제 뭘 해야 해?
영민아빠 : 이거 거짓말이야. 구라네. 구라야.
ㅇㅇ : 솔직히 이거 하나 보고 믿기엔 스케일이 너무 크지 않냐?
ㅇㅇ : ㄹㅇ 이런 걸 가지고 인증이라 할 수 없지
ㅇㅇ : 그래도 저 말이 진짜면 진짜 섬뜩한 거 아니냐?
ㅇㅇ : 저 인터페이스 나 레드마스크랑 이야기할 때와 같아....
...
...
내 게시글이 전쟁터가 됐다.
내 말을 신뢰하는 사람, 내 말을 근거로 정부를 공격하는 사람, 내 말을 부정하는 사람, 날 비난하는 사람, 거짓말로 모는 사람.
이미 수험생 게시판에서 활활 타오르던 나의 게시글은 페일넷의 불판에 가서 더욱 가열차게 타올랐다.
ㅇㅇ : REDMASK 낚은 결과(충격 주의) (10001)
댓글이 만 개를 넘었다.
페일넷 이용자 전체가 몰려 들었단 소리다.
“오~ 스켈톤~?”
다정이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우리 게시판에선 인기 지지리도 없는데 저기선 아주 신이네. 신? 댓글 만 개! 와!”
“스, 스서방!”
“······.”
알 수 없는 야릇한 고동이 심장에서 울려 퍼지는 걸 느끼며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스서방. 역시 놈들이 알바 풀었네.”
디펜더가 연락을 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수험생 게시판에 내 글을 흉내 낸 가짜 인증글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우민희의 생각은 아니겠지만 커뮤니티 여론전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는 모양이다.
ㅇㅇ : 낚시 잘 봤고여~
ㅇㅇ : 하여간 한국 놈들 부화뇌동 하는 건 뭐 있다니까
ㅇㅇ : 제주도 가는 배 타고 싶은 놈이 지어낸 이야기네 ㅉㅉ
내가 일으킨 불길은 안타깝게도 거기서 진화됐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나는 그저 불을 피웠으니.
그 불이 작았고 불을 끄는 놈들의 솜씨가 뛰어났을 뿐이다.
절반의 아쉬움을 안고 다른 주제가 페일넷의 불판을 달구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나 내 잠깐의 모험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날 밤 나는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John_nenon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존내논 엄지척)
이거면 됐다.
이거면.
아니, 어떻게 보면 최고의 보상일지도.
*gijayangban : 여기 페일넷에서 장난치는 놈 있냐?
gijayangban : 엄창인가 뭔가 여기에 있는 거 아니지?
어째 요즘 기자 양반 날이 서 있는 느낌이다.
gijayangban : 페일넷에서 자꾸 분탕치다가 우리 게시판 친구들 전부 다 뒤지는 수도 있다고? 자중해.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걸까.
그답지 않게.
“······설마?”
아니, 아니겠지.
기자 양반이 우민희라고?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그 녀석 신문부긴 했는데······.
설마.
아닐 것이다.
기자 양반은 우리 게시판의 네임드로 빛과 소금 같은 구세주다.
그가 쓴 가면 뒤에 우민희 같은 인간말종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렇게 믿고 싶다.
“······.”
나 또한 엄창11이라는 가면을 쓰긴 했지만 말이다.